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마사코 왕세자비 돌출 행보…父子·고부 갈등 가능성

이강기 2015. 9. 11. 15:52

마사코 왕세자비 돌출 행보…父子·고부 갈등 가능성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일본 왕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통치자가 아닌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지만 일본 사회에서 왕실의 존재는 신(神) 이상이다.

그런 일본 왕실이 요즘 분란으로 어수선하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 나루히토(德仁·48) 왕세자와 부왕 아키히토(明仁·75)의 불화설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왕세자의 그늘에는 왕실 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5년째 요양 중인 마사코(雅子·44) 왕세자비가 있다.

문제의 발단은 2월 13일 궁내청의 하케다 신고(羽毛田信吾) 장관의 기자회견이었다. 하케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왕세자 내외가 딸 아이코 공주를 데리고 일왕을 방문하는 횟수가) 최근 1년간 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케다 장관의 얼굴에선 단호함을 넘어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는 “왕세자 내외가 자발적으로 폐하를 찾아뵌 횟수는 1년 새 두세 번 정도”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모르겠다. (왕세자께서) 먼저 말씀하시지 않는 이상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왕실을 보좌하는 궁내청 장관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왕세자 내외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말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장관의 발언은 곧바로 동궁(東宮)으로 전해졌다. 한 월간지에 따르면 이 이야기를 들은 왕세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마사코는 선 채로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케다 장관의 발언 배경은 2006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유감스러운 것은 아이코(愛子)가 유치원 생활을 갓 시작한 데다 감기에 자주 걸려 우리와 만날 기회가 적은 것이다. 언젠가는 만날 기회가 늘어 단란한 얘기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뜻 이 발언은 손녀의 재롱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투정쯤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왕실의 관례로 볼 때 일왕이 왕세자 내외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왕세자는 이듬해 2월 자신의 47회 생일 기자회견에서 “아이코에 대한 폐하의 심경을 소중히 받아들여 앞으로는 폐하와 (아이코가)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하케다 장관의 이번 발언은 왕세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케다 장관은 “(왕세자는) 발언한 만큼 실행을 했으면 한다” “폐하는 왕세자 시절 쇼와(昭和) 국왕이 도쿄에 계실 때 가족 단위로 거의 매주 한 차례씩 찾았다”고까지 했다. 왕세자 가족이 국왕 내외와 소통이 뜸한 사이 둘째 아들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가족 일행은 1년간 45회 정도 국왕 내외를 찾았다.

국왕 내외의 요양을 겸한 휴가에도 세 번 동행했다. 사실 하케다 장관은 지난해 10월께부터 수차례 동궁을 찾아 이런 국왕의 뜻을 전했으나 왕세자의 확실한 답변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일왕 내외의 불만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일본 언론들의 관심은 당사자인 나루히토 왕세자보다 왕세자비 마사코에게 모아졌다. 도쿄대와 하버드·옥스퍼드대 출신의 엘리트 직업 외교관에서 15년 전 왕세자비가 된 마사코는 지금 5년째 적응 장애 때문에 요양 중이다. 결혼생활의 3분의 1 기간을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왕실의 후사를 이을 아들도 낳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마사코가 왕실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고부 갈등이 심하다”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왕세자 내외 불화설, 이혼설도 나왔다. 급기야 2004년에는 왕세자가 공식 석상에서 “일부 왕족 중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 발언이 있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아키히토 국왕과 왕세자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아키시노노미야는 “나도 적지 않게 놀랐고 폐하도 매우 놀랐다고 들었다. 기자회견장이라는 장소에서 발언하기 전에 적어도 폐하와 그 내용에 대해 상의했어야 했다”며 왕실을 대표해 불편한 심기를 대변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8월 15일 아이코의 친구들이 동궁에 초대됐다. 문제는 이날이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종전기념일이라는 점이다. 아키히토 국왕은 평소 “종전기념일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기념일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라며 가족들과 궁에서 조용히 지내왔다. 일왕 입장에선 그런 날 딸아이의 친구들을 동궁으로 불러 놀게 한 며느리가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정월 초하루에는 일왕의 바쁜 일정을 이유로 왕실 가족 모임을 하루 연기했다. 그런데 그 틈을 타 마사코의 친정 식구들이 먼저 동궁에 모여 신년인사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최근엔 각종 언론매체가 일왕 내외와 왕세자 내외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일본 주간지들은 요즘 마사코의 동정을 시시콜콜 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도쿄 고급호텔 중식당에서 친구들과 두 시간 이상 점심식사를 한 마사코가 이틀 뒤 또다시 롯폰기 힐즈의 회원제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11월엔 아자부의 식당에서 친지들과 밥을 먹고 고교 동창회에도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12월에는 도쿄에서 쇼핑을 즐기고, 미슐랭 별 3개짜리 레스토랑을 찾은 사진이 주간지에 나왔다.

반면 왕세자비의 공무는 요양을 이유로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이다. 마사코에 대한 여론이 돌아서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8대 지방공무 중 왕세자 내외가 함께 참석한 행사는 2개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공무로 여겨지는 왕실 제사에는 아직 참석하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갓난아이를 포함해 세 자녀를 키우면서 지방공무까지 소화하고 있는 둘째 며느리 기코(紀子)의 소식이 부각된다.

최근엔 왕세자의 역할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왕실 전문기자인 마쓰자키 도시야는 “최근 왕세자의 기자회견을 보면 마사코의 회복 상태, 아이코의 성장기 등 온통 식구 이야기뿐”이라며 “왕세자 본연의 임무보다 평범한 가장의 이미지만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는 아키히토 일왕이 부왕인 쇼와(昭和) 일왕과 달리 전후에 ‘정치색을 벗은 상징 국왕’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한 것처럼 나루히토 왕세자도 새로운 국왕의 모습을 구축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보수적이고 근엄한 일본 왕실이 시대 흐름에 맞춰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중앙 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