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후쿠다→아베→고이즈미로
이어지는 우파 ‘헌법 개정, 아시아 침략 긍정, 핵무장’ 본격 추진
‘잃어버린
10년.’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신문ㆍ방송 어딘가에서 반드시 등장하던 말이다. 잃어버린 10년이란 거품경제가 끝난 1990년대 초 이후 10여년 간 계속된
경제침체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 지식인이 앞을 다투어 깎아내렸던 일본의 과거 10년사에 관한 논의는 어느날 갑자기,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사라졌다. 현재 일본 지식인들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과거사가 아닌, 미래사에 관한 부분이다. 바로 9·11 동시 테러사건 이후
급변한 세계정치 경제구도 속에서 일본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이다. 경제문제에 집착하던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미·일(美日) 동맹에 기초한 21세기 일본의 안보문제’가 2003년 일본의 현안이다.
일본 참의원은 지난 7월 26일
이라크 재건 특별조치법이란 그럴 듯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자위대 이라크 파병 법안이다. 당시 한국의 신문 방송은 법안통과 과정에서 드러난
레슬링선수 출신의 자민당 의원과 NGO출신의 여성 야당의원 사이에 벌어진 난투극에 관심을 보이면서 ‘미녀와 야수의 대결’이란 차원에서 보도했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 일본인 대부분이 반대하지만 자민당 내 일부 우익 정치가들의 주도하에 법안 통과가 강행됐다는 것이 한국에서 이뤄진 그럴 듯한
분석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관점은 일본 내 상황을 이해한다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라크 파병’
이례적 신속 처리
이라크 파병 법안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법안 입안 이후 통과까지 보여준
신속함이다. 이라크 파병 법안은 6월 말 국회를 한 달 연장하면서 강행한 법안이다. 이라크 파병 법안은 7월 4일 중의원 통과를 포함해 불과 한
달 만에 일본 국회에서 통과됐다. 유엔의 깃발이 아닌 자위대 이름으로 외국 파병을 결정하는 문제를 다루는 기간이 불과 한 달. 돌다리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돌다리가 부서지기 직전까지 두들긴다는, 이른바 네마와시(根回し)를 통한 타협 위주의 일본 정치문화를 고려한다면 믿어지지
않는 스피드인 것이다.
둘째 중요한 것은 참의원 통과 당시 찬성 136표에 반대가 102표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보기에 따라
찬성표가 적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법안심의 당시 자민당 내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反)고이즈미 세력이 파병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찬성 결과는 예상 수치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여당이 아닌 야당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파병을 주도한 고이즈미
총리의 생각이 관철된 것이다.
이라크 파병법 통과를 통해 나타난 야당의 지지와 국회의 발 빠른 행보는 ‘잃어버린 10년’을 자위대
국외 파견과 같은 적극적인 군사적 행보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일본 정치권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눈앞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적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설명될 수 있는 정치군사적 논리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논리가, 다시 말해 군사적 팽창을 통한 현안해결이란
생각이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일본에서 효과를 발휘하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크게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보다
강화되고 있는 미·일 동맹에 관한 부분이다. 일본인들은 일본의 외교정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미·일 동맹에 기초한 외교와 미·일 동맹에
벗어난 외교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전후 일본이 미·일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벌인 외교는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벌인 중·일 국교 회복문제 정도이다. 나머지 99.9%의 외교는 미·일 동맹관계를 최우선시해서 이뤄졌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과의
관계는 일본 외교의 목적이자 전부가 되는 셈이다.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중국·러시아·유럽 공동체·한국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는 미·일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다나카 총리가 중·일 국교 회복 이후 록히드 뇌물사건으로 실각했다는 사실은 미·일 동맹관계에서 벗어난 외교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예이다.
이 같은 배경하에서 주목할 부분은 21세기 등장한 미·일 동맹관계는 일본이
원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희망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미국의 입장에 발맞춰 가는 것만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이라크 파병문제는 국무성의 리처드 아미티지 부장관이 직접 도쿄에 들러 국회 내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부시 대통령조차 여러 채널을 통해 파병
지원을 요청한 결과물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파병의 명분을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이 있기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북한 납치사건은 일 군사력 증강의 호재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의 납치문제이다. 현재
일본에서 거론되는 납치문제는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정치 이슈이자 국민적 관심사이다. 지난 6월 한국의 모 국회의원이 일본 소장파
국회의원과 만난 술좌석에서 “납치문제 같은 조그마한 문제를 털어버리고 하루라도 빨리 북한과 수교에 들어서는 게 좋다”는 충고를 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납치문제는 한국 입장에서 볼 때 과거 식민지사에 비교될 수 없는 ‘사소한 문제’지만 일본에서는 그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는
성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납치문제는 일본이 왜 군사적 역량을 길러야만 하는지를 정당화 시켜주는 대의명분이다. 미국처럼 자국민이 납치될 경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할 수 있는 군사력을 길러야만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일본인이 주목하는 부분은 핵문제보다 납치문제이다.
북한 핵문제는 일부 안보전문가나 정치가가 주도하는 외교적인 문제인 데 반해, 납치문제는 남녀노소·계층·학력에 관계 없이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국내 정치의 문제이다.
자위대 해외 파견 문제는 일본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 입장에서 볼 때 국내외를 통틀어
지지기반을 강화한 계기가 됐다. 국내 차원에서는 납치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군사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달래줬으며, 국외로는 아시아의 영국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미국측의 요청에도 적극 부응하면서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의 위치를 지킨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대내외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그동안 일본이 주저해왔던 ‘민감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위치에 서게 되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도로공단
민영화나 우편업무 민영화와 같은 경제적 차원의 개혁만이 아닌 군사정치적 측면에서의 개혁에 주목한 것이다. 자위대 명칭을 자위군으로 개정하려는
계획과 주변국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히로히토를 기리는 쇼와의 날 제정과 쇼와 천황 기념관 건립과 같은 문제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국정의 중심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슈들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현재 2차 세계대전을 종전이 아니라 패전으로 받아들이는
인물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일본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이들은 1945년 당시 적이었던 미국을 최대의 우방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시 행정부의
중심인 네오콘들과 코드를 공유하면서 21세기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아베 신조는 아베 신타로의
아들
일본 네오콘들은 최근 정가에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후손들로도 불리면서 그 영향력과 정치적 이념을
일본 국민들에게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가고 있다. 1960년대 초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 보수의 본류로 알려진 인물이다. 전쟁
당시 만주에서 일한 전문관료 출신의 기시 노부스케는 전후 미국과의 불평등한 군사동맹에 반대한 인물로, 방어 개념의 평화헌법이 아닌 공격이 가능한
자주헌법을 주장했다.
일본 정신의 본령임을 자처한 기시 노부스케의 생각은 이후 1970년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
1980년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장관으로 발전, 현재의 고이즈미 총리로 연결된다. 아베 신타로는 원래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이며,
고이즈미 총리는 아베 신타로의 비서로 들어가면서 정치에 입문한 경력을 갖고 있다.
현재 일본 네오콘의 대명사인 아베
신조(安倍晉三) 관방부장관과, 그림자 총리로 알려진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각각 아베 신타로와 후쿠다 다케오의 아들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 당시 시종일관 김정일을 싸늘한 표정으로 쏘아본 것으로 유명해진 아베 관방부장관은 가까운 시일 내에 고이즈미 총리를 잇는 차기
총리로 오르내리고 있다.
납치문제와 관련해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 방송에 등장, 북조선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경찰 출신의 자민당 의원
히라사와 가쓰에이(平澤勝榮)는 아베 신조 관방부장관이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 가정교사를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정치적 이념은 물론 혈연과
지연·학연으로 뭉쳐진 이들 일본의 네오콘들은 50여년 전 대스승인 기시 노부스케가 주장했던 자주국방을 통한 대일본정신을 신봉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이념적으로는 공산당을 멀리하면서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한다. 중국과 러시아 나아가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결국 정략적인 차원에서 대만과 한국은 우호적인 대상에 포함된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취임 후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이즈미 총리와의
정식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아놓고 있지 않다. 양국 관계가 원만치 못한 것은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공공연하게 찾기 때문이라는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만주 경영을 통해 중국 분할을 시도한 기시 노부스케와 그 후손들과의 대립이란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중국 지도부와 불편한 관계
일본의 정치분석가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우경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기시 노부스케의 부활은 아직 국내 정치적 차원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라크 파병과 같은 ‘돌출적 문제’를 예외로
한다고 할 때, 일본의 네오콘은 아직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의 움직임을 적극화하고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기시 노부스케와 그의
후예들은 일본 정국에서 소수파에 들었던 사람들이다. 일본 정국은 크게 볼 때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초등학교
출신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파벌정치가 본류로 자리잡아 왔다. 다나카에 이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가네마루 신(金丸信),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 현재의 노나카 히로무로 이어지는 인물들이 자민당의 주류로 잡아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농촌과 일본 내 소수계층들을 중시여기고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시
노부스케와 그의 후예들이 귀족 출신임에 비해 너무도 평범한 배경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서민과 귀족의 대결구도인 것이다.
다나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서민 출신의 자민당 본류가 관심을 갖는 마이너리티(minorityㆍ소수)에는 파친코 업계를 대표하는 재일 동포와, 일본
내에서 천민층에 속하는 부락민, 그리고 전국 600만 세대 당원을 자랑하는 공명당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요트와 승마를 즐기는 귀족
출신의 기시 노부스케와 그의 후예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은 1970년대 들어 기시 노부스케와 같은 귀족 취향의 정치가를 대신해 막
노동꾼과 같은 다나카 파벌에게 표를 주었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 되풀이 가능성
그러나
그같은 분위기는 고이즈미 총리 등장과 함께 한순간에 바뀌었다. 이유는 바로 북조선에 의한 납치문제 때문이다. 스즈키 무네오 자민당 총무국장을
비롯해 자민당 내 친북 그룹들은 그동안 납치문제를 무시해왔다.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은 자민당 내의 친북그룹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90년 대 초 가네마루 신이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시도한 이래 노나카를 비롯한 다나카 파벌의 후예들에게 북한문제는 언젠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들은 북한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문제를 피했다. 그 결과 현재 일본 국민들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한 정치가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고이즈미 총리는 납치사건을 활용, 자신을 견제할
서민층을 대변하는 정치가들을 전부 추방하는 데 성공한다. 다나카 전 총리의 딸인 다나카 전 외상을 몰아내고, 스즈키 무네오가 뇌물사건으로
구속되며, 중국에 대한 무상원조(ODA) 감축과 같은 사건들은 바로 다나카 파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경봉호 임검과 재일 조총련 시설에
대한 비과세 혜택 중단과 같은 문제는 다나카 파벌과 조총련의 유착관계를 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강력한 지지와 일본 내의
단독 질주 행렬에 오른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은 50년 전 주장인 헌법 개정과 재군비, 일본의 아시아 침략 긍정, 핵무장이란 세 가지 측면에
주목,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가고 있다. 이들 세 가지 문제는 현재 하루도 빠짐없이 어딘가에서 들을 수 있는 현안이다.
아베 신조
관방부장관은 “총리에 오를 경우 방어 개념에 입각한 평화헌법을 공격 개념으로 바꾸겠다”고 호언한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8월 15일자 사설에서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은 일본 국내법으로는 공무로 사망한 사람이다. 일본 국민은 인근 국가의 편협한 애국주의와 반일(反日)
내셔널리즘에 맞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무장의 경우, 지난 6월 초 아사히신문 계열의 주간지 아에라에 따르면,
설문에 대답한 중의원 가운데 여야를 통틀어 60%가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의 경우, 고이즈미 총리 개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
기시 노부스케 노선 자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고이즈미 총리는 국내외에 모여진 지지를 기반으로 언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갈지에 대한 숨고르기에 들어선 상태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주도하는 국제정치적 차원에서의 움직임은 다음달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경선 이후 본격화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재신임을 받을 경우, 현재의 일본의 분위기만을 본다면 어느날 갑자기 초등학생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무가 법제화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한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 여부에 관계
없이 가속화될 것이다. 일본 국민은 납치문제가 전부 해결될 때까지 북한과의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핵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납치문제를 통해 일본이 북한과 정면 충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한국 정부가 납치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기시 노부스케 후예들은 한국조차 적으로 돌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6월 초 방일 당시, 납치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지 않았던 한국측 반응에 대해 일본 정치권은 물론 외무성조차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한·일 관계의 오늘을 알 수 있는 좋은
예이다.
한·미 동맹이 어긋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미·일 동맹에 근거해 한반도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재배치라는 외교적 수사로 등장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철수문제를 오키나와와 연결시키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가까워지는 미·일 관계와 멀어지는
한·미 관계를 고려한다면, 미국이 한반도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본을 적극적으로 막을지 의문이다.
2005년 7월이면 한반도와
필리핀에서의 미ㆍ일 간의 상호이해를 보증한 가쓰라 태프트 조약이 이뤄진 지 100년이 된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도쿄=유민호 일본 경제산업연구소 안전보장담당 연구원
[일본, 한반도를 노린다] 일본 군사력 - 아·태 전역 “공격 가능” 군사대국화 계획 추진 경(輕)항공모함급 2척·공중 급유기 4대·이지스함·잠수함 등 도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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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까지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8일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지(紙)의 보도도 최근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주목케 했다. 더 타임스는 일본이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한 척씩
건조할 예정인 초대형 군함은 사실상 항공모함(aircraft carrier)이라고 보도했다. 더 타임스는 이 군함은 헬리콥터 4대를 탑재하는
호위함인 것으로만 알려져 왔으나 탑재할 전투기가 영국의 수직 이착륙 전투기인 해리어(Harrier)일 경우 최소한 12대의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경(輕)항공모함으로서 주변국들의 우려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항공모함 건조
계획이 없다”며 이 같은 보도를 부인했다. 문제의 초대형 군함 제원과 관련, 이 관계자는 “일본 방위청의 발표문 원본을 갖고 있지 않으니
방위청에 직접 확인하라”며 일체의 언급을 피했다.
그렇다면 DDH로 불리는 이 호위함은 일본 방위청의 주장대로 헬리콥터 4대만
탑재할 수 있는 호위함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더 타임스의 평가대로 최소한 전투기 12대까지 실을 수 있는 항공모함인가. 이 의문은 최근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이 평화헌법에 따라 방어에만 전념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같은 원칙을
벗어버리고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전체를 일본의 공격권에 두기 위한 것인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일본이 이들 호위함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2000년 12월 15일이었다. 당시 열린 일본 안전보장회의는 새로운 중기(中期) 방위력 정비계획(약칭
신중기방ㆍ新中期防)을 확정했다. 신중기방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의 국방력 강화 계획으로서 이 계획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가
이들 호위함을 건조하는 것이다.
나카소네, 군사대국화 기초 다져
앞서의 의문을 풀기
위해선 먼저 신중기방이 기존의 국방력 증강 계획과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신중기방은 일본이 1986년부터 5년
단위로 추진해 온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으로는 4번째에 해당된다. 일본이 5년 단위의 중기 방위력 정비 계획을 실천하도록 만든 사람은 ‘일본을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會根康弘) 전 총리였다. 그래서 1986년은 일본 우파가 군사대국화를 향한
꿈의 실현에 본격 착수한 시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데, 그 까닭은 그 전까지의 일본의 국방력 증강 계획인 ‘방위력 정비 계획’은 방위청 내부의
계획이었던 반면 중기방은 일본 정부의 결의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중기방 중에서도 신중기방은 기존 군사력의 첨단화를 더욱
확고한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3차례의 중기방과도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신중기방의 최대 목표는 지금까지의 군사력을 더욱 더
첨단화해 일본 열도를 침공하는 가상의 적을 원거리에서 탐지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육ㆍ해ㆍ공군이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된
무기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첨단화의 핵심은 위성에 의해 유도되는 미사일과 위성에 의한 정보 수집 등 전자전(電子戰)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자연스럽게 문제의 호위함이 단순히 헬리콥터 4대만 탑재 가능한 전함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갖게 만든다.
만약 그런 정도의 능력만을 가지는 호위함이라면 굳이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없고 방위청 차원에서 충분히 시행해도 되는
전력 증강 사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호위함을 항공모함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이
호위함의 앞뒤로 비행 갑판이 있고 그 왼쪽에 셔터가 부착된 구조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방위청은 이 구조물은 헬리콥터 정비용 격납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갑판 아래 전투기들이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격납 공간이 있는 데다 여기에 전투기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예정인 만큼 이
호위함이 항공모함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일본 군사전문가인 김경민 교수(한양대 정치외교학과)는 지적한다.
더구나
이 호위함이 톤수가 1만3500t으로, 퇴역하는 호위함보다 두 배 이상이라는 사실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현재 일본의 4개 호위 함대군의
기함(旗艦) 겸 대잠 중추함(對潛中樞艦)으로서 가동 중인 4척의 호위함 중 퇴역하는 ‘하루나’와 ‘히에이’는 각각 4950t과 5050t에
불과하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이 도입할 신형 호위함이 이탈리아와 태국이 보유하고 있는 경항공모함과 비슷한 규모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경항공모함은 1만7000t으로 대잠 헬리콥터를 무려 16기나 탑재할 수 있고 태국의 경항공모함은 이보다 조금 작지만 수직 이착륙
전투기인 해리어를 12기나 탑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호위함은 초계 헬리콥터 3기와 소해(掃海) 및 수송용 헬리콥터 1기를 탑재할 것이라는
일본 방위청의 발표와 달리 전투기까지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이 같은 호위함이 도입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느냐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박철희 교수(외교안보연구원ㆍ일본 정치)는 “해상에서의 지휘 능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신예 정보
및 지휘통신 능력을 보유하고 헬리콥터들과 심지어 전투기까지 탑재한 사실상의 항공모함인 이 호위함이 배치되면 일본 해군으로선 함대들에 대한
해상에서의 직접 지휘 능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대형 항공모함 보유 가능성도
일본은
조만간 대형 항공모함도 보유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항공모함 건조를 서두르고 있는 중국이 2~3년 안에 항공모함 보유를 선언하면 일본
여론도 ‘우리도 항공모함을 가져야 한다’는 쪽으로 거세게 나타날 것이고 그럴 경우 일본 정부는 국내외 눈치를 보지 않고 대형 항공모함 보유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일본의 군사력 증강 움직임이 방어 능력의 확충이 아닌 공격 능력의 강화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첨단
장비는 이들 호위함 외에 4가지가 더 있다. 바로 신중기방에서 도입할 예정인 공중급유기(空中給油機)와 이지스함인 미사일호위함(DDG)에다
잠수함과 P-3C 대잠초계기(對潛哨戒機) 등이다.
신중기방에서 도입할 예정인 공중급유기 수는 4대이다. 공중급유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전투기가 기본적으로 한정적인 기름만 실을 수 있기 때문에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기지로 귀환할 수밖에 없는데 공중급유기가 도입될 경우
일본 전투기들은 아시아ㆍ태평양 전역을 작전권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한 대의 공중급유기가 전투기 8대의 공중 급유를 맡는다면 2005년 이후
일본 공군은 최소한 32대의 전투기로 아시아ㆍ태평양 전역 어디서든 작전을 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공중급유기 도입이 신형 호위함
도입보다 더 일본의 공격형 군사력 강화를 상징하는 결정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일본이 공중급유기를 2005년까지 도입하기로
결정할 때까지 무려 15년에 걸친 논란을 벌였다. 일본의 무기 도입 역사상 공중급유기만큼 장기간에 걸쳐 주도 면밀하게 검토한 무기 체계도 없다.
그만큼 공중급유기는 일본의 군사전략이 공격형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지스함인 미사일 호위함의 경우 일본은
2005년까지 2 척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는 기존의 이지스함인 ‘곤고(金剛)’와 유사하지만 곤고급보다 성능이 훨씬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준 배수량이 7700t으로 곤고급보다 450t이 늘어나고 최신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하기 때문에 탄도 미사일의 정보 수집력이 더욱 향상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05년이 되면 모두 6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게 된다.
잠수함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향한 무기
체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은 주변국가들을 의식해 잠수함 수를 16척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매년 500억엔에 달하는 고가의 잠수함을 한
척씩 퇴역시켜 첨단 기술을 적용한 최신예 잠수함으로 교체해 오고 있다. 전세계에서 멀쩡한 잠수함을 무조건 퇴역시키고 다른 잠수함으로 대체해 오고
있는 국가는 일본 하나뿐이다.
일본은 수상(水上) 함정과 잠수함의 감시 및 탐색을 위한 대잠 초계기인 P-3C에서도 군사대국화를
위한 전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서태평양 전체를 작전권으로 삼기 위해 현재의 P-3C보다 속도와 순항고도가 훨씬 빠르고 높을 뿐만 아니라 항속
거리도 더 긴 대잠 초계기의 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일본은 100여기의 P-C3를 보유, 세계에서 작전 영역에 비해 가장 많은 대잠
초계기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교관 주간조선 기자(haedang@chosun.com)
[일본, 한반도를 노린다] 대안Ⅰ - ‘북핵’ 부터
해결하라 북한 핵무장이
일본 군비 증강에 명분 줘… 문제는 양분된 한국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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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인 자민당을 비롯한 일본 우파들이 공격적인
군사대국화의 속내를 마침내 드러낸 시점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이는 일본이 군사력 증강의 최종 목표를 공격으로 삼고 있음을 단적으로
입증해주는 공중급유기의 도입이 처음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 지난 1990년 말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당시 1991~1995년 간 2차
중기방위력정비계획(중기방)을 확정하면서 ‘공중급유기 도입 검토’ 방침을 밝힌 뒤 일본 내 여론과 주변국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공중급유기는 일본 전투기들이 기름 걱정을 않도록 해주는 장비로 이것이 도입되면 태평양 전역이 일본의 공격권에 든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내외 눈치를 살피던 일본 정부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의 3차 중기방 기간에 ‘공중급유기 도입의 결론을 낸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지난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핵무기 개발에 돌입하면서 조성된 1차 북핵 위기로 일본
여론이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는 분위기로 돌아선 것이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2000년 말,
2001년부터 2005년까지의 4차 중기방인 ‘신중기방’을 확정하면서 공중급유기 도입을 결정하게 된 데는 1998년 8월 말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가 명분을 제공했다. 일본 국민은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까지 날아가자 경악했고 이를 기회로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가들의 우려스러운 시선에 더이상 연연해 하지 않게 된다. 아시아와 태평양 전역을 공격권으로 삼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공중급유기
4대 도입을 확정한 데 이어 사실상의 경항공모함인 호위함 2척 도입과 대잠 초계기의 전투력 강화까지 밀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이 일본이 국내외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재무장에 나설 수 있도록 해주는 큰 명분이 됐음을 뒷받침한다. 일본 의회가
지난 6월 6일 유사시(有事時)에 대비한 유사 관련 3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도 지난해 10월부터 발발한 2차 북핵 위기와 작년 9월
평양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이 일본인 납치 의혹을 시인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문제는 일본 우파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을 명분으로 군사대국화로 치닫는 데 대한 한국의 여론이 양분되고 있다는 데 있다. 한쪽에선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북한 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만큼 무작정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 같은 견해를 지지하는 한
예비역 제독은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전제로 하는 것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인 만큼 한국도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 일본이 한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서 “뿐만 아니라 북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한ㆍ일 간 군사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보다도 한국에는 장기적으로 일본의 재무장이 더 큰 위협이라는 견해들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한 관계자도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지고 있는 만큼 우리는 50년 뒤를 내다보고 일본의 재무장을 경계하지 않으면 우려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가 명분
이 같은 논란은 한국이 북핵 위기와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이라는 두 가지 사태에 대한 대응을 놓고 가치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철희 교수(외교안보연구원ㆍ일본
정치)는 “일본이 해군력 등 군사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 때문에 일본이 지난날의 군국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다”면서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하의 국제 질서는 그 같은 회귀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도 일본의 군사력 수준만큼은
안되더라도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일본이 자위대 강화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북핵 위기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이다.
윤덕민 교수(외교안보연구원ㆍ일본 정치)는 “우리는 일본이 전수방위 차원을 넘어서는 군사력을 강화하거나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할 경우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에 대한 한국의 대응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일본을 동북아
다자 안보틀 속에 묶어 건강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북핵 위기 등 북한의 도발시에 대비한 한ㆍ일 군사협력 논의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 일본 재무장의 빌미를 주고 있는 북핵 위기를 미국·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 조속히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데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이와 함께 일본이 전수방위를 넘어서는 재무장으로 치닫는 데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이교관 주간조선 기자(haedang@chosun.com)
[일본, 한반도를 노린다] 대안Ⅱ - ‘한·미 동맹’ 굳건히
해야 미국만이 일본 통제
가능… 군비통제 통한 협력안보
모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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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일본은 진짜 일본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진 일본은 패전의 굴레 속에서 미국인이 만든 평화헌법을 지켜왔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로 전쟁 책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면죄부를 얻은
이래 일본은 더 이상 패전의 굴레 속에 연연하지 않으며 보통국가화를 착실히 진행시켜 왔다. 일본은 방위에만 국한하던 자위대의 역할을 미·일
동맹과 국제공헌을 명분으로 글로벌한 차원으로 확대하고 있다. 멀지않아 일본은 보통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익에 따라 군사력을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는 지금까지의 일본에 익숙해왔다. 새로운 보통국가 일본은 우리에게 미지의 존재이며
여전히 과거 군국일본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최근 일본의 군사동향과 관련 국내의 논의는 매우 부정적이다. 일본의 일거수 일투족을 군사대국화,
군국화로 연관지어 설명하는 부정적 경향이 있다.
그렇게 불안하다면 무엇인가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냉전이 종결된 직후 오키나와의 미 해병사령관은 냉전 이후 주일미군의 역할에 대하여 일본의 군국화를 막는 ‘병마개’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일 동맹은 일본의 군국화를 막는 가장 확실한 틀인 셈이다. 냉전이 종결된 직후 일본 내에서는 동맹에서 벗어나 자주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컨센서스는 냉전 이후에도 미·일 동맹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증대된 일본의
힘을 미·일 동맹 틀에서 소화시키기 위해 동맹의 영역을 일본 방위에서 지역의 안전으로 확대시켰다. 그 결과 자위대의 역할이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을 명목으로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일본은 미국의 반테러전을 적극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페르시아만에 이지스함을
포함한 함대를 파견하고 있으며 이라크에도 곧 자위대가 파병될 것이다. 이제 일본은 지역을 넘어 글로벌한 차원에서 병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과 관련, 국내에는 미국이 일본의 군국화를 막는 병마개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동맹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테러 이전 동맹이 방어 또는 억지를 위한 것이었다면 테러 이후의
동맹은 미국의 반테러를 위한 행동에 동참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일본은 9·11 테러 이후 동맹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보통국가화를 촉진하는 즉 군사역할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중국 군비강화도
경계해야
분명한 점은 미국만이 보통국가 일본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일 동맹이 없다면 현재 일본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느껴질 것이다. 결국 미·일 동맹이 유지되고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면 미·일 동맹 내에서의 보통국가 일본은 충분히
안심할 수 있는 범위일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통제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일본을 다룰 힘이 없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일 동맹과
함께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건설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다자안보의 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주변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들로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하나도 다루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우리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만을 우려하지만, 중국도 최근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군사비에서 일본을 역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강대국들의 힘이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미치지 않도록 이제 동아시아에 있어서도 지역
차원의 신뢰 구축과 군비통제를 통한 다자협력안보의 틀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협력안보의 틀에서 일본, 중국 등의 증대되는 힘을 건설적으로
소화해야 할 것이다. 지역 차원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일도 역내 국가들 사이의 상호의존을 심화시키고 신뢰를 구축하여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 지역의 다자 경제협력체 구축은 다자 협력안보의 틀과 함께 일본의 진로에 대한 우려감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사실 일본의 군국화를 막는 가장 근본적 방안은 다원적 자유민주주의이다. 다원적 자유민주주의사회에는 군국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다. 결국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을 확고히 하는 일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막고 한·일 협력을 심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취재파일] 일본발(發) 안보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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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에 대해 언젠가
일본발(發) 안보 위협이 현실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력에서 일본에 크게 뒤지는 우리로서는 군사력
증강에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어느 국가가 이런 위협을 통제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라고 답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미ㆍ일 동맹의 강화를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일본이 재무장의 한도를 넘어설 경우 이는 초강대국인
미국만이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미국의 생각이다. 얼마 전 우리 정부 당국자가 이에 대한 우려를 미
행정부 당국자에게 털어놓자 그는 “역사상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들간에는 전쟁이 없었다”며 “걱정할 것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같은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하나는 21세기 초 한 국가의 안보는
주변국가들과의 연합 안보체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최근 일본이 증강하고 있는 군사력은 이같은 21세기적 흐름에서 벗어나 한 국가의 안보는
자력으로 지켜내는 것을 넘어서 제국주의로까지 치달았던 19세기로 돌아가는 듯한 우려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2000년 12월 확정한
새 방위계획에서 도입하기로 한 무기와 장비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공중급유기 4대와 경(輕)항공모함급 호위함 2척이 도입되면 일본
공군과 해군은 일본 안보를 지키는 수준을 넘어 아시아와 태평양 전역을 공격권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일본이 정말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자국 안보를 지키려는 21세기적 안보 정책을 갖고 있다면 왜 아시아와 태평양 전역을 공격권으로 삼을 수 있는 무기와
장비로 무장하려 애쓰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재무장이 방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일본 우파의 주장이
맞다면 당당해야할 텐데 일본은 어떻게든 공격 지향적인 군사력 증강 내역을 주변국에 숨겨 보려 안간힘을 써오고 있다는 것이다. 곧 도입할 호위함
2척의 경우도 일본 방위청은 이 전함이 헬리콥터 4대만 탑재하는 함정으로 보이게 하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갑판 밑에 설치될 큰 격납고 등은
수직 이착륙 전투기 12대까지 탑재할 수 있는 경항공모함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의 생각과 달리
일본이 주변국들과 민주주의 체제라는 공통점을 지니더라도 안보 위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대로 민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면 민주주의 체제가 일본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막아주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재무장은 북핵에 맞서 보다 강력한 자위권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의 우경화로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의 진보 사학인 와세다대 학생들마저 우파
논조를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피오지(誌)를 인용해 리포트를 내는 실정이다. 좌경화로만 치닫는 우리 운동권 학생들의 눈에는 와세다대 학생들이
어떻게 비쳐질까.
이교관 주간조선 기자(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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