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의 논개 사당인 의기사(義妓祠)에
걸려 있던 논개 영정이 10일 한 시민단체에 의해 불법으로 철거됐다. 진주 지역 4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진주 지키기 모임’ 회원들은
“일제의 잔재를 뿌리뽑기 위해 친일파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영정을 뜯어냈다”고 자랑삼아 밝혔다.
이는 정부·여당이 촉발한 이른바
과거사 집착증의 폐해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또다른 사례라 할 만하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내세워 그의 글씨라는 이유로 지난 3월 충남
예산의 충의사 현판을 떼어내 도끼 세례를 퍼부은 일, 역시 박 전 대통령의 글씨라는 이유로 문화재청장이 서울 광화문의 현판을 서둘러 교체하려고
시도한 일련의 ‘사태’와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 뜯긴 논개 영정은 국립 진주박물관에 보관된 원본의 복사본이라고는 하나 적지 않은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를 남긴 김 화백의 걸작중 하나로 꼽힌다. 논개 사당은 경남도 문화재자료 7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논개 영정의 액자 유리를 깨고 무단 철거한 행위는 실정법상으로도 분명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테러, 곧 ‘반달리즘’이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에 무차별적으로 문화유산을 파괴한 홍위병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한때의 과거 행적을 문제삼아 문화유산까지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한다면, 이 땅에 온전히 남아 있을 문화유산이 얼마나 있겠는가.
정략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과거사 들추기와 이에 편승한 일부 시민단체의 자의적 매도 활동이 맞물려 우리 사회 일각에 과거사 집착증이 심화하고 있다. 이를 아무리 경계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와 여당은 오히려 부추기는 형국이다.
각종 과거사 규명위원회 등이 과거사 규명과 보상관련 예산으로 무려
1100억원을 요구한 데 대해 정부와 여당이 내년 예산에 충분히 반영키로 합의했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 활동에 써야 할
예산이 한푼이라도 아쉬운 형편에 소모적인 갈등 유발의 소지가 큰 활동에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발상부터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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