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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과 동아시아의 미래

이강기 2015. 9. 9. 16:33
통일한국과 동아시아의 미래


(아래 글은 최근 발간된 케네스 B 파일의『강대국 일본의 부활(Japan Rising)』제11장 일부<pp.559-565. 도서출판 한울 간>를 옮겨 온 것임.)


중추적 역할을 할 한반도 미래

한반도문제 해결은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통일한국은 강대국들로 하여금 이 강력한 신생국가를 변경된 국제적인 방침으로 다루게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통일한국은 계속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어떤 식으로 나올까? 통일한국이 비동맹국이 된다면 일본은 안전을 느낄 수 있을까? 이처럼 새롭게 태어날 통일한국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결과를 가져올 여러 문제들을 제기할 것이다.

 일본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과 전략적 관계의 근본적인 성격을 결정해야하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 결과에 매우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게 통일한국과의 미래관계보다 더 다급한 것은 그들이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문제는 이 지역 국제관계의 미래구조에 핵심이 되고 있으며 한반도에 교차하여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다른 주요 강대국들과 일본과의 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미래의 통일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다. 어떻게 그리고 어떤 상황 아래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리고 통일결과가 미일동맹의 미래 형세에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 통일 후 한미동맹과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계속돼야만 비로소 통일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일본에게 확신시켜주게 될 것이다. 통일 후 한국의 미군위상은 일본의 미군주둔에 파급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일본은 그 규모가 줄거나 형태를 바꾼다 해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주기를 바랄 것으로 보인다.

 통일과정 또한 일본의 중국.러시아와의 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든가 또는 설사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등거리를 지킨다 해도 통일한국은 일본의 미래전략 위치를 복잡하게 할 것이다. 냉전종식 후 첫 10년 동안 중국은 한국과 의미심장한 관계를 발전시켜왔으며(20세기 이전 역사에서 오랜 기간 한국은 중화중심 질서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일본 정책 입안의 복잡성에 한몫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일본에게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시킬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러시아는 통일한국에서 중국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일본과 유사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일본 국방대학 총장인 니시하라 마사시가 1996년에 설명했듯이 “일본은 통일한국이 일본과 미국과 친하고, 경제적으로 실용적이고 정치적으로 개방적이며, 그리고 미군주둔을 허용하는 나라가 되길 바라고 있다.” 통일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채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고, 미군주둔을 포함한 미국과의 안보관계 유지를 거부하며, 그리고 혹시 미래 어느 땐가 일본에게 단호하게 적대감을 보이게 된다면, 일본에겐 중요한 외교정책 패배를 의미하며 국가 미래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과거에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철저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한편으로 강력한 통일한국은 일본에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를 야기하고 경쟁국이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분단의 계속은 예측 못할 국가(북한)의 생명을 연장시켜 안보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면으로는 통일의 성격이 일본의 이해관계에 미칠 영향력 면에서 하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일본 정책입안자들은 개인적으로 현상유지를 선호했다. 한반도 통일을 자기들이 지지하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성취하기 어렵다고 예상한 그들은 통일을 촉진시키지 않고 가능한 한 장기간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키는 길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조용히 결론을 내렸다. 이 전략은, 남한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급히 서둘다 잠재적으로 난폭해질 수 있는 통일보다는 단계적인 화해를 추구하는 정책을 장려하면서 위기를 억제하길 희망하는, 미국의 전쟁억지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국민의 최소한의 경제적 요구조차 충족시킬 수 없는 파산국가인 북한은 그들의 최우선 사항이 정권 생존이기 때문에 개혁과 외부접촉 증대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정치체제 변화는 단계적이고 진화적인 것이 되거나 아니면 과격한 격변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크게 보아 두 가지 통일 시나리오가 있음직하다. (1) 전쟁, 지배층의 알력에 의한 내부파열 또는 거대한 인도주의적 위기로 인한 평양정권 붕괴의 부산물로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경우, (2) 남북대결에서 성공적인 공존으로 단계적인 변화를 거쳐 협상을 통해 통일하는 경우다.

 이들 가능성 중 어느 것도 많은 변이를 나타낼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은 장기적인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북한이 그럭저럭 견뎌내는 데 성공하여 남한과 중무장 교착상태로 현상유지를 해나갈 가능성도 있고, 남북한이 평화적 공존의 길을 찾는데 성공할 수도 있다. 외국 평자들 사이에 널리 유포된, 1990년대 중반의 북한정권 붕괴예상은 과장된 것이다. 외국평자들은 종종 북한의 내구성을 과소평가해 왔다. 그것은 깊이 배어 있는 민족주의적 사고방식과 고립의 반세기를 떠받쳐 온 전체주의적 지배력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웃국가들과의 잠정협정을 체결하는 어떤 종류의 ‘총괄적인 계약’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아직 북한의 연착륙이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통일은 전쟁이나 북한 붕괴 또는 남한의 흡수를 통해 올 중간적인 미래가 될 가능성도 강하다.

 자국의 이익이 결정적으로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는데도 일본은 한반도에 개입하여 주도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기가 어려운 여러 가지 장애요인이 있다. 도쿄는 여러 역사적 유산과 복잡한 전략적 고려 때문에 그들의 정책 선택권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미발달 상태의 일본 군사전략제도, 오랫동안 불화했던 한일관계의 역사적 부담, 그리고 한국이 미국의 주니어 동맹 파트너인 이상 미국의 한국 정책에 양보할 필요성 등 이런 모든 것이 일본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대한반도 정책을 개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자체의 역사적 패턴을 계속 지켜 나가면서 결과가 더 분명해질 때까지 주의 깊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상황변화를 주시해가며 적응해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일본의 입장은 미묘하다. 한반도 통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할 입장도 아니다. 더욱이 통일을 위한 잠재적인 시나리오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가장 중요하다. 물론 미국의 주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감하게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일본과의 숙련된 정책협조가 필요하다. 북한의 붕괴는 즉각 일본을 해도도 없는 미지의 바다로 내몰 것이다. 불확실성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처하는 일에 일본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국제사회는 일본이 통일한국의 성장과 번영을 위해 장기간 미뤄 온 북한지역에 대한 식민지보상금을 포함한 경제적 원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은 이 원조가 제공될 방법에 대해 매우 민감해할 것이며 일본에게 한반도에 장기적으로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전조가 되지 않을 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일본이 부담하게 될 자원과 수행할 역할은 한반도에 지속적인 안정을 가져오고 나아가 동북아에 건실한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한미동맹의 논리, 한반도의 미군주둔, 그 밖에 미일동맹의 장래 성격 등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냉전이 시작된 후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10만 명의 미군을 주둔시키는 제일 중요한 정당성을 한반도 분단에서 찾았다. 분단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전진 배치된 미군의 숫자를 과감하게 감축하라는 압력이 매우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많은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은 전진 배치된 미군은 물론이고 더 이상 동맹관계가 필요한지 의아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 무렵의 중국의 무력과 그 목적에 대한 미국의 인식에 따라 상황이 크게 변할 것이다.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가 통일 후 한반도에서 미국의 안보역할을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부 일본인은 한반도 통일을 일본에서의 미군주둔을 동시에 끝낼 적절한 기회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해결을 이 지역에서의 안보 공약을 대거 후퇴시킬 절호의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통일한국은 주요 강대국들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과 안보관계를 지속하여 주위 강대국들을 상대로 독립성을 강화시키는 필요수단으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을 영속화시키고 싶어 할지는 모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기지구조와 배치규모를 크게 줄여 강력한 동맹국을 지지하고 장차 한국의 핵무기 보유시도를 포기하게 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일본은 그러한 결정을 적극 환영할 것이다. 워싱턴과 서울 사이의 방위결속이 계속되면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안보관계의 유혹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형식적으로라도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면 일본에 일부 미군의 잔류 - 아마도 요코스카 해군기지 - 를 위한 정치적 지원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아시아 대륙에 외국 군사기지의 존재를 반대해 왔다. 중국은 계속적인 미군의 주둔을 우려하겠지만, 생각건대 그 기지가 지리적으로 중국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규모를 대폭 축소하게 되면 한국에서의 미군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중국은 미국과의 느슨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이 한반도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 일본이 더 독립적인 역할로 기울어지지게 못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마침내 내릴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그 당시의 미중관계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통일한국이 비핵국가가 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특히 중요할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비핵 정책과 국민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만약 통일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또는 파산한 북한으로부터 그것을 획득한다면 자체의 핵개발에 대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전직 일본 외무성 차관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이렇게 규정했다. “그것은 진짜 악몽 같은 일이며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태진전이다. 그로 인해 일본은 괴로운 선택의 길에 내몰렸다. 하나는 핵무기 협박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내에 혼란을 일으킬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길이다.” 그러한 사태 진전은 한일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할 것이고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입장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20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