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일본문화에 관하여

이강기 2015. 9. 11. 16:03

일본문화에 관하여


● 주제에 들어가기 앞서

옛말에 "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일본에 대한 편협하고 일그러진 선입견에서 출발한 탓에 일본을 바르게 읽는 자세가 부족하다. 이런 한국인의 정서는 한때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일본은 있다 - 없다" 논쟁으로 이어졌고, 여전히 한국에서 출간되는 일본 관련 서적들은 이 감정적 편견에 치우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을 비난하는 한국이 어느새 일본 문화를 너무나 모방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왠지 일본에 대해서만은 다 알고 있는 듯 말한다. 그것은 동아시아라는 같은 울타리에 공존하기에 비슷한 점이 많으리라는 막연한 믿음, 별볼일 없는 민족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이러한 편협한 생각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본 문화개방에 맞서기에는 힘들다. 우리가 일본문화를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자신의 올바른 의식 갖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올바른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어느 문화가 침투해 와도 물리칠 수 있는 독특한 창의력도 개발해 내야 할 것이다. 일본문화가 개방되면 우리만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일본도 상당수 우리문화를 많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문화를 많이 일본에 수출해 경쟁력을 만들 수 도 있고 일본에 뒤진다면 우리는 모두 더욱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먼 훗날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의 중심점에서 과거를 더듬어 보았을 때 일본문화를 개방하는 이 시기가 성숙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일본문화

○ 음식문화
기후의 변화가 많은 섬나라인 일본은 음식재료가 다양하고 해산물이 풍부하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 지방마다 특색있는 음식이 발달했다. 음식의 맛은 대체적으로 싱겁고, 달며 눈으로 먹는다고 할 만큼 식기는 물론 거기에 담겨진 음식과의 색 조화및 모양, 계절의 색깔까지 감안한다. 식사량은 전통적으로 아주 작아 이것이 현재 최장수 국가로 불리는데 일익을 했다고도 한다.

관서지방 - 원재료의 순수한 맛을 중요시 하고 소금으로 맛을 내는 음식이 많음.
관동지방 - 맛이 진한 편이며, 간장과 설탕을 많이 사용

식생활은 좋고, 나쁜게 없는 나라마다의 고유문화이고 일본도 그들만의 식사관습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순수하게 젓가락만 사용하고, 밥그릇을 들고 먹으며, 격식을 좋아하는 습성(?)때문인지 식사 예절도 엄격하고 복잡하다. 우선 젓가락부터 알아보자. 일본도 6~7세기 경에 중국에서 숟가락이 전래되어 왕실을 비롯한 귀족들이 한때 사용했으나 서민들의 호응이 없었고, 곧이어 무사막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왕실 귀족들이 몰락하자 숟가락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호응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건더기 위주의 마른 음식문화에 있었다. 물론 지금 일본땅에 젓가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식도락의 천국이 되어, 숟가락도 필요한 곳에는 다 있다. 젓가락은 주로 버드나무나 대나무등으로 만들고, 반드시 가로로 놓으며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배우는 그들답게 공동음식은 먹던 젓가락으로 집지 않고, 공동 젓가락이 없을 경우에는 젓가락을 뒤집어 사용한다. 청결한 걸 좋아하다보니 일찍이 에도시대부터 쪼개서 사용하는 와리바시(1회용 젓가락)가 발달했다. 일본인들은 밥그릇을 들고 먹고 국도 들고 마시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그릇이 쉽게 뜨거워지지 않고 들기 가벼운 나무나 사기로 만든 것이 많다. (나무를 신성시해서 젓가락, 식기를 나무로 많이 썼다는 설도 있다.)

일본에는 관혼상제때 뻑적지근하게 차리는 혼젠요리, 다도에서 오차를 마시기 전에 간단히 먹는 가이세키요리, 우동, 덮밥등 많은 음식이 있으나 서민들이 즐겨먹는 定食(데이쇼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쓰게모노(일본 김치), 노리(김), 다마고(날계란), 미소시루(된장국), 생선구이로 조촐하게 구성되어 있다. 쓰게모노의 하나인 다쿠앙은 16세기 '슈호 다쿠앙'이라는 스님에 개발한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게 된 것인데, 이 스님은 당시 서예, 다도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당대 최고의 방랑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정신적 지주였으나, 다쿠앙이라는 음식이름으로 더 알려져있다.

일본에서는 우리가 먹는 탕음식만큼 덮밥을 즐겨먹는데, 이것은 사무라이 통치시대에 가난한 농민들이 쌀을 세금으로 거의 다 빼앗기다 보니 배가 고파서, 밥에 다른 걸 섞어 먹은데서 유래되었다. 그것에 여러 가지 재료를 써서 다양하게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덮밥이다. 18세기 경부터 먹었다는 카레라이스를 무척 좋아하는 것도 이 덮밥 선호와 무관치 않으며 또 생선 초밥과 지라시 초밥도 알고 보면 덮밥의 일종이다. 초밥은 덮밥과 같이 발전하여 이제는 세계 8대 음식(햄버거, 콜라, 커피, 피자,...)중의 하나로 퍼져있는데 이것이 바로 '스시'이다. 그 종류는 마키스시(말이초밥), 이나리스시(유부초밥), 니기리스시(주먹생선초밥), 데마키(손말이김밥), 노리마키스시(김초밥)등이 있으나 초밥중의 초밥인 생선초밥은 에도마에스시라고 하여 옛날부터 도쿄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 초밥의 장인이 되려면 인사 1년, 잔 심부름 1년, 칼갈이 1년 등 최소 3년이 지나야 주방장 보조로서, 장인이 초밥 만드는 걸 볼 수 있을 정도의 엄격함부터 배워야 한다. 초밥의 맛은 밥, 생선, 만드는 방법 이 세가지가 모두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초밥다운 맛이 나온다. 먼저 생선을 보면 일단 죽은 것은 하품(下品)이고 신선도, 부위, 보관방법과 어떤 칼로 어떻게 잘랐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초밥의 장인들이 생각하는 칼은 사무라이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칼을 베고 자는 수련생이 많다.)

라면은 17세기경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이후 돼지뼈 국물등을 개발하여 지금의 일본식 라면이 됐다. 인스턴트 라면 역시 중일전쟁때 중국군이 비상식량으로 쓰던 건면에서 힌트를 얻은 오사카의 한 사업가가 1958년에 상품화에 성곡한 후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퍼졌다. 독특한 라면으로 유명한 도시로는 삿포로, 도쿄, 오사카, 가고시마, 하카다 정도를 들 수 있으며, 요코하마에는 라면 박물관도 있다. (ラメン은 연간 50억개 이상이 소비되며, 일주일에 2~3번씩 꼭 먹어야하는 중독자도 부지기수)

○ 방송문화
일단 하루 23시간 방송이란 것이 일본 텔레비전의 기본입장이다. 낮에도 심야에도 채널을 켜면 5개의 민영방송은 쉴새없이 자체 경쟁을 하며 돌아가고 있다. 일본 방송국의 특징은 각국마다 뚜렷한 자체 노선이 있어 차별하가 되는 만큼 케이블 TV는 편성의 묘라든가 방송 프로그램의 차별화라는 무기를 가지고도 경쟁이 되질 않는다. 예를 들어, 모두 뉴스를 할 때 오락프로를 한다든지 드라마를 할 때 다큐멘터리를 한다거나 하는 수법들이 통하질 않는다. 간단하게 일본 텔레비전 방송국의 성격을 비교해 보자.

NHK는 공영방송으로서의 무게를 지니며 확실하게 정통성을 주장한다.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들의 정서함양과 정보 전달, 국가의 공공 안녕이라는 차원에서 방송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방송이 재미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안정과 인간성 회복에 있다는 쪽에 포커스를 맞추며 CF도 전혀 넣지 않고 제작되고 있다. 당연히 정통성이 있든 뉴스에 전력을 다하고 휴머니티가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충실한다. 대작 다큐멘터리의 기획이나 투자는 대단하다. 우리가 잘 아는 <실크로드>같은 작품들이 NHK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후지TV는 NHK와 180도 다른 오락 전문방송으로서 9시 뉴스를 1분간만 방영하는 대신 1분 후 쇼, 코미디, 오락프로로 방방 뜨는 작전을 구사한다. 이런 편성 및 제작 차별화 작전은 대체로 10대, 20대, 30대의 소위 신인류에 맞춰져 있는 만큼 시청률면에서 톱을 기록한다. 일본 신인류들 중에는 텔레비전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소모라고 생각하는 축이 엄청나게 많다. 후지TV는 이런 세대의 사람들을 등에 업고 시청률 베스트50중에서 반을 차지한다.

TBS(니혼TV)는 '드라마의 길'을 고수하며 모든 드라마 부문에서 타 방송을 압도한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과감한 소재, 과감한 시도가 계속 성공하며 드라마 방송국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아사히 TV는 '뉴스스테이션'같은 흥미있고 쉬운 뉴스, TV도쿄는 놀고 먹고 여행하고 건강하게 사는 생활정보, N-TV는 교양과 오락을 절묘하게 배합한 퀴즈 및 버라이어티 쇼프로에서 발군이다.

○ 의상문화(기모노)

기모노(着物)
한국에는 한복이 있듯이 일본에도 전통적 의상인 기모노가 있다. 일본이라고 하면 '기모노'라고 하는 이미지가 지금도 외국인 가운데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일본인은 긴 역사를 기모노와 함께 살아왔다. 서양 사람들에게 기모노를 설명할 때, 일본인들은 곧잘 '감춤의 미학''걸어다니는 미술관'이라며 자화자찬한다. 맨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과, 옷감의 다채로운 문양을 뽐내느라 그런 비유를 하는 것이다. 결혼식이나 공식적인 큰 행사 때 결혼한 남녀는 가문을 나타내는 검은색 기모노를 입는다. 질좋은 비단으 로 만든 기모노는 매우 비싸며 수천만원에 이르기 까지 한다. 기모노를 입는 경우에는 양말과 신발을 신지 않고, 대신 나무로 만든 굽이 높은 나막식(게타)이나 목면 도는 가죽으로 만든 굽이 낮은 샌들(조리)을 신는 다. 그리고 샌들 끈에 맞도록 엄지 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가 갈라진 면 버선(다비)를 신는다. 기모노의 진짜 특징은 허리에 칭칭 감는 오비에 있다. 일본 학자들은 오비야말로 세계 의복사에 유래가 없는 독창의 표징이라 자랑한다. 고고학과 풍속학의 대가인 히구치 기요유키도 그런 이들 중의 한명이다. '오비는 모든 외래 문화를 종합하여 일본인의 체형과 풍토, 습속에 맞게 환골탈태, 확대 재생산한 지혜의 산물'이라는 지론아래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허리띠를 몇겹씩 감아 뒤쪽으로 매듭을 지은 복식은 일본이 유일하다."

오비를 뒤쪽에 감아 배면미를 연출한 것은 인간이 인간을 감상할 때 앞쪽보다는 옆이나 뒤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깊은 계산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1. 오비의 위치를 허리위로 올림으로써 상반신에 비해 아랫도리가 길게 보여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2. 오비의 넓은 띠로 몸을 감싸니까 위하수가 줄고 혈압사승을 막아 안산장명의 효과를 안겨준다.
3. 오비는 작달막한 일본인의 체구를 둘로 나누어 조금이라고 예쁘게 보이기 위한 눈가림의 미학이다.

七五三의 기모노

七五三이란?
11월 15일에 5살의 남자아이, 3살과 7살의 남여아이의 성장을 축하하고 고장 수호신에게 참배하는 풍속이다. 이 풍습은 옛부터 계속되고 있는 풍습으로 전해지지만 결코 옛 풍습은 아니다. 이 축하는 에도(江戶)시대 중기이후 행하게 됐고 七五三의 이름으로 활성화된 것은 메이지(明治)시대의 도쿄에 들어서 이다.

七五三축하복
七五三의수호신참배에 입는 의복이다. 남자아이에게는 가문을 상징하는 무늬를 넣은 겉옷에 바지, 여자아이에게는 홑옷과 큰 무니로 짠 긴옷에 여러 종류의 띠, 특유의 지갑, 부채, 일본짚신을 갖춘다.

성인식

성인식이란?
20살이된 사람을 축하하는 행사이다. 매년 1월 15일에 행해지며 이 날은 정장으로 차려 입는다. 여성은 기모노, 남성은 양복을 주로 입는다.

성인식에 입는 기모노

여성은 '후리소데' 라고 하는 소매가 긴 기모노를 입는다.
후리소데의 색은 상당히 산뜻한 것에서 차분한 색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여러가지.
디자인도 여러가지이다.
후리소데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입는 것으로 결혼을 하면 소매가 짧은 '도메소데'라는 기모노를 입는다.

결혼식

옛날에는 어떤 기모노로 식을 올렸을까?
(나라(奈良)시대 710년 - 794년)
알려진 것에 의하면 상의와 치마에 꽃을 머리에 가득 장식한 주로 흰색을 사용한 복장이었다고 한다.

헤이안(平安)시대(794년-1192년)에는 어두운 곳에서 식을 올렸기 때문에 결혼복장을 흰색으로 입을 필요가 있었다. 흰색은 여러가지로 물들여지기 때문에 그 집의 가풍을 물들이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결국, 흰색이라는 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하는 순결을 나타냈던 의미가 있기에 결혼생활의 시작에 걸맞는 색으로 많은 사람에게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가 흰색인 의미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신랑의 복장은 에도(江戶)시대까지는 흰색이었으나 메이지(明治)시대이후 그 사람의 직업의 정장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현재는 검은색을 입는데 무엇도 물들일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 영화시장 문화

일본에 공룡붐으로 들끓은 적이 있다. 얼마나 그 열기가 대단했는가 하면 한 해 내내 공룡 장사한 사람은 전부 떼돈을 벌었다. 공룡에 대한 책, 인형, 공룡전시회는 베스트셀러에 연일 매진이었고 잡지화보와 방송특집 역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명실 공히 '공룡의 해'라 해도 손색없는 그런 나날이었다. 이런 붐을 만든 것은 물론 과학적 탐구와 공룡에 대한 호기심의 증대에 기인한다. 하지만 막상 불을 지른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쥬라기 공원>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공룡을 보는 듯한 박진감과 여러 가지 공룡 모습의 재현에서 이 영화는 압권이었다. 여태까지 조잡한 형태의 공룡 영화들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었던 사람들도 이번에는 도저히 탄성을 안 지를 수 없는 그런 훌륭한 미니어처였던 것이다. <쥬라기 공원>은 늘상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그렇듯 단독 흥행 질주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도 때를 맞춰 공룡영화를 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일본에서 흥행 1위의 작품을 여러편 만든 제작사 가도가와 문고의 사장인 가도가와 하루키가 직접 감독한, 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에서 발상을 얻고 새끼 공룡 하나를 꼬마 계집애와 연결하는 내용이다. 'REX'라는 이름의 공룡은 ET 미니어처를 만든 미국인이 직접 날아와 제작,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공룡의 붐이었던 <쥬라기 공원>과 일본 최대의 히트메이커인 가도가와의 가 동시에 개봉되었던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예상대로였다. 일본이 다른 것은 다 경쟁을 해 미국을 깰 수 있어도 영화만큼은 안된다는 것이다. 이건 뭐 어제 오늘의 嫄竪?아니고 전혀 새삼스러운 현상도 아니지만 일본영화의 미래가 확실하게 보이는 그런 해프닝이었다. 는 <쥬라기 공원>에 비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내용 그대로 꼬마공룡과 어른 공룡의 차이로 보면 정확하다. 손님들도 에는 어린애와 꼬마들에게 할 수 없이 들볶여서 온 어른 손님뿐. 관객의 행렬이 똑같은 공룡영화이면서도 판이하게 드러났다. 의 경우 일본 국내에서의 광고비로 따지면 <쥬라기 공원>을 아예 덮어 버릴 정도의 막대한 물량을 퍼 부었다. 결국 선전만 잘하고 실제로는 별볼일 없는 영화의 재연인 것이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세 가지 중의 어느 하나만 좋으면 기본 손님은 든다는 것이 정설이라 도 면피는 한 것같다. 그 세가지란 내용이 무지무지 재미있다던가, 작품성이 뛰어나다던가, 광고를 잘하는 것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이타미 주조 감독이 <마루사의 여자>라든가, <장례식>같은 영화로 히트를 시킨 적이 있긴 하지만 알맹이는 별 볼일 없었다. 몇 년전 일활영화사가 문을 닫았다. 이시하라 유지로 같은 간판스타로 인해 전 일본 흥행을 싹쓸이 하던 영화사이다. '일활'의 몰락은 그대로 일본 영화의 몰락인가? 일본 영화나 한국 영화나 그 성향이나 제작 패턴에서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고 싶긴 하지만, 냉정하게 영화가 주위를 둘러만?아찔하기 짝이 없다. 지금 현재 일본 영화계의 흥행상황을 보면 외국 영화의 단독 히트다. 일본 영화도 상당수 있긴 하지만 모두가 애니매이션(만화영화)들이다. 비토 다케시라는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본 영화의 최고 수상식은 '일본 아카데미 수상'인데 도대체가 이 타이틀이 너무 꼴값이라는 것이다. 잡동사니 작품들을 모아놓고 무슨 아카데미 수상이냐는 독설. 비토 다케시 자신이 영화 감독이면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해댄다. "다른 물건들 잘 만드는 걸 보면 기가 막힌데! 왜 영화는 안 될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영화 쪽에 더 이상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 영화에만은 대형 투자하길 꺼린다. 영화 전문 스타도 ?벗고 영화인들도 끼가 없다 등등.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일본 관객들에게 있다. 젊은 세대와 얘기해 보면 일본 영화보는 걸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볼 때 일본의 영화계는 계속 침체될 것으로 보인다.

○ 일본의 복숭아 날(桃の節句)

히나마쯔리(ひなまつり)의 유래와 의미
히나마쯔리는 3월3일에 여자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라고도 한다.
그 기원은 고대 중국에서 3월에 막 태어난 여자아이가 3일 후에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술을 준비하고 강으로 떠내려 보냈다는 고사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3월3일 물의 축제이고, 이 날에는 사람들이 물가로 나와 몸에 붙은 병이나 재앙을 없애는 행사를 가졌다. 이러한 행사가 일본에 전해져 고대 일본에서는 신상에 일어날 수 있는 불결한 일이나 재난등을 인형에 옮겨,흐르는 강물에 떠내려 보내면서 액막이를 했는데 이를 히나나가시(ひな流し)라고 하였고 ,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각지에 전해져 그 모습이 남아 있는데, 아와시마 신사에서는 3월3일 전국에서 봉납된 인형을 배에 실어 바다로 떠내려 보낸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여자 아이들의 인형놀이와 결부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히나인형을 장식하고 여자아이의 무병과 행복을 기원하는 큰 축제로서 확립하게 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이후의 일이다.

궁정의 여성들 사이에서 성대하게 행해졌다고 한다. 이 행사가 궁정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서민 사이에 보급되면서 현대와 같은 히나마쯔리의 형태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일반서민이 히나인형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明治시대 말경부터이다.

히나인형(ひな人形)의 기원과 의미
헤이안시대에는 귀족여성사이에서 종이 인형에 옷을 입혀서 <히이나놀이(ひいな遊び)>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이 에도 시대에 그 형태가 정리,정착되어 히나마쯔리때에 히나인형을 장식하게 되었다.

히나마쯔리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은 여자아이가 예쁘게 성장하고 커서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램과 인형에 좋지 않은 재난이나 재앙등을 옮겨 그것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래서 3월3일이 지나면 바로 치우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는 3월3일에 장식해 두었던 인형은 소중히 보관해 두었다가, 매년 히나마쯔리에 장식하면서 여자아이가 매년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축하한다.

히나인형 장식하기
히나단상은 1단,2단,3단,5단,7단까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제대로 인형을 구성한다면 모두 15개가 된다. 하지만, 집안이 좁은 관계로 공간에 맞게 1단만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최고 윗단에는 한 쌍의 남녀히나인형을 놓고 그 양쪽에 옆의 그림처럼 등롱을 놓고 그 뒤에는 병풍을 친다. 가장 윗단의 남자히나인형을 오다이리사마(お內裏さま), 여자히나인형을 오히메사마(お姬さま)라고 한다.

왜 남자인형은 오른쪽이고 여자인형은 왼쪽일까?
사실은 일본의 관동지방과 관서지방에서는 놓이는 위치가 서로 반대이다. 옆의 사진이 바로 관동지방의 형태(남자인형이 바라보는 쪽에서 왼쪽). 이것은 '오른쪽이 상위'라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한국말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일 뛰어난 부하를 '오른팔'. '右に出る者はいない’(더 나은 이가 없다) 라는 일본의 관용구, '左遷'(좌천-지위가 낮아짐)이라는 단어에서도 오른쪽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한편 관서지방에서는 여자인형이 오른쪽인데, 여성의 힘이 세고 남성과 대등하다라는 의식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현대에서는 히나인형의 대부분이 관동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관동지방의 형식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남녀인형의 위치를 어느 쪽에 두든 상관이 없다고 한다.


히나마쯔리 지내기
히나인형은 히나마쯔리 10-20일정도 전의 *大安의 날에 장식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리고 3월3일 당일이나 그 전날 저녁에 아기의 할아버지,할머니,친척,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한다. 이 때 먹는 음식에는 생선초밥과 대합장국,시로자케(白酒),히시아라레등이 있다.

○ 성 문화
한국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환락업소가 일본에는 많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곳이 아마 <핑사로>라는 업소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매춘을 하는 업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훤한 대낮에 그것도 일반 레스토랑에서 이상한 서비스를 하는 업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핑사로라는 말은 핑크+살롱 의 합성어로서 이 업소에서는 일반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분위기에서 여종업원이 남자 손님에게 입으로 서비스하여 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로 옆자리에서 옆사람이 서비스 받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이런 곳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업소는 일본의 '매춘 금지법'을 교묘하게 이용한 서비스의 하나인 것이다. 일단 서비스가 시작되면 바로 앉은 자리에서 손님의 바지를 내리고 입으로 서비스를 하기 시작한다. 옆 테이블을 힐끔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모두들 그런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굳이 유교적인 관념에 매여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놀랄 수 있는 광경이다. 칸막이가 있는 <핑사로>도 있으나 그런 곳도 칸막이 너머로 하는 행동이 모두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가리기 위해 칸막이를 했다기 보다는 엿보는 기분을 주기 위해 칸막이를 형식상 해놓은 듯 하다.(변태일수록 밝은 곳은 선호한다고 한다.) 멀쩡하게 생긴 아가씨들이 입으로 서비스해 주는데, 콘돔을 끼고 하는 곳도 있고 콘돔을 끼지 않고 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일본의 성문화에 대하여 이번 파트에서 다루어 보았다.

Ⅰ. 노조키(のぞき部屋)
노조키(のぞき)란 무언가를 '엿본다'는 뜻이고, '部屋'는 방이란 뜻이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무엇인가를 엿보는 방이 있는 유흥업소이다. 이케부쿠로나 신주쿠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보통 지하에 있는 업소가 많다. 들어가면 밀실들이 있고, 그 밀실에는 각각 손님 한 사람씩 들어가게 된다. 밀실속에는 특수유리로 된 조그만 창이 있고 옆에는 휴지와 쓰레기통이 있다. 특수유리는 반대편에서는 거울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쪽이 전혀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 방속에는 여자가 들어가 있다. 여자가 가운데서 쇼를 하고 그것을 몰래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노조키에서 하는 쇼는 주로 여자의 자위행위쇼이다. 밀실은 아주 좁다. 공중전화 박스 정도의 크기이다. 이 좁은 방에 들어가 있으면 쇼를 시작하는데, 음악이 흐르면서 속옷바람의 여자가 한 명 나와 은근한 춤을 추다가 천천히 속옷을 하나 둘씩 벗기 시작한다. 밀실의 위치에 따라서 보이는 각도가 틀리기 때문에 여자는 한 바퀴 돌면서 골고루 보여준다. 슬슬 쇼가 무르익으면 여자가 홀랑 다 벗고 자위행위를 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여자가 자위행위 끝에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게 되면 쇼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밀실에서 갇힌 채 여자의 쇼를 구경하고 있으면, 서비스 걸이 노크를 한다. 그 여자는 밀실안에 있는 흥분된 손님에게 손과 입으로 서비스를 해주는 서비스걸인데, 손이냐 입이냐를 선택할 수가 있다. 돈을 더 내는 추가 서비스를 받지 않고 단순히 엿보기만 해도 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고교생들도 심심할 때 자주 이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 사람들이 엿보기를 좋아하는 까닭에 몰래 카메라라는 것도 생겼지만, 요즘 한국에서도 꽤 유행하는 듯 싶다. 그런 것을 보면 이 노조키를 이미 체험한 한국인들도 많을 것 같다.

Ⅱ. 스트립극장(ストリシプ劇場)
이곳은 마치 워커힐의 극장식 쇼처럼 극장에 앉아서 쇼를 보는 업소이다. 물론 시설이나 규모가 워커힐처럼 그렇게 화려하거나 크지는 않다. 쇼의 종류는 물론 '스트립쇼'이다. 쇼를 하는 쇼걸들은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무자비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모든 부위 앞 뒤 가리지 않고 보여준다. 보는 사람이 시선을 돌릴 정도로 노골적인 포즈이다. 극장은 마치 나이트 클럽처럼 생긴 곳도 있으며, 연극 극장처럼 생긴 곳도 있다. 어느 곳이나 입구에는 쇼의 시간과 출연하는 여성사진이 붙어있는데, 좋은 곳은 유명 포르노 스타들이 나오는 곳도 있고 초보 연예인들이 나오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단체로 쇼걸이 출연하는 쇼도 있고 혼자서 하는 쇼도 있다. 구성에 따라서 갖가지 성적 상상이 가능한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조키와는 다르게 한 번 들어가면 하루종일 관람을 하여도 된다. 조조할인, 학생할인, 단체할인 등이 적용되어 그럴 경우는 3,4천엔으로 관람이 가능하며 맨 앞자리는 동네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끝날때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앞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이런 스트립바는 나이트 클럽의 스테이지 같은 곳에 한번에 여러 명의 여자들이 나와 쇼를 하는데, 얼굴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춤을 추는 곳도 있다. 낮에는 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밤에 이런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춤을 추는 여성들이 많아서 선글라스를 끼고 춤을 추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따로 직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학생으로 보이기 위해 선글라스를 기는 경우도 있다.

Ⅲ. SM카페
SM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자주 듣고 볼 수 있다. 일본 TV 심야프로나 스포츠 신문, 소설, 비디오, 심지어 만화책에까지 SM이라는 단어는 단골메뉴처럼 나온다. S는 사디스트(sadist)를 뜻하며 M은 마조히스트(masochist)를 뜻하는 것으로 사디즘+마조히즘이 SM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SM이라는 단어만 보면 누구나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다. 예전에 삼성자동차에서 나온 SM5를 일본에 수출하려면 모델명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란 음료나 스낵을 먹으면서 SM쇼를 구경하는 곳이다. 극장식이 아니고 보통 카페식으로 되어있어서 SM카페인 것이다. 와 는 구별을 잘해야 한다. SM쿠라부에서는 손님이 직접 업소의 여성들과 SM행위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SM카페의 내부는 커피숍과 같은 구조이나 한쪽에 쇼를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있다. 그리고 실내 장식들이 커피숍과는 틀리게 각종 고문 기구들을 많이 걸어놓았다. 기구들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섬뜩한 것들도 있다. 기구들은 가죽띠, 쇠사슬, 수갑, 노끈 등을 주로 사용하고, 벽이나 천장에 매달 수 있는 기구도 있다.

Ⅳ. 데이트 카페(デ-ト)
이 곳은 일반 커피숍과 겉모습은 같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는 것도 같다. 다만 다른 커피숍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 커피숍과 달리 실내에 젊은 여자들이 많이 앉아있어서 보기에 '물'이 좋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트 카페>는 보통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일반적인 커피숍이라면 안이 들여다 보이기 마련이니까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커피숍은 대부분이 <데이트 카페>인 것이다. 일단 자리에 앉아 선불로 찻값(2~3000엔)을 지불하고 나서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자기의 자리로 초대한다. 그럼 일단 인사치레로 그 여자에게 차를 한 잔 사주는게 매너이다. 매너를 지키기 싫더라도 업소의 규칙이 그러하다. 즉, 여자에게 합석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거나 외모를 보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애프터를 나가면 되는데, 이때도 애프터 요금을 2000엔 정도 내야 한다. 밖으로 나가서는 본인과 상대방 의사에 따른다. 여자들의 연령은 대략 만 20~28세 정도인데, 일본인 외에 동남아시아 계통의 여자들도 볼 수 있다. 과거부터 단속이 심해 요즘에는 이런 여자들을 커피숍 내에 두지 않는 곳도 많다.

이런 곳은 핸드폰이나 삐삐로 호출을 하게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손님끼리 눈이 맞아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위장되기 때문에 업소에는 매춘 책임이 없는 것이다.


Ⅴ. 호테토루(ホテトル)
서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콜걸'과 같은 시스템을 말한다. <호테토루>는 항상 매춘을 전제로 집이나 호텔 등 손님이 원하는 장소로 여자를 불러낼 수가 있어서 색다른 특징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소 들이 집보다는 호텔로 오는 것을 선호한다. 찾기가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신주쿠의 공중전화마다 붙어 있는 여성의 야한 사진이나 그림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작은 전단들이 호테토루의 광고전단이다. 이런 전단들은 저마다 섹시한 여자 사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관광객들 가운데는 도쿄 관광기념으로 이 것을 수집해서 가져가는 사람들도 많다. 광고 전단을 보면 업소마다 자신들만의 특징과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사기성 짙은 업소들이 간혹 있지만 체인지(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파트너를 오게 하는 것)를 한다면 믿을만하니까 안심해도 되지만(?), 요즘은 자기 집에서 매춘하는 여성이 많아서 주로 나이 많은 여자들만 있는 업소도 많다고 한다. 젊고 예쁜 여성들보다는 업소마다 전문을 내세워서, 금발의 여자나 흑인여성만 대기하고 있거나, 어떤 곳은 몸무게 100KG정도의 여자와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큰 여자들만 있다. 그밖에 할머니 같은 여자, 옆집 부인 같은 여자, 회사원, 대학생 등 실로 종류를 상상하기 힘들다. 여고생이나 일반 직장 여성들도 전화로 부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도쿄 시내 곳곳 뒷 골목 같은데 낙서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여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씌어 였는데 그것들은 모두 매춘용이다. 스티커 사진 찍는 곳의 메모판에도 사진과 함께 휴대폰 전화번호를 적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많은 전화번호들이 붙어 있다.

Ⅵ. 소프란도(ソ-プランド)
<소프란도>는 한국의 증기탕과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이런 업소들을 '터키탕'이라고 불렀는데, 한국과 같은 이유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들어가는 입구 요금표에 '입욕료(入浴料)'등으로 가격이 씌어져 있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쉽다. 여성의 성감서비스가 있는 업소들 중에 가격이 비교적 비싼 이유는 목욕시설 때문이다. 때문에 좋은 업소들은 훌륭한 시설을 해놓고 손님을 맞고 있지만, 사기성 업소들은 <소프란도>간판을 내걸고는 형편없는 목욕시설을 해 놓았다.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성을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은 창문 너머로 섹시한 옷을 걸친 젊은 여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을 보면서 그 중 마음에 드는 여자를 지명하게 되어있다. 여자를 지명한 후, 서비스는 일단 씻겨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비스도 업소마다 큰 차이가 나며 같은 업소라고 하더라도 여자에 따라서 서비스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소프란도는 '혼방(本番)'이라는 직접적인 섹스를 안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혼방'을 빼고 난 나머지는 어떤 것이든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Ⅶ. 호스트 바
일본에서는 호스트 바가 단속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곳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호스트바처럼 이상하고 문란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이용하는 쿠라부 식으로 대화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호스트 바>입구에는 제비같이 생긴 남자들 사진이 무수하게 붙어 있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주로 호스테스들이나 직장여성들이 많이 이용을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부쩍 손님이 적어졌다. 호스트 바에 나온 남성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나왔기 때문에, 친해진 손님에게 접근하여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많다. 물론 여자가 정신이 홀려 자의에 의해서 돈을 주고 몸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한 번 당하고 나면 호스트 바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고 만다. 게다가 어차피 모르는 사람과 놀 바에야 돈을 받고 노는 편이 더 좋다는 매춘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돈을 내고 즐기는 곳에 절대로 가지 않는 여자들도 아주 많다. 테레쿠라 등을 통하여 언제든지 돈을 내는 남성을 찾을 수가 있는 상황에서는 호스트 바를 갈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몸을 팔 수 없는 수준의 나이 먹은 여자들도 호스트 바를 가기보다는 하라주쿠(原宿)등에 나온 어린 남자들을 꼬시는 역(逆)원조교제도 많아졌다. 이렇게 유부녀까지 길에서 남자를 사기 때문에 호스트 바는 차차 문을 닫고 있다.

○ 매니아 문화

Ⅰ. 독신 매니아
일본의 이혼률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2분 47초당 한 쌍의 부부가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멸종 위기에 놓인 일본 남자들의 3고(고학력, 큰 키, 고수입)현상이 독신녀 증후군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심지어 평생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는데 몸바쳐 왔던 어머니 세대들의 독립 선언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남편이 정년퇴직하는 날을 기다렸다 퇴직금을 받아오는 순간 갈라서는 일본 여성들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독신 선언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일까? 도쿄에서 만난 한 직장여성은 결혼관을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결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지금 회사에 다니면서 받는 월급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일이 끝난 뒤엔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 주말에 경마를 하고, 휴가철엔 해외 여행도 다니고.... 혼자 살다 정 심심하면 한 번쯤 결혼을 생각해 볼지도 모르죠."일본에서 여성의 위상이 바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제 2차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그 빈자리를 여성들이 훌륭하게 메꾸어 낸 것. 특히 6,70년대의 참담한 시기에 일본의 어머니들은 가정살림과 자녀교육을 주도했다. 그 자녀들이 성장해 지금 사회의 주체세력이 되었고 지금 여자들의 역할을 존중하는 그들의 자세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여성들의 지위향상은 경제적 독립을 우선으로 하는 독신 선언으로 이어졌다. 독신을 부추기는 독신녀 공식 후원 업체가 많은 것도 일본의 특징으로 꼽힌다. 도쿄의 경우 우리나라 돈으로 60만원만 있으면 조그만 욕실과 취사시설, 거기에 에어컨과 냉장고는 기본으로 달린 개인 원룸을 구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독신녀만 입주할 수 있는 독신녀 전용 아파트나 맨션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지하철 내의 독신녀 전용 아파트 광고 포스터는 보증금 제도, 평생 입주 가능, 직업 알선등의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며, 독신녀들에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그래서 성공한 독신녀들을 상대로 한 독신녀 전용 아파트나 맨션 사업이 각광받고 있다. 그렇다면, 독신자들의 먹는 문제 즉, 음식문화는 어떤가. 일본의 6채널 TBS가 일요일 낮에 방영하는 '동경매거진'이란 시사오락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이 바로 '해봐! 트라이'란 코너다. 이것은 일종의 요리코너로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길거리에 이동식 요리 세트를 만들어 놓고 일반인들이 요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꽁치조림이 그 날 정해진 요리라면,길가는 젊은 여성을 즉석에서 섭외하여 꽁치조림 요리를 만들어 보도록 시킨다. 그런데 우리 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천방지축 꽁치조림이 그야말로 배꼽을 잡게 만든다. 식초를 넣는가 하면, 신세대랍시고 케첩에 마요네즈까지.... 사실 일본의 신세대 여성들 가운데는 요리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많다. 간편한 인스턴트 식품을 주로 애용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회용 인스턴트 식품은 동네 곳곳의 24시간 편의점에서 독신 매니아들의 새로운 음식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루 세 끼, 심지어 한 달 끼니 전부를 편의점에서만 해결하는 이른바 신컨비니언 족이 있을 정도다. 자유로운 일자리 또한 독신 여성들을 기다린다. 도쿄 미나미 아오야마(南靑山)에 있는 인재 파견 전문회사 '두 크리에이션(DO CREATION)'은 전문기술이나 자격증을 소유한 여성들과 계약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일거리를 제공한다. 경영자의 입장보다는 일하는 사람 위주의 효율적인 운영관으로 여성 인재들의 사회 진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여성들의 직업관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크리에이션'에 등록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쿄 모터쇼나 데이터 쇼, 각종 이벤트에 파견되는 여성 전문인력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여자든 남자든 나이 서른이 넘어 혼자 살아도 '왜 혼자 사느냐, 사귀는 상대는 없느냐? 등의 개인적인 질문은 받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않으면 무언가 결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좋은 예로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선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은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케이크를 먹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선 시집 못간 노처녀에 비유됐다는 사실이다. 왜냐 하면, 대량 제작한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날개 돋친 듯 팔리다 12월 25일이 지나자마자 절반도 안되는 헐값에 팔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 노처녀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야기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젠 적어도 일본에서 나이 서른이 넘도록 결혼 안 한 사람이 손가락질 받는 경우는 없다. 독신자들의 증가는 관련 업종이 성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중 애완동물 숍은 독신 매니아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방편으로 최근 괄목할 만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애완동물 먹이 주기, 기르는 방법 등이 상세히 기재된 무료설명서와 전용 화장실, 먹이, 장난감 등을 애완동물과 함께 빌려주는 애완동물 肉㈍汰?신 비즈니스로 각광받고 있다. 고슴도치는 3,000엔, 고양이 6,000엔, 개 1만 2,000엔으로 하루 동안 빌릴 수 있다. 혼자 살기 외로워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은데, 밥 주고 산책도 시켜야 하고 오물처리에 키울 자신이 없을 경우 전화 한 통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아저씨 여기 치와와 작은 걸로 삼일만 빌려갈께요. 삼일에 얼마죠?" 이런 식이다. 아울러 TV프로그램에는 애완동물을 소재로 한 코너들이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그 수도 증가 추세다. 여행업계에도 독신 남녀만이 즐길 수 있는 독신 여행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해 독신 매니아를 위한 독자적인 여행 패키지들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독신 여성들에게 엄청난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여성 전문잡지가 있는데 바로 앙앙 족과 하나코 족이라는 유행어를 남긴 <앙앙>과 <하나코>지가 그것이다. 매회 실리는 여성만을 위한 특집, 기획 르포를 읽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유행의 대열에서 도태된다는 위협을 느낄 정도다. 주로 독신 여성이나 젊은 신세대 여자들을 독자층으로 하는 이 잡지들은 쇼핑에서부터 톡톡 튀는 최신 거리 패션, 그리고 음식에 관한 최신 정보와 기획 취재 기사를 생명으로 한다. 이 같은 잡지들은 또한 일본의 독신녀 증후군에 무한대의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독신 매니아 증후군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최고라는 개인주의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에만 몰입하는 이른바 일본의 신신인류 매니아 현상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고개를 든 문화이다. 하지만 독신 매니아는 외부세계와 벽을 쌓고 철저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내향적 성향이 강한 오타쿠(정도가 지나친 매니아를 지칭하는 용어)부류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독신 매니아들은 외형상 독신의 형태를 고집할 뿐 실제 생활은 사회 속의 집단주의와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독신 중독증으로까지 불리는 일본의 신세대 독신 매니아는 복잡 다양해지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는 정반대로 단순화 간략화를 추구하고 있다. '독신 매니아들만의 천국 건설!' 이웃 일본에서는 전혀 꿈 같은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말이다.

Ⅱ. 성(性) 매니아 - 남자가 벗는다.
감미로운 음악이 희미한 조명을 타고 흐르고, 온통 뜨거운 열기와 칙칙한 땀 냄새가 뒤섞인 공간. 금방이라도 '뻥'하며 터질 것 같은 섹시한 에로티시즘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여자가 벗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눈 앞에 전개되는 근육질의 율동이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섬나라 일본의 오리지널 미국판 남자 스트립쇼의 진수가 유감없이 펼쳐지는 곳. 도쿄의 도심 한복판 미나토구의 니시마사후에 자리잡고 있는 '제이 멘스 도쿄(J men's Tokyo)'의 이색 풍경이다. 섹스문화의 선진국(?)다운 발상이다. 남자 스트립쇼가 펼쳐지는 '제이 멘스 도쿄'의 장내는 온통 여성 고객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더 월(THE WALL)이라는 건물의 지하에 마련된 30여 평 남짓한 이 스트립쇼장의 좌석에는 고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몸은 람보나 코만도요, 얼굴을 톰 크루즈를 연상케 하는 육체미의 소유자들이 무대를 장악한다. 검은 피부나 갈색머리를 가슴까지 길게 드리운 코 큰 남자들이 청바지와 검정 자킷을 벗어 던진다. 이윽고 '우와~~~'하는 탄성과 함께 남자들은 하얀, 노랑, 보라빛의 색색 팬티만을 걸친 벌거숭이가 된다. 무대와의 거리가 1m정도밖에 되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여성 고객들의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지르고 열광하는 열성파가 있는가 하면 아직은 낯설고 익숙지 못한 탓인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얼굴을 붉히는 내숭파도 있다. 라스트 피치 타임에는 일일이 무대에서 내려와 여성고객의 앞을 지나가며 섹시한 율동과 키스를 선사한다. 고객들은 그 답례로 가느다란 색색 팬티를 잡아당기며 지폐를 꽂아주기에 바쁘다. 이 '제이 멘스 도쿄'의 남자 스트립쇼는 일본 최대의 관광버스인 하토버스의 동경시내 관광코스로 정식 지정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주 저녁 7시, 8시 30분, 10시 하루 세 차례 공연하며, 요금은 앞 쪽 전열이 7,000엔. 일반석은 4,000엔이다. 물론 거의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사실 술집이나 유흥업소, 그리고 여자 스트립쇼가 열리는 곳은 신주쿠(新宿)의 환락가로 유명한 가부키쪼나 롯뽄기(六本木)의 밤거리가 유명하다. 주로 남성고객을 상대로 한 섹스 유흥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에서 '제이 멘스 도쿄'의 남자 스트립쇼는 적지 않은 파문을 몰고 왔다. 이는 여권신장이나 남녀차별을 부르짖는 소리가 드높아만 가는 현실을 반영해주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제이 멘스 도쿄'를 찾는 주 고객들이 여대생이나 젊은 직장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 여성들의 결혼관의 변화와 더불어 대두된 새로운 성매니아의 풍속도로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어디가 그 한계일지 예측할 수 없는 일본의 성 개방 풍속도를 시사해 주고 있다. 지금 일본은 범람한 성인 비디오와 전화 한 통이면 성적 욕구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매춘업, 24시간 편의점에 방치되어 있는 포르노 잡지들, 통신판매등을 통해 거래되고 있는 성기구...... 그리고 공중파 TV프로그램 속에는 노골적인 성묘사등이 만연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은 금세라도 망해 버릴 것 같은 그로키 상태로 보인다. 돈이면 무엇이든 오케이라는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는 이제 여중고생까지도 몸을 파는 이른 바 기형아적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1억 3천만명의 인구가 북적대는 섹스 문화의 천국 일본. 그 속의 원초적 쾌락주의자인 섹스매니아들의 풍속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Ⅲ. 콘돔 매니아
"콘돔에 관한 한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하라주쿠 한복판에 위치한 콘돔 전문점 '콘돔 매니아'의 캐치프레이즈다. 오전 10시 30분에 문을 열어 저녁 11시까지 운영되는 이 콘돔 전문점에 전시된 콘돔의 종류는 무려 230여 종에 달한다. 절반 정도가 콘돔을 아이템으로 한 기념품인데 보기만 해도 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콘돔으로 만든 예쁜 화분, 눈깔사탕으로 착각하기 쉬운 사탕 모양의 콘돔, 콘돔 열쇠고리, 그리고 소프트 페니스등..... 기발한 아이디어의 콘돔 상품이 진열되어 고객의 발길이 끊일 줄 모른다. 호기심 반, 취재 반으로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는데, 세일러문 복장의 여자 고교생 두 명이 콘돔 전문점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런 곳에 고교생인 미성년자가....'하고 생각하며 은근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다. 10여분 정도 콘돔을 만지작 거리며 구경하던 그 여고생들은 기념품이 아닌 진짜 콘돔을 두 통씩 사서 가방에 넣고는 휑 하니 나가 버렸다. 염색한 머리, 짧은 미니스커트 교복, 흘러내린 흰색 루스삭스 차림으로 보아 전형적인 고걀족이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사복차림의 남자아이가 들어오더니 진열대에 놓여진 컵라면을 5개 사가지고 나간다. 콘돔 전문점에 웬 사발면일까 하고 점원에게 물어보니 그것은 컵라면 모양의 남성 마스터베이션 용품이었다. 이'콘돔 매니아'는 현재 일본 내는 물론 해외까지 진출하여 싱가포르에도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저희 가게에서 대량으로 콘돔을 수입해가고 있어요. 그리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의한 통신 판매 주문도 짭잘하답니다...." 머리를 물들인 이 가게 점원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도 섹스용품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물론 지나가는 길에 보면 파리 날리고 있다. 최고상권으로 꼽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콘돔전문점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썰렁하기만 하다. 일본에는 콘돔만을 수집하는 10대들도 있다. "취미가 뭐에요?" "저요? 콘돔을 모으고 있어요." 아마 한국에선 강산이 몇 십번은 변해야 볼까말까 한 풍경일 것이다. 콘돔 전문점의 성황은 단순히 콘돔을 사용하는 피임인구의 증가나 콘돔을 기념품으로서 수집하는 신신인류 콘돔 매니아들의 증가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새롭게 등장한 영파워 신신인류의 세력 확장과 그에 따른 일본 신생족들의 새로운 생활 유형을 의미한다. 이른바 난파'로 불리는 길거리 헌팅이나 여자 고교생들의 전화방, 그리고 섹스에까지 이어지는 원조교제 등의 세태와 정조관념이나 성에 대한 개방적 가치관의 변화 등에서부터 기인한다. 특히, 93년부터 등장한 미니스커트 교복에 흘러내린 흰색 루스삭스로 대표되는 고걀족들의 필수품이 개인 휴대폰과 다름 아닌 콘돔이라는 사실은 전후 일본 대중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잘 반증해 주고 있다. 콘돔 전문점의 주 고객은 10대 여성들! 하라주쿠의 명물이 되어 버린 콘돔 전문점을 나오면서 일본의 신신인류 여성의 세력이 어느새 섹스의 주도권을 독점하는 데까지 이른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Ⅳ. 자살 매니아
"당신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여기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자살하는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는 책이 있습니다. 자살을 하려면 이 책을 보십시오!" 바로 출판 왕국 일본에서만 접할 수 있는 자살 안내서 <완전 자살 매니아>의 광고 문안이다. 오타 출판사에서 93년도 초판이 발행된 이래 베스트 셀러에 오르기도 했던 이 책은 끊임없이 방황하며 고뇌하는 젊은이들이 자살을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른바 자살 교과서이다. (시중가 1,200엔) 이런 충격적인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백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완전 자살 매니아>에 수록된 자살 방법은 약물 복용, 목 매달기, 뛰어내리기, 가스 중독, 분신 자살 등 모두 10여 종류로 나누어 상세한 자살 정보를 게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목 매달아 자살하기 편에는 줄을 매는 방법부터 죽는 순간의 고통, 실패하지 않기 위한 체크 포인트, 거기에다 목을 매어 자살하기 제일 좋은 장소 안내 지도, 숙식 및 교통편,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방법 등등... 보고 있자면 웬지 소름이 끼치는 자살 가이드가 너무나 상세히 실려있다. 일본에서 나이 어린 젊은이의 시체가 후지산 기슭에서 이 <완전 자살 매니아>와 함께 발견된 기사를 접할 때면 슬픔과 놀라움, 그리고 분노가 교차되곤 한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런 책을 썼을까? 신주쿠에 위치한 오타 출판사의 오치아이 편집장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의 자녀가 만약 이 책을 보고 자살을 기도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세상에는 잘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책들뿐이지요. 성공하는 법, 돈 많이 버는 법, 장수하는 법... 그러나 인간이 죽어 보지 않고서는 삶이 죽음보다 좋다고만 할 수 없지 않아요? 만약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편안하게 적은 고통으로 죽음을 맞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완전 자살 매니아>를 출간하게 되었지요." 차분한 목소리의 항변이었다. 판매 부수가 백만 부를 넘은 탓에 대만에서도 번역 출간되었으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판매 금지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역시 책에 관한 한 없는게 없다는 출판 왕국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완전 자살매니아... 최근 들어 신신인류의 매니아 현상과 같이 자신의 관심사가 자살에 있고 자살만 생각하고 심취한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완전 자살 매니아가 되어 서슴지 않고 죽음을 택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매니아가 매니아 전문 책자와 잡지, 비디오 판매고에 일익을 담당하고, 이러한 매니아 문화의 양적 팽창은 '사회적 무관심'을 초래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할 매니아 시대의 최대 약점이다. 이웃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길 바랄 뿐이다.

Ⅴ. SM 매니아
가학성 변태성욕이란 뜻의 새디즘(sadism)과 피학대 음란증인 매조키즘(masochism)의 첫 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 밧줄로 꽁꽁 묶어 맨살에 뜨거운 촛농을 떨어뜨리는가 하면, 채찍질을 해대며 갖은 고문을 자행한다. SM 매니아들의 행동은 보는 이의 낯을 뜨겁게 만들 정도이다. 하지만 출판왕국 일본의 서점과 편의점에서 SM 매니아들의 선정적이고 음란한 사진과 기사를 실은 잡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인기 TV프로그램의 소재로도 재연될 정도이다. 이것은 우리에겐 생소하기만 한 SM 매니아의 양적 팽창을 의미한다.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에 의하면, 인간은 크게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로 분류된다. 상대방에게 가혹행위를 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 내지 쾌감을 얻는 유형과, 반대로 가혹 행위나 학대를 받음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을 느끼는 유형이다. 따라서 SM 매니아란 이런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의 독특한 성적 행위를 의미한다. 일본에서 SM이란 단어가 일반화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일본 최초의 SM 잡지는 1950년 11월에 등장했다. 알몸의 여자가 로프에 손목과 발목은 물론, 가슴까지 칭칭 묶여 있는 그림과 기사, 지금이야 중학생들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로 일반화 되었지만, 당시의 SM이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용어이자 장르였다. 소수 SM 독자들로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SM은 곧바로 사진과 소설 속의 소재로 제 1의 황금기를 맞았다. 그리고 71년에 창간된 잡기 <세렉터>의 등장으로 가속화되었다. 본격적인 SM 전문잡지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이렇게 성장, 확대되기 시작한 SM 매니아는 매춘과 관련된 유흥업, 이른 바 풍속산업의 한 부분으로 확고히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이들 SM 매니아들의 행위는 극히 비정상적으로 보일 뿐이다. 뜨거운 촛농을 맨몸에 떨어뜨리는가 하면 구둣발로 차거나 꽁꽁 묶어 채찍질을 해대기도 한다. 우리의 가치관과 성의식으로 보면 이건 정말 문란함과 조잡함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광경이다. 웬지 무방비 상태의, 여과기능이 생략된 듯한 제반 환경이 순식간에 성 완전 자유국가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성풍속도 알게 모르게 동경도의 음행조례 재심의를 거쳐 운행 감독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테레쿠라(전화 미팅방) 규제 조례의 제정, 얼마전부터 실시된 인터넷 에로 홈페이지 규제, 그??성인 비디오 규제 등 성 규제 강화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물론 일련의 규제 강화조치에 대한 찬반도 거세기만 하다. "규제하면 할수록 성에 대한 욕망은 증가하기 마련이지요. 규제받는 쪽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더 음성적으로 과격화되어 갈 뿐이구요." 규제 강화에 반기를 든 변호사 나이토씨의 열변이다. 일본 정부의 규제 강화에 맞서 일본의 성 완전 자유화 실시를 주장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성에 관한 평론가로 유명한 기타하라씨는 구미와 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불쾌금지 원칙을 지켜 성인이 자기 자신의 성적 행위에 대해 책임질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이러한 찬반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성풍속 산업은 극도의 상업주의로 우리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SM 매니아들의 모임은 공식적인 SM 강습회나 SM 초심자들을 위한 실천 강좌 등의 개최로 양적 증가를 꾀하고 있다. 거기에 동네 비디오 대여점의 성인용 AV 비디오 코너에는 수많은 SM 관련 비디오들이 진열되어 있다. 일본에서 SM 매니아는 동네 어귀마다 있는 자동판매기처럼 일상생활 속에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 SM 매니아에 식상한 일본의 성 매니아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대상과 매니아의 등장이 벌써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 일본 사회

○ 사무라이
일본인들이 대중적으로 즐기지는 않지만 그들의 전통에 대한 고집, 가부키는 교양이라는 인식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의사랑을 받는다. 교토의 '미나미자'를 비롯하여 여러 도시에는 상설 공연장이 있다. 일본에는 원래 3대 전통연극인 가부키, 가장 오래된 노(能)라는 가면극과 인형극인 분라쿠(交樂)가 있는데, 이중 노와 분라쿠는 옛 문화재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지만, 가부키는 국민의 사랑과 작품 재창출등의 노력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특이한 것은 가부키에는 여배우가 없고 여자 역할도 모두 남자(오야마-女形)가 한다.(우리의 국극과 반대다.) 그것은 17세기 중반에 가부키에서 남녀관계로 인해 문제가 많아지자 막부에서 여자 배우를 출연금지 시킨 결과인데, 그 후로는 동성연애로 인한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가부키의 소재는 대개 喜, 怒, 哀, 樂 + 愛 인데 가장 인기있고 사랑받는 것은 '추신구라(忠臣藏)'라는 제목의 사무라이극이다. 그 내용은 누명을 쓰고 할복자살한 주군을 위해 그의 부하인 47명의 사무라이가 갖은 고초끝에 주군의 원수를 갚은 뒤, 모두 할복자살한다는 것이다. 온 국민의 사랑과 인기를 대표적으로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춘향전과 같지만 그 내용과 보고 흘리는 눈물의 정서에는 큰 차이가 있다.(한국-情/일본-義) 그렇다면 사무라이란, 도대체 지금의 일본에서 무엇인가? 우리의 양반, 유럽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사무라이도 한 시대를 이끌었던 지도층인데 무형의 정신적 전통인 사무라이 문화를 알면 일본을 다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무라이 문화는 아직까지 일본인의 생활 곳곳, 모든 분야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이중성의 상징인 다테마에(建て前:겉치레)와 혼네(本音:속마음), 친절과 겸손, 많지 않은 욕... 이런 것들은 오랜 사무라이 시대를 거치며 신중하고 예의바르게 처신하지 않았다가는 제 명대로 살기 어려운데서 비롯됐다. 또 많은 자살, 장인 정신, 성개방 풍토, 집단/조직주의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 열거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사무라이는 헤이안 시대 중기인 10세기 경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 당시만 해도 중앙 귀족들의 신변이나 토지등을 지켜주고 농사를 짓고 있었으나 헤이안 시대 말기에 귀족들이 많은 땅을 차지하고 힘이 커지면서 일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중세의 권력암투는 더욱 혼탁해져 갔다. 결국은 무사 출신의 귀족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우여곡절끝에 최초의 사무라이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고 쇼군이 되어 실권을 잡았다. 이때부터 일왕은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 복고가 이루어질때까지 대부분의 세월을 명목상으로만 최고의 위치인 왕으로 보내게 된다. 가마쿠라 막부는 집안 살림이 시끄럽던 차에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전쟁준비를 하다 재정까지 악화되어 멸망했다. 전쟁을 밥 먹는 것보다 더 많이 하며 넓은 유라시아 초원을 달리며 싸움에 이골이 난 원나라. 반면에 동네 전쟁만 하던 일본이 첫 전투후 공포에 휩싸여 있을때 홀연히 나타나 그들을 살려준게 엄청난 2번의 폭풍우였다. 일본은 감격한 나머지 정말 신이 점지해 준 민족이라는 엉뚱한 자부심까지 갖게 되었으며 이 폭풍우를 가미가제(神風)라고 했다. 이 가미가제는 670여년 후 이번에는 태평양에 나타났다. 바로 가미가제 독고타이(신풍 특공대)이다. 그들 대다수는 비행기에 칼을 들고 탔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무사도를 갖춘 사무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엉뚱하게 왜곡된 무사도, 아직도 일본이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갖고 있는 것은 사무라이 시대의 무사도에 의한 할복자살 풍습이 미화되어 전통처럼 내려오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라는 명칭은 귀한 사람을 옆에서 호위한다는 '사부라우'라는 말이 변형된 것이다.(백제의 무사들인 싸울아비가 일본으로 건너가 사무라이의 원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들은 지窩米館?성(姓)을 가질 수 있으며 칼도 찰 수 있었고 여자야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 공공연하게 조달할 수 있었다. 또한, '키리스테고멘(사무라이에게 무례를 범하면 언제든지 칼로 목을 쳐도 됨)'이라는 권한과 어떻게 보면 특권이라 할 수 있는 할복자살을 할 수 있었다. 배를 가르면 쉽게 죽지 않기 때문에 할복자와 친한 사무라이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쳐주는 가이샤쿠(介錯)도 있었다. 이러한 할복자살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나 가이샤쿠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지고 법적인 문제등이 대두되면서 점차 없어졌다. 그러나 그들에게 특권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행동으로 임무가 주어지면 목숨걸고 해내야 했으며 특히 '겐무 시키모쿠'라는 무사의 생활규정이 있어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했다. 권리도 컸지만, 의무도 그에 못지 않아 사무라이에겐 자연히 많은 고뇌가 따랐다. 여기서 그들이 심취하게 된 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불교의 禪이었다. 실제로 일찍 죽지 않고 나이가 든 사무라이들은 절에 들어가 승려로 일생을 마친 경우도 많아서 그들의 또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다.

○ 도박
일본은 전국이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방불케한다. 무슨 말인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한 마디로 일본 열도는 '도박 천국'이라는 이야기다. 혹자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웃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카지노하러 한국까지 오는게 현실인데 그럼 한국은 '도박지옥'이냐고. 물론 일본은 카지노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카지노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에 없는 종목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카지노는 일본인들 중에 극히 소수만이 하는 관광코스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대중이 하는 종목은 아니다. 대중 도박에 관한 한 일본만큼 법적으로 자유롭게 풀려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우선 파친코가 그렇다. 한국은 슬롯 머신 파동 이후 사라졌지만 일본의 파친코 사업은 불경기란 단어를 전혀 무시하고 무조건 상승세로만 치닫고 있다. 일본이 파친코를 풀어주고 카지노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이유는 오락차원에서만 도박사업을 허용하고 본격 도박은 금지한다는 취지에서이다. 그건 일본 정부가 생각하는 오락의 차원이다. 세계인의 경제 수준으로 볼 때, 일본의 파친코란 결코 본격 도박이지 오락이라고는 볼 수 없다. 1년에 1백조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는 도박사업이 어찌 오락인가. 세계엔 GNP가 1백조원이 안되는 나라도 수두룩하다.

일본의 파친코가 어떤 사업인가 하는 것은 다 알겠지만 일본의 사정을 잠깐 더듬어보자. 파친코는 정확하게 분류하면 쇠구슬로 게임을 하는 것이고, 코인을 집어넣고 하는 게임은 파치슬롯(파친코+슬롯 머신의 준말)이라 부른다. 파친코건 파치슬롯이건 현금으로만 구슬이나 코인을 살 수 있는 것은 공통이다. 대개 1천엔 단위로 알이나 코인을 사는데 그건 겨우 한 줌(코인 50개)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게임을 했다하면 5천엔 내지 1만엔이 주머니에서 나가는 건 한 순간이다. 말이 좋아 1만엔이지 이것은 아시아 전체로 볼 때 수많은 사람들의 한 달치 봉급에 해당한다.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인도, 파키스탄쪽의 서남 아시아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거의 1천만명에 이르는 일본인들이 매일 파친코에서 이만한 액수의 돈을 노름 기계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동네동네마다 파친코 가게 한두 개 없는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아시아인 평균 한 달 봉급을 날리는 장소가 일본 본토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고 봐도 무난할 것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일부러 도박하는 도시나 먼 장소를 찾아가야 하지만 일본은 언제 어디서나 집에서 슬리퍼 끌고 나가면 되는 곳에 파친코 장이 있다. 줄잡아 2만여개의 파친코 가게가 전국에 거미줄처럼 쳐져 있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노인네들이 열여덟아홉의 애들이랑 앉아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광경은 여느 파친코장이나 똑같다. 시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나 양복입은 신사나 온통 정신을 빼앗긴 채 파친코 기계에 돈을 빨리고 있는 것램. 한 집이 보통 벌어들이는 액수는 현찰로 하루 몇 백만엔에서 한 달에 보통 1억엔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억원가량 되니 놀랄 일이 아닌가. 결국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이란 나라는 전체가 본격 도박판을 벌이는 땅이라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카지노가 금지되어 있다고 하지만, 큰 돈을 거는 도박판이 그럼 일본에 없느냐 하면 그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경마가 있다. 일본 경마장은 전국에 퍼져있고 텔레비전, 라디오 정규프로에 경마 방송이 편성되어 있을 정도로 대중도박이다. 그런데 경마 판돈을 보면 5천엔, 1만엔의 판이 아니다. 가장 적게 거는 사람이 그 정도니까 그 이상의 사람들이 날리는 돈 액수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경마가 어느정도 대중화되어 있는지는 일본의 스포츠신문, 전철신문, 그리고 편의점용 경마 전문예상지들이 일주일 내내 엄청나게 팔려나가는 걸로 미뤄봐도 알 수가 있다. 일본의 스포츠 신문이란 금, 토, 일요일엔 부쩍 판배부수가 느는데 말할 것도 없이 경마 예상기사 때문이다. 경마뿐만 아니라 경륜, 보트경주 도박도 1년 수입으로 몇 조엔씩을 올린다. 액수는 물론 전국 어디에서나 남녀 구별없이 일년 내내 이러한 도박판이 진행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인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반화 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다. 격무에 찌든 경제대국 사람들의 유일한 낙이라고 할까? 우리는 절대 도박의 일반화로 스트레스를 풀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역시 남녀 노소의 스트레스를 풀어 줄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만약 이런 욕구를 계속 막아대기만 하는 정책으로 나간다면 불만은 쌓이고 스트레스는 더욱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방송 및 대중 문화의 건정화도 좋지만 국민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차원을 무조건 저질로만 몰아붙이는 것도 한번쯤은 깊게 생각해 볼 만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출처: 이선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