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念.思想.思潮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붕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이강기 2015. 9. 18. 08:31
    
 

(아래 글은 마뉴엘 카스텔의 "밀레니엄의 종언"을 옮기며 뽑아 논 인상깊은 구절이다)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실험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정치적 교훈은 정치 프로젝트의 이론적 청사진과 역사적 발전 사이에 유지되는 근본적인 간격이다.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모든 국가들은, 그들이 진짜 그것을 실행할 진지한 의도를 갖고 있다면, 그 간격을 무디게 하기 위해 공포정치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론과 그리고 그것과 분리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화술은 국민들을 이해시켜 집단적 행동으로 이끌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그리고 되어왔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오직 수단으로서만 늘 개정되고 조정됐다. 불완전하지만 놀라운 인간 세계에서 그들의 우아한 논리에 맞게 재현되는 도식으로서가 전혀 아니다. 그런 시도는 개인 혹은 그룹 이해관계의 가장 냉소적인 합리화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그들의 신봉자들이 실제로 그들을 믿고 행동할 때, 그런 이론적 구조는 항상 독재와 테러 이면에 흐르고 있는 정치적 근본주의의 근원이 된다. 나는 가치와 정열이 없는 온화한 정치적 풍경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꿈과 계획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요소다. "무임승차자" 타입의 전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항상 몸보신에 급급하였을 것이며 그리고 역사적 변화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한 자세(가장 뛰어난 "경제적 합리적 선택")에 있어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을 당연한 일로 치부하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일종의 역사적 기생(寄生)이다. 다행히 역사에서 기생자(寄生者)들에 의해 건설된 사회는 거의 없다. 그들이 너무 이기적이어서 연루될 수 없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사회는 항상 이해관계, 아이디어 및 가치를 둘러싼 개방적이고 투쟁적인 과정 속에서 동원된 사회관계자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운명과 구조를 결정하는 요체다. 그래서 소련의 경험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회변화의 비정치적 탈가치적 진행의 필요성이 아니라, 사회 주장의 이론적 분석 및 체계와, 그리고 실제의 정치적 실행 사이에 필요한 거리 및 긴장이다. 상대적으로 성공하는 정치적 실행은 항상 급속하게 진보하려하지 않고 사회발전 형세에 적응하며 느릿느릿한 인간행동의 변모과정을 받아드리는 역사의 한계 속에서 그럭저럭 해 내는 것이다.

 

  이 논의는 개혁과 혁명 사이의 차이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대체적으로 그 사회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에서 구체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의식이 변화를 겪을 때, 혁명(평화적이든 아니든, 혹은 그 중간이든)은, 남아연방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정상적인 역사발전 과정의 일부다. 거의 대부분이 지적 지도자들인 선구자들이 권력과 그들의 이론적 신조 양자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실제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이 역사의 속도를 가속화하려고 할 때, 그들은 승리할 수도, 사회를 개조할 수도 있을 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영혼을 질식시키고 육체를 고문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살아남은 지식인들은 서재의 안온함에서 벗어나 그들의 왜곡된 혁명의 꿈이 지나쳤음을 반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련의 경험에서 필히 배워야 할 중요한 정치적 교훈은, 혁명(혹은 개혁)은 꿈이나 혹은 그것을 위한 이념에 너무나 중대하고 너무나 값비싼 인간 생명의 대가를 치른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별적 삶에서 집단적인 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가기 위해, 이론적이고 조직적인 수단을 포함하여 어떤 수단이든 손에 넣어 사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론에 고무된 정치가 만들어내는 가공의 낙원은 소련과 함께 영원히 묻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의 붕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들이 느끼는 역사 저 너머에서 역사감각이 없는 역사를 실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