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삼천리 제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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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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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3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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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佛蘭西, 獨逸, 露西亞 國歌 - 파인 김동환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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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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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문예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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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유」(佛蘭西) -La Morreillaise-
파인
譯
1 자 어서 이러나라 국민들아 깁-분 우리 날이 왓단다 끗침업는 暴惡과 올니다는 피의 軍旗(두 번
불는다)
들니잔느냐 虎狼의 부르지즘 너의들의 산천으로 너의들의 집으로 달려와 너의 자식을
잡어간다.
이러나거라, 國民아 쥐어라 칼자루 나아가자, 나아가자 너이의 산천으로 찔너라 적군의
피를
2〈57〉
野蠻아 叛徒야 盟主야 무엇을 네 바라느냐 몃천년 가라를 오든 칼끗은 누구 때문에(두 번
불는다)
모르느냐 그네는 우리 우에 怒해라 그 暴惡에 奴隷를 만들려 드는 우리를 치자는
원수들이라(后念同)
3 보아라 이놈의 남의 나라가 우리의 산천을 먹을련다 보아라 이 용병의 주죄에 처마슨단다
우리의 武勇을!(두 번)
보지안나 머리에는 탈 손에는 쇠사슬 凶惡한 임군이 오련단다 우리의
前途야! (后念同)=이하 4, 5, 6, 7절 略=원문
國歌! 그것은 실로 그 나라 국민의 정신과 용기를 한데 뭉치어
고무하는데 놀라운 힘을 가젓다. 그러기에 국기잇는 곳에 굿굿한 國歌가 끈칠 사이 업시 흘너서 애국적 정신을 늘 환기하고 잇는 것이다. 그중에도
이 佛蘭西國歌인 「말세-유」는 그 가사가 조국을 위하는 至誠에 끌고 激越한 旋律이 全 국민의 가슴을 치는 점에 잇서서 전 세계에 冠絶하다고
공평이 잇다. 이 노래의 기원은 佛蘭西 혁명시대 즉 1792년에 루이 16세가 墺太利에〈58〉 宣戰을 布告하엿다. 그대 「스트와쓰, 부륵의
수비 때문에 아직 만혼 수호군이 필요하엿다. 그때 싸홈에 나가기 실허하는 *兵忌避者에 분개하야 工兵大尉 도리-슬」Do. Lisle)씨가 그
志氣를 고무하기 위하야 즉시 붓을 잡어 이 노래를 지엇다. 그 성악대「미루-」(Mirou*)의 작곡으로 처음에 그 軍營에서 부르고 그 다음에
전군대가 불으게 되고 마츰내 전 국민들이 즐겨 부르게 되엿다. 그 뒤 국가의 慶節이나 祭日 나 또 歐洲大戰亂가튼 전쟁이 잇슬 때마다 전
佛蘭西 국민은 이 노래를 볼너 스사로 志氣를 激하어 오든 것이다. 우리는 數萬里 隔한 이 땅에 안저 입 속으로 이 노래를 불너 보아도
무한한 감동을 밧지 안는가. 더구나 나파룬식으로 차린 불란서 청년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북을 둥등 울니고 나팔을 불며 巴里 凱旋門 아래로 肅肅然
행진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내 몸에 잠기엇든 붉은 피가 끌는 것을 참을 길이 업다. 1915년 歐洲大戰亂 때에 作家者「도,리스」의 死后
120년의 기념일에 전 佛蘭西 국민의 애모를 밧든 「리슬」의 시체는 국가의 동의로 國葬으로써 巴里 凱旋門下 奈巴翁 1세의 유골의 겻헤 뭇기엇다.
이 날 포앙카제 대통령이하 연합군총사령관과 수 만의 군대와 수 십만의 시민들은 「말세유-」를 高唱하면서 위대한 애국자 「또리루」의 시체를
移葬하엿다. 그럴세라 佛蘭西혁명사를 쓴 「카라일」은 「말세유」는 지금까지 발표된 것 중에 가장 조흔 노래엇다. 그 곡조는 깁히 사람
사람의 혈관 중에 잇는 피를 끄리고 肉身을 떨게 하엿다. 전 군대와 전 국민은 울고 볼타는 듯한 정열을 가지고 노래부른다. 또 「죽음」,
「暴君」, 「惡魔」가튼 것을 아모 것도 아닌 듯한 마음을 가지고서 이 노래를 부른다」 라고 激讚하엿든 것이다. 수 년전 巴里에 가잇든
李晶燮씨의 談片을 들어도 「말세유」의 노래가 한번 터지면 巴里의 전 시민은 그만 如狂如醉하여 快呼를 부르며 和唱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돌연
일체식히는데 그 이상가는 효과가 업슬 듯 하더라고 한다.〈59〉
라인의 직힘(獨逸) -Die Wachtam
Rhein-
제 1절
울니는 저 소래 우뢰소리냐. 총검소리야 파도소리냐. 라인에 라인에 독일의
라인에 이 강의 수호자는 누구냐.
(后念) 사랑하는 조국이여 안심하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안심하라. 견고하게
忠實하게 라인의 수위는 되엇다. 견고하게 忠實하게 라인의 수위는 되엇다.(이하 4節 略-원문)
독일 국민의 격정적 열성을 가마
잘 표현한 독일의 「말세유」라 할 國歌다. 이것은 普佛전쟁의 결과로 「우리들은 그것을 어덧다. 독일의 라인을」의 句에서부터 시작되는 불란서의
「벳켈」노래에 되돌려 마치느라고 「라인의 직힘」을 지어 국민의 적개심을 고무한 것이엇다고 한다. 作歌者는 1840년에 「슈넥캠북거-」라는
스물한살 나는 제조업자가 지은 것이다. 뒤에 독일황제는 그 청년에게 年金 150磅式 죽을 때까지 주기로 하엿스나 이 천재는 불행히 30으로
새상을 때나고 말엇다. 歐州戰亂 때 이 노래가 얼마나 독일 국민의 사기를 激勵하엿슴인가 함은 더 무를 여지업스리라.〈60〉
자유의
露國은 왓다 -(勞農 露西亞 新國歌)-
天地間 위대한 露國은 나타낫다. 끗업는 한 바다가치 힘잇는 나라로 잠기엇든
안개를 업새버린 勇土는 장하다. 자유의 露國이 이제 오고 말엇다.
天地間 위대한 露國은 나타낫다. 山川이나 바다나 田土
우에 우리는 자유롭다 우리는 행복스럽다. 우리 압헤 날은 밝기 시작한다.
혁명 후 즈아 帝讚美하든 녯 露**歌를
개작하자는 의론이 이러나자 여론은 이를 자유의 시인 「바리몬도」씨에게 依囑하라고 부르지젓다. 그때 시인 「바리몬도」씨는 快諾하고 붓을 들어 지은
것이 즉 이 노래다. 작곡자는 樂壇의 대가 「그레지아줍」씨이다. 번역이 日譯의 重譯이기 잘된 것 갓치 안타. 다만 대의만 따주면 조겟다. 그
박게 美國, 英國, 中華民國등의 각국 歌는 來號에 계속하여 실겟다. -1930, 5,
22-〈61〉 〈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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