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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舞踊 十年記 - 최승희

이강기 2015. 9. 28. 09:25
잡지명 삼천리 제8권 제1호
호수 제8권 제1호
발행년월일 1936-01-01
기사제목 나의 舞踊 十年記
필자 최승희
기사형태 회고·수기

이치지도 안는 昭和 元年 3월 19일 오후, 이른 봄 한낫이 기울고 쌀쌀한 바람이 옷깃으로 슴여들 때 나는 기운업시 체부동골목을 올나간다.
『내가 웨 나희가 적엇든가 한살만 더-먹엇드면』하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집을 차자 드러가는 길이다. 나는 나히 열여섯살이 먹도록 오늘과 가티 속상하고 화가 난 날은 업섯다. 그래두 나는 오늘 오전까지도
『오냐 나의 적은 힘으로도 능히 집안을 구할 수가 잇다. 녀자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래년이나 후년이면 녀교원이 되여서 한달에 40원 이상 수입이 잇다. 그러면 나는 불상하신 우리 어머님-가여운 언니(언니는 그때 불행한 경우에 잇섯다)를 구하여 가면서 옵바들과 가티<106> 집안을 구하기에 힘쓰겟다』
이러케 늘 부르지젓다. 그러고 참말이지 그런 생각이 나는 때이면 나는 마티 력사에서 배온 『짠닥크』나 되는 것과 가티도 한업는 용기가 용소슴하고 찬란한 회망의 소유자이엿다. 그러나 오늘와서는 그 아름다운 리상이 한토막의 꿈으로 도라가고마니 나는 아현고개 넘어 사범학교마당 (지금 직업학교자리)에서 얼마나 울엇는지 몰낫섯다. 전차를 타고올 때에도 길에 걸어올 때에도 울음이 복바처서 털석 주저안저 한바탕 울엇스면 조흐련마는 그러지도 못하고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고 집으로 달니여갓다. 『참 옵바가 쌀이나 팔어왓나? 아츰에 어머님이 쌀이 업다고 걱정을 하섯는데』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집대문을 드러섯다. 방에 게신 어머님이시며 마당에 잇든 언니는 모도 다-반가워 하면서
『엇더케 됏니?』
『조-ㅁ 배가 곱흐겟니? 그래 부텃니?』
나는 여태것 참엇든 울음이 복바처 올나서 어머님 앞에서는 엇더한 일이 잇든지 울지를 아니하랴고 결심을 하엿것마는 어머님을 뵈오니 웃지나 설어운지 고만 어머니의 무릅에 고개를 파뭇고 늣껴 울엇다. 방안이 한참이나 고요하드니
『락제를 한게로구나. 그것두 다-운수지 하는 수 잇니?』
하시면서 어머님이 따라 우신다. 언니도 우는 모양이다. 나는 엉엉 울엇다. 세식구의 우는 소리가 방문 박까지 들니엿든지
『웨 그래? 웨들 그래?』
하면서 드러오는 사람은 옵바이엿다.
『얘 승희야 웨 우니? 너-낙제하엿구나. 그랫기로 울긴 웨 울어. 예끼 못생긴 것. 어서 이러나.』
근래에 업든 옵바의 명낭한 목소리엿다. 우리는 눈물을 거두엇다.
『너-낙제햇니?』
다시금 옵바는 내 얼골을 듸려다보고 싱긋이 우스며 뭇는다. 사실 나는 그때 옵바의 얼골에 떠오르는-무슨 깁분 『뉴스』나 가지고 온 듯한 그-깁붐에 넘치는 옵바의 얼골-나는 여태것 그때 그 얼골을 닛지 아니한다.<107>
『낙제는 아니야』
나는 이러케 대답하엿다. 사실 나는 백명 모집에 팔백육십명 응모자 중 일곱재로 입격이 되엇다. 그러면 그때 숙명녀자고등보통학교 졸업생 중에 우등생이 아홉명인데 내가 여덜재로 우등졸업한데 비교하면 오히려 이 사범학교시험성적이 나흔 편이엿다.
모도들 깜작 놀내는 모양이엿다.
『그럼 왜 울어?』
옵바는 이러케 물엇다.
『나희가 적으니 일년만 놀다가 래년에 올애.』
『허허허허.』
『하하하하.』
금방 방안은 우숨판이 되여 바리엿다.
『그러치 그래. 올에 드러가서 이년 후에 을종교원으로 임명이 된다고 하드라도 나희 열여덜살이니 열여덜 먹은 처녀가 엇더케 남의 집 아해들을 아르키니? 다-고만 두어라. 승희야. 자-내 이약이나 좀 드러라』
『참 옵바 쌀 팔어왓수?』
『응』
『또 양쌀이우.』
『그래 무슨 팔자에 이-ㅂ쌀을 먹것니.』
사실 우리는 집안이 몰낙한 이후 삼사년동안을 양쌀밥만 먹엇다.
『그런데 옵바가 한다든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우?』
『다른게 아니라 오늘 내가 도서관에 갓다가 경성일보를 보앗는데 말이야. 일본내지서 무용가 석정막이가 왓는데 오늘부터 이틀동안을 공회당에서 공연회를 하게 되엿다고 하며 그 끗헤 자기는 조선을 처음 왓는데 왼일인지 자기 마음에 조선에는 예술가가 만히 날 것 갓다고 하며, 자기의 무용예술을 배우고자하는 조선의 소녀가 잇으면 두어사람 데리고 갓으면 좃켓다고 하엿드라.』
『옵바 무용이란 무엇이오?』
하고 나는 옵바의게 물어보앗다. 사실 나는 고등녀학교는 졸업하엿슬망정 무용이란 엇더한 것이라는 것을 몰낫으며 물론 나는 무용을 구경하여 본 적도 업섯다. 사실 똑바른 고백이지 나는 활동사진을 구경하러 극장에를 한번도 가보지 못한 때이엿다. 다만 『무용이란 춤이거니』 이러케만 생각하엿든 것이엿다.
『무용이란 춤이지. 그러고 예술이지. 사람이 가진 예술 중에 최고의 력사를 가진 예술이지.』
그러나 나는 옵바의 대답을 해석할 수가 업섯다. 다만 나는 예술가인 옵바를 존경하니까 다만 『그런 것인가』<108>하고 배워둘 뿐이엿다.
어머님과 언니가 저녁밥을 지으러 나가신 뒤에
『얘 승희야 너-따라가고 십지 아니하냐?』하고 억개 넘어로 옵바는 내게 물어본다.
『누구를요?』
『석정막이-』
나는 옵바의 얼골만 한참동안이나 치여다보면서 아모 대답도 하지 못하엿다.
『엇잿든 네가 무용이란 무엇인 줄을 모르고는 대답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네가 그것을 배웟으면 네의 체격으로 보아서나 네가 음악을 리해하는 것으로 보아서나 네의 머리을 생각하여 보아서나 후일에 조선에 잇서서 한사람의 훌융한 창작무용가가 될줄로 나는 밋는다. 엇잿든 오늘밤 너-나하고 구경갈 생각업니?』
『가요.』

석정막 무용회의 밤-이 밤은 나의 일생에 잇서서 가장 인상 깁흔 밤이엿다. 동라(銅?)의 소리가 나자 불이 꺼지고 『제라진』을 통하야 『코발도』의 빗과 『그린』의 빗이 교착하는 가운데 무슨 곡조인지 장중한 피아노의 『메로듸』가 시작되면서 석정막씨의 독무 『囚人』이 시작된다. 쇠사슬에 얼키여 무거운 거름으로 무대를 밟는 그의 한 발자욱 두 발자욱-아-나는 그때 저것은 춤이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엿다. 나는 여태것 춤이란 깊브고 질거운 때만 추는 것이라고만 미덧섯다. 그러나 그는 지금에 무거운 괴로운 것을 표현하면서 잇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그는 그-굵은 쇠사슬을 끈코 하늘을 우러러 고개를 들고 두팔을 드러 환희를 표현하면서 무대에 걱구러지고 만다. 다시금 동라는 울니며서 『스폿트』의 광선은 꺼지며 장내의 전기는 켜진다. 그 다음-춤은 『登山』-젊은 사나희와 젊은 계집애는 놉흔 산을 치여다보면서 오르고 올는다. 그러나 끗이 업는 모양이다. 둘이는 억개를 기대이고 쉬이기도 하다가 또 오르고 오르다가 아마 산꼭대기에 다다른 모양이다. 둘이는 싱긋이 웃는다. 그러고 주저안는다. 나는 옵바의 억개에다 나의 억개를 기대이면서
『정말 나는 배워볼 터이얘요.』
하고 힘잇게 말하엿다.
『조타 그러면 가자.』
하고 대답한 옵바는 나의 손을 닛글고 무대 엽헤 부터잇는 방으로 드러갓다. 거기에는 또 한 개의 새로운<109> 세게가 내 눈압헤 전개된다. 여기저기 무데기로 노흔 춤출 때 입는 의상-테에불 우에 노흔 거울- 분, 연지, 물주전자-그러고 발가버슨 알몸둥아리의 처녀들 또 지금 막 춤을 끗내고 드러온 석정씨-그는 숨이 찬 듯이 시근거리면서 누구더러 무엇이라고 한다. 옵바는 그의게 인사를 붓치면서 나를 소개한다. 그는 나를 한참이나 건너다 보더니
『사전(寺田)씨 참으로 꿈이란 이상스러운 것이얘요. 나는 어제밤 꿈에 조선소녀라고 하는 처녀 한 사람을 맛낫섯세요. 그런데 그는 나를 작고 따라가겟다고 해요. 그래서 그러라고 하고 잠을 깬 일이 잇섯는데 참으로 이상스러운 일이 올시다. 어듸 한번 이야기하여 보아주세요. 그러고 당신은 조선에 게신 분이니까 당신이 보증을 한다고 하면 나는 다리고 가서 잘 아리키겟세요. 보아하니 자격은 훌륭함니다.』
방안에 잇는 사람의 시선이 거의 전부가 내게로 몰키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섯을 뿐이엿다. 그때 박게서 또다시 동라의 울니는 소리가 나면서 피아노와 바이오링 소리가 난다. 뒤밋처 누가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석정씨는 무대로 띄여 나가바린다. 이리하야 우리는 사전씨라는 이와 가티 지하실 식당에 마조 안게 되엿다.
『나는 경성일보(京城日報)에 잇는 사람인데 당신이 석정씨를 따라가서 무용을 배우것다고 하니 그 동기가 어듸 잇음닛까? 사람이란 무슨 일을 하랴면 먼저 그 동기가 잇을 것이고 둘재는 근거가 구더야 할 것이 아니얘요?』
이 말대답은 옵바가 죄다-하엿다. 옵바는 동경 잇을 때부터 석정씨의 예술을 잘 안다는 것과 또 그가 독일 갓다가 일본내지에 도라와서는 엇더한 정신으로 일본내지에 잇서서의 신무용운동을 한다는 것도 잘안다는 말이며 따라서 옵바는 석정막씨를 경모하고 잇섯든 차에 오늘 경성일보를 보고 나를 보고 배우라고 말하엿다는 것과 또 옵바가 나를 엇더케 본다는 것이며 또 조선에 신무용운동이란 전혀 처녀지라는 말을 하면서 될 수 잇으면 사전(寺田氏)이 잘 주선하여 가서 배우도록 하여 달나는 부탁을 하고 그러면 래일 아츰 본정 부지화(不知火) 려관에서 맛나자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도라왓다.
그날 밤 나는 고생고생 잠을 이루지 못하엿다.<110>
『내가 단신으로 그를 따라가-내가 무용을 배우면 훌륭한 무용가가 될 수가 잇을까? 그러고 제일 어려운 문제가 아버지 어머님이 허락을 하여 주실까. 도망? 아니』
『그러나 악까 옵바와 내가 공회당으로부터 집으로 도라올 때 거러온 거름은 행복과 희망을 안고서 거러오는 거름거리가 아니엿드냐?』
나는 빙긋이 나 혼자 우스면서 도라누어 잠이 드럿다.
이튼날 아츰 옵바와 나와는 어머님께 어듸를 간다는 이야기며 어제밤 이야기는 하지 아니하고 본정으로 향하엿다.
『응 어제밤 사전씨에게 이야기는 다-드렷지. 매우 갸륵한 일이야. 그러나 고등녀학교를 졸업하고 무용을 배우겟다고 하면 아버님은 좀 놀내실걸. 엇잿든 그러케 렬심이라니 더구나 음악을 조와한다고 하니 그러면 내-집에서는 무용을 아르키고 또 음악학교도 보내주지 물론 학비는 무료이고-』
아-이외에 더-반가옵고 고마운 말이 또 어듸잇으랴? 나는 깃븜에 넘치고 넘처서 눈물이 나오랴는 것을 억제로 참엇다.
『그러나 부모님 허락은 게서야 될걸. 내가 남의 집 따님을 데리고 갈 때 부모님께 부탁은 밧고 가야하니까.』
그러나 이말을 드른 나는 자신이 잇다고 생각하엿다. 그는 나를 음악학교에도 보내준다고 하엿다.

『어머니』
『?』
『나-일본내지로 갈가?』
『그게 무슨 소리냐! 엇더케?』
옵바는 내 대신 자서한 말슴을 어머님? 엿주엇다.
『난 모르겟다. 너의들이 알아 할 일이지. 그러나 저-어린 것이 일본내지가 다-무엇이냐? 그러고 아버님이 웃지 생각하시는지 알 수가 잇니?』
『아버지도 물론 찬성하실 터이지. 무어 음악학교에까지 보내춘다는데.』
『그러나 누가 아니 미들 수가 잇니.』
하시면서 눈물어리신 어머님은 또 우시기를 시작하신다. 아니나다를까 저녁 때 도라오신 아버님은 그 말슴을 드르시드니
『원 춤이라는게 다-무엇이냐? 춤이란 너-아니 기생들이나 추는 거야.』
여기 대해서 아버님과 옵바는 한참이나<111> 의론이 분분하시엿다. 아버님은 일년만 더-놀니다가 사범학교에를 보내는게 올타하시고 옵바는 조선에 잇서서 녀교원노릇은 다른 분이 하실 분이 만이 잇스니까 조선예술계를 위하야 선구자적 태도를 취하는게 올타고 하야 결국
『그러면 승희를 마터 아르키든 성선생(
성의경씨)이나 김선생( 김영환씨)을 맛나서 의론을 하여서 하라고 하야 결론이 낫다. 그리하야 옵바와 나는 숙명학교로 성선생과 김선생을 차저갓다. 김선생은
『무용도 예술이니까 상광업겟지요.』
하섯으며 성선생은
『그러지안어도 그애가 재조도 잇고 장래성이 잇서서 래년에는 교비생으로 동경로 사범학교나 음악학교에 보낼랴고 하든 차인데 부형이 그러케 하신다는데 반대야 하겟습니가마는-.』
이러한 대답이시엿다. 나는 사실 주저하엿다. 선생님들이 다-절대 찬성이 아니시기 때문엿다. 나를 10년 동안이나 아리키시고 길너내이신 선생님들이 그러케 찬성하시는 눈치가 업스실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 용기가 주러진 것은 사실이엿다.
그러나 학교의 정문을 나서서 집으로 거러오는 길에 옵바는
『주저하지 말고 나가거라. 한번 정하엿거든 겻눈질하지 말고 나가거라.』
이와 가티 나를 격려하엿다. 그러타 나는 가야하겟다. 나는 지금 옵바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올흔 말이고 옵바가 하는 행동이면 무엇이든지 조타고 생각하고 잇지를 아니하냐? 나는 가야겟다』 나는 속으로 이러케 부르지즈면서 나는 부용화 신은 나의 발길로 길가에 돌뿌리를 찻다.
『아버지 성선생이란 김선생이랑 다-찬성이얘요.』
나는 나의 하는 말이 거진말인지 정말인지도 모르면서 이러케 말하엿다.
『그러면 조타. 가보렴으나.』
『그런데 얘야 갈 때 옷은 무엇을 입고 간단 말이냐?』
눈물이 어리신 눈으로 나를 건너다 보시면서 어머님은 옷 걱정을 하신다.
『조선옷이라도 괜찬태요. 가서 양복해 준대요.』
나는 이러케 대답하엿다.
『떠나기는 언제 떠나니?』
『래일 아츰에요.』
『뭐?』
하시면서 아버님도 서어하시는 신관-<112> 어머님은 거진 놀내이시는 얼골이시다.
『그런데 오늘 밤에 어버님이 석정씨를 맛나서서 말슴을 하여 주세요. 석정씨가 아버님의 허락이 게서야 한대요.』
『응 그럴터지.』
이리하야 그날밤 아버님과 석정씨 그러고 사전씨와 옵바-나-우리는 한자리에 안저서 아버님이 석정씨의게 부탁하시는 말슴 또 석정씨가 아버님께 하시는 말슴-옵바의 통역으로 오고가고 하엿다.

오늘은 떠나는 날이다.
昭和 6년 3월 21일의 아츰 이날은 비록 이론 봄 아츰이것마는 안개가 끼이고 날이 음산하야 쓸쓸한 아츰이엿다. 우리 집안의 공기는 새벽부터 우울한 그 보다도 슲은 날이엿다. 『돈이 업서서 자식을 더-공부식히지 못하고 남의게 맛기여 보내다니』하시면서 한탄을 하시면서 담배만 태우시고 안저게신 아버님! 어린 것이 웃더케 그-먼데 가서 공부나 잘 할른지? 몸이나 성할난지 일본내지에는 방에 불도 아니 때인다는데 치웁지나 아니할른지?』 하시면서 우시기만 하시는 어머니! 그러나 옵바 혼자만이 그 기분-그 분위기를 될 수 잇는대로 명랑하게 하여보랴고 우수운 소리도 하고 아버님-어머님-하면서 일업시 부르기도 하고 안박으로 왓다갓다한다.
『우리는 가는 것이 보기 실혀서 정거장에도 아니 나가겟다.』
아버님의 말슴이시다.
경성역에 『푸라트홈』-기차는 가로 노혀잇다. 석정씨의 일행은 짐바다놋키에 분주하여 잇고 나는 창문 안-옵바는 창문 박
『가거든 편지나 자조 여라. 그러고 렬심이-알엇지!』
나는 아모 말업시 고개만 끄덕어렷다. 그러나 나는 슲엇다. 웨 그것은 나도 모른다. 아버님의 품 안을 떠나기가 설어워서? 아니-그러면 혼자 가기가 무서워서? 아니-그러면 웨? 나는 그 감정은 모른다. 다만 슲으기만 하다. 『푸라트홈』 기둥에 달니인 종이 운다. 차장이 손을 든다. 그러고 옵바는 바로 내 앞에 서서 모자를 버서든다. 그러나 저게 왼일이냐 저편 충게 우에서 어머님이 달려내려 오시지를 아니하느냐? 그러고 그 뒤에는 손선생하고 임선생이 달려오시지를 아니하느냐? 그러나 기차는 움직기기 시작한다. 그러고 석정씨는 나의 억개에 손을 언고 내여다 본다.
(以下 次號續)<113>
<106-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