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안병직교수의 일제사관

이강기 2015. 9. 16. 21:51

안병직교수의 일제사관
 
 2004-09-13 21:15:37  

 

  

 

과거청산과 역사서술 - 독일과 한국의 비교
                         서울대 안병직

 

1

 

20세기 전반 독일과 한국은 두 나라의 민족사에서 일대 오점으로 간주되는 부끄러운 역사를 경험하였다. 독일의 경우 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나치 집권기, 한국의 경우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한쪽은 가해자, 다른 한쪽은 피해자의 역사라는 점에서 그 성격은 다르지만, 독일과 한국의 이 역사적 경험에는 비교해 볼만한 점도 많다. 우선 억압적인 지배권력의 성격이 그러하고, 권력의 통제와 탄압, 전쟁 등으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도 그러하다. 한 마디로 말해 독일과 한국 두 나라가 각기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청산해야 할 과거가 있다면, 일차적으로 나치시대와 일제시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과 한국 두 나라는 각각 나치의 지배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라는 어둡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경험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처리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과거 청산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과거사에 대한 역사 인식과 이해의 수준은 사뭇 다르다. 나치시대와 일제시대에 대한 양국의 역사연구 및 서술경향을 비교해보면 그 점이 잘 드러난다.   

 


2

 


나치즘은 독일사 가운데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연구성과가 두드러진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실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일의 역사학은 나치즘을 규명하는 데 온 힘을 쏟았으며, 그를 통해 많은 결실을 거두었다. 그 동안 나치즘 연구가 거둔 새로운 성과 가운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나치시대 일상의 역사이다. 역사를 ‘아래로부터’,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의 세계와 일상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일상의 역사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접근방식을 통하여 나치시대 역사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
우선 일상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치시대의 역사는 독재, 전쟁, 인종학살과 결부된, 나치즘에 대한 통념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적어도 전쟁 이전 나치집권기 동안 일상은 평온하고 정상적인 것이었다. 나치체제는 결코 전체주의 권력이 일사불란하게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었다. 나치당과 국가 기구에 의한 통제와 억압, 감시와 테러, 선전과 선동활동이 사회의 전 영역을 망라하며 깊이 파고들었지만, 가정, 이웃, 직장 등 일상생활의 곳곳에 권력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빈 구석이 남아 있었다.
일상에 초점을 맞춘 나치즘의 역사는 독재체제의 실상뿐 아니라 독재체제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태도와 대응방식에서도 통념과는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나치즘에 대한 그 동안의 통념은 나치정권 아래에서는 극소수 反나치 저항세력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상사 연구에 따르면 나치정권 아래 일상에서 대다수 평범한 독일인들이 직면한 것은 독재권력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나 반대 혹은 적극적인 협력이나 저항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었다. 체제에 대한 협력과 저항이라는 양극단 사이에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이 존재하였고, 또 그 선택은 매우 복합적이었다. 나치정권에 대한 지지는 부분적이고 일시적이었으며, 때로는 정권이 강요하는 정치적 규범의 회피, 거부, 일탈 등 소극적인 저항과 병행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상사의 시각에서는 대다수 국민의 무기력하고 일관된 체제순응 그리고 소수 反 나치 전사의 영웅적인 저항이라는, 마치 흑과 백처럼 뚜렷이 구분되고 대립된 역사상은 사라진다. 그 대신 흑백의 중간에 있는 다양한 명도의 회색이 나치시대 일상적 삶의 主潮를 이룬다. 다시 말해 나치체제에 적당히 순응하고 타협함과 동시에 부당하게 여겨진 요구는 가능하면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태도가 나치시대 일상에서 독일인들의 지배적인 행동양식으로 등장한다.
일상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나치시대의 역사서술은 언뜻 보기에 나치즘에 대한 비판적인 역사 인식을 흐리게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권력의 통제가 미치지 않았던 일상의 영역 그리고 권력에 대한 비순응적 태도를 밝혀내고 있는 연구들은 나치정권의 강압성과 나치에 대한 독일 국민의 지지와 협력을 과소 평가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나치시대 일상사 연구에는 나치즘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철저한 비판정신이 깔려 있다. 사실 나치즘의 일상사는 어떻게 나치가 집권할 수 있었으며, 왜 나치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일상사의 관점에 따르면 나치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근본 요인은 나치 정권의 강압적인 통치가 아니라 오히려 나치시대 독일 국민들의 일상적 삶의 방식에 있었다. 나치시대 일상에 나타난 독일 국민의 삶의 특징은 정치적 선전과 선동이 지배하는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물러서서 개인의 사생활에 몰두하는 경향이었다. 정치는 더 이상 그들의 관심거리가 아니었으며, 그들의 관심과 활동은 직장, 가족, 여가 생활에 국한되었다. 나치집권 이후의 경제 붐과 사회안정, 성취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 대중소비문화의 확산 등이 직업과 여가활동에만 몰두하는 생활방식과 사생활에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져왔던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폐쇄적이고 고립된 사적 영역에 몰입하여 개인의 일상적 문제에만 관심을 쏟던 이러한 현상은 나치의 여러 정책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예컨대 나치의 노동정책은 노동과 여가활동에 관련된 노동자들의 일상적 욕구와 관심을 충족시키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나치의 선전활동도 각종 상징과 언어를 동원하여 일상에서의 노동자들의 경험과 정서적 욕구에 부합하고자 하였다.
각종 정책과 선전활동을 통해 국민들의 일상적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였던 나치의 시도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이른바 ‘유보적 수용’의 형태로 반응하였다. 유보적 수용이란 일상에서 가급적 외부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자기 영역을 구축하며,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태도였다.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나 욕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상의 현실은 방관하며, 나아가 체념하고 감수하려는 태도였다. 즉, 그것은 노동과 여가의 일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 정치적 통제와 억압, 감시와 테러라는 일상의 비정상적 행위들은 묵인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상사는 나치정권에 대한 이 ‘유보적 수용’의 태도를 근거로 나치지배라는 민족사의 오점에 대한 역사적 책임문제를 제기한다. 일상사는 유대인의 대량학살을 비롯한 나치 정권의 온갖 야만적인 범죄 행위와 관련하여 소수의 통치세력 혹은 익명의 전체 국민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던 종래의 경향을 비판한다. 소수 지배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진상을 호도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고, 아울러 무차별적인 집단책임을 들고 나오는 것 역시 사실상 누구에게도 구체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일상사가 주목하고 규명하고자하는 것은 나치 집권기 평범한 시민으로서 일상에서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하던 구체적인 각 개개인의 역할과 개별적인 책임이다.
일상사는 그것을 매우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일상사의 시각에서 보면 유대인 학살과 같은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는 대다수 독일국민들이 부지불식 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치시대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나치정권의 폭력과 테러, 학살에 대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관심만 가졌으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고통과 희생을 외면하거나 침묵함으로써 나치의 범죄행위를 방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치즘의 일상사는 대다수 국민들이 평온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경험한 나치시대 일상에 실상 나치정권의 범죄행위를 가능하게 한 병리적인 측면이 존재하였다고 본다. 즉, 대다수 국민들이 노동과 여가의 사생활에 침잠하고, 대중 소비문화에 탐닉하며 정치와 같은 공공영역의 문제에 무관심해진 현상이야말로 나치지배의 근본 배경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치즘의 일상사는 다른 어떤 역사서술보다도 나치즘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반성을 시도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치시대 평범한 개인이 일상의 정상적인 삶을 통해 어떻게 나치정권의 잔혹한 범죄와 관련되었는지 보여주고, 동일한 상황에 처할 경우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일상적 경험을 재구성함으로써 일반인 스스로가 역사적 경험의 당사자로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상사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편 나치즘의 일상사는 책임전가나 자기변호의 의도에서 나치시대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어떤 시도도 거부하지만 동시에 도덕적인 관점에서 나치시대를 부정일변도로 파악하는 역사인식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일상사는 나치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경험한 측면이 있음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예컨대 일상사 연구에 따르면 나치 집권기 동안 대다수 국민들은 범죄가 감소하고 사회질서와 치안상태가 개선되었음에 만족하였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군이나 공장에서 외국인 전쟁포로나 징용자들을 감독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개인적인 신분상승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 농촌과 소도시의 소년, 소녀들은 나치가 조직한 청소년 단체의 활동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가부장적인 구속과 간섭, 통제를 벗어나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는 계기를 발견하였다.
나치시대에 개인적으로 신분상승과 해방의 경험이 있었으며, 사회적으로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존재하였음에 주목하는 일상사 서술의 의도는 두말할 나위 없이 나치즘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치정권 아래 독일 국민들의 경험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도덕적으로 定型化된 역사의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나치즘에 대한 한층 더 균형 잡힌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일상사에 따르면 나치즘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악몽으로 취급하고 도덕적으로 금기시하는 것은 막연하고 공허한 죄의식만 불러일으킬 뿐 역사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나치시대에 대한 역사서술에서 정상적인 일상적 삶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혹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전적으로 매도하는 것이 나치즘을 반성하고 극복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에 대한 진정한 비판과 반성의 출발점은 오히려 나치시대의 양면적이고 모순된 현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일상의 정상성을 인정함으로써, 동시에 그러한 일상이 실상 극단적인 인종범죄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체제에 대한 지지와 반대, 협력과 저항 사이의 회색 지대 어딘 가에서 사생활에 안주하였던 개개인의 행적이 드러나며, 그 때에야 비로소 그것들이 구체적인 비판과 책임추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치즘의 일상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나치즘에 대한 한결 더 세분화되고 차별화 된 역사인식의 중요성이다. 일상사는 나치즘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마치 명백히 구분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고, 이에 따라 대다수 국민들의 태도는 권력에 순종한 비겁한 행동으로 일괄 매도하는 반면, 극소수 반 나치 활동은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한 영웅적 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한 해석은 역사를 통해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것이 제공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알맹이 없는 역사교육일 뿐이다. 이와 달리 일상사는 나치시대의 현실이 선악의 관점에서 일률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다양하며 복합적인 것임을,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결정과 행동도 때로는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만이 나치즘에 대한 한층 더 현실적이며 심화된 역사인식에 이르고, 아울러 이를 통해 철저하고 진정한 자기비판과 반성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3

 

독일 역사학계의 나치즘 연구 경향 및 성과에 비추어보면 일제 강점기에 관한 한국사 서술경향에는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문제점들이 눈에 띈다. 우선 일제시대의  한국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역사서술에서 사실상 공백으로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제시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탓으로 보인다. 1980년대 이후 일제시대 연구에 적어도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치즘에 대한 독일 역사학계의 연구열에 견주면 아직도 대단히 미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혹시 한국사의 긴 흐름에서 보면 35년 간 일제의 지배는 짧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 12년에 불과한 나치시대가 독일사의 서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리적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면 일제시대는 오히려 한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수치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하고 거리감을 느낄는지 모르나, 일제 강점기 또한 엄연히 우리 역사의 일부요, 나아가 우리가 가장 잘 알아야 할 부분이다. 사실 친일파 문제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논란은 일제시대가 아직도 ‘지나가지 않은 과거’임을 상기시킨다. 정말 일제 식민지배의 과거를 규명하고 청산하기를 원한다면 일제시대 우리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일제시대사 연구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가 없이 진정한 과거청산작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사에 대한 연구는 양적 측면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시대를 보는 전체적인 시각 혹은 접근방식부터가 그러하다. 세부적인 양상은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 서술은 주로 일제 식민통치에 수반된 억압과 회유, 수탈과 통제,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과 희생의 면면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제 식민통치의 강압성과 부당성을 부각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식민지배의 피해자라는 입장에서는 이해하고 공감할 만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지나칠 경우 일제시대 한국인을 우리 역사의 주역이 아니라 식민통치의 대상이라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연구에 따라 억압과 수탈로 점철된 민족수난의 시대라는 일제시대의 歷史象에도 변화가 있었다. 특히 독립운동뿐 아니라 농민운동, 노동운동, 청년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수탈에 저항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였던 한국인의 역사적 주체성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민족해방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연구가 역사의 주체로서 일제시대 한국인의 능동적인 삶의 면모를 밝히는 데 나름대로 이바지하였으나, 그러한 연구성과가 갖는 의미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많았겠지만, 분명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일제시대 한국인의 절대 다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억압적인 권력에 억눌려 식민지배의 현실을 오로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독립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과 아무런 관련을 맺지 않았겠지만,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농민운동의 역사가 곧 바로 농민의 역사가 될 수는 없으며, 노동운동사가 노동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일제시대 농민운동에 대한 연구는 농민단체의 조직, 노선, 활동 등을 구명하고 있지만, 농민들의 생활환경, 현실인식, 가치관, 행동성향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일제통치 아래 대다수 우리 농민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일제 강점기 농민운동의 주체세력과 배경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어떻든 각종 운동사를 제외한다면 일제시대사 서술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武斷정치, 문화정치, 전시 총동원체제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제가 동원한 갖가지 통치 기구와 제도, 식민정책에 대한 분석이다. 반면 일제가 시행한 이러한 정책과 제도가 한국인의 일상의 삶에 실제 미친 영향이나,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일상에서의 한국인의 반응과 대응방식 등은 공백으로 남아있다. 나치시대에 비하면 일제시대의 역사는 여전히 ‘위로부터’, 즉 지배와 통제라는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는 셈이다. 일제시대사 연구의 진척을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평범한 한국인이 식민지 시대 일상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하였는가하는 일상사의 관점과 문제의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기존의 일제시대사 서술에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하여 한국인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였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민족해방운동사 연구가 축적되어 있고, 친일 세력의 존재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연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친일 아니면 항일이라는 兩極端의 형태라는 점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나치즘의 일상사는 독재권력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태도가 얼마나 다양한 양상을 띠었는지 잘 보여준다. 나치독재와 일제 식민통치의 역사적 상황을 곧바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일상사적 접근이 거둔 연구성과는 일제시대의 연구에도 매우 시사적이다. 체제에 대한 철저한 순응을 요구하는 극도로 통제된 사회에서도 현실은 흑과 백으로 그렇게 단순하고 명백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은 일제시대의 현실과 관련해서도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만약 일상사의 관점과 접근방식을 수용한다면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와 행동양식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다양한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일제시대 한국의 기층 민중들이 식민지배의 현실을 헤쳐나가며 일상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은 사실 친일이나 항일과 같은 분명하고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전략은 오히려 불분명하고 모호하며, 상황에 따라 바뀌며, 때로는 모순과 이중성을 내포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식민통치에 적당히 순응하면서 개인적인 손실과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마찰과 갈등은 가급적 회피하지만, 도를 넘는 억압과 수탈에 대해서는 반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복잡다단한 태도가 대다수 한국인들의 지배적인 행동양식이었을 것이다. 강압과 회유책을 동원한 억압적인 권력에 대한 대응방식은 흑백이 아니라 대부분 회색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나치시대뿐 아니라 일제시대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역사의 다양성과 복합성에 주목하는 일상사의 연구성과를 고려하면 일제시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보는 역사인식의 문제점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일제시대사 서술은 일제 강점기를 오직 고난, 암흑, 질곡의 시기로 인식하는 데에서 상당히 탈피하였지만, 아직도 일제시대의 현실과 현실에 대한 경험은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에서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람직한 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때로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기도 하였음을 굳이 외면하거나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일제시대에 긍정적인 현실과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은 민족정서 상 용납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치즘의 일상사가 보여주듯 역사적 현실이란 다양하고 복합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식민지 시대의 삶이 온통 부정적인 경험만으로 점철되었다면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한동안 일제시대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과 향수가 남아 있었던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일제시대에 대한 미련과 향수는 친일세력을 비롯한 일제지배의 소수 수혜자 집단에 국한된 현상으로 치부해도 좋은가? 전통적인 신분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사회적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였던 일제 통치기에 신분상승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경험한 한국인은 없었을까? 신작로가 뚫리고, 기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근대적인 교육과 의료시설이 들어서는 등의 새로운 변화가 한국인들의 현실인식과 경험에 아무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무시해도 좋을 것인가?
일제시대에 나타난 근대적인 변화와 그 영향에 주목한다고 해서 곧바로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려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일제의 의도는 한국인의 삶을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 한국인의 삶에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의 측면을 외면하지 않음은, 늘 명암이 엇갈리는 역사의 양면성에 유의하고 균형감각을 가지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대한 역사인식에서 균형 잡힌 시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선 그것은 일제시대사 연구의 핵심과제, 즉 어떻게 35년간 일제식민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는가하는 물음을 규명하는 작업의 전제가 된다. 일제시대사 서술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지금껏 거의 간과되어온 이 문제에 대해 일제의 식민통치 메커니즘과 통치술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하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나치즘의 일상사는, 권력의 통제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권력의 통제보다는 권력에 대한 대다수 독일 국민들의 ‘유보적인 수용’의 태도가 나치체제가 유지된 배경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일제시대 대다수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억압과 통제, 고통과 수탈을 경험하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더라면 과연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3.1 운동이 발생한 1910년대 말을 제외하고는 일제식민체제가 한 번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들이 그런 대로 일상의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있었고, 때에 따라서는 정상적인 일상의 삶에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치즘의 일상사는 나치시대 일상의 정상성에 만족하고 안주하였던 개개인에 대하여 나치정권의 죄상과 관련된 역사적 책임을 묻고 있으며, 그 점에서 나치즘에 대한 가장 치열하고 가장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일제시대 한국인의 일상적 삶의 긍정적인 면모에 주목하는 역사서술은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비판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인식이 균형감각을 잃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식민지 과거에 대한 청산작업과 관련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기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식민지 과거를 진정으로 청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국가 혹은 사회전체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따라 개별적으로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무시하고, 오직 하나의 역사, 오직 하나의 기억만을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한 과거청산의 길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차원의 공적인 기억과 개인적 차원의 사적인 기억 사이에 괴리나 모순이 있다면, 과거청산은 냉소와 무관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일제시대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기억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대부분 개인의 일상적 삶, 일상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리하여 그것이 얼마나 제한되고, 또 왜곡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청산의 길이다.
친일세력의 규명과 청산작업도 마찬가지다. 두말할 나위 없이 친일파 청산작업은 일제시대에 대한 심화된 역사인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한다. 일제시대 친일행각의 진상을 은폐하거나 糊塗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해서는 안되겠지만, 친일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역사는 과거를 정치적으로 심판하고 도덕적으로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 역사에서 선악이 분명히 구분되고,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릴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위험한 생각이다. 권선징악의 입장에서 친일세력의 행적을 폭로, 고발, 규탄, 응징하는 것은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줄 지 몰라도 역사의 과오를 규명하고 청산하는 길은 아니다. 친일행적의 규명과 심판을 통해 식민지 시대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간단하고 편리한 과거청산의 방식이지만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며, 사실상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30여 년이 넘게 지속된 일제 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소수 친일세력에게만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한층 더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일문제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친일행위 자체뿐 아니라 행위의 배경이 된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도 주목해야한다. 예컨대 盛世를 구가하던 일본제국주의의 힘이 식민지 엘리트 집단의 현실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통치권력의 억압과 회유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하는 등의 물음은 친일행위를 평가하는 데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물음은 역사적 상황논리를 통해 친일행위에 면죄부를 주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늦게 태어난 행운’을 누리는 자 역시 스스로 역사적 경험의 당사자가 되어 자신이 선택할 행동의 가능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뜻이다.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쫓았던 매국노’라는 인물상은 사실 행위의 복합적 측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규범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지 모르나, 친일행위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역사교육으로서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행동 규범을 잣대로 역사적 행위를 평가하는 역사교육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서 당위성을 인정받을 지 모르나, 실제 현실에서는 자칫 공허한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공감을 얻고, 진정한 역사의 교훈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하는 결정과 행위가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고, 무엇 때문에 그런지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유사한 현실 상황에 당면하였을 때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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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치즘과 일제 식민지배라는 과거청산의 문제와 관련하여 독일과 한국의 역사서술을 비교하고, 일제시대에 대한 한국사 서술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은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나치즘의 일상사는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접근방식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사와 같은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사료의 문제를 들어 그 성과에 대해 회의를 표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관점과 접근방식이 새롭고, 착상과 가설이 그럴 듯해도 적절한 사료가 확보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일제시대 연구에서 일상사적인 문제제기가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사료가 있는가? 한국사, 특히 일제시대와 관련된 사료의 현황에 어두운 입장에서 단정적인 답변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두 가지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역사가의 관심, 관점, 접근방식이 달라지면 역사가가 다루는 사료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역사가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면, 새로운 사료를 찾게되고, 이에 따라 그동안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거나 그 가치를 몰랐던 것도 사료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치즘의 일상사는 구술사료의 중요성에 눈뜨게 하였으며, 또 개인적인 신변잡사를 기록한 일기나 서한, 사진 등도 훌륭한 사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문제의식에서 접근하면 기존의 사료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사료도 사료의 내용을 지배하는 논리를 거슬러 ‘거꾸로 읽고’, ‘행간을 읽으면’ 지금껏 간과된 새로운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이 ‘해체’의 방식은 특히 일제시대 경찰기록이나 재판기록과 같은 소위 官邊사료를 분석하는 데 이용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료에 대한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과연 어떤 것이 사료로서 이용할 가치가 있고, 또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명치 않고 확신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겁낼 필요가 있을 것인가? 역사의 본 모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역사가는 어떤 새로운 시도라도 마다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