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이긴전쟁인가, 진 전쟁인가?
임용한 교수
임진왜란도 정치적 풍파를 많이 탄 역사적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제3공화국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구호가 유비무환이었습니다. 조선 정부가 전쟁에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진왜란이란
치욕의 경험을 했다.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의 때를 노리는 이때에 우리는 유비무환의 교훈을 본받아야 한다.
물론 이 유비무환이란 구호 속에서는 유비무환을 위해서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국가지배 체제가 필요하다는 전제가 숨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비'를 위해 교련이 강화되고, 학도호국단이 생기고, 좀 더 나가 국가의 발전과 군사적 효율성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좀 제한해도 참으라는게 10월 유신이었습니다.
그런데 10월 유신의 역사학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비무환을 강조하다 보니 임진왜란의 좋지 않은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조는 무능이 극에 달한 국왕이 되고, 당시의 집권자들은 몰매를 맞았습니다.
10월 유신의 역사학의 또 다른 일면은 국수주의에 가까운 민족주의적 역사학입니다. 제3공화국에서는 그들의 모든 행동과 논리에 강력한 민족주의적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어렵게 말하면 이렇습니다만 단순하고 약간은 과격하게 말하면 일본 군국주의와 히틀러의 제3제국 방법을 많이 차용했지요 뭐. 겉으로는 한국적 민주주의, 우리의 것 어쩌고 했지만 그 본 바탕이 수입품인 줄은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이런 지나친 민족주의적 사고의 폐단의 하나가 우리 역사의 모든 장면을 좋게 아름답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경향은 다른 곳에서는 그럭저럭 넘어 가는데, 임진왜란에 오면 모순이 생겨 버립니다. 유비무환을 강조하려면 당시 지배층의 무능과 조선군의 준비부족, 무참한 패배와 치욕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반면 민족주의적 역사학은 조선의 패배를 변호하고, 지배층을 옹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유비무환의 논리가 워낙 셌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다 보니 '유비무환' 체제에 대한 반발도 생기고, 임진왜란이 일본에게 철저히 당했고, 지배층이 무능했다는 사실이 유신세대를 거치며 가뜩이나 부풀어 버린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임진왜란은 진 전쟁이 아니다. 교과서도 우리의 승리 장면을 다양하게 넣어야 한다는 논문과 글, 드라마가 거세진 것은 80년대부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주제의 논문도 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논문으로는 좀 더 일찍 시작된 것도 같습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이긴 전쟁이냐 진 전쟁이냐는 글과 책까지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임진왜란은 이긴 전쟁이냐 진 전쟁일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역사란 내용설명도, 이해도, 교훈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이냐는 물음 또한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 임진왜란을 두고 우리가 이긴 것이냐 진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전쟁은 스포츠가 아닙니다. 이겼다와 졌다의 기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 침략은 실패로 끝났고,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여기에 이겼다 졌다를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도요또미 정권의 의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승리했다라는 즐거움을 주지는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겼다라는 수사보다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잘못된 역사이해와 설명부터 고쳐야 하겠습니다. 조선 정부와 백성이 놀고 먹기에 바빠 전쟁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잘못된 것입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서 보이듯이 조선 정부는 임란의 징후를 알았고, 혼란을 대비해서 이를 비밀로 붙이면서도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그 준비라는 것이 대부분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정치가나 관료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과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선의 국가와 사회체제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이 16세기, 17세기라는 세계에서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었는가?
좀 어려운 말이지만 역사는 이런 부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16세기 일본은 5-10만이라는 군대를 7년간이나 외국에 주둔시킬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었습니다. 조선이 가진 최고의 원정기록은 1-2만 정도의 군대를 40여일간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로 진군시킨 것입니다. 그것도 16세기가 되면 불가능한 정도가 됩니다(연산군과 중종 때 여진정벌을 시도하다가 중지합니다)
우리는 기준도 모호한 승패에 연연하거나 그저 미화하고 변명하기에 바쁜 태도에서 벗어나 이런 부분을 더욱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가 주는 진정한 교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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