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日帝 植民主義 史觀의 실체

이강기 2015. 9. 22. 22:38

 

 

日帝 植民主義 史觀의 실체

 

 

 

(200256- 에머지)

 

일제의 소위 日鮮동화정책은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인이라는 민족의식을 없앨 필요가 있었고, 그것의 일환으로 국수주의적인 사가들을 내세워 한국의 역사를 축소, 폄하 내지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이들 군국주의 앞잡이 사가들의 한국사에 관한 가장 악질적인 주장 몇 개를 들어보면,

 

1.후쿠다 토쿠조오(福田德三, 1874-1930)란 학자는 <日本經濟史論>이라는 저서와 1903-4년에 나온 <韓國經濟組織經濟單位>라는 논문에서, 일본은 서양과 같은 봉건제도를 가졌기 때문에 근대사회로의 발전이 가능했지만, 한국은 정치조직, 사회조직, 토지소유관계, 상업기구, 공업형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해, 일본으로 치면 10-13세기의 후지와라(藤原)시대의 단계와 비슷하다고 했다.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 1873 ∼ 1918)란 학자도 1913년에 낸 <韓國>이란 저서 속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말하자면 19세기말의 조선이 700-800년 전의 일본 수준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야마지 아이잔(山路愛山, 1865 ~ 1917)이란 학자는1904년에 한국을 여행하고 쓴 <韓山紀行>이란 여행기에서 당시의 한국인들의 모습이 나라(奈良)시대의 일본인의 모습 같다고도 했다. 나라시대라면 日本書紀가 쓰였던 시기인 8세기초를 얘기한다.

 

2. 이나바 이와끼치(稻葉岩吉, 1876-1940)란 학자는 1922년에 낸 <滿鮮 不可分史的考察>이란 저서와 1935년에 나온 논문 <滿鮮史 體系再認識, 滿鮮發達史>에서 한국사를 滿洲史와 통합시켜 滿鮮史(혹은 滿韓史)라 함으로써 아예 韓國史라는 말을 통째로 없애려 시도했다. 이것은 한국을 단순한 지역개념으로 축소하고 한국의 역사를 한국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반도를 치려고 온 대륙세력의 파동의 역사로 격하시킨 것이다. 그는 또 1925년에 낸 <朝鮮文化史硏究>에서 한국사회 수준은 약 600년 전 일본의 가마꾸라 막부시대와 같다고 했다.

 

3. 기다 사다키치(喜田貞吉, 1871∼1939)란 학자는 3.1독립운동 직후에 낸 <日鮮兩民族同源論>이란 논문에서 고고학적 유물, 문헌, 언어, 신화, 풍속 등에서 일본과 한국은 뿌리가 같고 조상이 같다며 일본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4. 사학자는 아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년) 같은 학자도 1885년 일본의 <時事新報>라는 신문에 실은 논문 <조선인민을 위하여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라는 논문에서, 인민들의 재산이나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조선왕조는 멸망해야 옳으며, 한국이 강대문명국의 보호를 받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역설했다.

 

이 외에도 <한국이 고대로부터 떨치지 못한 것은 한국인들의 자주정신이 부족한 탓>(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 1850-1922))이라느니, <동양에서 가장 완고한 나라, 동해의 후미진 구석에 침몰된 한 야만국>(近時評論 1876. 6. 20)이라느니 하며, 요컨대 <한국사에는 자주적발전이 없고, 언제나 외세에 좌우되어 왔고, 사회는 정체되어 근대화의 방향성은 전혀 없었고, 문화는 중국문화의 모방으로 한국 독자의 것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한쪽에선 합방을 정당화하기 위해 日鮮同祖論을 펴는 자가 있는 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한국인 같은 미개인을 어찌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同祖論을 부정하는 자도 나오고 있었다. 한 마디로 문화 같지도 않은 문화를 가진 민족 같지도 않은 민족, 역사 같지도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는 군소리 말고 일본의 합병정책에 감지덕지하며 순응하라는 것이었다.

 

한편 이런 과격파들과는 달리 매우 온건한 논리를 펴면서 은근히 합방을 찬양하는 사학자군도 있었고, 또 식민지 정책과 동화정책을 비판하다 현직에서 쫓겨나는 사학자와 언론인(예컨대 야나이하라 타다오(失內原忠雄), 소에지마 미치마사(副島道正))도 있었다. 그러나 과격파든 온건파든, 비판파든 한국과 한민족, 한국사, 한국문화에 대한 그들의 인식 저변에는 항상 무시하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전통이 戰後에도 계속되어, 현대의 일본 사학자, 지식인 및 일반인들의 한국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소위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이란 것은 이런 여러 주장과 시각들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사실 식민주의 사관은 일본인들의 독창적인 저작품은 아니고 고대 그리스나 카르타고의 식민지 활동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프랑스의 고비노(Gobineau, 1816-1882) 같은 사람은 <인종불펑등론>이란 저서를 남겨 식민주의 사관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기도 했다. 다만 일제가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실행을 했기 때문에 일제 식민주의 사관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위의 글은 "日本人韓國觀'(旗田巍 지음, 李元浩 譯)을 요약한 것임)

 

 

 

이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