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우정 도쿄특파원
일본 아이들이 그러는 게 천성이라고 여겼는데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 어느 날 놀이 공간에서 모처럼 우리 아이를 반겨주는 일본 아이를 만났다고 한다. 둘이 놀이 공간을 빙빙 돌면서 웃고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그러자 주변에서 물건을 고르던 일본 엄마가 달려와 자기 아이를 붙들더니 뺨을 때리더란 것이다. "조용히 해!"라며. 아내는 "놀아준 아이에게 미안해 혼났다"고 했다.
몇달 전 아이를 동물원 물개 쇼에 데려갔을 때다. 물개가 잘 보이는 앞자리가 어린이 공간이었다. 안내원이 우리 아이를 포함해 20명 정도 아이들을 세 줄로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아이들은 홀로 물개를 보는데 우리 아이만 다른 아이에게 관심을 쏟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미안해 쇼가 끝나기 전에 아이를 끌어냈다. 다른 장소에서 이어진 독수리 쇼 때도 그랬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보니 다들 엄마 곁에서 보고 있는데 독수리를 만지겠다며 혼자 나서는 아이가 보였다. 우리 아이였다.
동네에 아이를 데려나가면 일본 할머니들은 "몇살이냐"고 말을 건다. "두 살"이라고 하면 "크네" "건강하네"라며 몇 가지 정해진 덕담을 건넨다. 여기가 선(線)이다. 물론 살다 보니 아이를 만진다거나 안아준다거나 뽀뽀하는 일을 일본에서 겪은 적도 있다. 관광지에서 만난 중국인들이다. 아이를 안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일도 있었다. 한국 식당에선 직원이 "편하게 드시라"며 아이를 봐 주기도 한다. 아이와 놀아준다며 곁에서 공중 부양까지 한다.
아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면 "이제 슬슬 박달나무 매를 깎아야 할 때인가" 하고 고민한다. 아내는 "한국 가면 우리 아이가 정상일 것"이라고 한다. "주눅이 든 아이보다 활달한 아이가 좋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남에게 폐가 되는 아이라도 좋으냐"고 바꿔 물으면 물론 아니다.
일본 식당의 직원은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대신 아기 의자와 만화가 그려진 식기, 때론 작은 장난감을 가져다준다. 한국 식당이 정을 준다면 일본 식당은 배려를 주는 것이다. 아기 의자에서 혼자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를 보면 가엾기는 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식당에서 붕붕 날아다닐 때 달게 밥이 넘어간 것은 아니다. 남들이 아이를 만지고 껴안고 뽀뽀할 때도 곁에서 함께 웃었지만 솔직히 마음은 영 아니었다.
니시와키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12일자 본지에 기고한 에세이 '한국에서 애를 낳고 키워 보니'를 읽으면서 일본에서의 육아를 생각했다. 그가 한국 육아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듯 나 역시 일본 육아문화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듯했다. 서로 장점만 바라보면 신기할 정도로 일본에 모자란 것이 한국에 많고, 한국에 모자란 것이 일본에 많다. 연말에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가 남에게 폐를 끼칠 때 매를 들고, 다른 아이를 만났을 땐 1m 정도 거리에서 "안녕" "귀엽네" 하고 다정한 말만 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