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8권 제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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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8권 제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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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36-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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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愛煙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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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金炳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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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문예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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碩學 宋時烈의 詩에『東方有一草, 徒漆五腸明』이라 햇고, 또 仙源 金尙憲은
愛? 溪谷을 不禁吸煙」이라하여「建白於上」하엿다는 기록이 잇는 것이며, 또「植山洪山林門置煙具於十里之外」라 햇스니, 自古로 우리 조상들이 吸煙을
얼마나 警戒햇슴을 가히 알만하다. 그런고로 自古로 名門, 巨族의 훌융한 양반의 가문에서는 이 吸煙은 거이 절대적으로 禁해오든 것이엿다.
이러한 관계로 나도 幼少之時에는 점잔은 家閥밑에서 吸煙이라고는 통여 몰으고 잇섯다. 그러다가 지금에서부터 32년전,
바로「乙巳條約」이 締結되여지는 때, 時局이 급변하는 통에 그만 머리를 깍거버리고 읽든 책을 집어 치우고, 홀몸으로 木浦에 나와서 지금으로
論之하면 學院 비슷한 것을 설립해 놓고 외국어를 배운다, 法律學을 배운다하며 한참 떠들든 때에 비로소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게 되엿섯다. 그 해가
바로 18세되든 해이엿다. 그 당시에는 어떤 담배가 잇섯느냐 하면 지금 젊은 사람들은 일홈도 몰을「히로」〈74〉라는 담배가 잇섯다.
이「히로」가 소위「궐연」으로 朝鮮에 생겨나기는 맨 始初일 것이다. 그 이전에야 소위「葉草」라고 해서 各其 農家에서 자유로 栽培해 먹는 것
뿐이엿다. 18歲時 木浦에서 「히로」한갑을 사서 피우게 된 것이 내가 오늘날까지 무릇 30여넌간 吸煙하게 된 첫 동기라면 동기엿다.
그때에 나는 웨「히로」한 개를 쭉 뽑아 물고 豪氣스럽게 피웟느냐하면 거긔에는 아무런 이유도 업다. 다만 새로운 것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에서
엿다고나 할 것이다. 어찌되엿건 「담뱨」라는 것은 이상한 물건이다. 하루종일, 거저 맛없이 뻑뻑 빨아서 연기를 한 목음씩 내여 품어야 별
神通스러울 것이라고는 하낫도 없고 또 별다른 취미나 맛도 없으련만도, 먹는사람 자신도 웨 피우는지를 모르게 작구 피우게 되는 것이 이놈의
담배인줄로 안다. 그 당시 한개의 「히로」를 피우게 된 뒤부터는 어쩐지 自然 繼續해 매일같이 피우게 되엿스니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吸煙」에
아무런 취미도 有益도 필요도 발견치 못햇다. 그러타고「안됐다! 이놈은 期於히 끈허버려야 하겟다!」하는 절실한 不快感도 가저 본적이 업섯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고 십다. 그러면 웨 피우느냐? 거긔에는 아무런 대답도 準備치 못햇다. 「그저 어쩐지 작구 피우구만 십다」하는 것이다. 여긔에 吸煙의
魅力이 잇고, 야릇한 情趣가 잇는 것갓다. 그 뒤 내가 東京에 건너가 學校에 단이든 때, 당시의 學友로 安在鴻, 曹晩植, 宋鎭禹, 金性洙등 여러 사람들이 합의하여 「禁煙會」를 조직한 일이 잇섯다. 그
會의 要旨로 말하면 아무런 필요성도 업는 吸煙를 절대 嚴禁하여, 경제적으로 浪費를 없이 하자는 것 이엿다. 학생의 몸으로 잇든 우리들의 행동은
퍽 좋은 동기여서, 一時는 회원이 약 〈75〉 60명 갓가히 되엿고 나는 그 會의 幹事로까지 잇서서 徹底히 禁煙 第一線에서 활동하든
몸이엿다. 한동안은 각 회원들이 熱心으로 約束을 履行하드니 1년반이 못가서 犯則者가 많이 생기게 되여 結局 남은 사람이라고는 처음 發起하든
우리 70명박게는 안 되엿다. 그래 勢不得己하여 마츰내 1년반의 자취를 남기고 會는 해산해 버렷섯다. 그 뒤에도 우리 멧 사람만은 약 2년간을
禁煙으로 내려왓섯다. 그 동안에 처음 멧번은 퍽 담배가 먹고 십드니만 그것도 度를 넘으니까 담배 생각이 그리 나지 안헛섯다. 그리다가 학교를
맛추든, 禁煙爾來 3년이 되든 해 여름, 學帽를 버서버리고 東京驛 停車場에서 歸鄕의 차에 오르든 때에 비로소 담배 한 갑을 사서 피워 물엇섯다.
비록 3년간이나 끈헛다 먹는 담배엿만 그때의 맛은 아직도 전날의 香薰이 그냥 남어 잇는 듯한 快感이 들든 일이 아직도 이처지지
안는다. 그런 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每日 담배를 두 匣式은 으레히 피우게 된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나는 담배를 퍽 즐기는
사람으로 되여버리고 말엇다. 그러나 아주 독한 담배는 못피운다. 그것은 始初부터 葉草를 몰으고 「히로」를 배우기 시작햇든 관계로. 그럼으로
지금도 비교적 싱거운, 「朝日」갓흔 담배를 늘 피우게 된다. 하루에 「朝日」두 갑, 個數로 40本, 이만하면 퍽 피우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담배피우는 맛도, 취미도 몰으는 사람이지마는, 간혹, 무엇을 곰곰히 생각하는 때이나, 밤 깊이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갓흔 경우에는 한참씩 腦를 썩이다가 담배 한대를 피워물면 맥혓든 생각이 술술 풀어저 나오고 정신이〈76〉 건듯해지는 快感을 늣끼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얼마마한 효과가 잇는지는 甚히 疑問이다. 한갓 사람의 그릇된 감각이 가저오는 快感이라고나 할 것이다. 사실 담배는
몸에 利로운 점이라고는 털끗만치도 업는줄 알고도, 또 쓸데업는 習慣일넌지도 몰은다. 허나, 한번 배운 吸煙을 구태여 끈흐랴는 안탁가움은 조금치고
업슬뿐 아니라 끈허버리고 십지 안흔 나의 심정이 結局은 愛煙記의 이유가 될넌지도
몰은다.〈77〉 〈74-77〉
잡지명 |
삼천리 제8권 제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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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8권 제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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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36-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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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愛煙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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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徐廷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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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문예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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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떤 종족이든 통터러 보아서 成年에 이르러 「담배」를 먹지안는 사람은 퍽
적다고하야도 과언이 아니다. 이만큼 담배와 인간과의 관계와 그 역사는 퍽 길다. 내가 담배를 시작한 동기는 퍽 평범하니 즉 남들이 먹으니까 나도
먹엇다. 그런데 먹게되고 보니 거기에 自然 愛着을 늣기게 되엇고 지금은 담배를 먹지 아니하면 못견딀만큼 한 習性을 갓게
되엇다. 「술」이나「담배」는 의학상으로 보아 그다지 인체에 유익하지 안흐나 그럼에도 불구코 이것을 嗜好하는 것은 그 두 가지가 모다
社交性을 多分이 가지고 잇는 緣故이다. 내가 담배를 먹게된 이유를 억지라도 붓처본다텬「모든사람이 모다 먹는데 내 혼자 그〈77〉圈外에 서서
안먹는다면 그만큼 인간으로서의 孤獨을 늣길 것이다.」이것이 나의 吸煙에 대한 유일한 이유가 된다. 그럿치 안허도 孤獨을 늣기는 나로서 이것까지
孤獨圈內에 잇서서야 될 말인가! 그래 내가 22,3歲 때에 吸煙을 시작한 뒤로 지금이 60이니 37,8년간을 계속하여 왓기 때문에
第二天性이 되고 말엇다. 사람의 습관이란 實로 무서운 것이다. 지금 내 생활에서 이「담배」는 뺄 수 업는 뚜렷한 존재가 된다. 生活方針 編成에는
卽 家計에서는 煙草代라는 項目이 編入되는 것이다. 이리고보니 여기에서 비로소 煙草의 ?能이 세워진다. 與人接客에는 물론, 食後에는 반드신 한
목음 빨어야 精神이 爽快하고 口味가 돈다. 안 먹으면 엇잰지 섭섭하고 입속이 텁텁함을 늣기는 것이다. 과연 古人이「食後에 第一味」라고한 말의
진리와 그 심경을 이해할 수 잇다. 그 외에 마음이 울적할 때 담배를 피우며 스스로 마음을 가라안치고, 속이 상할 때도 이것으로 慰安을 밧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오 우리가튼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자면 고달푸고, 辛酸하고 痛怨하고 서굽푼 때가 만흔데, 이것을 꾹 참자면 나는 먼저 담배의
효능을 늣긴다. 더구나 쓸데업는 생각 卽 잡념, 忘念이 일어날 때 담배 한대를 피어물고 庭園(?)으로 거릴면 이 忘念이 銷却되곤
한다. 더구나 나가티 老年에 잡어들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잇는 不昧症에는 이 담배의 효능이 자못 크다고 안흘 수 업다. 萬?가 고요한 寂寂한
三更에 귀뜨램이소리 창밖에 외로히 들일 때 世事를 생각하고 輾輾反側 잠못드러 애태울 때에 이 담배는 고요히 내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고마운
벗(友)이다. 또 무엇을 골똘이 생각할 때, 너머 지나치게 골똘하면 고만 생각이 맥킬때가 잇스니 그런 때 이 담배를 피어 混迷한 知覺을 剌戟시켜
올바른〈78〉생각을 끄집어 내이곤 한다. 이런 것이 모다 담배를 먹게 된 뒤로 오랜동안 내려오며 지내 본 습관으로의 효능을 발견한 것이다.
녯날 朝鮮 사회에서는 이「담배」를 에워싸고 별별 사실이 그 역사를 繡노왓 든 것이다. 이 담배라는 것은 평등한 처지에서만 상대하야 피우게
되는 것이다. 나적은 사람이 어룬앞에서, 下官이 上官 앞에서, 賤한사람이 尊貴한 사람 앞에서, 상놈이 兩班 앞에서, 敢히 담배를 못피우는
것이다. 이것이 오랜 역사를 꾸며오는 동안에 한 美德으로까지 보아지게 된 터이니 다시 더 말할 것이 무엇이랴! 그래서 位階, 處地, 身分이
평등하여야만 상대하야 피우기 때문에 往往히 波瀾을 지어내고 또는 疏隔도 비저내고 하엿든 것이다.(지금은 그럿치 안치만) 侍生이 尊丈 앞에 담배를
피우면 그것은「호래자식」의 버릇이오, 父執 앞에 담배를 피우다가는 큰 逢變과 悖子의 칭호를 못 免하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끼리도 이로 인하야
잘못하는 경우면 絶交를 하게된다. 그뿐인가 내가 자진하여 담배를 피우기에는 좀 거북한 사정인데 저편에서 피우라고 담배때를 내노코 친히
담배를 담어주면 그만큼 「그」가 「내」게 대하야 친절하고 다정하게 하여주는 것으로 생각되어 퍽 고맙고 감사한 생각까지 가지게 되지만 그와
반대라면 퍽 주저넘고 傲慢하게 생각되고 제까지 것이 지위가 좀 놉다고 이러케 생각케되어 平時에 다정하든 사히도 이것으로 틈이 버러저 疏隔을
지어내게 되는 것이다. 左右間 「담배」와 인생의 관계가 퍽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잇섯든만큼 여러가지 부작용이 만흔 것은 누구나 다 ―
짐작할 수 잇는 일이다. 그래서 예전 行勢하든 兩班들 중에는 담배로 인한 쓸데업는 風波를 끄러, 담배를 평생 아니피운 사람도 잇섯든
바다.〈79〉 나는 담배를 퍽 사랑하고 애끼고 또 잘피운다. 하로에 2,3갑씩은 항용 피우는데 여기서 喜怒哀樂의 모든 감정을 잘 가다듬고
淸算하고 한다. 늘거갈사록 「나의 伴侶는 이 담배밖에 업느니라」고 생각키워진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잇는 담배에 대한 심경은 『細雨江亭
一味新』 그것이다. 가는 비 솔솔 내리는 고요하고 寂然한 강 언덕에 이실비 안개에 파무처 잠자는 듯 조으는 듯한 정자에 외로히 안저
世上風塵과 人間榮辱을 寂然히 잇고 향긋한 담배를 한목음 쭉빨어 후― 내품는 그 고요한 경지란 실로 한폭 그림(畵)에 비길 배 아닐 것이다. 나는
담배 피울 때마다 이 정경을 눈에 그리고 지우곤
한다.(끗)〈80〉 〈7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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