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성이 바라는 일본인의 품격
(아래 글은 니혼게이자이 98년 1월 4일자 사설 "[地球益] 앞세우는 風格있는
일본인 으로"를 번역한 것이다.)
戰後 지금까지의 일본을 되돌아보면, 대다수 국민들이 회사와 국가에 대해 전 폭적인
신뢰를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소속하는 회사가 커지는 것은, 임금이 오르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것과 동의어였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샐러리맨 인생의 전부를 바치는 일에 위화감을 느낀 사람들은 적었으며, 회사도 그 기대에 부응해 왔다. 한편, 전후의
일본경제는 官주도에 의한 국익옹호의 두꺼운 벽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오늘날에 와서는 도무지 국제사회가 받아드릴 수 없을
정 도의 수출촉진과 수입규제를 양축으로 삼는 一國번영형의 경제정책을 추구함으로 써 짧은 기간에 발전도상국에서 선진국의 톱 클라스에까지
오르는 데 성공했다. 官에 일임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하는 官신봉사상이 널리 국민들을 지배해 왔다. 하지만 거품이 빠지고 90년대로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이 의지해 왔던 회사益과 관 주도에 의한 국익추구는 와르르 소리를 내며 붕괴되기 시작했다.
<> 회사이익과 국익을 앞세우는 사고에서의 탈피
平成시대의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과 주주총회꾼들과의 빈번한 유 착,
불량채권등의 허위보고, 관료들의 행정 私物化, 一族 의원들에 의한 국가예산 의 기득권익화등, 번영의 그늘에 가려진 제반 惡이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다. 회사 의 이익이나 官에 의한 국익의 추구가 이제는 일본이나 일본인들의 이익과 크게 동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50년간이나 계속된 회사이익과 관에 의한 국익추구는 일본인들의 정신을 현저하게 황폐시키고
말았다. 금전만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하는 배 금주의자, 일본만 잘 되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하는
유아독존 적이고 제멋에 겨워하는 일본인들이 마구 늘어나고 있다. 전후의 폐허를 딛고 씩씩하게 일어선 일본인들은, 가난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불태우는 向上心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한 일본인들이 지금 좀 풍요해졌다고 해 서 장래에 대한 방향을 잃고 의기소침의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국면타개의 길은, 일본인들이 지구의 이익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수 익만능주의에 입각한
회사익추구, 국익추구라는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가치혁 명에 성공하느냐 않느냐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12월에 교오토에서 개최된
지구온 난화방지회의는, 지구의 이익을 회사익이나 국익보다도 상위에 두겠다고 하는 세 계최초의 시도였다. 20세기 문명은,
물질적 풍요을 얻는 대신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여 지구환경을 크게 악화시키고 말았다. 특히 지구 온난화는, 세계적인 기후변동을 일으켜,
한 발, 홍수, 해면상승등을 유발, 인류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온난화를 막지 않으면 21세기의 지구는 인류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의 일본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이러한 지구이익의 추구다. 지구가 병들고 말 면, 회사익도 국익의
추구도 의미를 잃고 마는 것이다. 회사는 자니치게 단기적 수익에 연연해서는 안되며, 환경 코스트를 감안한 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타국이 어떻게 하든, 환경보전형, 자원순환형의 경제사회를 목표로 대담한 제도개혁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개인은
회사이익이나 국익의 벽을 뛰어넘어 지구시민으로서의 행동규범을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 일본인들이 입장의 차이를 뛰어넘어 지구이익
추구에 결속하여 몰두하는 것이 품 격있는 일본인을 만드는 길이 된다. 그것이 일본인들의 의기를 자극하여 신생일본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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