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人生은 아름다운가 - 金晋燮

이강기 2015. 9. 15. 22:31
 
잡지명 삼천리문학 제1집
호수 제1집
발행년월일 1938-01-01
기사제목 人生은 아름다운가
필자 金晋燮
기사형태 문예기타

人生은 그다지도 아름다운가?
우리가 學校를 단일 때라든가 또는 學校를 卒業할 臨時라든가 嚴密한 意味에서 人生을 始作하기 전, 말하자면 우리가 아즉 人生의 『門前』에 서 있을 적으로 말하면 이 人生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기가 쉽다. 우리의 周圍에는 우리가 아즉 맛보지는 못했으나 畢竟은 將次로 얼마든지 經驗할 수 있을 터인 豊滿하고 巨大하고 複雜하고 多彩한 現實生活이 오즉 제멋대로 복작어리고 있을 뿐이오, 靑年學徒로서의 우리는 이러한 料量할 수 없는 客觀의 一大現實에 대해서 오즉 하나의 莊嚴한 可能의 世界만을 想定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直接 우리들 손으로 그 엇던 部分도 分折된 일이 없고 엇던 구석과도 우리 自身 衝突된 일이 없는 이 世界는 世界 自體로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없으며 멀고 먼 나라와 그 따에 사는 모든 族屬들, 이 모든 것은 그대로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現實의 세계를 可能의 世界로 假定하고 있는 우리가 여긔서 흔이 생각하기 쉬운 것은 假令 저 한없이 큰 富貴와 功名이오 限없이 달큼한 戀愛로 享樂이요 幸福이외의 아모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그리고 바라는 바와 가티 實際에 있어서 이 중의 단 한가지 願望일지라도 만일에〈202〉 實現될 수 있다면야 물론 우리 人生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일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인생의 문턱을 너머서게 되면 不幸히도 흔이 이 모든 아름다운 願望은 실로 헛된 것이오 어리석은 것임을 드듸여 깨닷고야 말게 되는 것이니 웨 그러느냐 하면 첫재로 우리는 卒業狀을 궂이 두 손이 쥐였으므로 學校를 卒業했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엇더냐 하면 우리 사회에서야 말로 嚴酷한 敎育은 시 작되는 것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언제든지 우리의 몸으로 극복되여야 할 새로운 敎材는 우리의 目前을 떠나지 안는 것이며 항상 언제든지 저 憎惡할 義務는 우리를 시달니우는 것이며 항상 언제든지 해결될 수 없는 困難한 問題는 우리의 頭痛거리가 되는 것이며 이우에 또한 어굴하기 짝이 없는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저 엉토 당토 않은 많은 刑罰이 아니면 아니된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安康과 進展과 成功이 조곰도 이해할 수 없는 俗塵의 世評과 緊密히 連結되여 있음을 經驗하게 될 때 또는 아모 通告도 없이. 그러므로 아모 準備도 없는데 或은 가까운 날에 혹은 먼 뒷날에 猝地에 怪異한 試鍊이 우리를 威爀할 때 우리는 우리가 學校를 단이든 때 그러케도 몸서리를 내든 幾何, 代數의 諸問題와 化學方程式을 이것과 비교해서 생각할 餘裕조차 없는 것이니 이러한 때에 우리들이 오즉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저 친절한 교사의 얼골이 아니오 그것은 우리의 窮極을 건저주는 最後의 方法- 自殺의 慰安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둘째로 現實生活은 현재의 우리를 중심으로 삼고 우리의 주위에서 營爲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항상 언제든지 우리들 겻헤서 그렇지 않으면 미래 혹은 과거속에서 영위되는 것이니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러므로 우리는 來日은 꼭 그렇게 되겠지 하고 믿는 것이며 어제는 참 滋味있었다 하고 우리는 지난 날인 緣故로 그 芳香을 닞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人生은 마치 祝祭日을 위하야 준비하야 둔 혹은 그것이 끝났으므로 거두어 버린 盛饌의 床과도 같다 할 수 있으니 엇떻게 되였든 우리가 저깔을 댈 수 없음은 매양 일반이오 또는 그 芳醇한 香氣에 머리가 어찔하고 ?子가 울되 결코 마슬 수는 없는 술과도 같다 할 수 잇으니 한 번인들 배를 불니 울 수 없고 한 번인들 취해 볼 수 없음이 人生의〈203〉 진실한 姿態인 것은 얼마나 섭섭한 일이냐! 간혹 우리는 물론 맛볼 수 없는 이 盛饌, 마실 수 없는 이 芳酒를 입술에 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기는 하지만 결코 일즉이 한 번도 우리는 우러 自身의 입안에 그것을 너어 보지는 못 한 것이다. 비단 그 뿐이랴! 셋째로 그러나 人生의 恩寵이 우리에게 대하야 厚할 때 우리가 바래는 願望이 充足되든 일이 물론 없지 않다. 그러나 그 때 우리의 願望은 하나는 둘로 둘은 셋으로 하나式 徐徐히 충족되는 일이란 극히 稀貴하고 모든 願望은 실로 一齊射擊的으로 몰여서 충족되는데 반드시 그것은 불길한 시간을 택하야 오며 반드시 그것은 厭忌할 伴隨現象밑에 채워지는 것이다. 이리하야 인생이란 결국 모든 手形을 支拂하기는 하되 期限을 직히지 않는 債務者라 할 밖에 없다. 그래서 人生은 우리에게 우리의 所願을 푸러주되 마치 우리가 진심으로 기대리는 愛人을 우리의 외출한 순간에 오게 하는 그러한 方法을 갖이고 푸러주며 혹은 그때 우리의 애인은 覆面을 하고 와서 우리가 그이를 識別해 보기 전에 가버리게 하는 그러한 방법을 갖이고 푸러주는 것이다. 실로 사랑은 우리가 집도 절도 갖이지 못할 때 흔이 오며 財貨는 至惡한 사회에만 몰니고 榮譽는 死後에야 비로소 우리를 찾는다. 이리하야 인생은 흔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가티 되는 듯 보이면서도 사실 그 終末에 당하고 보면 전연 다른 怪物이 우리를 놀내게 하는 妖術師 이외의 아모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을 아름다웁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것의 참된 意味를 考??함이 없이 無條件하고 盲目的으로 이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진실로 어리석은 讚嘆이다. 물론 우리가 영원히 溫?한 忍從의 精神을 갖이고 人生 그것에 順從하야 그의 刻薄한 意志에 자기의 몸을 막길 때 즉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인생 그것으로부터 단 하나의 恩寵도 요구하지 않고 그 이상 그로부터 一瞥의 顧를 무릅스기조차 希望하지 않을 때 물론 그의 人生은 아름다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웨 그러냐하면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조곰인들 받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熱烈히 사랑할 때 人生이 아름다울 것을 定한 이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단 인생뿐이랴! 우리가〈204〉 그것을 사랑할 때 大體 이 世上에 아름답지않은 무엇이 있느냐? 심지어 개대가릴지라도 사랑에 心魂을 빼앗긴 자의 눈에는 崇高한 天使로 보일 것은 물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긔서 우리가 사랑 그것이 이믜 인생생활- 强化되고 집중된 人生生活 이외의 아모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본다면 無條件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실로 자기의 盲目을 天下에 證明하는 者임을 우리는 容易하게 推測할 수가 있는 것이니 특히 우리들 불우한 人活者에 있어서는 人生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如何한 諦觀의 哲學을 여긔 갖이고 오고 如何한 信仰의 宗敎를 이곳에 갖이고 와도 아름다웁지 않은 인생을 우리는 아름다웁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우리의 모든 悲劇은 이곳에서 시작되고 이곳에서 終結된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이 永遠의 悲劇을 갖이고 將來 엇떻게 하랴는 것이며 어데로 가랴는 것인가? 알지 못하는 힘이며,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이여! 우리는 진실로 어데서 사는 힘을 얻고 있는 것인고? (끝)〈205〉
〈20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