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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겨레 기자와 청와대 대변인 논쟁 글 모음 - 2007.01.24 한겨레

이강기 2015. 9. 8. 17:08

현겨레 기자와 청와대 대변인 논쟁 글 모음

 

 
‘참모’는 간데없고 ‘비서’만 나부껴
고립된 섬 ‘그들만의 청와대’ 왜?
한겨레
 
‘전사적 소명’ 집단 최면
노대통령 즉흥성 못말려
여과장치 있으나 마나

 

청와대에서는 매일 아침 8시 일일 상황점검회의가 열린다. 이병완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들, 그리고 정태호 정무비서관(정무팀장),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이 참석한다. 30분 동안 그날의 현안과 언론보도를 점검하고 토론한다.

이들 중 몇 사람이 8시30분 노무현 대통령의 관저로 올라간다. 관저회의 참석자들은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관저에서는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토론이 벌어진다. 이 회의를 마친 뒤, 노 대통령은 9시에 본관으로 출근한다.

노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 통로는 제1부속실이다. 현안에 대해, 노 대통령이 지시한 ‘핵심 포인트’가 부속실을 통해 해당 수석실로 내려간다. 다시 올라오는 자료는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이 최종 정리를 한다. 현안 대처와 메시지 전달 시스템을 그런 대로 갖추고 있는 셈이다. 지난 16일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 담합을 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일종의 ‘사고’였다. 전날 귀국한 노 대통령은 그날 아침 관저회의를 하지 않았다. 여과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하긴 관저회의를 했어도 ‘사고’는 났을 것이다. 지금 청와대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가 더 크다.

노 대통령 주위엔 ‘예스맨’들만 있는 것일까. 청와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강한 반박이 돌아온다. 정무분야의 한 비서관은 “그건 아닌데요”라는 말을 많이 해서, ‘아닌데요 비서관’으로 소문이 나 있다. 노 대통령은 토론을 좋아한다. 아랫사람이 반대 의견을 낸다고 해서, 그 자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여과장치도 갖춰져 있고, ‘아닌데요 비서관’도 있는데, 왜 노 대통령은 민심으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것일까?

첫째, 노 대통령의 즉흥성 때문이다. 그는 최종 연설문을 그대로 읽지 않는다. 자신의 느낌과 분노를 있는 그대로 쏟아낸다. 여과장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둘째, 노 대통령에게는 거스르지 말아야 할 ‘역린’이 하나 있다. 과거에 “대통령님, 그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요”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청와대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에게 ‘당신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과, ‘당신은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금 청와대 비서들은 ‘절묘한 아부꾼들’인지도 모른다.

셋째, 지금 청와대에는 ‘참모’들은 없고, ‘비서’들만 남아 있다. 참모는 자기 분야에서 ‘주군’보다 뛰어나야 한다. 때로는 직언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비서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주군’의 영도력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

넷째, 게다가 청와대 비서들은 ‘전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일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노 대통령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인 것이다. 집단 최면에 걸린 ‘전사’들은 사물을 올바로 보지 못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를 보면 정무적 판단은 대통령이 다 옳았다”고 말했다.

지금 청와대는 섬이다. 민심의 바다 위에 저 멀리 홀로 떠있는 외로운 섬이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상태는 지속될 것 같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최근 한겨레의 보도를 보며 / 윤승용

왜냐면
한겨레
“대통령은 외로운 섬이다. 청와대는 ‘민심의 바다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섬’이다. 그 지경이 된 이유는 대통령의 즉흥성,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비서들의 무능력과 무책임 때문이다.”

19일치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가 2면에 쓴 기사의 요지다. 그렇다. 실제로 청와대는 섬이다. 고독하고도 외로운 섬이다. 일반적인 사안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특히 언론 문제에 관한 한 절해고도라고 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이 가장 외로운 섬이다.

하지만 언론 문제를 제외한 여타 사안에까지 이를 확장시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비록 여론의 지지가 낮기는 하지만 청와대가 비상식적으로 판단하고 일하지는 않는다. 개헌, 부동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시 작전통제권 등 주요 사안들마다 상식적 원칙과 합리적 근거에 따라 일처리를 하고 있다.

성 기자의 글도 청와대의 전반적인 일처리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지만 글의 모티브는 16일 대통령의 언론 관련 발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기자실이라는 공간과 담합 문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좀 과한 표현이 있기는 했지만 대통령 발언의 본질은 ‘기자실이라는 공간이 획일적 기사 생산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다. 기자실이 분위기와 흐름을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시각마저 그 분위기를 타고 대세가 돼 버리는 부작용을 지적한 것이다.

다음날 대부분의 언론은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비상식과 감정’을 성토하고 나섰다. ‘기자단-출입처-기자실’이라는 우리 언론의 관행적 시스템을 고민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대통령 발언은 즉흥성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굳이 ‘사고’라고 한다면 듣기에 기분 나쁜 몇몇 표현일 터인데, 이것도 대통령의 즉흥성이라기보다는 ‘말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기자실 문제는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문제였다.

청와대는 고독하고도 외로운 섬이다. 특히 언론 문제에 관한 한 절해고도다. 한국 언론의 본질적 문제는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특권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대통령이 왜 이토록 언론과 집요하게 대결하는지 〈한겨레〉가 초심으로 돌아가 성찰해주길 바란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개헌 관련 보도를 보면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마음먹으셨다. ‘가치와 논리’는 간데없고 ‘숫자와 정략’만 나부끼는 한국 언론의 부정적 획일성, 그 원인의 한 자락을 들춘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 제기만 나오면 한목소리로 성토한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이 차분하게 다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어 보인다. 주로 대통령의 표현을 문제 삼고, 그 원인을 대통령의 감정이나 성격에서 찾는다. 결국 이는 한국 언론의 본질적 문제는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특권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매맞을 각오를 하면서 언론 문제를 고집스럽게 꺼내는 가장 큰 이유도 ‘언론의 특권의식’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를 이용하지 않고 영향력 있는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 자꾸 ‘말’을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최근 들어 〈한겨레〉도 ‘다른 언론과 같은 언론’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하시는 것 같다. 대통령은 그동안 〈한겨레〉를 대단히 높이 평가해 왔다. 대통령은 여러 자리에서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한겨레〉 독자들은 객관적 기사를 더 신뢰하고, 〈조선일보〉 독자들은 공격적인 기사를 더 신뢰한다”고 언급하곤 했다. 〈한겨레〉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존중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행태를 보면 〈한겨레〉도 한국 언론에 유전자처럼 내려오는 뿌리깊은 특권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구나 하는 우려가 든다. 특히 이번 개헌 문제를 다루는 점에서는 보수 언론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왜 이토록 언론과 집요하게 대결하는지 〈한겨레〉가 초심으로 돌아가 성찰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성찰을 토대로 개헌 문제도 바라봤으면 한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 겸 대변인



[성한용 칼럼] 노 대통령과 그의 비서들
성한용 칼럼
한겨레 성한용 기자
≫ 성한용 선임기자
5공화국 말기에 있었던 일이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동생 전경환씨를 국회의원으로 대구에 출마시키려고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현재 한나라당 의원인 김용갑씨였다. 김용갑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다면서, 다짜고짜 “각하, 제가 누굽니까”라고 물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누구긴 민정수석이지”라고 대답했다. 김 수석은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눈과 귀다. 전경환씨 국회의원 시키면 민심이 악화한다. 한 집안에서 대통령만 나오면 됐지, 국회의원까지 해야 하느냐. 꼭 하고 싶다면 각하 물러난 뒤에 우리가 책임지고 시켜주겠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김윤환 비서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전두환 대통령은 “전경환이 안 된다는 게 맞는 말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김윤환 실장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씩씩대다가 경상도 사투리로 “치아 뿌라”고 했다. ‘전경환 국회의원’은 그렇게 해서 없던 일이 됐다고 한다.

5공 찬양이 아니다. 독재자에게도 직언을 하는 참모들은 있었다는 얘기다. 제왕 시절 참모들은 주군에게 직언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참모는 간데없고 비서만 나부껴’(〈한겨레〉 19일치 2면)라는 기사에 대해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이 반론(〈한겨레〉 23일치 29면)을 보내왔다. 적절히 재반박을 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과 윤 수석은 대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담합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이번 기사를 쓴 것이 아니다. 대연정 제안, 임기 단축 발언, 개헌 제의 등을 보면서 노 대통령이 민심에서 자꾸 멀어져 가는 원인이 궁금했다. 취재에 도움을 준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은 한결같이 노 대통령의 즉흥성과 ‘정치 참모’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둘째, 기자실 발언은 노 대통령 스스로 ‘해프닝’이라며 사과했다. ‘사고’였다는 것을 본인이 시인한 것이다.

셋째, 기사를 ‘성토’의 일환이라고 했는데, 좀 지나친 표현이다. 지면 제약 때문에 다 쓰지 못해서 그렇지 분석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다. 누군가를 성토하는 기사를 그냥 내보낼 정도로 〈한겨레〉 데스크가 허술하지 않다.


넷째, 개헌에 대한 보도 태도를 문제삼고 있는데, 〈한겨레〉는 첫날 사설에서 ‘개헌론,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 있다’고 썼다. 그리고 이틀 뒤 ‘개헌론 접는 게 순리다’라고 썼다.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은 ‘계도지’ 시대가 아니다. 다른 신문 사정은 알 바 아니지만, 〈한겨레〉에 국민 계도를 기대했다면 그건 노 대통령의 착각이다.

다섯째, 윤 수석은 언론이 주로 대통령의 표현을 문제 삼고, 그 원인을 대통령의 감정이나 성격에서 찾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감정이나 성격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가장들도 집에서 할 말을 다 못하고 산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할 말 다 하겠다’는 것은 막가자는 것이다. 선거로 권력을 창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자의 ‘태도’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콘텐츠다. 많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의 거침없는 태도에 짜증을 내고 있다.

노 대통령의 기자실 발언 이후 유시민 장관은 “내가 잘못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기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렇지만 이번 일로 노 대통령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유 장관은 빠져나갔다. 유 장관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던 사람이다. 그런가? 지금 청와대나 내각에는 진정한 참모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건 노 대통령의 잘못이다.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