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던 김영삼 정부가 일본에 당한 교훈을 잊지 않아야

이강기 2015. 9. 23. 22:39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던 김영삼 정부가 일본에 당한 교훈을 잊지 않아야   
 
 
이명박은 일본의 카운터블로에 대비가 되어 있나. 姜慶植 당시 부총리가 털어놓은, IMF 사태 직전 日에 손을 내 밀었다가 거절당한 사연.
 

趙甲濟   

 

  외환위기 때 경제부총리를 지낸 姜慶植 씨는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김영사)이라는 회고록에서 일본의 도움을 받으려다가 거절당한 과정을 소개하였다.
  
  <상환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평소에 90% 이상이던 단기외채의 滿期갱신비율(Roll Over Rate)이 6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엄낙용 차관보(후에 한국산업은행 총재 역임)가 외환시장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하면서 긴급자금지원 요청을 위해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본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것과 관련해 예상되는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미국과 IMF가, 일본과 직접 해결하는 쌍방방식을 별로 환영할 것 같지 않다는 것(AMF 구상의 좌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 成事될 가능성도 의문시된다는 것(11월 초의 외신에 클린턴 대통령이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에게 앞으로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생기더라도 양국 간 해결 방식을 취하지 말아달라는 공한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등의 우려를 말했다. 또 우리 국민들이 일본의 도움을 받을 경우 자존심 손상도 있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일본 정부에 지원 요청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IMF에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 正道라는 나의 생각을 말했다.
  
  따라서 일본에 갈 경우 정부 對 정부의 지원이 아닌, 일본 금융기관들이 滿期연장 등에 특별 배려를 해주도록 ‘행정 지도’를 당부하는 쪽으로 교섭하도록 지시했다. 만기연장만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비공식적 영향력 행사는 8월 말 미쓰츠카 대장상이 訪韓했을 때의 예를 보더라도 기꺼이 협조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 차관보는 1997년 11월10일 訪日해서 미스터 옌(Mr. Yen)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대장성 사카키바라 차관보를 만난 후 11일 귀국했다. 訪日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국 간 협력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일본은행이 한국은행에 대한 SWAP(注: 통화스와프)등 지원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고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그것도 마찬가지로 안 된다고 했다는 보고였다. 즉 자금난 해소를 위한 지원은 IMF를 통해서만 하도록 이미 미국과 일본이 합의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시중은행에 대해 만기연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협조 요청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의 경제 사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일본 검찰이 금융기관과 대장성의 유착관계를 수사 중이어서 대장성의 位相이 약화된 터라 실현되기 어렵다는 대답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설사 당시 일본 정부가 나서서 만기연장 협조를 요청했더라도 일본 금융업계는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사정에 있었다. 1997년 11월에는 일본도 금융위기에 몰려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은행들이 BIS 기준을 맞추기 위해 무자비한 자금회수에 나섰고 그 결과 수많은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흑자도산에 몰리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배려를 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일본은 외환 사정이 좋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우리나라와 같은 외환위기로 발전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김영삼 정부는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아 그 일본에 지원을 부탁하는 처지가 되었다. 韓日관계가 좋았더라면, 韓美관계가 원만하였더라면 일본과 미국은 수백억 달러의 지불 보증으로 한국이 IMF로 가지 않도록 도왔을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失人心 상태였다. 외교의 가장 큰 실수는 고립인데, 김영삼 정부는 동맹국 사이에서 고립되었던 것이다.
  
  李 대통령의 對日 강경책 이후 일본은행과 한국은행 사이에 맺은 700억 달러 한도의 통화 스와프 협정에 대하여 일본이 오는 10월의 만기일에 연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李 대통령은 일본에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점검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김영삼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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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獨島문제로 '오버'하면 우리만 손해다!
  
  독도를 국제분쟁지역화 하려는 세력에 이용당해선 안 된다. 李 대통령은 일본의 카운터펀치에 준비가 되어 있나?
  
  趙甲濟
  
  
   獨島는 우리 땅이란 논거는 많지만 영토문제는 이론의 대결로 勝敗가 결정되지 않는다. 독도가 우리 땅이란 가장 중요한 논거는 '대한민국이 지금 이 섬을 지배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獨島를 영유하기 위하여 武力을 쓴 적이 없다. 자연스럽고 평화적인 취득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영유권은 더욱 확고하다.
  
   독도는 일본에 빼앗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우리의 領有權은 분명하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투행위를 통해서이다. 이를 막을 장치가 한국엔 있다. 우리의 군사력과 韓美동맹이 그것이다. 일본 헌법도 獨島점령과 같은 침략행위를 금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 공격은 美日동맹을 균열시킬 것이다. 지난 150년 동안 한국과 일본처럼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한번도 전쟁이 없었다.
  
   한국인 가운데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일본인 중에서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를 만난 적도 없다. 獨島 문제는 문제로 남겨 두는 수밖에 없다. 독도 문제를 키워서 得이 될 나라는 한국이 아니다. 일본의 일부 세력이 독도 문제를 국제분쟁 지역으로 만들려고 해도 영유권을 가진 한국이 슬기롭게 대응하면 말려들지 않을 수 있다.
  
   '슬기로운 대응'이란 과잉대응을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동네의 깡패가 부자 집의 며느리를 험담하기 위하여 '시집 올 때 처녀가 아니었다'는 말을 만들어 퍼뜨린다고 치자. 마을 사람들은 그 자의 평소 행실을 알기 때문에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닐수록 깡패의 입지가 약해진다. 그런데 부자집 주인이 과잉대응을 한다. 마이크를 들고 다니면서 "우리 며느리는 처녀가 맞다"고 외친다. 깡패의 헛소리는 단번에 '처녀성 논란'으로 문제화 된다.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의 언론과 정치인들의 非전략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방식이 일본의 일부 몰지각한 세력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오히려 키워주지 않았나 검증해 볼 단계이다.
  
   李明博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이은 런던 올림픽 축구 韓日戰 후의 '독도는 우리 땅' 세레모니가 국제사회에서 '오버하는 것'으로 비쳐지면 우리가 손해이다. 독도 문제에서 한국이 도발자의 이미지를 갖게 되면 일본이 편해진다.
  
   일본 정부나 소수 우익세력이 아니라 보통 일본 사람의 여론을 잘 살펴야 한다. 보통 일본 사람들의 여론이 反韓으로 돌면 일본 정부의 정책도 여론을 따라갈 것이고 韓日 관계가 구조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국제여론도 중요하다. 런던 올림픽 축구 경기 직후의 '독도는 우리 땅' 세레머니는 한국인의 기분풀이는 될지 몰라도 올림픽을 정치화하였다는 비판을 부를 것이므로 국제여론 면에선 불리하다. 그 장면을 본 많은 외국인들은 처음으로 '獨島가 韓日분쟁 지역이구나'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나서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선전해준 꼴이 아닌가?
  
   韓日 관계가 나빠지면 득을 보는 곳은 북한과 중국 정도이다. 북한 김일성은 韓美동맹과 韓日우호관계를 한국이 쓴 갓의 두 끈으로 비유하여, 끈을 잘라버리면 갓이 벗겨진 초라한 나라가 된다고 했다. 한국의 안보가 韓美日 동맹관계에 의하여 지탱된다고 본 것이다. 북한人權문제와 北核문제에서 한국과 일본은 협력관계이다. 韓美동맹해체와 韓日이간은 북한의 對南공산화 전략의 최우선 목표이다.
  
   이런 韓日관계의 악화를 각오하고 우리가 강경책을 써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독도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독도를 확보한 상태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도록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 일본 정부는 그날로 무너질 것이다. '오버'를 해서라도 얻는 게 더 크면 해야 하지만 그게 무엇일까?
  
   李明博 대통령은 자신의 독도 방문에 앞서 일본 정부의 예상되는 대응책을 미리 점검했을 것이다. 일본이 취할 수 있는 對韓 보복 수단이 무엇인가도 검토하였을 것이다. 중국은 일본에 나포된 중국 어선의 처리문제로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되자 일본 경제에 필수적인 稀土類(희토류)의 수출을 중단, 일본을 굴복시켰다. 혹시 한국에 일본이 이런 수를 쓰지 않을지, 우리의 急所는 무엇인지를 더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國力, 즉 군사력과 경제력과 외교역량을 넘어서는 對日 강경책은 외교적 不渡를 부를 수가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발언, 일본 지도층을 자극한 적이 있다. 김 대통령이 그 약속을 실천에 옮긴 적은 없다. 버르장머리를 고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이 조용하게 김영삼 정부에 복수를 한 적은 있다.
  
   1997년 11월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에 직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고 일본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高官을 일본으로 보내 한국에 빌려주었던 돈을 찾아가는 일본의 은행들을 말려줄 것과 일본중앙은행과 한국은행 끼리의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일본측의 반응을 요약하면,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IMF 관리체제로 보내기로 합의하였으므로 정부 對 정부의 협조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韓美 관계도 잘 관리하지 못하여 미국을 통한 협조도 구할 수 없었다. 全斗煥 정부가 레이건 대통령을 업고 일본으로부터 수십 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큰 소리 치면서 받아냈던 것과는 사정이 달랐다.
  
   남북통일 과정에서 한국은 주변 국가의 협조를 받아내야 한다. 미국만이 우리 편이다. 미국 다음으로 우리를 도울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이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 특히 일본의 보통국민들을 敵으로 돌리는 것은 國益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李明博 대통령은 韓美관계를 복원시키고, 韓日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은 외교적 공적이 있었다. 그의 독도 방문은 自國 영토 방문이므로 당연한 것이고, 용기의 有無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니 李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카운터펀치를 맞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국내외로 고립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내정치판에선 말이 통하지만 국제정치판에선 힘이 통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처럼 사이가 나빠도 이웃하고 지내야 할 관계이다. 해방 때 한국에 살았던 일본인들이 잊지 못하는 연설이 있다. 1945년 8월15일 오후3시 京城방송국을 통해 安在鴻 선생이 한 연설의 다음 대목이다.
  
   "끝으로 국민 여러분께서는 각별히 유의하여 일본 거주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40년간의 총독 통치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조선·일본 兩 민족의 정치 형태가 어떻게 변천하더라도 두 나라 국민은 같은 아시아 민족으로서 엮이어 있는 국제 조건 아래서 自主 互讓(자주 호양)으로 各者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일본에 있는 5백만의 조선동포가 일본에서 꼭같이 수난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조선에 있는 백수십만 일본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총명한 국민 여러분께서는 잘 이해해 주실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 연설을 서울에서 들었던 일본의 전직 외교관은 이렇게 말하엿다.
   "격앙된 그 순간에도 이런 차분하고, 이성적인 연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연설 덕분으로 수많은 일본인들이 수난을 면했습니다."
  
   2017년에 가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이 일본을 앞선다. 일본이나 독도문제를 대하는 자세도 國格에 맞추어 달라져야 할 때이다. 느긋하게, 당당하게, 너그럽게, 균형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