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터널공사와 지율스님
(이 글은 정부와 지율스님 사이에 1차 합의가 이루어진 직후인 2004년 10월 16일에 쓴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천성산의 자연을 가장 많이 훼손해 온 장본은 바로 이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내원사(內院寺)일 것이다. 산 속에 그런 대 사찰을 짓자면 산등성이를 얼마나 허물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삼림이며 초목이 잘려나갔을 것이며, 지금 터널공사 반대자들이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도룡농을 비롯한 뭇 생명들은 또 얼마나 많이 죽어나갔을 것인가. 그 뿐인가. 일천 수 백년 동안 내원사를 찾아오는 수많은 불도들과 구경오는 사람들이 망가뜨린 자연은 또 얼마일 것인가.
그러고 보니 천성산 자연 훼손에 제일 책임이 큰 사람은 처음 이 곳에 절을 짓기로 한 원효대사일 것도 같고, 그 후 허물어졌던 것을 다시 중건시킨 조선시대의 의천(義天)과 유성(有性) 스님일 것도 같다.
말도 안 되는 그런 억지소리가 어디 있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이를테면 억지부리기 좋아하는 그 사람들의 논리대로 말을 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자연을 보존하자는 것은 숭고한 일이지 어째서 억지부리는 것이냐고 다시금 눈을 치켜 뜰지도 모르겠으나,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런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 연유로 거대한 국책사업공사를 가로막아 수 천억 원의 국민세금을 축내는 행위가 옳다고 한다면, 당연히 내원사도 헐어서 그 절터를 천성산의 자연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도 옳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6월 부산환경운동연합은 지율스님을 배제한 체 정부측과 '노선검토위원회’를 구성하여 현 천성산 노선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개발이라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데 이골이 난 환경운동연합이 그런 결론을 내릴 정도라면 천성산 지하를 관통키로 설계돼 있는 지금의 고속철 노선은 그 주위의 지형으로 봐 최선의 결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조계종 간부들을 설득하여 양해를 구하지 않았던가. 물론 지난 대선 때 한 표라도 더 얻어볼 요량으로 "터널공사를 중지시키겠다."고 불쑥 공약한 '업보' 탓도 있겠지만 조계종 간부들을 설득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평소와는 달리 꼭 죄지은 사람처럼 너무나 공손하고 저자세여서 심지어 TV를 보는 내가 안스러울 정도였다. 아무튼 그 바람에 의정부의 사패산 터널공사와 함께 천성산 공사가 재개됐고, 그래서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고, 참으로 오랜만에 대통령이 제몫을 하는구나 싶어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느닷없이 천성산 터널공사가 상고심 판결이 날 때까지 중단된다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무슨 낮도깨비놀음인가 싶어 그 연유를 알아보니, 하이 참, 어느새 부산시청 앞에서 청와대 앞으로 자리를 옮겨 58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는 지율스님과 대통령 지시를 받는 사람이 만나 그렇게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성은 간데 없고 왼 통 감성이 그득한 그에 관한 후속 보도들을 듣고 있자니 이건 한편의 코미디도 아니고 참으로 나라꼴 한번 우습게 되어가는구나 싶다. 문득 한 광산 노동자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끝내 외면한 대처 전 영국총리 생각도 난다. 58일을 단식해도(물이야 먹었겠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하고 신기하다 싶은 생각도 든다. 5공 시절이었던가, 누구보다도 건강 하나를 자랑하던 김영삼 야당총재는 단식 23일만에 초죽음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가지 않았는가.
지율스님 한테서 자꾸 뒷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청와대 앞 약속도 동상이몽이었던 것 같고 만약 상고심에서 스님의 주장에 반하는 판결이 나면 또 목숨을 건 단식에 들어가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도 같다. 지율스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속철을 천성산에서 아예 추방하려는 것이 아닌 가도 싶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우회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환경파괴가 더 심할 수도 있다는 우회노선은 지율스님이 반대하고 있다는 보도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건 개의치 않겠다는 뜻인 것도 같다. 그렇다면 혹시 지율스님이 천성산 공사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진짜 원인은 환경문제가 아니라 풍수지리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우리 나라 불교에 샤머니즘 등 토속문화가 깊게 베어 있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처음 철도 놓고 길 뚫고 할 때 현지주민들이 제일 꺼림직 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선조 산소들이 있는 선산의 지맥을 끊어 도로를 내거나 지하에 터널을 뚫어 철마가 굉음을 지르며 내달리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선원인 내원사 인근 지하에 뻥 구멍이 뚫려 그리로 고속철인가 뭔가 하는 것이 쌩쌩 달린다는 것은 천성산에 꼭 한 번 밖에 가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해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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