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念.思想.思潮

대한민국, 21세기 新이념 지형

이강기 2015. 9. 18. 08:26

대한민국, 21세기 新이념 지형

<1> 양극에서 다극으로


동아일보


 

올해는 ‘한국정치 기적의 해’로 기록된 1987년 민주화 항쟁 20주년인 동시에 ‘한국경제 비극의 해’로 기억되는 1997년 외환위기 10주년이 되는 해다.

민주화 원년에서 20년, 세계화 원년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1987년 체제’를 배태했던 핵심 담론들은 해체되고 있다. 진보진영이 쥐었던 민족 민주의 헤게모니가 보수진영의 역습 앞에 흔들리고, 진보 보수 양 진영 내부의 분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세계화의 담론까지 맞물리면서 21세기 신(新)이념 지형도가 펼쳐지고 있다. ‘87 체제’를 대체하는 지식세계의 흐름을 정리해 본다.》

‘87년 체제’는 1980년대 지식사회의 키워드였던 민주, 민족, 노동 담론이 구축한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담론은 독재와 반독재, 통일과 반통일, 자본과 노동이라는 선명한 이분법적 구도를 통해 각광받을 수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선명했던 구도가 무너지면서 그 자리에 좀 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 박정희 시대 재평가

독재와 반독재 담론이 무너진 대표적 사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에서 확인된다. 1980, 90년대 박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의 시발점이자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배태한 원흉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꽃피기 위해 일정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발전주의 이론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근접한 한국의 경험적 사례가 접목되면서 개발독재를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한 ‘징검다리’ 내지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학자가 늘어났다. 유신독재와 산업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한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의 저자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반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구조조정’ 등 일련의 저서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국가 주도 발전주의 전략의 우수성에 주목하고 이를 군부독재와 결부하는 것은 민주화 세력의 오판이라고 비판한다.

박정희 재평가를 둘러싼 현실 정치의 파장과 별도로 학계의 박정희 연구에서는 상당부분 탈정치화가 진행됐다. 기존의 연구성과도 속속 뒤집히고 있다. 2005년부터 박정희 시대 재평가를 주제로 거의 매달 학술대회를 개최해온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지난해 1차 연도 연구 성과를 모아 출간한 ‘박정희 시대와 한국현대사’를 봐도 그렇다. 이 책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현재의 우파 담론이 박정희 시대의 비판담론을 닮은 반면, 그를 비판하는 현재의 좌파 담론은 박 전 대통령의 사고를 닮았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했다.

○ 탈민족주의와 탈국가주의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련을 견뎌 내며 광복과 건국, 근대화와 통일이라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민족주의 담론도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민족이 자연스러운 혈연·문화 공동체가 아니라 근대에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과 에릭 홉스봄 같은 서구 학자들의 이론을 수용하는 학자층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족이 식민시대 국가권력의 공백을 채워 주는 ‘신화’였다가 광복 이후에는 정치권력을 위한 효과적 대중동원 수단으로서 ‘국가 종교’가 됐다고 비판한다.

2000년대 들어 비로소 목소리가 뚜렷해진 이들 탈민족주의 그룹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민족을 역사의 주체로 상정하고 민족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해 온 일군의 좌파민족주의 학자를 민족의 주술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하는 그룹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위험성을 동시에 비판하는 그룹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서울대 이영훈, 박지향 교수라면 후자는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성균관대 윤해동, 천정환 교수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대중독재론’으로 통합하고 있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도 후자에 속한다. 박지향, 이영훈 교수가 민족(nation) 개념에서 반(反)지성과 반(反)문명의 감수성을 읽어 낸다면 임지현, 윤해동 교수는 민족국가(nation-state) 개념에서 근대적 폭력과 배제의 논리를 찾아낸다.

과거 민족주의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했던 좌파이론가 그룹에서도 탈민족의 경향은 뚜렷해지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좌파 민족주의 정치학’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던 최장집 고려대 교수마저 “민족주의는 일정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념이고 운동이지만, 지금은 유효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렸다.

○ 통일지상론서 평화번영론-선진화우선론으로

탈민족주의는 민족을 중심에 둔 통일담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이후 민족통일담론을 주도했던 좌파 진영은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논리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는 평화를 우선시하는 평화번영론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햇볕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으로 호칭이 바뀐 점도 같은 맥락이다.

좌파 진영 일각에선 통일지상론과 평화번영론을 1980년대 민족해방(NL)계열과 민중민주(PD)계열의 ‘21세기 버전’으로 바라본다. 실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를 ‘자주파’와 ‘수평파’로 규정하면서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주장은 얼핏 노 대통령 집권 이후 위기에 빠진 좌파진영의 변화나 성찰로 들리지만 좌파 담론 내 헤게모니 투쟁의 연장선에서 볼 필요가 있다. 수평파를 대표하는 최장집 교수가 “‘민족주의-통일’을 다시 추구할 게 아니라, ‘민주주의-공존’으로 가야 한다”며 통일담론의 맹목성을 비판하고 나선 것에 대한 자주파의 대항담론적 성격이 짙다.

통일담론에 대한 가장 격렬한 비판은 우파 선진화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대 안병직, 박세일 교수는 남북통일보다는 남한사회의 선진화를 우선시한다. 특히 안 교수는 “6·15공동선언이 남한사회 선진화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며 6·15공동선언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 노동운동 전투성에서 합리성으로

노동운동은 1987년 체제 출범 이후 한국사회를 이끄는 가장 역동적 담론의 하나였다.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가 정치적 민주화의 상징이었다면 노조운동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지표였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자랑했던 한국의 노조운동은 2000년대 이후 ‘집단이기주의의 상징’으로 전락하면서 매서운 비판에 직면했다.

그 시발점은 2004년 11월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노동문제토론회였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한국 노동운동이 위기를 넘어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 있다”며 조직 이기주의에 젖은 노동운동의 성찰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장집 교수는 2005년 5월 “오늘날 노동운동은 부도덕이나 폭력의 상징처럼 묘사되고 일반인에게는 성장정책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며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을 수용할 수 있는 온건 현실주의 노선이 돼야 한다”며 노동운동의 자기변화를 촉구했다.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성찰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 전 대통령비서관이 지난해 6월 전교조를 향해 “교사의 이익만 대변해 오히려 교육 발전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라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지난해 12월 사회적 연대의식을 상실한 채 내부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노동계를 향해 “돌팔매를 맞더라도 노동계는 자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한승 한국노동교육원장은 이를 “한국노동운동을 지배했던 ‘정치적 조합주의’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인해 약화되고 노동운동의 에너지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넘어가는 이중의 과도기적 상황 아래서 새로운 자기정체성 모색”으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87년 담론의 해체 내지 재구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호기(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에서 1987년이 상징하는 ‘민주화의 시간’과 1997년이 상징하는 ‘세계화의 시간’이 공존했지만 점차 탈냉전, 탈민족·초국가, 개인주의에 기초한 세계화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설명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2>논쟁의 중심축이 바뀐다

 


 

《1950∼70년대 문학의 시대, 1980년대 사회과학의 시대, 1990년대 철학의 시대 그리고 2000년대는 역사학의 시대.

 

 

한국지식사회에서 주도 학문 중심으로 시대 담론을 살펴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대 담론의 중심축 이동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크게 봐서 인문학→사회과학→인문학의 순환구조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70∼90년대를 한국 주류에 도전한 좌파 담론의 발효·숙성 과정으로, 2000년대 이후는 그 역전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2000년대 역사학의 부각이 미래 비전에 대한 불확실성과 모호함으로 인한 ‘역사로의 후퇴’가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현재 한국사회 담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의 축에서 시대 흐름을 재검토해 본다.》

○예민한 문학의 시대

한국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3명 중에는 문인이 2명(김수영, 김지하) 들어 있다. 이는 2005년 교수신문과 KBS의 학계 설문조사 결과로 광복 이후 문학의 영향력을 확인해 준다. 일제강점기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문인 출신이었던 전통은 광복 이후에도 그 맥이 이어져 왔다.

1950년대는 6·25전쟁 이후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실존주의를 대표한 사르트르와 카뮈의 영향이 컸다. 1960년대는 4·19혁명, 5·16군사정변, 6·3한일회담반대운동 등을 통해 김수영, 김지하 시인으로 대표되는 현실참여형 문학이 시대정신을 대변했다. 특히 1970년대 민족문학과 현실참여를 주창한 ‘창작과 비평’(창비), 예술의 독자성을 강조한 ‘문학과 지성’(문지), 예술의 보편주의를 추구한 ‘세계의 문학’ 등 문예지가 지식 담론의 삼분 시대를 열었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울고 일어서는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문학은 시대 변화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문학이 복잡한 이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직관적으로 시대 문제에 순발력 있게 발언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김윤식(국문학) 명지대 석좌교수는 “문학이 지식 담론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라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역사사회학적 상상력을 앞서 펼쳐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뜨거운 사회과학의 시대

군부독재가 정점에 이르렀던 1980년대 문학이 열어젖힌 현실 비판의 공간을 채운 것은 마르크시즘 이론으로 무장한 사회과학이었다. 한국사회의 성격 규정과 변혁 방향을 놓고 벌어진 사회구성체 논쟁이나 학생운동 진영에서 벌어진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의 노선 투쟁은 이를 상징한다.

그 산파 역할을 한 곳은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이 중심이 된 ‘산업사회연구회’(현 한국산업사회학회)나 ‘학현연구실’(현 서울사회경제연구소) 등이었다. 혁명 이론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ML)와 그 변종으로 남미 종속이론과 해방신학, 여기에 그람시의 헤게모니이론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론까지 아울렀다. 이들 변혁 이론은 인간사회에서 자연과학적 법칙의 수립을 목표로 했으며 국가 대 민중, 자본 대 노동의 선명한 이분법을 특징으로 한다.

당시 국내에서 금기시되던 이들 정치경제학 및 사회학 이론으로 무장한 사회과학 담론은 이후 반독재 저항운동의 양대 수레바퀴였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통해 급속히 대중화된다. 사회과학 담론은 1987년 직선제 쟁취와 개헌을 통해 정점에 올랐다가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이은 사회주의권 붕괴로 급속하게 몰락하는 ‘롤러코스터 현상’을 겪었다.

○차가운 철학의 시대

거대담론의 상실로 대변되는 19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죽비 소리가 요란한 시대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푸코, 들뢰즈, 데리다, 리오타르 등 일군의 프랑스 철학가들의 사상을 뜻하는 후기구조주의와 20세기 후반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나선 예술사조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혼합된 채 수입됐다. 처음엔 혼성모방과 패러디를 통해 자기 완결적 예술양식으로서 모더니즘을 비판한 문학·예술 담론이 주목을 받았으나 곧 이성 중심의 서구철학을 비판하고 해체한 후기구조주의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했다.

특히 후기구조주의는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과 재해석을 통해 담론을 구축했다. 이는 광복 이후 한국사회에서 교양으로만 유통되던 철학의 재발견을 낳았다. 1980년대 서양철학의 적통으로 주목받던 플라톤과 헤겔이 이성중심주의자와 전체주의자로 비판받은 반면 비현실적 철학자로 거의 잊혀졌던 스피노자와 니체는 탈근대적 사유의 씨앗을 뿌린 철학가로 각광받았다. 관념주의자로 치부되던 칸트 철학의 현재성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들 담론은 1980년대의 이념 중독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 내지 진통제로 각광받았다. 일부에서는 1980년대 사회과학의 대체재로 이를 적극 수용했으나 일부에선 이의 남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들 담론의 유통 과정에서 설익은 이해와 자의적 오독이 곳곳에서 노출됐기 때문이다. 근대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과 해체에만 능할 뿐 대안적 삶을 제시하거나 구성하는 데 취약하며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만 확산시킨다는 이들 담론 자체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치고받는 역사학의 시대

2000년대 들어선 한국사회의 논쟁 대부분이 역사의 지뢰밭에서 펼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일진상규명위원회 등 정부 주도의 17개 역사위원회가 다루는 주제뿐 아니라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해방전후사 인식에 대한 논쟁, 박정희 재평가 논쟁, 탈민족주의 논쟁 등 그 어디에도 역사가 빠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논쟁은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주변국과 역사 해석을 둘러싼 분쟁과도 미묘한 함수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초 한국의 시대 담론 핵심에 역사학이 부상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임지현(역사학) 한양대 교수는 사회과학에서 인문학으로 돌아가는 회귀현상으로 설명한다. 임 교수는 1999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란 저서로 탈민족주의 논쟁을 본격화했고 2000년 ‘우리 안의 파시즘’으로 친일과 독재에 대한 재해석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현재 역사 논쟁의 씨를 뿌린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임 교수는 역사 논쟁에 대해 “인간사회를 과학법칙으로 포착하려고 했던 19세기 이래 근대과학의 한계를 깨닫고, 그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천착해 온 철학과 역사학의 가치를 새롭게 주목하는 세력과 여전히 낡은 이론에 맞춰 현실을 뜯어 고치려는 세력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는 “변화의 바람은 문학의 깃발을 타고 역사·사회과학을 거쳐 철학으로 심화되기 마련”이라며 “1970∼90년대를 이른바 좌파 담론의 숙성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현재는 반대로 현실 권력에서 비주류가 된 세력이 역공을 취하는 단계로 본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사회과학의 시대처럼 보이는 1980년대의 이면에도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 민중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민중사학이 작동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2000년대 새롭게 시작된 담론 투쟁의 깃발 역할을 해야 할 문학의 시대는 왜 실종됐을까. 한 교수는 1970, 80년대 참여문학의 선두에 섰던 김지하 시인이 1990년대 생명·생태시인으로 전환한 것을 그 변화의 신호로 포착했다. 김윤식 교수는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 발표된 1994년을 그 기점으로 풀이했다. 김 교수는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라는 한국문학의 휴머니즘적 전통이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인간은 벌레와 같다’는 반(反)휴머니즘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한다. 문학의 ‘역사사회학적 상상력’은 이 작품을 기점으로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전환하면서 현실 담론을 주도할 힘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3> ‘중도개혁 vs 뉴라이트’

 


 


 

 

‘포스트 87년 체제’ 담론의 현재적 모습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뉴라이트 담론과 중도(中道)론이다. 뉴라이트 담론이 기존의 이분법적 보수-진보 논쟁의 공간을 해체하고 우파 중심의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냈다면 중도론은 이에 맞서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로, 실험주의에서 실용주의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진보세력의 탈(脫)좌파 전략의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 담론장의 구조변동을 가져온 뉴라이트

2004년 말 본보가 처음으로 그 흐름을 짚어 내 기사화한 뉴라이트 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집권 이후 과도한 좌(左)편향에 반발해 제3의 대안 모색에 나선 중도-보수 성향 인사들의 대항담론 구축을 의미했다. 또한 우파 이념에 대한 투철한 신념 없이 현실에 안주하다가 정권을 넘겨 준 올드라이트에 대한 비판과 차별화를 선언한 우파의 자기혁신운동을 뜻했다.

이 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에 힘입어 급속하게 세력을 확산하며 87년 체제의 산물이기도 한 ‘보수-진보 구도’의 해체를 낳았다. 반공(反共)사회로서 한국의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배태한 한국적 ‘보수-진보’ 구도는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수구 반동적 보수와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 진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 냈다. 뉴라이트의 공세적 사상논쟁은 이런 고정관념을 자유와 평등, 성장과 복지, 시장과 국가, 국제화와 자주화라는 대항담론의 정립을 통해 ‘좌파와 우파’라는 좀 더 가치중립적 구도로 전환시켰다.

이 과정에서 87체제의 사상 구도를 수구보수(올드라이트) 대 수구진보(올드레프트)로 재규정하면서 ‘개혁적 보수’로서 뉴라이트 대 ‘합리적 진보’로서 뉴레프트라는 새로운 이념구도를 창출했다. 뉴라이트는 또한 옛 진보진영의 시선이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 아래 과거에 묶여있는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은 선진화’라는 미래지향적 담론을 선점했다.

뉴라이트가 주도한 이런 담론장의 구조변동 내지 새로운 담론의 선점은 ‘포스트 87년 체제’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옛 진보진영으로부터 담론의 주도권을 빼앗아오는 효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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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진보세력의 대항담론으로서 중도(中道)?

진보진영은 처음엔 이런 뉴라이트의 움직임을 ‘한나라당의 2중대’로 치부했으나 점차 담론구도의 열세를 절감하며 낭패감에 빠졌다. 지난해 초 기존 진보와의 차별화를 선언하며 ‘한국형 제3의 길’ 모색에 나선 ‘좋은정책포럼’이 뉴레프트로 규정되면서 뉴라이트 담론에 포획되는 현상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진보진영의 대항담론에서 ‘선진화 통일세력이야말로 진정한 선진화 세력’이라는 식으로 ‘선진화’란 표현이 곳곳에 등장하는 점에서도 이런 열세가 감지됐다.

이런 위기의식에서 진보진영이 돌파구로 제시한 전략적 담론이 중도론이다.

진보진영 내에서 중도개념의 발화점은 지난해 5월 진보진영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였다. 백 교수는 이 자리에서 1980년대 운동권 용어인 민족해방(NL), 민중민주(PD), 부르주아민주주의(BD)를 들고 나오면서 이들 용어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3대 개혁세력을 ‘변혁적 중도세력’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혁적 중도세력론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포스트 87년 체제 증후군’이라는 무력증에 빠진 진보세력에 ‘뉴라이트 대 뉴레프트’ 라는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항담론의 단초를 제공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과 비정규직 법안 처리,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 추진에 이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대거 반노(反盧) 세력으로 돌아선 진보진영에게 노무현정부와 차별화를 선언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거점으로 환영받게 됐다.

이후 열린우리당 내 개혁세력이나 2007년 대선에서 범여권의 후보로 거명되는 인사들이 앞 다퉈 중도정치와 개혁적 중도세력론을 들고 나오는 현상에서 그 파급력을 읽을 수 있다.

○ 참중도론을 들고 나온 뉴라이트

뉴라이트 진영은 구 좌파의 이런 중도노선으로의 ‘전향’을 사이비중도라고 맹비판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말이 중도일 뿐 대선을 의식한, 인기 없는 좌파의 위장전술이라는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의 기치를 가장 먼저 내걸었던 신지호 자유주의연대(뉴라이트 네트워크 소속) 대표는 “현재의 중도론은 진보나 좌파로선 장사가 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중도를 표방하고 나선 얄팍한 처세술 내지 변장술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기존 우파에 대한 철저한 자기쇄신운동을 통해 뉴라이트가 탄생했듯이 좌파도 최소한의 투철한 자기반성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뉴라이트 그룹 중 일찍부터 중도주의 노선을 선창했던 선진화국민회의의 비판은 가장 매섭다. 이 단체의 상임위원장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우파의 자기혁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야말로 중도가 될 수는 있어도, 북핵문제나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중도노선을 표방하는 친북좌파는 중도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도 “사이비중도가 정치적 목적으로 포장만 바꾼 세력이라면 참중도는 정권의 향배와 상관없이 일관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세력이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변신 노력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인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좌파의 중도론은 정치적 이론과 실천의 괴리에 대한 반성과 실용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자기정체성의 고민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 좌우논쟁의 공허성을 비판하고나선 중도

과거의 좌파와 차별화를 선언한 소위 중도개혁세력은 이런 뉴라이트의 공세를 공허한 시대착오적 좌우논쟁의 재판(再版)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중도주의로의 변신을 뉴라이트진영이 대선과 연계시켜 ‘위장전술’로 비판하는 데 대해 “그들이야말로 특정 정치세력의 이념기구”라고 역공에 나서고 있다.

백 교수는 “나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남과 북이 점진적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현재보다 더 나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장기적 전망”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중요한 것은 그동안 좌우논쟁의 공허함을 인식하고 이를 중도로 수렴하려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좋은정책포럼의 공동대표인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그동안 좌파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으며, 우리 사회가 이제 과거 급진적 이념으로는 통할 수 없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중도 개혁 쪽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뉴라이트도 과거 수구 보수로는 호흡할 수 없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한나라당의 정치 이념 기구라는 느낌이 든다”고 주장했다.

한편 진보진영의 새로운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는 기존의 좌우개념뿐만 아니라 중도개념까지 거부하고 있다. 박 이사는 “30년 이상 지속돼 온 개발주의가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천 없이 총론과 추론, 명분에만 사로잡힌 이론에만 매몰돼 왔기 때문”이라며 “소모적인 좌우·중도 논쟁을 떠나 어떻게 우리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좀 더 생태적이고 문화예술적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