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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惱의 一夜, 나의 日記의 한토막 - 朴英熙

이강기 2015. 9. 15. 22:30
 
 
잡지명 삼천리문학 제2집
호수 제2집
발행년월일 1938-04-01
기사제목 作家日記, 苦惱의 一夜, 나의 日記의 한토막
필자 朴英熙
기사형태 문예기타

12월 25일 晴 영하 18도.
대단히 추은 날이다. 하로 종일 책도 책다웁게 읽지 못하고 벌서 해가 젓다. 음력으로 동지가 지낸지 열흘이면, 해가 노루 꼬리만치 길어진다 하니, 지금쯤은 아마 한 시간도 넘우 길었겟지만, 웬일인지 내겐 짤게 생각된다.
저녁밥을 먹고 홀로 책상앞에 앉었으니, 마음의 정숙을 한층 더 깨닷게 된다.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생각의 갈피를 찾고 그 실끝을 잡어내려고 더듬었다. 어둠에 쌓인 밖은 바람소리가 지동치듯하야, 더운 방에 드러앉은 나를, 마음으로 한없이 춥게 하였다.〈162〉
나는 내 방의 왼편 벽을 치여다 보앗다. 그 곳에는, 내 자수로 조잡하게 만든 현판 하나가 걸렷는데, 거기에는 半草로 쓴 4자가 있으니, 그것은 「如蘭如菊」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오랜 벗 月灘의 揮毫다. 비록 취중에 書한 것이나, 원체 그의 爛熟한 筆力은, 취중이라 할지라도, 조금도 비인 데가 없고, 오히려 흥에 거웁고 정에 넘처서, 그 자획은 휘여 흘느는 長流와 같이 성실하며, 바람의 나비끼는 柳絲와 같이 다정하였다.
언제런가, 아마 晩秋인듯도 싶으나, 庭前에 菊香이 사러진지 오래니, 孟冬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듯 싶다. 나는 茂峯과 한 가지 月灘의 신축한 新屋을 낙산밑으로 찾었다. 釣水樓에서 3인이 정좌하야 喜聲歡談이 끈이지 안이하야, 끝으로는 주석이 버러젔으나, 나는 금주가라, 한 편에 비켜 앉어서 다만 같이 웃고, 같이 떠들 뿐이였다.
글벗이 만나면 으레이 文을 논하고 시를 書하는 것이 또한 즐거운 일이니, 世를 논하고, 남을 평하고 앉었는 것보다는 훨신 탈속한 듯도 싶고 또한 雅趣가 있는 것이다. 나는 흔이 月灘과 만나면 작품을 내여 읽고 듯고 하였다. 그날 밤에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근간의 喫茶屋 友交에 비하면, 나는 어느 때나 이 순조선풍이 편하고, 마음에 흡족한 듯 하였다. 펼처서 4, 5간 널분방에 보료우에 혹은 눕고, 혹은 기대고, 혹은 다리를 뻣고, 혹은 비스듬이 앉어서, 자유롭게 심신을 위로하는 것이, 참으로 좋고 즐겁다.
이날 밤도 古今의 詩文을 논하고 나서는, 筆墨과 종히를 끄내서, 또한 휘호하기를 시작하였으니, 특히 月灘이 나에게 주는 것으로 쓴 것이 이 「如蘭如菊」이다. 나는 재삼 그 뜻을 물으니, 그는 懷月을 생각하매 그러한 文句가 씨워진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더 음미할 새도 없이, 다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잘 집에 갖이고 와서 현판을 만들어 걸어논 것이다. 오늘까지 나는 그 필적을 보고는 때때로 벗을 생각하고 그리워 할 뿐이였다.
그런데 오늘 밤에 이 휘호를 보고 「如蘭如菊」의 뜻을 생각타가, 홀연이 헛간속에 집어놓고 그냥 이저버린 국화 한 盆-그것은 특히 다른 벗으로부터 선물로서 받은 一幹五花이였든 귀여운 것으로 庭下에 놓고 晩秋를 즐기드니, 서리오고 바람이 불매, 헛간속에 갖다둔 채로, 그냥 이저버렷든〈163〉 것이다.
그동안 추이에 얼어죽지나 안엇나 하고, 불연듯 그 국화가 다시 보고 싶엇다. 그래서 이 밤에 아해를 식혀서 국화분을 내다놓고 보니, 가련타! 빳빳이 얼어서 그냥 나무등걸이 되고, 꽃다발은 철사환 우에 고대로 어러붙엇다. 다만 어름같이 찬 기운이 내 얼굴을 쓰치고 지내갓다. 나는 몃 번이나 나의 태만함을 스스로 책하였다. 그러나 다행이 얼어 붙어슬지언정 花輪이 남어 있음을 깁버하고, 방으로 드려다가 놓고 화로불을 피여 드려다 놓고, 다시 정좌하고 그 나무의 생사를 생각해 보앗다. 아모리 보아도 죽은 것이다. 살 수도 없다. 꽃에 코를 대고 마터 보앗으나, 아모 향기도 없고, 다만 찬어름이 내 얼굴을 물리치게 하였다.
인제는 꺽거서 불에나 넣버리겠다고 낙망하고 나는 그 시들고 어러빠진 화반을 잘러서, 어린애처럼 화로 속에 던젓다. 뜨거운 불속에서 꽃잎은 연기를 피여 올리며, 타기 시작하드니, 문득 방안으로 菊香이 충만하였다. 그 향기는 秋節에 피였든 국향보다, 더 馥郁하였다. 쓸쓸하든 내 방안은 때 아닌 菊香에,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상쾌하였다. 아해들도 즐거워 하였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우울이 마음속에서 이러낫다. 나는 한참이나 침묵하였다. 그리고 저 현판도 마저 떼서 불에 태워버리고 싶엇다. 국화는 피여서도 향기가 좋고, 죽어서는 더욱 향기가 좋다. 난초는 아즉 내가 태워보지는 못하였으나, 그것 역시 그럴 것이다.
일즉이 어느 날 깊은 밤, 月灘과 같이, 가람 선생을 찾어, 선생의 愛蘭 수십종을 구경하고, 그 강의를 듣고 본 바로 미루어서 생각하면 난은 그 외형이 야초와 상이한 데가 많어, 나 역시 그 향기의 진가를 몰낫드니, 이제 참으로 그 난향의 고귀한 것을 생각하였다.
이럴수록 나는 부끄럽기 한이 없어서 얼굴이 확근확근하였다. 그날 밤 釣水樓에서 내가 이런 생각을 차근차근 하였드면, 나는 그 月灘의 휘호를 구지 사양하고 받지 않었을 것이다.
그것을 그냥 받어 갖이고 온 나를, 나는 여러 번이나 조소하였다.
그리고 그런 문구를, 나를 생각하고 쓴 것이라는 月灘의 말을 생각하니, 나는 더욱 부끄럽다. 友交가〈164〉 1, 2년이 아니고, 죽마고우니, 나의 인품을 모를 까닭이 없을텐데, 었지 이런 부당한 찬사로서 나를 번뇌케 하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니, 이제는 月灘이 원망스러웟다. 일종의 조소가 아닐까? 혹은 나를 격려하는 충고를 암시하렴인가? 도모지 그 진심을 알 수 없엇다.
나는 오늘 밤 내 자신을 한 번 발거벗기고, 결점이란 결점, 단점이란 단점을, 다 뒤집어 내가지고 살피여 보앗다. 이러한 것을 한데 합해서, 저 국화가 타고 잇는 불 속에 던저 태워버리고 싶엇다.
사람이 살었을 동안에 향기가 있게 살고, 죽어서 더욱 향기가 있는 이가 많치 못하니, 그러한 사람은 애타심이 많고, 덕행이 널부며, 인의에 앞선 이를 두고 일음이다.
내 자신도 사랑할 줄 모르는 나, 아모러한 덕행도 없는 내 자신, 한 번도 인의에 서보지 못한 내 자신을 돌아다 볼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림을 금치 못하였다.
눈물어린 눈으로 다시 한 번 「如蘭如菊」의 현판을 치여다 보앗다. 임이 자획은 흥도 없어지고 정도 살어진 듯이, 차디찬 얼굴로 나를 나려다 보면서 있다.
이제는 나는 감히 이 현판을 떼여버릴 용기조차 없다. 치여다 보기도 무섭다. 이렇게 나의 기분은 작구만 과장되여서만 갓다. 책상우에 허터진 원고지는 무엇이며, 그것에는 무엇을 쓰려는 것인가?
참된 인생을 찾이렴인가. 향기있는 사람을 찾이렴인가. 생활를 그리렴인가. 이런 것이 또한 내게 가능할까? 허위없는 글자가 나타날 수 있을까?
아! 괴롭다. 이 밤은 괴롭다. 나는 이날 밤처럼 자신을 반성해 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날 밤처럼 마음이 기뿐 날도 없다. 자기의 결점이란 결점을 모조리 찾어 한데 합해서 고뇌할 때처럼, 또한 즐거운 때는 없다. 마치 먼지 앉은 거울을 씻는 것처럼, 무엇인지 모르게 시원하다.
그러나 月灘 자신도 술 않먹고는 이런 것을 쓰지 않엇을 것이다. 「如蘭如菊」은 취중에 쓰것이다. 그리하야 나는 즈윽이 자위하였다.
사람들은 어찌하면 자미있게 살까 하는 것이 목적이오, 어떻게 하면 향기있게 살어볼까 하는데는〈165〉 등한하다. 저 평범하든 「如蘭如菊」은 오늘 밤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엇다.
아, 괴로운 밤이다. 그러나 또한 즐거운 밤이다.〈166〉
〈16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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