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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현대물리학> "그가 없었으면 현대문명 없어"

이강기 2015. 9. 20. 17:29

 

 

 

[아인슈타인과 현대 물리학] “그가 없었으면 현대 문명 없어”


관찰 불가능해 형이상학으로 간주됐던 우주 이해할 수 있게 해

올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 세 논문은 브라운 운동의 이론적 접근, 빛을 입자로 이해한 광전효과의 설명, 그리고 특수상대성 이론이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정립하였고, 1921년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여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룬 학문적 성과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자연에 대한 이해를 송두리째 바꾸었다는 것이다. 다른 두 가지에 비해 파급효과가 적었던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에서도 아인슈타인은 열역학 안에 동역학적 정보가 담겨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특수상대성 이론에서는 뉴턴이 정립한 역학체계의 기본 가정이 되는 절대공간의 개념을 부정하고 시공간 개념을 도입하였고, 광전효과의 설명을 위해 도입한 광자개념은 보어, 하이젠베르크, 쉬뢰딩어, 파울리 등에 의해 양자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반전론자이기도 했던 아인슈타인은 프로이트와 이 문제로 서신교환을 하기도 했는데, 20세기 초 심리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했던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인류가 자연현상에 대해 가졌던 이해를 완전히 새롭게 하였다는 점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은 커다란 발전을 거듭해왔다. 브라운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요동·흩어지기 정리’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이보다 더 중요한 발전은 양자론에 의해 새로운 분야의 연구가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물체를 구성하는 입자와 물체들로 이루어진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정교한 이론체계가 양자론과 상대론의 적용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 영국 노팅엄대학 연구팀이 만든 블랙홀 상상도, 은하 중심 부분에는 작은 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DB사진

양자론이 정립되어가면서 물리학자들은 화학자들이 물질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질문에 근본적인 답을 줄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당시까지는 물리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았던, 고체와 액체의 성질을 다루는 분야인 응집물질물리학이 등장하였다. 낮은 온도에서 고체의 비열(比熱:단위 질량을 가진 물체의 열용량, 보통 1g인 물체의 온도를 섭씨 1도 높이는 데 필요한 열)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설명한 것은 화학자가 아닌 아인슈타인이었다. 물론 고온초전도체의 물성(物性)처럼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다양한 금속재료, 반도체, 초전도체 등 현대사회에 필수적인 재료의 물성은 그의 영향으로 발전한 양자론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없었다면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물질문명의 상당 부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훨씬 더디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물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면서 물체의 열역학적 현상에 대해 양자임계현상이라는 개념이 필요해졌다. 즉 물이 수증기가 되거나, 자석이 온도가 올라가면 자성을 잃는 것과 같은 변화에 보편성이 있다는 사실은 지난 세기 물리학의 발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되었다. 복잡한 자기적 성질을 갖는 물질이 낮은 온도에서 보이는 양자임계현상의 설명이 궁극적으로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광자개념·양자역학으로 새 전기 마련

빛을 다루는 광학은 뉴턴과 호이헨스를 거치면서 자리를 잡아갔지만 현대의 광학은 광자 개념의 도입과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빛을 입자로 이해할 때 발생한 초기의 개념적 문제들은 양자론이 체계화하면서 탄생한 양자전기역학에 의해 해소되었고, 광자 자체의 근본적인 성질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광자의 개념을 제안한 장본인인 아인슈타인은 보어를 중심으로 한 학자들에 의해 정립되어 가던 양자론이 확률적인 대답만을 제시한다는 것에 강한 회의를 가졌고, 그가 역설이라고 생각한 의문들을 끊임없이 제기하여 오히려 양자론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였다. 의문을 던지고 반증을 해가면서 그 이론체계가 강화된 셈이었다.

 

아인슈타인 이전부터 장(field)이라는 개념은 공간의 완벽한 대칭을 깨는 상호작용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양자장론은 장에 의해 특정한 입자가 존재할 것을 예견한다. 일반인에게 물리학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생활에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은 입자들을 찾기 위해 막대한 돈을 쓰는 사람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물리학자들이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자연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 개념을 찾는 작업이 양자장론에서 입자를 발견하려는 노력과 같기 때문이다.

 

‘강한 상호작용’이나 ‘약한 상호작용’과 같은 핵력에 대한 이론인 표준모형에서는 낯선 이름의 입자들이 등장하는데,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입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그 이론적 설명이 옳다는 것을 보여왔다. 이와 같은 연구 중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질량의 근원에 대한 설명의 일부를 제공해줄 것으로 믿어지는 힉스입자를 찾는 것이다. 일반적인 물질이 갖는 질량의 대부분은 아인슈타인의 표현대로 그 물질이 갖는 에너지에 의존한다고 보지만, 대칭과 관련하여 입자의 질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힉스입자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우주 초기 생성단계의 질량 형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기여 가운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해 우주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관찰이 불가능하기에 형이상학으로 간주되었던 우주론은 시공간과 중력장의 새로운 정의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허블의 발견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이제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불변(不變)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주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지 않다. 우주를 구성하는 상당 부분의 물질은 무엇인지조차 몰라서 막연하게 암흑물질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것은 에너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주가 무한히 팽창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하지가 않고, 은하가 어떤 식으로 생성되는지에 관한 연구도 최근에야 시작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바일에 의해 한때 제시되었던 통일장 이론, 즉 물리의 기본적인 상호작용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후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력은 실제로 통합됨이 입증되었고, 많은 사람이 중력이나 강한 상호작용까지 통합시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작업이 물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코 아니다. 상호작용의 통합으로 모든 자연현상을 다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조금은 성급해보인다.

 

자연에 대한 인식의 영역 넓혀

물리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끊임없이 발전시켜가는 과정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변화시켜 나간다. 아인슈타인이 역사적인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한 ‘기적의 해’로부터 100년 후의 우리는, 그가 자연에 대한 인식의 영역을 확장해준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운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김채옥 한국물리학회장·한양대 교수

(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