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일본에서 애를 키워보니/한국에서 애를 낳고 키워 보니

이강기 2015. 9. 11. 16:00

1. 일본에서 애를 키워보니
선우정 도쿄특파원 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0.10.12 22:40

선우정 도쿄특파원
상당수 도쿄 쇼핑센터는 작은 어린이 놀이 공간을 매장 중심에 두고 있다. 이런 곳에 두 살짜리 아이를 데려가면 늘 난처하다. 놀이 공간인데도, 아이인데도 일본 아이들은 혼자 놀거나 엄마와 논다. 우리 아이는 유전자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무조건 다른 아이들에게 달려가 들이댄다. 일본 아이들은 십중팔구 피한다.

일본 아이들이 그러는 게 천성이라고 여겼는데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 어느 날 놀이 공간에서 모처럼 우리 아이를 반겨주는 일본 아이를 만났다고 한다. 둘이 놀이 공간을 빙빙 돌면서 웃고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그러자 주변에서 물건을 고르던 일본 엄마가 달려와 자기 아이를 붙들더니 뺨을 때리더란 것이다. "조용히 해!"라며. 아내는 "놀아준 아이에게 미안해 혼났다"고 했다.

몇달 전 아이를 동물원 물개 쇼에 데려갔을 때다. 물개가 잘 보이는 앞자리가 어린이 공간이었다. 안내원이 우리 아이를 포함해 20명 정도 아이들을 세 줄로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아이들은 홀로 물개를 보는데 우리 아이만 다른 아이에게 관심을 쏟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미안해 쇼가 끝나기 전에 아이를 끌어냈다. 다른 장소에서 이어진 독수리 쇼 때도 그랬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보니 다들 엄마 곁에서 보고 있는데 독수리를 만지겠다며 혼자 나서는 아이가 보였다. 우리 아이였다.

동네에 아이를 데려나가면 일본 할머니들은 "몇살이냐"고 말을 건다. "두 살"이라고 하면 "크네" "건강하네"라며 몇 가지 정해진 덕담을 건넨다. 여기가 선(線)이다. 물론 살다 보니 아이를 만진다거나 안아준다거나 뽀뽀하는 일을 일본에서 겪은 적도 있다. 관광지에서 만난 중국인들이다. 아이를 안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일도 있었다. 한국 식당에선 직원이 "편하게 드시라"며 아이를 봐 주기도 한다. 아이와 놀아준다며 곁에서 공중 부양까지 한다.

아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면 "이제 슬슬 박달나무 매를 깎아야 할 때인가" 하고 고민한다. 아내는 "한국 가면 우리 아이가 정상일 것"이라고 한다. "주눅이 든 아이보다 활달한 아이가 좋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남에게 폐가 되는 아이라도 좋으냐"고 바꿔 물으면 물론 아니다.

일본 식당의 직원은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대신 아기 의자와 만화가 그려진 식기, 때론 작은 장난감을 가져다준다. 한국 식당이 정을 준다면 일본 식당은 배려를 주는 것이다. 아기 의자에서 혼자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를 보면 가엾기는 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식당에서 붕붕 날아다닐 때 달게 밥이 넘어간 것은 아니다. 남들이 아이를 만지고 껴안고 뽀뽀할 때도 곁에서 함께 웃었지만 솔직히 마음은 영 아니었다.

니시와키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12일자 본지에 기고한 에세이 '한국에서 애를 낳고 키워 보니'를 읽으면서 일본에서의 육아를 생각했다. 그가 한국 육아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듯 나 역시 일본 육아문화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듯했다. 서로 장점만 바라보면 신기할 정도로 일본에 모자란 것이 한국에 많고, 한국에 모자란 것이 일본에 많다. 연말에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가 남에게 폐를 끼칠 때 매를 들고, 다른 아이를 만났을 땐 1m 정도 거리에서 "안녕" "귀엽네" 하고 다정한 말만 전할 생각이다.

 

 

 

 

 

2. 한국에서 애를 낳고 키워 보니

조선일보

입력 : 2010.10.11 20:20 / 수정 : 2010.10.11 22:34

니시와키 기에코·前 아사히 신문기자

"딸을 데리고 밖에 나가면 '어머나, 진짜 아기야'
'예쁘다'… 아줌마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일본에선 모르는 사람이 말 걸거나 안아주는 일이 없다.
그런 한국 이웃의 관심 속에 아이들과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5월에 둘째 딸 아이가 태어났다. 장소는 서울 시내의 한 병원. 우렁차게 첫 울음을 터뜨리며 내 품에 안긴 아기에게, 나는 엉겁결에 한국말로 '안녕' 하고 말을 걸고 있었다.

남편의 근무지인 서울에서 첫째 딸 아이와 함께 산 지 1년 남짓 지났다. 만 41세인 내가 설마 외국에서 아이를 낳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갓난아기를 키워야 한다면 일본보다 한국에서 키우는 게 분명 즐거운 일이다. 나는 그런 일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딸아이를 안고 밖에 나가면, 길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어머나, 진짜 아가야' '예쁘다' '머리가 까맣고 귀엽다' 등의 말을 걸어준다. '몇 달 됐어요?' '모유 먹여요? 아니면 분유?' '엄마가 입고 있는 그 옷은 수유용인가요?' 길 가던 사람과 서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자주 있다.

쇼핑을 나가도, 지하철을 타도, 병원에 가도, 얼굴도 모르는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딸을 안고는 "발이 얼음처럼 차네, 양말을 신지 않으면 안 돼요"라고 걱정해 주기도 한다. 일본에선 신생아에게 양말을 신기는 경우가 드물다. 때론 "산후에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으면 엄마 몸에 나빠요"라며 엄마인 나의 건강을 챙겨주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첫째 딸과 공원에 놀러 갔을 때다. 갓난아기인 둘째 딸이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젖을 물려도, 안아서 달래도 소용없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한 아줌마가 "잠깐 줘보세요, 달래 볼 테니까"라며 아이를 안았다. 마침 그때 일본에서는 행복한 가족을 질투한 한 여자가 "귀여운 아이니까 안아보게 해주세요"라고 남의 아이를 안고는 아기의 발을 부러뜨린 사건이 생긴 직후였다. 그런 일도 있고 해서인지, 함께 있던 일본인 엄마들은 "모르는 아줌마한테 애를 맡겨도 괜찮아?"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딸 아이는 아줌마 품에 안긴 게 기분 좋았는지, 이내 새근새근 잠까지 들어버렸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사실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연이어 말을 걸어 주면 처음엔 정말 놀랐다. 일본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한테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첫째 딸은 세 살이 될 때까지 일본에서 자랐다. "아기가 귀엽네요, 몇 개월인가요?"라는 질문을 받거나, 모르는 사람이 아기를 안아주는 일은 드물었다.

"한국에서는 생후 6개월이 안 되면 아기를 바깥에 거의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적어도 100일간은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아요, 문화 차이일까요." 내가 단골로 자주 가는 수퍼마켓 아가씨가 하는 말을 듣고선 '내 딸이 낳은 지 1개월이 채 되지 않아 주목의 대상이 되는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섯 살이 되는 큰딸이 어딜 가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말을 걸어준다. 가령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큰딸은 동네 유치원에서 배운 한국 노래를 춤추면서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길을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웃는 얼굴로 큰 박수를 쳐 준다. 딸아이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뻐한다. 그런 경험을 일일이 들려면 끝이 없다.

작년에 일본에 잠깐 갔던 적이 있었다. 큰딸이 한국에서처럼 전차 안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받은 것은 박수가 아니라 차가운 시선이었다. 더구나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에,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시끄럽다는 듯이 딸을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분명 국민성에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은 어린 아이들에게 따스한 관심을 보내는 나라라고 느낀다.

서울에 사는 일본인 중에는 '한국에서 아기 키우기를 한번 경험하고 나면,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물론 한국은 값비싼 사교육비나 입시전쟁 등 교육 문제가 많다고 듣는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아이를 귀여워해 주는 것은, 힘든 육아를 잠시나마 가볍게 해 주기 때문에 부모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만일 일본의 지자체처럼 아이 의료비를 무료로 해주거나 춥고 긴 겨울에도 아이가 놀 수 있는 공공 옥내시설이 동네에도 있다면 갓난아기를 키우는 일은 더욱 기쁜 일이 될 것이다.

일본에서 나는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첫 딸을 생후 8주부터 보육원에 맡겼다. "세 살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 손으로 키우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게 돼 보육원을 중심으로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이웃들이 딸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고 있는 것을 느끼니 육아가 즐거웠다. 때로는 그 사람들에게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편안해진다. 일본에선 길가는 사람이 가볍게 말을 걸어주는 일이 없기 때문에 아기를 키우면서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한국에 있으면 그런 환경이 일상 속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그게 좋다.

일본에서는 최근 전업주부가 애를 키우는 게 오히려 문제 된 일이 있었다. 동네에서 고립되어 혼자서 애 키우는 문제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아동 학대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나도 일을 하지 않았다면 동네에서 홀로 아이를 키웠을지 모른다.

최근 둘째딸을 생후 1개월 무렵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가 많이 컸어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첫째 딸은 덕분에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함께 즐거워해 주는, 그런 한국 이웃들의 관심 속에서 오늘도 아이들과의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