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 비판

이강기 2015. 9. 19. 11:21

[특집]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 비판


[金暎浩 | 성신여대 교수 정치외교]



1. 머리말

이 글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역사 서술과 해석이 안고 있는 사상적, 철학적 근거를 비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교과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비판은 開港期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번 호 특집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나아가 이번 특집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새로운 執筆(집필) 方向까지 제시고 있다. 이 글은 구체적 역사 서술에 대한 비판보다는 교과서가 안고 있는 사상적 문제점을 統一至上主義的 歷史認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하고자 한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현대사 교과서 서술의 사상적 근거를 이루고 있다. 이 글은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한국판 역사철학적 사고의 한 형태라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나아가 서구 역사철학이 안고 있는 역사인식의 문제점들이 어떻게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에 스며들어 와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역사 교과서 서술의 올바른 사상적 근거는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2. 통일지상주의란 무엇인가

통일지상주의는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중 가장 커다란 문제점의 하나로서 지적되고 있다. 통일지상주의는, 통일을 여타의 어떤 가치들보다 優先視(우선시)하면서, 우리 민족사 전개 과정에서 최고의 목표와 과제로 설정하는 역사인식을 말한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에 따르면, 한국 현대사는 분단의 역사이기 때문에, 통일 지향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것은 잘못이라는 道德的 判斷이 그 低邊(저변)에 깔려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금성출판사 간행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를 비롯하여 일부 다른 교과서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의 관점에 설 때, 분단의 역사는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되기 때문에, 大韓民國의 건국과 산업화와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副次的인 것으로 밀려나고 만다. 이처럼 이러한 역사인식은 한국 현대사 서술이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의 관점에 서서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한다.

통일지상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제대로 된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치체제의 성격을 不問하고, 어떤 방식의 통일이던 통일만 하면 된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통일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대한민국이 표방하고 있는 自由民主主義와 市場經濟 하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는 달리, 통일지상주의는 정치체제 문제를 간과하거나 隱蔽(은폐)하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또한 통일은 평화적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전쟁을 통한 통일은 우리 민족을 완전히 재기불능의 상태로 빠뜨릴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다. 통일지상주의는, 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된 수단의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의한 武力統一마저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한국 현대사의 서술과 해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서술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대한민국의 建國이다. 그런데 통일지상주의적 관점에 선 교과서들은 대한민국은 남한에서만의 單獨政權(단독정권)이고 分斷國家이기 때문에 통일에 의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된다. 비록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였지만, 분단 하에서도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함으로써 민족 통일을 위한 이념적·물질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다. 脫冷戰(탈냉전) 이후 되돌아보는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는, 소련 및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몰락과 북한 주민의 비참한 샐활상에서 보는 것처럼, 통일이라는 지상 과제에 비추어 경시되거나 貶下(폄하)되어야 할 역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충분히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역사이다. 역사에는 飛躍(비약)이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에 理想的 國家가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비현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통일 지향적 관점에서 북한의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통일 지향적 역사인식이라는 명목 하에서 大量餓死(대량아사), 人權彈壓(인권탄압), 政治犯 收容所(정치범수용소), 脫北者(탈북자)의 문제 등 북한이 안고 있는 비참한 현실에 관해서는 전혀 서술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현실을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普遍的 價値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서술할 경우, 북한의 역사가 안고 있는 모순점들은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통일 지향적 역사인식은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싸 주기 위한 외눈박이 역사 서술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통일은 自由·平等·人權이 보장되는 세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통일 지향이라는 명목 하에서 이러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북한 현실에 대한 외눈박이 인식은 통일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자유의 확대와 인권의 신장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적 사관이 아니라 오히려 퇴행적이고 수구적인 사관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우리 사회의 모든 것들을 통일 지향과 분단 지향이라는 二分法的 思考로 판단하게 하고, 통일 지향에 맹목적이고 무조건적 도덕적 우위를 부여하여 현실 인식을 흐리게 함으로써, 우리사회의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체제의 관점에서 판단할 때,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단 상태의 대한민국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지향적 역사인식은 통일 지향형의 인간과 분단 지향형의 인간, 통일 지향형의 교과서와 분단 지향형의 교과서, 통일 지향형의 정책과 분단 지향형의 정책 등으로 모든 것들을 裁斷(재단)함으로써 우리 사회 내에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분단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우리 개인의 삶과 민족의 공동번영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저해한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할 여러 가지 難關(난관)들에 대해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하여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反統一勢力, 反民族勢力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오히려 현실주의적 통일 논의를 방해한다.



3.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의 사상적 기초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빚어내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歪曲된 역사 서술과 해석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批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역사인식이 딛고 서 있는 사상적·철학적 근거에 대한 비판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 서술과 해석은 특정 역사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한 역사관의 사상적 뿌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때,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역사가들이 자신의 철학적·사상적 근거를 스스로 제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에 내재된 思想的 根據를 비판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 전개 과정에서 통일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東洋 思想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동양 사상의 경우 聖人(성인)의 道가 행해지고 실현된 이상적인 堯舜(요순)時代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어떤 역사적 시점에 설정되어 있다. 反儒家思想(반유가사상)인 老子의 경우에도, 역사는 과거에 설정된 理想社會로부터 멀어지고 타락해 가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동양 사상에서는 과거의 요순시대를 이상으로 설정할 뿐 미래의 어떤 시점에 최고의 목표를 설정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淸末 이후 동양 사회에서 등장하는 歷史哲學的 인식은 모두 서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통일의 완성이라는 미래의 어떤 시점과 사건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는 통일 지향적 역사인식은 서구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역사를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고 그 역사가 어떤 計劃에 따라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보는 역사인식은 서양 사상에서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으로 불리게 된다. 역사철학이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Voltaire)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지만, 역사철학적 사고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역사에 어떤 정해진 목표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개별적 사건들은 역사의 必然的 진행 과정의 하나의 고리에 불과하다. 개별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역사의 志向點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역사철학적 노력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 점에서 역사철학은 分斷 혹은 韓國戰爭과 같은 특정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개별사적 역사인식과는 구분된다. 역사철학은 개별적 사건들을 넘어서서 역사의 총체적 과정 속에 담긴 역사의 의미를 把握(파악)하려는 시도다.

여기서 역사의 의미는 역사의 목표 혹은 지향점과 같은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직장인이 ‘人生의 意味’가 무엇인가 하고 상념에 잠긴다고 하면, 이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人生의 目標’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사철학은 역사의 의미, 즉 총체적 역사 과정에서 역사가 나아가고 있는 궁극적 목표 내지 지향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사의 전개 과정에서 통일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韓國版 역사철학적 사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역사철학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역사적 激變期(격변기)에 직면할 때마다 인간은 도대체 역사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역사적 격변기는 역사의 地層 아래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거대한 鎔巖(용암)이 일시에 분출되는 것과 같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말한다. 인간에게 역사적 斷切性(단절성)을 자각케 하는 이러한 격변기에 인간은 그 원인이 무엇이며, 이러한 변화가 우리를 어떤 終着点으로 이끌고 가게 될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물론 그 목표 지점은 역사철학적 입장에 따라서 地上樂園이 될 수 있고, 종말론적인 인간 몰락의 현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제 식민 치하를 벗어나자마자 우리 민족은 분단되었고, 뒤이어 同族相殘(동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하게 되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 冷戰시대의 대결과 함께, 전쟁 이후에도 분단 상태가 지속되면서, 우리 민족사의 격변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격변의 역사 앞에서 분단 상태 하의 우리 민족의 역사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역사철학적 관점에 선 통일지상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역사의 시작과 끝이 있다고 보는 역사철학은 直線史觀을 대표한다. 이와 달리 역사가 生成·發展·消滅의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고 보는 것은 循環史觀(순환사관)이다. 그리스인의 역사관은 순환론이었다. 순환사관은 둥근 圓狀(원상)으로 역사가 진행된다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는 움직임과 되돌아오는 움직임 사이에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순환사관에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개념이 빠져 있다. 원이 직선으로 펴지게 되면, 무한한 역사의 흐름을 시작과 끝이 있는 한정된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직선사관에 의해 역사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게 되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역사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에 불과하게 된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한국판 역사철학의 직선사관으로 이해될 수 있다. 통일지상주의는 한국 현대사를 분단의 역사로 파악하고, 그 최고의 목표와 과제로서 통일을 제시하고 있다. 분단과 통일 사이의 역사적 흐름은 통일 지향적으로 파악되어야 하고, 그러한 분단 극복의 역사인식이 우리의 行動과 實踐(실천)의 指標가 되어야 한다고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주장하고 있다.

순환사관의 직선사관으로의 轉換은 유태교와 기독교의 등장과 함께 일어났다. 미래지향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유태인은 메시아의 枉臨(왕림)을 인류 역사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했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봄으로써 神學的 역사철학의 사상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신학적 역사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에 의해 集大成된다. 영원한 제국으로 여겨졌던 로마 제국의 몰락이 그의 역사철학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이교도에 의해 기독교화된 로마 제국의 몰락은 동시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이후 서구의 역사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의 반영이 그의 종교적 역사철학이었다. 그는 『신국론』이라는 책에서 인류의 역사 전개 과정을 여섯 단계로 구분하고, 창세기로부터 로마 제국으로 이르는 기독교 발전사를 설명한 후,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인류는 역사의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終末論的(종말론적)인 비관적 역사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통일지상주의는 종교적 역사철학이 아니라 세속적 역사철학의 관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관과 구분된다.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역사철학에서 종교적 의미는 脫却(탈각)되고 세속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신은 역사의 지배자의 자리에서 은퇴했다고 선언하고, 역사의 목표와 의미는 인간이 이성에 기초하여 科學과 技術을 발전시킴으로써 인류의 문명이 끊임없이 上乘曲線(상승곡선)을 그리는 진보와 발전의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고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보았다. 근대에 등장한 세속적 역사철학은 인류의 역사에 대해 매우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칸트는 인간 개개인의 행동이 무계획적이고 偶然的(우연적)이라고 할지라도 전체 인류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자유가 꾸준히 확대되고 발전되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보았다. 자유라고 하는 추상적 관념의 발전과 실현 과정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세속적 역사철학은 칸트에서 출발하여 헤겔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철학적 해석에서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된다. 헤겔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主人과 奴隸의 구분이 없어지고, 자유와 평등의 원칙이 확고하게 정립됨으로써 인류의 역사는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고 보았다.

세속적 역사철학의 등장은 細胞(세포)가 분열하듯이 수많은 유사한 역사철학을 낳게 된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등장한 마르크스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게급분화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는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고, 이러한 관계가 청산되지 않는 한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식의 역사철학적 관점에 설 때, 프랑스 혁명에서 역사의 목표가 실현되었다고 보는 헤겔의 주장은 時機尙早(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 단계에 이르게 될 때 종착점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사회주의권의 沒落(몰락)으로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그 妥當性이 입증되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역사철학이 등장하면, 그 亞流(아류)의 역사철학이 약간의 변형을 거쳐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의 목표 지점을 설정하고 그 지점에 이르는 과정을 진보적 관점에서 파악할 경우, 직선사관에 기초한 세속적 역사철학은 언제든지 새로운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에서 통일지상주의라는 한국판 역사철학도 例外일 수 없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분단 상태를 克服의 對象으로 설정하고 통일을 현 상태보다 더 나은 결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세속적 역사철학과 마찬가지로 진보주의적 역사관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통일이 담아내야 할 理念 혹은 原則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민족 통일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진보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의 최고의 목표 지점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지상주의는 세속적 역사철학과 동일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 비판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이 영속적인 것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자신이 죽고 난 이후에도 계속될 역사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인간은, 스스로 역사의 一員으로서 역사 속에 埋沒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의 밖으로 빠져나와 역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觀照(관조)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역사철학에서 설정되는 역사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恣意的(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어떠한 목표와 가치가 최종적인 것으로 설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역사가 혹은 사상가의 관념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 현실 역사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역사를 처음과 끝으로 한정지우고 특정 목표와 이념의 실현을 향해 역사가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가 혹은 사상가는 스스로 眞理의 獨占者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대의 격변기에는 불완전한 인간 존재가 더욱 불안정해짐으로써 역사철학과 같은 거대담론에 의지하여 정신적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더욱 절실해진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역사가 혹은 사상가는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많은 支持者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역사철학이 갖는 자의적 역사인식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혹은 사상가는 자신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확고해지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사상가 혹은 철학자로서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철학을 통해 진리의 독점자가 되겠다는 욕구가 하나의 역사철학에 뒤이어 수많은 아류의 역사철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통일지상주의라는 한국판 역사철학은 일부 역사가 혹은 사상가가 진리의 독점자가 되겠다는 知的?世俗的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대 이후 서양 사상사는 자의적 역사 해석에 기초하여 진리의 독점자가 되려는 역사철학적 흐름과 그것을 비판하고 그 虛構性을 드러내려는 진지한 철학적 노력 사이의 치열한 지적 투쟁과정으로 點綴(점철)되어 있다.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는 사상의 고전들을 집필한 위대한 사상가들 대부분은 역사철학적 저술들을 남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역사철학적 입장을 내세운 사상가들보다 결코 지적으로 뒤져서가 아니라 역사철학이 가져올 부정적 측면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매우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 교과서에 나타난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역사철학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우리 역사학계가 서구 역사철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그 결과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한국 현대사 교과서 집필의 사상적 근거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무한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역사가 완결된 종착점이라는 역사철학적 사고를 가진 사상가들의 주장은 그 자체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사상가 자신의 시대에 일어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인 몇 가지의 추상적 이념이나 공식을 통해 역사의 방향을 한정지으려는 시도들은 그 문제점이 관념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역사가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진보해 나아간다는 세속화된 낙관적인 역사철학적 인식은 현재를 무시하고 미래를 神聖視(신성시)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역사철학의 문제점은 우리 일상생활에도 이미 깊이 배어들어 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다. 대학 입학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되고 그 과정에서 젊은 시절에 누려야 할 여러 가지 문화적 생활은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해 犧牲(희생)되고 만다. 한국 현대사 교과서가 통일 지향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을 가르치고 있듯이 학생들은 대학 입시 지향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입학이라는 미래의 궁극적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발상은 역사철학이 안고 있는 부정적 사고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고등학생의 삶은 대학 입학으로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입학 이후에도 無窮無盡(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오로지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로 裁斷(재단)하려는 생각은 역사철학의 부정적 사고가 일상화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역사철학의 부정적 측면은 일상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적·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 현대사 교과서가 이러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해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정적 역사철학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점이 교과서에 대한 사상적 비판의 核心이다.

未來를 신성시하는 역사인식은 이 시대와 이 시대에 사는 인간이 미래의 궁극적 목적 달성을 위한 手段과 道具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시대는 그 자체의 본질적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를 신성시하는 세속적 역사철학은 미래의 궁극적 목표 지점으로 나아가는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는 것 자체를 정당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역사철학적 인식이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과 같은 倒錯(도착)된 영혼에 의해 현실 정치에서 逆利用될 때 인류는 엄청난 파탄을 경험했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히틀러의 ‘아리아 인종 至上主義,’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완성,’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地上樂園 建設’이라는 신성시된 미래의 최종적 목표를 위해 폭력의 행사와 정치적 테러가 정당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폭력의 사용을 영원히 추방하기 위해 모든 인간이 신격화된 독재자에게 服屬(복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은 억압당하고, 인간은 신성시된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세속적 역사철학이 만들어 내는 길고 어두운 그림자인 것이다.

통일을 최고의 목표와 과제로 설정하고 分斷 克服을 위해 역사를 통일 지향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에는 미래를 신성시하는 데서 오는 역사철학의 부정적 측면이 그대로 내재해 있다. 이러한 인식에는 통일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의 동원이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언제든지 威脅(위협)받을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한국판 역사철학은 민족 통일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을 뿐 통일국가가 담아내야 할 자유와 인권과 같은 구체적인 이념적 지향에 대해서는 沈?(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盲目的(맹목적) 역사철학에 의해 신성시되는 통일이라는 미래가 우리 민족의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해 주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이 점은 통일 지향적 역사인식이 항상 進步的이 아니라 반동적이고 퇴행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통일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분단과 통일 사이에 존재하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 실현을 위한 과도기적이고 暫定的(잠정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부정적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역사인식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우리 민족사의 사건이 아니라 민족 통일을 방해했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삶을 영위한 이후 생겨난 어떠한 국가보다도 인간의 生命, 自由, 平等, 財産權, 人權, 宗敎의 자유 등 기본권을 가장 잘 보장해 주고 있다. 한국 현대사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사로 記述되기보다는 건국이 분단과 통일 사이에서 발생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대한민국에서 발간되는 교과서에서 서술되는 것은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판 역사철학은 한국 현대사 교과서 서술과 해석에 있어서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 주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選別(선별)에서 편향성을 낳고 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는 사회혁명이 철저하게 진행되었지만 남한에서는 미국의 반혁명적 정책에 의해 혁명이 挫折(좌절)되었다는 주장이 최근까지 우리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북한에서 진행된 토지개혁은 集團農場體制(집단농장제)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에 불과했다. 북한은 해방 직후 黑白投票(흑백투표)를 실시했고 아직까지 자유선거를 실시해 본 적이 없다. 이와 달리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이식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그 자체로서 우리 민족사에서 획기적이고 혁명적 사건이었다. 건국 이후 한국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해방 이후 깔린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철도의 레일을 逸脫(일탈)한 적이 없다.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 안에서 힘센 사람이 행세하거나 승객들끼리 치고받으면서 시끄럽고 유리창이 깨진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열차가 자유민주주의라는 軌道(귀도)에서 일탈한 적은 없다.

민주화는 韓國號(한국호)가 달려온 기반인 철길을 깐 것이 아니라 기차 안에서 벌어진 국민적 갈등을 節次的 민주주의를 통해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국제적 이념인 공산주의와 달리 국내적 정치이념이다. 국민의 의식 수준 향상과 경제성장과 더불어 자기완결적 모습을 서서히 갖추어 나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해방 이후 이식된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해 나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민족을 위해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민주화세력이 민주화운동을 통해 철길을 새로 깐 것처럼 ‘제2의 건국’이라든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기치를 내세우는 것은 역사에 대한 無知에서 비롯되었거나 도덕적 傲慢(오만)의 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 세력의 이러한 역사인식의 저변에는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우리 민족은 여러 가지 역사적 迂餘曲折(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산업화에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富의 偏重(편중)과 腐敗(부패) 문제 등이 발생했지만 대한민국이 통일국가의 물적 기반을 마련하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다. 건국과 산업화와 같은 민족사적으로 중차대한 역사적 사건이 그 자체로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지 않고 분단 상태 하에서 그리고 통일 이전의 과도기에 일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건국과 산업화는 그 자체적으로도 민족 통일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통일 지향적 역사인식은 건국과 산업화에 대해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않음으로써 한국 현대사를 계승과 발전의 관점이 아니라 단절과과 청산의 관점에서 편향되게 기술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유와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통일국가라고 한다면 우리 민족은 분단된 상태에서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을 더욱 選好(선호)할 것이다. 탈냉전 이후 頻煩(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으로부터의 脫北 行列은 바로 통일 과정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문제는 통일국가 체제가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통일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한다고 하면서도 정치체제 문제에 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나아가 통일 지향적 역사인식이라는 명분 하에서 주민을 飢餓狀態(기아상태)로 내몰고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식 世襲體制(세습체제)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있다. 통일 지향적 사고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가 반반씩 섞어서 수렴되는 그러한 통일국가는 실현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통일지상주의가 낳은 외눈박이 북한 인식은 북한 주민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책임이 있는 북한의 지배세력에게 免罪符(면죄부)를 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통일국가가 건설되지 않은 분단 상태 하에서도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근대화와 민주화를 달성함으로써 분단 때문에 세습체제를 채택해야 하고 주민을 기아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북한 지배체제의 논리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통일지상주의는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 실현을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서 ‘民族共助論’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이 제시한 ‘민족공조론’은 민족과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비극적 문제점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痲?(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한다. ‘민족공조론’은 주체사상과 같은 북한의 공식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고 북한이 전체주의 말기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末期 전체주의 단계는 공식적 이데올로기가 주민 동원과 지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先軍政治(선군정치)와 같은 일종의 군사적 戒嚴狀態(계엄상태) 하에서 極端的 恐怖政治(공포정치)가 시행되는 시기다. 그만큼 북한 지배세력에게는 代替 이데올로기의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북한 지배세력이 추구하는 대체 이데올로기 형성에 기여하고 그것을 정당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 세계는 구한말과는 달리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대다. 여전히 통일국가의 건설은 우리 民族史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통일이 민족사의 최고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갖고 있는 閉鎖的(폐쇄적) 민족주의 인식으로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 민족의 활로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세계화 속에서 세계와 보조를 같이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구한말과 같은 폐쇄적 민족주의와 자주 노선에 기초하여 주민을 기아선상으로 몰아넣고 있다.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모여 폐쇄적 삶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세계와 더불어 共存共榮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통일 이후 우리 민족이 직면하게 될 수많은 어려운 문제점들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통일국가 건설은 민족사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에 불과할 뿐이다. 통일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圖謀(도모)해 나가는 일은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달성해 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북한 세습체제 붕괴 이후 북한 지역의 경제적 재건을 위해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분단 상태 하에서 생존과 번영을 추구했던 것만큼이나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은 통일 이후의 어려움과 새로운 과제들에 대해서는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일 그 자체에 맹목적으로 執着(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지상주의적 역사인식에서 상정하는 바와 달리 통일국가의 건설은 우리 민족사의 종착점일 수 없고 거대한 민족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계기와 사건에 불과할 것이다. 인류사의 종착점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우리 민족사가 어떤 뚜렷한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항상 역사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오늘의 현실을 중시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미래를 열어 가는 智慧(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그러한 불확실성과 싸우면서 건국·민주화·산업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실패한 역사도 아니고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평가 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시대정신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