'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로마의 코모두스 황제는 불과 열두 살 때 목욕물이 따뜻하지 않다는 이유로 목욕탕지기 노예를 화덕에 던져
넣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사악한 것일까.
미국 오클랜드대의 생의학공학과 교수인 바버라 오클리는 그 답을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이상증세에서
찾는다. 뇌는 유전자에 따라 움직인다. 결국 유전자가 사악한 인간을 만들었으니 사악한 유전자(evil genes)가 있다는 것.
하지만 탐구의 시작은 과학적인 호기심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문제였다. 원저의 부제는 '왜 로마가 망했고, 히틀러가 성공했으며,
엔론이 파산했고, 언니가 어머니의 남자친구를 가로챘느냐'다. 저자의 언니는 밥 먹듯 거짓말을 했고 대학 등록금을 유흥비로 탕진한 게 드러나자
10년간 종적을 감췄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나 그날로 다시 집을 떠났다. 심지어 나중에는 홀로 된
어머니의 남자친구까지 빼앗았다.
저자는 과학자답게 일단 인터넷에서 논문을 검색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경계선(정신병과
신경증의 경계) 인격장애'와 관련해서는 논문이 수천 편 있는 반면, 정작 언니와 같은 '악의적인 자기애자'를 검색하자 단 한편의 논문도 없었다.
저자는 수많은 뇌과학·심리학 연구논문과 함께 역사책과 전기를 뒤지며 언니처럼 철저히 자신의 욕심만 챙긴 악인들을 파헤쳤다. 그
결과 악인들은 모두 심각한 인격장애를 갖고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들의 행동은 뇌과학에서 밝혀낸 특정 유전자나 호르몬 분비의 이상증세와 꼭
들어맞았다. 악인들이 더욱 성공한 것은 진짜 의도와 야망을 감추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밀로셰비치를 충실한 공산주의자로 여겼고, 반대로 서방 외교관들은 합리적이고 친서방적인 젊은 경영자로 반겼다.
저자는 도서관에서
같은 서가에 한 번도 같이 있어 보지 못했던 과학과 역사라는 퍼즐 조각들을 맞붙여 숨겨진 그림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해답이 그 안에 있지는
않다. 과학의 즐거움은 답을 아는 것보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게 될 때 더 커진다.
잔악한 범죄행위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뱉는 말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수수께끼같은 대상이다. 이런 사람들이 멀리 있는 것만도 아니다. 다른 동료들 앞에서 폭언으로 모욕하고 망신을 주는 직장
상사, 악의적인 험담을 퍼뜨리는 동료나 이웃, 남의 애인 혹은 배우자를 가로채는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파렴치한 등은 주변에서도 어렵지않게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인류는 ‘악인의 역사’를 끊임없이 목도하면서 가끔 천성을 의심하면서도 이를 주로
개인의 윤리 문제로만 여겨왔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을 쓴 바버라 오클리 박사(미 오클랜드대 시스템공학 교수)는 참으로
집요했다. 그녀는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때때로 성공하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했다. 해부학, 유전학, 정신병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의 연구 논문을 탐독하며 인간의 사악성, 즉 못된 기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데 도전했다.
인간의 도덕성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그가 가장 크게 의존한 도구는 다름아닌 최첨단 뇌 영상 기기다. 그는 인간의 사악함, 즉 속임수와 조작에 능하고 사디스트적인 면모 등은
사실상 뇌의 기능 부전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의료 영상 기술을 통해 기분, 불안, 충동성과 관련된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단다. 감정을 유발하고 억제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모노아민
산화효소(MAO-A), 트립토판 수산화효소 등 다양한 뇌의 기능과 요소들을 그 증거로 열거한다. 요지는 이렇다. 우울, 공격성, 충동성,
감정이입 등은 물론 식욕과 성욕, 죄의식과 수치심은 물론 이타주의 감정, 분노와 용서, 습관적인 거짓말 등 모든 도덕적 행위가 뇌 영역의 기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 영상은 인간의 양심, 도덕관 및 윤리관이 더 이상 철학자의 노리개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도덕성 자체를 관장하는 신경영역을 영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뇌과학, 심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를 개괄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실제 인물들의 사악성에 대한 사례분석도 곁들였다. 마오쩌둥, 히틀러, 스탈린에 이어 분식회계로 2001년 파산한 에너지 회사 엔론의
CFO 앤디 페스토, 패리스 힐튼의 외할머지 빅 캐시, 마사 스튜어트 등이 그 도마에 올랐다. 이를테면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인종청소를
벌인 세르비아 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에게서 경계선 인격 장애의 다양한 징후를 조목조목 짚어냈는가하면, 마오쩌둥에게선
경계선 인경 장애 징후를 넘어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징후까지 찾아냈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체적인 패턴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독특한 분야인 시스템공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쓰는데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렸다.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논의를 전개하는 솜씨는 현란하다
싶을 정도다.인간의 선악 문제를 철학과 심리학의 틀에서 이해하는데 갑갑함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인간 탐구서’가 될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본의아니게(?) 소설처럼 펼쳐지는 저자의 음울하고도 독특한 개인사까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러온 친언니 캐롤린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 때문에 이 분야 연구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이해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함으로써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답했다. 언니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일부 신경학적인 그리고 유전적인 기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의학박사 짐 펠프스는 추천의 글에서 “인간 대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선량하다”며 “그러나 나쁜 행동에 대한 이해가 깊을 수록 우리는 그
문제를 더 잘 다루게 법”이라고 덧붙였다. 원제 『Evil Genes』.
글=이은주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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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악의적인 험담을 퍼뜨릴까? 왜 어떤 사람들은 회사 공금을 자기 집 돼지 저금통에 든 돈처럼 맘대로 이용하려 할까? 왜 어떤 사람은 수백만 명의
국민을 고의로 굶주리게 할까?”
이 책은 로마 제국 코모두스 황제의 폭정에서부터 히틀러, 스탈린 등 무자비한 독재자들과 ‘발칸의
백정’으로 불리는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란 참극 등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악랄함에 대한 심리학, 정신의학적 연구결과들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주의자이든 반사회성 인격 장애인 사이코패스든 인간이 사악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유전자 문제와 뇌의 기능 부전 때문이다. 정상인의
유전자, 신경구조, 뇌 등과 사이코패스들의 그것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불안, 충동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와 불안 장애
등을 유발하는 호르몬 등이 있다는 것을 밝혀 낸 것이다.
저자는 과학적 분석 결과와 함께 자기도취적 인격 장애, 정신분열 등의 증상을 보인 인물로 마오쩌둥, 히틀러 등의 생애를 언급한다.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구와 아집으로 성공한 일군의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이 종종 우상처럼 떠받들어지고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잊지 않는다.
저자가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대학 등록금을 유흥비로 탕진하고 10년간 자취를 감추는가 하면
이혼한 엄마의 남자친구를 가로채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악행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언니 캐롤린의 삶이 사악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풍부한 사례와 인격 장애를 가진 언니와 지냈던 개인사가 함께 엮여 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히틀러, 무솔리니,
폴 포트, 차우셰스쿠, 밀로셰비치, 소모사, 후세인, 이디 아민…. "저 미치광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최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을까?"
보통 사람들의 분통을 터뜨리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잔학 행위를 증명하는 명백한 자료들이
코앞에 있는데도 마치 그런 일이 없었거나, 딴 사람의 잘못 때문에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양 행동한다. 분명 세상은 능멸당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에 뿔이라도 달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식별되지 않는다. 스탈린은 사교의 달인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혹적인 인물로 널리 인정받았다. '발칸의 백정' 밀로셰비치는 서방 외교관으로부터 합리적이며 친서방적인 인물이라고 호평 받기까지
했다.
그들은 결국 "인간 쓰레기"이며 극단적인
"마키아벨리주의자"일 뿐이다. 미국 오클랜드대 공학부 교수 바버라 오클리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에다 최신 과학이론을 접목시켜 그들을
분석한다. 실험실에서 길들여진 시선이 날카롭다. 그녀의 입장은 말하자면 "이 세상 최고의 성인인 척하던 설교자가 창녀와 잠자리를 같이 한 사실을
보도한 시사잡지"(39쪽) 쪽을 택한 결과다.
멋대로 놀아나다 어느날 훌쩍 집으로 와서는 우연히 만난 남자를
따라 또 자취를 감추더니, 이혼한 엄마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잘 사는 '성공적인' 팜므 파탈이 있다고 하자. 이 말썽장이 아가씨는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는 유전자와 환경에 절반씩 책임이 있다고 보는 통념의 오류를 지적, 유전자 쪽에 책임을 묻는다. 부모의 속을 썩히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유전자가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역사상의, 현실의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을 보는 저자의 시각도
그렇다.
마오쩌둥은 사악한 유전자를 가진 '보더패스'(경계성 인격 장애)의 전형으로 나온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 사이코패스와 더불어 다양한 성격이 내재하는 정신분열적 양상까지, 그에 대한 분석이 임상기록처럼 펼쳐진다. 고문에 의존하고, 부하들이
서로를 비난하도록 부추기는 통치 수법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둘째 아들이 앓았던 정신분열증도 그의 보더패스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312쪽).
엔론이 분식 회계로 2001년 파산하기 전까지 자금관리
책임자(CFO)였던 패스토가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업무에는 무능했지만 언론 공작 등에 능했기 때문이라며 그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한다. 저자는 또 능력이나 정직성 등은 중요시하지 않는 엔론 특유의 하향식 조직문화에도 큰 혐의를
든다.
이 책은 후발자의 미덕을 최대한 발휘한다. 왜 그들이 사악하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비교 연구, 사이코패스에 대한 영상유전학의 개가 등 관련 분야의 최신 업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자연과학적 사실에다 역사적 사건과 개개인의 신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합하는 필자의 능력이 골고루
펼쳐진다. 염색체지도 등 딱딱한 과학 정보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개인사까지 곳곳에 삽입해 일반 독자를 흡입하는
까닭이다.
한편으로 사회경제적 준거가 미약하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과학과 대중과의 만남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마키아벨리안의 분석을 위한 탁월한 모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매력적인 위장술에
현혹되거나 그들의 애끊는 이야기에 넘어가지 말라." 사랑, 배려, 충성, 신뢰 등 보통 사람의 인간적 면모를 기만하는 마키아벨리주의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저자의 충고다.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성공하는가’라는 부제가 번역판에 붙어있다. 영문판에는 ‘로마가 쇠망하고 히틀러가 출세하고 엔론이 파산하고
나의 언니가 엄마의 남자친구를 가로챈 이유’라는 다소 엽기적인 부제가 달렸다. 여성인 저자는 현재 미시간주 오클랜드대 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인데,
실제 저자의 언니 캐롤린은 매력적인 외모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악의적인 행동을-그 중에는
어머니의 남자친구를 가로챈 일도 있다-이어갔으며,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저자는 인간의 사악성에는 환경보다는 유전자가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속임수와 조작에 능하고 사디스트적인 면모를 갖춘 이들의
뇌 속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겉보기엔 매력적이지만 권력에 아첨하는 데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으며 지배력 쟁취나 사적 이익을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책략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 있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마키아벨리주의자’라고 부른다.
심리학이나 의학 등 학문적 용어는 아니다. 저자는 로마의 코모두스 황제나 히틀러, 분식회계로 2001년 파산한 거대 에너지 회사 엔론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앤디 패스토 등을 마키아벨리주의자의 사례로 들고 있다.
저자는 여러가지 최신 뇌과학, 심리학의 증거들을
내민다. 영상유전학은 기분, 불안, 충동성과 관련된 뇌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감정을 유발하고 억제하는
핵심 커뮤니케이션 분자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작용도 주요한 연구성과다. 경계선 인격 장애자의 대뇌피질 핵심 영역에서는 세로토닌 농도가 정상인보다
훨씬 낮다. 또 경계성 및 분열성 인격 장애자와 사이코패스가 보이는 ‘감정이입 결여’ 증세는 전두엽과 두정엽의 전대상피질, 미러 뉴런 등 뇌의
여러 부위와 관련이 있다. 미엘린이라 불리는 흰색 절연 물질로 덮여 있는 신경 조직인 백질은 거짓말하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이처럼 해박한 역사적·과학적 근거를 통해 유전자와 뇌의 이상이 사악성의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능변과 매력, 조작과 술책에 쉽게 넘어가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를 모두 과학적 성과안에 환원해 버리는 데 대해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문화일보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악당의 뇌' 따로
있었네
나쁜 유전자
영화 <다크 나이트>
"최고 자리에 오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는 정수(精髓)가 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인간쓰레기가 되는 거지."
사실 착한 사람이 잘된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세상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한 편의 드라마다. 도대체 왜 나쁜 사람들은 존재할까. 그리고 왜 그들은 책에 써 있는 대로
벌을 받지 않고 심지어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하는가.
'나쁜 유전자'의 저자 바버라 오클리는 이들이 "진짜 의도와
야망을 감추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쁜 유전자를 타고난 악한들은
엄청난 사고를 친다.
가령 인종 청소로 유명한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단순한 조작 대상으로만 여기고 속임수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던 '유전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 권력 계층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밀로셰비치를 충실한 볼셰비키로 생각했다. 한편 서방 외교관들은 그를 합리적이고 친서방적이며 정력적인 은행 총재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사실 '발칸반도에서 가장 교활한 사기꾼'이었고 대통령에 오른 후 10년간 네 번의 피비린내 나는 인종 청소 전쟁을 일으켰다."
이는 중국의 독재자 마오쩌둥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상대를 매혹하는 능력은 최고였다"고 마오쩌둥을 평가했다.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지도 않았고 남에게 이를 기대하지도 않았던 마오쩌둥이지만 이미지를 포장하는 능력만큼은 대단했다는 것이다.
오클리는 이 밖에도 엔론 사태의 주범이었던 앤디 패스토, 미국 호텔재벌 힐튼가 사람들의 면모 등을 파헤치며 성공한 사람들의
'사악성'을 분석한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특이한 점은 성공한 사람들의
사악성 원인을 조명한 방식에 있다. 다른 책들이 대개 심리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유전학과 신경학 등 새로운 분석 틀을 이용한 것.
생명공학자라는 저자의 이력이 십분 발휘된 셈이다.
오클리는 이를 위해 일단 마오쩌둥과 밀로셰비치, 히틀러 등의 행동 패턴이 섬뜩할
정도로 비슷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모두 주체성 장애, 심한 충동성, 불안한 대인관계 등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성이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 오클리는 이런 사이코패스가 '염색체 등 유전적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는 결과를 들며 사악성 원인에 대해 더 파고든다.
"에시 바이딩 그룹은 사이코패스 성질을 보이는 쌍둥이들에 대해 조사했다. 그런데 심각한 사이코패스인 이들 쌍둥이의 반사회적 행동은
강력한 유전적 영향(81%)을 받고 있었다. 두 쌍둥이가 어떻게 다르게 성장하는가 하는 비공유 환경의 영향은 19%에 불과했다. 반면 경미한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쌍둥이들은 그 반대의 결과였다. 70%의 영향력이 환경에서 온 것이었다."
오클리는 이어 신경과학과 유전학을
동원해 '문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뇌를
분석한다. 그 결과 일반인과 악당 사이 뇌 차이는 꽤 큰 것으로 나타난다. 분열성 인격 장애인과 사이코패스에게 보이는 '감정이입 결여 증세'는
전두엽과 두정엽의 전대상피질 등 뇌 여러 부분과 관련이 있고 병적인 거짓말쟁이들은 '거짓말하고 싶은 욕망'을 조절하는 신경조직인 백질이
정상인보다 25% 많다는 식이다. 즉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나쁜 행동을 할 때는 환경적인 조건도 영향을 주지만 이를 무시하는 '지배적인'
유전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종삼 옮김. 살림 펴냄.
사람이
모여 사는 조직이라면 항상 주목받는 의문이다. 어떤 조직이나 심보 고약하고, 늘 거짓과 악의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부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인간이 꼭 먼저 승진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정정당당하게 사는 사람의 속을 뒤집어놓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원인 혹은
비결은 뭘까. 과연 인간의 사악한 천성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그리고 사악한 사람들이 지지받고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쁜 유전자’는 인간의 사악한 심성과 독재자들의 포악성을 유전적, 환경적, 정신병리학 등 뇌과학을 통해 파헤친다.
저자는 심리학을 준거 기준으로
삼고 최첨단 뇌 영상을 이용하여 인간이 사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주로 뇌의 기능 부전 때문이라는 놀라운 개념을
입증한다.
문화대혁명으로 수백만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마오쩌둥, 악성 나르시시즘과 정신분열증은 물론 편집증까지 있어 자기 감정을 전혀 억제하지 못한 세기의 학살자 히틀러, ‘발칸의 백정’으로
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섬뜩할 정도로 유사한 행동 특징을 설명하면서 그것들을 신경과학과 유전학의 혁명적인 발견들과 세밀하게
결부시킨다.
최근 과학 부문의 극적인 연구 성과는 역사상 악명 높은 독재자뿐 아니라 정치, 기업, 종교계의 실력자들과 우리 주변
인물들을 연구하는 데 사악한 유전자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도 뒷받침하고 있다.
책은 이처럼 흥미진진한 가족사와 실존 인물들을
과학적 탐구에 탁월하게 융합시켜 악의 두 얼굴, 즉 과학적인 얼굴과 인간적인 얼굴을 규명함으로써 과학을 대중화시킨 걸작이다.
세계일보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기사입력 2008.10.03 (금) 17:42,
인간내면에 숨겨진 사악함을
파헤치다
'나쁜 유전자' 바버라 오클리 지음, 살림 펴냄 '인종청소' 밀로셰비치…
'독재' 히틀러… 왜 그들은 이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지난 1990년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10년간 네
번의 피비린내 나는 인종청소 전쟁을 일으켜 유고슬라비아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그로 인해 22만 5,000명 이상이
죽었고, 수백만명의 피난민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발칸의 백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2006년
3월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엽기적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한때 유고슬라비의 성공한 권력자였다. 밀로셰비치와 같이 사악한
행각을 저지르면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했던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를 전쟁의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독재자 히틀러를 비롯해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중 한명인 일본 군국주의자 도조 히데키 등 역사속 인물로부터 1888년 영국 런던에서 15명의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 소아성애(小兒性愛)로 구속돼 죽음을 당한 미국의 사제 존 게오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사악함이 본성인 듯한 인간들이 도사리고 있다.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데 유독 왜 몇몇 사람들은 이런
행각을 저지르는 것일까. 바버라 오클리 미국 오클랜드 대학 공학부 교수는 그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았다.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사이코패스(psychopath)’들은 기분과 불안감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감정조절이 어렵다는 것. 대뇌 깊숙이 숨어있는 ‘편도(amygdala)’의 감각이 무뎌
불안감과 공포감을 잘 느끼지 못하며 전두엽에 있는 ‘상전두이랑(superior frontal sulcus)’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여 도덕적인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게 종전의 연구의 성과다. 오클리 교수는 이를 근거로 사악함은 타고 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저자는 나쁜 유전자를 지닌 기만적인 지도자의 원형으로 마키아벨리를 꼽고, 그가 쓴 ‘군주론’은 사악한
행동 습성의 유형을 설명하는 좋은 자료라고 말한다.
즉,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바로 마키아벨리주의적 인간들이라는
것. 특징은 이렇다. 사람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조작 대상이라고 간주하며, 전통적인 도덕관념이 희박하고 거짓말ㆍ속임수 등
기만행각을 예사로이 벌이며, 정신병리학적 결핍상태에 빠져있다. 또 이념적 말을 늘어놓기 바쁘며, 거시적인 목표실현 보다는 눈앞의 실리를 위한
책략에 더 관심이 있다. 그는 밀로셰비치도 골수 마키아벨리주의자라고 단정짓고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뇌과학ㆍ심리학ㆍ유전학ㆍ의료영상기술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면서 방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악마적
유전자의 증상과 행태를 이론적으로 풀어냈다.
또 밀로셰비치 등 역사적 인물과 친 언니인 캐롤린 등
주변인물을 사례로 들어 어려운 과학적 이론의 이해를 돕는다. 책은 그동안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관찰해온 과학자들의 연구 실적을 총 망라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사악함의 밑바닥을 파헤친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 이론에 자신의 경험과 역사적 사례를 곁들여 유전자에 숨겨진 사악함을
흥미진진하게 펼친다.
‘웃는 얼굴로 등에 칼을 꽂는 기만적인 동료, 학생들의 연구 업적을
가로채는 명망 높은 대학 교수, 주가 조작으로 회사를 키우고 공금을 유용하는 경영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독재자.’ 주변 또는 역사적
상황 속에 존재하는 사악한 인간들을 보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게다가 조직에서 성공까지 하다니”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인간 유형을 미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악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과 호기심이 드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 만하다.
저자 역시 비슷한 출발점을 갖고 있다.
대학 등록금을 유흥비로 쓴 사실을 거짓말로 덮고, 단지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이혼하고 혼자 사는 어머니의 애인을 가로챈 언니 캐서린을 보면서 저자는 ‘사악하게 성공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미시간주 오클랜드대학 공학부 교수인 저자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체 패턴을 분석하는 시스템공학 박사인 이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악함을 분석하는
유전적, 환경적, 정신병리학적 최신 연구 결과를 개괄해 보여준다. 그러면서 언니 캐서린을 비롯한 가족사, 히틀러·마오쩌둥 등 ‘사악하게 성공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분석도 중간중간 곁들인다.
저자는 인간의 사악성을 결정짓는 데는 환경보다 유전자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분열성 인격 장애인과 사이코패시에게 보이는 ‘감정이입 결여 증세’는 전두엽과 두정엽의 전대상피질 등 뇌의 여러 부분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 신경조직인 백질은 거짓말하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는데, 미국 연구진의 한 연구결과 병적인 거짓말쟁이들은 뇌에 있는
백질의 양이 정상인보다 25% 많다고 말한다.
사악한 사람에 대해 눈길이 가는 것은 분명히 나쁜 사람임에도 사회에서 성공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악하게 성공하는 사람’은 진짜 의도와 야망을 감추고, 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악한 사람들의 승리 방정식은 속임수와 거짓말,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조작대상으로 간주하는 냉혹함이다. 이 같은
내용은 유명한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에서 더욱 드라마틱하게 드러난다. 발칸반도 인종청소의 장본인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밀로셰비치는 대통령이 되기 전 야망을 감춘 채 좌파에는 충실한 볼셰비키로, 서방 외교관들에게는 합리적인 젊은 경영자인 척
가장했다. 오랜 이중생활을 통해 양측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한 그는 결국 대통령의 지위까지 올랐고 이후 ‘사악한’ 본성을 드러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밖에 엔론 자금관리 책임자 앤디 패스토, 미국 호텔재벌 힐튼가 사람들 등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사악성을
분석한다.
사악성인 원인을 유전자 연구 등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인간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여러 상상력을 오히려
막는 듯한 아쉬움이 있지만 역사 속에 존재했던 ‘비열한 인간들’을 만나는 재미는 크다. 이종삼 옮김. 2만5000원
경향신문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중앙일보
'나쁜 유전자' 서평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수(精髓)가 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30쪽)
바버라 오클리 미국 오클랜드대 공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된
'나쁜 유전자'(살림 펴냄)를 통해 후자의 세계, 다시 말해 "왜 사악한 사람들이 성공하는가"에 대해 천착한다.
그 세계는
'리어왕'의 이아고와 '배트맨'의 조커가 승리하는 세상이다.
문제는 이 같은 '악의 승리'가 단순히 영화나 히틀러 등 역사 속
인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악한 사람들의 성공은 회사, 학교 등 우리를 둘러싼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악한 사람들이 성공할까.
저자는 그들이 진짜 의도와 야망을 감추고 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악한 사람들의 승리방정식은 속임수와 거짓말,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조작대상으로 간주하는 냉혹함이다.
저자는 그 전형적인 예로 발칸반도 인종청소의 장본인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을
든다.
밀로셰비치는 대통령이 되기 전 야망을 감춘 채 좌파에는 충실한 볼셰비키로, 서방 외교관들에게는 합리적인 젊은 경영자인 척
가장했다.
오랜 이중생활을 통해 양측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한 그는 결국 대통령의 지위까지 올랐고 이후 '사악한' 본성을
드러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이밖에 히틀러, 마오쩌둥, 엔론 자금관리 책임자 앤디 패스토, 미국 호텔재벌 힐튼가 사람들 등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사악성'을 분석한다.
사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성공한 사람들의 사악성을 조명하는 방식에
있다.
마키아벨리즘을 토대로 사악한 사람들의 성공법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로버트 그린('유혹의 기술' 저자)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유전학과 신경학 등 자연 과학을 그 분석의 틀로 삼았다는 데 저자의 독특함이 묻어난다.
저자는 분열성 인격 장애인과 사이코패스에게
보이는 '감정이입 결여 증세'는 전두엽과 두정엽의 전대상피질 등 뇌의 여러 부분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 신경조직인 백질은
거짓말하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는데, 미국 연구진의 한 연구결과 병적인 거짓말쟁이들은 뇌에 있는 백질의 양이 정상인보다 25% 많다고
말한다.
저자는 "환경적인 조건이 유전자 조합을 뛰어넘는 일도 있지만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는 '지배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책의 부제는 '로마가 쇠망하고 히틀러가 출세하고 엔론이 파산하고, 딸이 엄마의 남자친구를 가로채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