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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베버가 말하는 폐쇄사회

이강기 2015. 9. 18. 08:15
막스베버가 말하는 폐쇄사회

 

칼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불행한 우리 역사에 '붉은 악마'로 낙인 되어 있다. 더구나 우리세대에게는 그렇다. 그런 그를 나는 비교적 일찍 그리고 정밀하게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70년대에 내가 육군대학에서 공산주의 비판이란 과목을 가르쳤기 때문에, 당시에는 비밀문건으로 분류되어 있던 그의 저작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이가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시위에 관심을 갖고, 마르크스와 관련된 서적을 사들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간 지연이가 마르크스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국 BBC방송이 21세기를 맞으면서 지난 천년의 최고 사상가가 누군 지를 물었다. 설문조사를 한 거지. 답은 칼 마르크스였다. 한 마디로 20세기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상가가 마르크스라는 데는 거의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인류가 지난 천년을 통해 빚어낸 최고의 사상가.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때 우리는 그의 저작만 읽어도 보안법에 걸리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었다. 1980년대에 와서야 그의 저작은 금서에서 풀렸다. 그는 우리에게 시대 착오적이고 낡은 사상가로 덧칠되었다. 이른바 이 땅의 전문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그의 이름 앞에 도식적이고, 편협하며, 독단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독단적이고 편협한 것은 마르크스가 아닌 이 땅의 전문가라 자칭하는 저들이었다.

 


 전통적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스물 셋에 철학박사가 된 수재다. 언론인의 길을 선택해 당대의 억압적 현실과 맞서 싸운 그는 늘 권력의 탄압을 받았다. 평생을 추방과 가난에 시달린 마르크스에게 힘의 원천이 된 것은 그의 아름답고 헌신적인 아내 예니 마르크스였다고 한다. 명문귀족인 백작의 딸로 태어난 예니는 마르크스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다. 자녀 셋을 가난으로 잃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마르크스가 현실과 타협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된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마르크스의 숭고한 이상"을 이해했고 이를 격려했다.

 


 마르크스는 가장 좋아하는 덕목을 묻는 딸에게 '素朴'이라 서슴없이 대답하고, 좋아하는 일은 '독서'이며, 좋아하는 격언은 '사람에 관한 일로써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서 그는 그 시대의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분석해내고, 이를 고발한 휴머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 가혹한 어린이 노동과 노동자의 생활이 노예와 다름없었던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그나마 달라져온 이면엔 마르크스가 있었다.
 
 마르크스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아프칸에 미사일을 포함한 가공할 첨단 무기와 함께 구호식량을 함께 퍼붓는 이상한 전쟁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나는 마르크스가 이런 전쟁을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생각했다. 모든 철학이 그러하듯이 마르크스의 사상 또한 시대의 산물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와 정보통신시대의 물결 속에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다시 꿈틀거리면 마르크스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대척점에 막스 베버라는 사회학자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그는 마르크스보다 40여년 뒤에 독일의 에르프르트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그는 마르크스와 동시대를 살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흡수하기도 했다.

 


 나는 마르크스를 헐뜯는 것이 아니라, 그를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지식을 제공키 위해, 교관을 할 당시 베버를 정밀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때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라는 책을 읽고 서구의 자본주의가 발전한 이유를 납득할 것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합리적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합리적 정신과 물질적 요소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규범적 조건)과 물질(제도적 조건)적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규범, 즉 정신에 칼빈의 예정론을 적용한다. '근로를 통한 구원'과 '천직'이라는 신교도의 신념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서양문명에서 합리적 자본주의가 출현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의 그 같은 분석은 웃기는 얘기일 수 있다. 개신교가 합리적 종교인가? 기독교는 인식론 앞에서 깨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 敎義 자체에 인식론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나 스라이프니츠, 그리고 스피노자가, 그리스도의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그리스도의 말을 기초로 理神論, 汎神論을 주장했으나 기독교 교의는 무자비한 과학 앞에 여지없이 깨졌다. 베버는 그 자신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지배계급에게는 원죄, 구원, 종교적 심성과 같은 말은 거의 연관이 없다고 했다. 이 같은 개념들은 고통스런 사람들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이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그건 그렇고, 베버가 정립한 사회학에 있어서의 '이해의 방법', '이데아티프스', '관료제' 등은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에겐 약방의 감초가 되었다.

 


 베버가 말한 개념가운데 이데아티프스, 즉 이상형으로 '사회폐쇄'라는 개념이 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려 한다. 나는 처음 그가 말하는 "사회페쇄"라는 그의 개념에 접하고 섬뜩했다. 내가 이런 세계에 살고 있구나 하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베버가 말하는 이데아티푸스, 즉 '이념형'이란 개념적 추상화를 의미하며, 복잡한 사회현상을 파악하는데 이를 이용하면 유용하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의 일반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주요 특징들을 증류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사회현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나, 프로테스탄티즘, 또는 관료제 같은 제도는 각각 수많은 규범적, 구조적 요소가 서로 연관되어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같은 사회제도나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로 환원시켜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연구과정의 한 전략으로 순수한 사회행동, 즉 이념형과 실제적인 사회행동을 비교하여 볼 것을 권고한다. 그러니까 이념형은 대상을 엄밀하게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어느 정도 왜곡하거나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서, 이런 과장과 왜곡은 만화가의 그림이 실제로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으나, 만화 그 자체는 과장된 표현인 것과 비슷하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사회페쇄'라는 이념형을 얘기하기로 하자

 


 배버는 마르크스의 계급 대신에 계층, 즉 사회적 신분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계급과 신분은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그는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계급집단 만이 아니고, 어떤 공동체적 동질감에 의해서, 그것이 인종적인 것이든, 종교적, 언어적 혹은 그 외의 어떤 것이든 간에 고무되어 형성된 집합체인 신분집단이 더 본질적이라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불평등이나 공동체 사이의 갈등을 단순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돌렸으나, 그는 오히려 신분집단이 갈등의 본질적 원인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들 신분집단들이 자기들의 힘을 동원하고자 할 때에는 "사회적 폐쇄"를 이용한다고 베버는 말한다. 그가 의미하는 사회적 폐쇄란 다양한 집단들이 보상과 특권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어느 제한된 집단에게만 한정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할당량을 증대시키고자 시도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저들은 저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사회적, 자연적 속성(조건)을 추출해 낸 후, 그 같은 속성들을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자격조건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베버는 국외자들을 배척하고 규정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이런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특정한 경우에 어떤 특징이 선택되느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배타적, 배척적인 사회 폐쇄는 하나의 신분집단이 다른 집단들의 회생 위에서 자신들에게 특권이나 이익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그리고 배척된 집단들이 나머지 특권이나 보상에 접근하려는 것을 폐쇄하려 할 때, 카스트제도와 같은 극단적인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배척된 계층은 불평등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 폐쇄의 가장 효과적이고 완벽한 형태는 혈통과 가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인데, 이는 전통사회에서 지배집단에 의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 근대 산업사회에서의 사회적 폐쇄는 모든 사람들에게 표면적이나마 기회가 개방되어 있는 시험이나 검사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가입을 억제 혹은 통제하는 도구로서, 베버는 교육제도를 정교한 음모라고 보았다. 자격증이나 증명서 등은 선택받은 소수만이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는 곳으로 들어가도록 감시하는 수단으로서 과거의 혈통이나 피부색, 종교 대신에 오늘날에는 교육이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베바는 말한다. "우리는 곳곳에서 전문분야에 대한 시험으로 끝을 맺게되는  어떤 정규적인 교육과정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와 같은 미래가 보장되는 자리에 들어가는 후보자의 공급을 제한하고, 교육받은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에게만 그러한 기회를 독점적으로 주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그러한 도구로서는 오늘날 시험이 보편적인 제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의 발전은 막을 수 없다."

 


 시험을 통하여 가입자를 통제하고 여과해 내는 방법이외에도 전문가집단들 중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집단들은 따로 어떤 법적 특권을 획득하려고 노력한다. 이들 집단들은 그들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배타적인 권리를 획득하거나, 자기들의 독점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을 만든다. 그런 대표적인 것이 변호사법이나 의료법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직능상의 신분집단은 시장의 자유경쟁에서 야기되는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폐쇄를 성취하지 못한 집단은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에 내몰려, 홉스가 말한 물어뜯고 물리는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의 투쟁"에 노출되는 것이다. 생각해보아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베버는 사회를 유지하는 법을 그 법을 만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고 국가는 폭력, 즉 강제적 수단을 동원 법을 뒷받침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가는 신분집단을 기계적으로 강화시켜주는 도구적 기능만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푸념 같지만 내가 겪은 얘기를 해보자. 81년이었을 것이다. 내가 대령진급에 해당되었을 때이다. 당시 나는 진급자리라고 하는 야전군의 작전장교를 하고 있었고, 경력도 육군대학 교관, 야전군 대대장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全統이 집권한 후 그가 육사를 나왔다는 이유로, 대령진급은 할당인원의 절반을 육사 졸업생에게 뮈조건 할당하고, 나머지는 일반장교를 진급시킨다는 것이다. 기억은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내 병과인 포병에 할당된 진급 인원이 23명이었을 것이다. 육사생에게 12명이 할당되었으니, 저들은 멍청한 놈이 아니면 대부분 진급이 되었다. 그런데 일반장교는 그 경쟁률이 20대1이 넘었다. 거기다 특수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을 빼면 경쟁률이 40대 1도 넘었다. 나는 일찍 포기해버렸지만 그런 와중에서 어떻게 해야 진급할 수 있는가를 후에 진급한 친구에게 듣고, 나는 일찍 포기한 것이 백번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서 자신의 인격까지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추하게 진급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군생활 자체에 희의를 느꼈다. 하긴 진급 발표전날에는 멍청하게도 기대를 갖기도 했지만. 너희들은 그래도 좋은 학교를 다녔고 그런 상황에 노출된 적이 없어 그런 심경을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아느냐?
 
 중국 盛唐시기에 禪佛敎의 산맥에서 白頭를 이루는 馬祖道一이라는 스님이 있다. 그는

 


그 유명한 六祖 慧能禪師의 제자인 南嶽 큰스님의 제자였다. 

 


 하루는 崇山 傳法院에서 參禪을 하고 있는 도일 스님을 찾아왔다. 남악은 도일이 法器임을 알고 있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려고 坐禪을 하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하루는 남악스님이 기와장을 가져와서 도일 스님이 좌선하고 있는 방문 앞에서 숫돌에 갈고 있었다.
 "큰 스님은 무엇을 하시려고 기와장을 갈고 게십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
 "기와장을 갈아서 어찌 거울을 만들려고 합니까?"
 "허허, 좌선해서 어찌 부처를 이루려 하는가?"

 


 도일스님이 크게 깨쳤다고 한다.

 


 이 선문답이 얘기하는 뜻이 무엇인가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까운 일, 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는 교훈도 들어 있다.
 나는 적어도 내 자식들에게는 내가 살면서 겪어온 아픔 같은 것은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자시들이 기와장이 되지 않기를 원했다. 나는 정환이, 지연이, 소연이, 세연이, 예연이가 기와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스스로를 닦는데 게으르지 않으면 거울이, 세상을 바르게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뜻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불교사의 큰 스님 효봉이 그의 제자인 元明(?)에게 준 시가 있다

 


  請看東流水, 滾滾無停時
  參禪若如是, 見性不得遲 

 

    
  동으로 흐르는 저 강을 보게, 도도히 흘러 멈춤이 없네
  스스로  닦음을 이같이 하면, 어찌 깨달음이 더딜까. 
  이 詩의 典據는 논어의 "川上嘆"이겠지만 좋은 시 같다 

 


 나 혼자 글을 올리는 것 같구나. 내가 이곳에 글을 올리는 뜻 중의 하나는 바쁜 생활에 쫓기는 너희들이 책을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문적 교양이 메마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다. 모든 전문적 지식은 인문적 지식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태가 그렇지 않으니.
 인간이 하루아침에 졸부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됨의 밑바탕이 되는 인문적 공부는 시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가능하면 쉽게 풀어 올리는 것이니 시간이 있을 때, 생각하면서 읽어주면 한다.
 정환이랑 예연이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 소연이 글 좋다. 열심히 노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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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