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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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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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31-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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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公演舞臺에 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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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崔承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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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문예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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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우리가 자급자족(自給自足)하든 시대에는 깃브면 놀애를 부르고
춤추엇섯다. 이것이 시대의 진화(進化)를 딸아서 혹은 음악을 가지고 슲은 것을 부르지저도 보고 또한 몸으로써 슲은 것을 표현(表現)하는
춤도 추어보앗다. 이리하야 시대(時代)라는 커다란 덩어리는 음악과 무용에게 가튼 「템포」의 진화(進化)를 주어가며 나려왓다. 그러나 그러나 모든
예술(藝術)이 그 시대의 시대의식(時代意識)―민중심리(民衆心理), 생활감정(生活感情)과 똑가튼 「템포」로 나아가는 도정(道程)에 잇서서 가장
뒤떠러진 것은 나는 음악과 무용이라 할 수가 잇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누구나 다-아는 바와 가티 모든 예술(藝術)은 과거(過去)에 잇서서
유한게급(有閑階級)이나 뿌르조아의 전유물(專有物)이엿기 때문이엿다. 그러나 진화하여가는 시대라는 큰 힘은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야 모든 예술적
문화(藝術的文化)는 대중(大衆)의 생활의식(生活意識)에 반영(反映)되여 그들의 생활―그들의 압길을 해결(解決)하는 한 개의 무긔(武器)가
되엿다. 이러한 맛당히 밟아야만 할 도정에 서서잇는 음악이나 무용은 웨 아즉도 고전적(古典的)―귀족적(貴族的)―행락적(亨樂的)인 탈을 벗지
못하고 잇느냐? 이에 나는 한마듸 하고 십다. 누구는 말하기를 춤이란 선(線)의 미(美)가 잇서야 한다. 미적 감흥(美的感興)이 잇서야
한다. 그러타. 그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태까지 밟아오고 맛보아온 미적 감흥(美的感興)은 그것은 뿌루조아의 자긔도취(自己陶醉)에
충만(充滿)시키랴는데에 지나지 못하엿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을 요구하지 아니한다. 그러면? 푸로레타리아에게는 푸로레타리아의 미(美)가
잇고 딸아서 미적 감흥(美的感興)이 잇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점이 잇슬줄로 나는 생각한다. 가령 말하자면 뿌루조아는 성적 의미(性的意味)로
「레뷰」를 조와한다. 그러나 우리는 푸로레타리아의 「쁴, 파레ㅅ트」하는 것을 무용화(舞踊化)하야 그것을 보기를 요구한다. 여기에 우리들의 미적
감흥(美的感興)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 잇서서 나는 「안나, 파부로바」나 「이사도라, 당캉」이나 「니진스키-」는 발서
과거(過去)의 무용가(舞踊家)라고<62> 생각한다. 웨? 하면 그 사회(社會)의 진화(進化)를 따르지 아니하면 아모리 그 사람의 가진
예술적기능(藝術的技能)이나 기교(技巧)가 잇다하드라도 그것은 궁정(宮庭)예술이요, 개인감정보존자(個人感情保存者)에 지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타고 그사람―또는 그 예술(藝術)의 사회적존재(社會的存在)를 부인(否認)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케하면 우리는 그것을 현실과 미래를
해결(解決)할 전채운동(全體運動)에 리용(利用)할가 하는데 잇다. 그리하야 새로운 형태―또 새로운 형태(形態)로써 보존하여 가기에 힘 쓸
것이다. 자-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무용을 창작(創作)하여 나아가자면 제일 큰 고통이 음악이니 ―이것은 조선뿐아니라 나와가튼 생각을 가지고
무용을 창작하는 이라면 세계(世界)의 어느나라를 물론하고 가장 고통을 바들 것은 음악반주(音樂伴奏)일 것이다. 내 생각가태서는 아즉가태서는
무음악무용(無音樂舞踊)이란 초창시대(初創時代)에 잇는 만큼 어린이니만치 음악반주에 고통일 것이다. 웨 그런고하니 여태까지의 음악(音樂)이란 악까
말한거와 가티 대부분이 고전적(古典的)―귀족적(貴族的)인 때문이다. 여기에 고심이 잇는 것이다. 그럼으로 내가 언제인가 어느 신문에다가도
말한바와 가티 조선에도 조선의 현실(現實)을 정시(正視)하야 진정(眞正)한 의미의 대중적 작곡가(大衆的作曲家)가 생기고 그런 후에야 그러한
무용운동(舞踊運動)도 쉽사리 효과(?果)를 나타내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잇서서 나의 제3회 창작품(第三回創作品)중에 『그들의 行進』가튼 것은
상당히 고심하엿다고 생각한다. 끄트로 한마듸할 것은 「문학이나 미술이나 연극으로는 그런 것을 표현(表現)하고 지도(指導)할 수가 잇지만
춤을 가지고 어떠케―」― 만일 이러케 누가 나의게 무르신다면 몸을 움지기여 맨드는 춤을 가지고도 질거운 것을 표현할 수가 잇고 또 슲은 것을
표현할 수가 잇는 것이 사실인 것만큼 「자―이러케 우리가 슲으니 우리는 이러케 그 슲음을 해결(解決)하자는 것을 표현치 못할 리가 업다고
생각한다. 이리하야 무용(舞踊)예술도 그들로부터 탈환(奪還)하여야 할 것이라 우리는 탈환하고야 말 것이다. 그러고 더욱이나 조선엔
신무용운동(新舞踊運動)의 력사(歷史)가 업섯드니 만큼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의식아래에서 무용예술운동(舞踊藝術運動)을 하여야 할 것이다.
―(끗)―<63>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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