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記事를 읽는 재미

민족사의 2대 황금기를 연 羅唐연합과 韓美동맹

이강기 2015. 9. 30. 11:12

[기자클럽] 민족사의 2대 황금기를 연 羅唐연합과 韓美동맹

 

월간조선 2004년 1월호
 
왜 한국인은 평화와 번영을 가능케 하였던 金春秋와 李承晩에 감사해야 하는가
 
趙甲濟 月刊朝鮮 대표이사 (mongol@chosun.com

민족사 최대의 사건

 7세기 말, 신라가 唐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중에는 한반도 지배를 노리는 唐과 결전하여 승리함으로써 한반도를 한민족의 활동공간으로 확보한 것은 민족사 최대의 사건이다. 여기서 한민족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꽃피운 문화와 예술이 민족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전승되어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신적 토양이 될 수 있었다. 신라통일 1300년 후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건설이 가능했던 것도 민족통일 국가의 기반이 있었던 덕분이다.
 
  이 羅唐동맹은 東北亞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다. 두 나라가 손을 잡고 敵國들을 멸망시키고 일본과 渤海(발해)를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唐은 신라로부터 한반도에서 쫓겨나 자존심이 상해 통일대왕 文武王이 죽었을 때는 조문사절도 보내지 않았으나, 발해가 등장하자 신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신라가 이에 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동맹관계가 복원되었다.
 
  唐은 세계 최대의 제국에 도전했던 신라를 존중하여 唐 지배체제下의 東北亞뿐 아니라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西域)으로까지 신라인들이 퍼져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로써 신라와 신라인들은 「민족사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사의 중심부에서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 원동력은 공동의 敵을 상대로 양국의 군대가 함께 피를 흘렸다는 血盟관계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 北京대학 역사학과 王小甫씨의 최근 논문 「8~9세기 唐과 新羅 관계」에 따르면, 羅唐연합군이 663년에 백제 부흥운동을 지원하러 온 倭의 대함대를 白村江 하구에서 전멸시킨 다음에는 일본과 신라의 관계가 逆轉(역전)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먼저 통일국가를 세운 신라를 배우기 위하여 遣新羅使를 대규모로 보냈고, 사신이나 승려들을 唐으로 보낼 때에도 신라 사신의 보호 아래 入唐하도록 하였다. 일본의 사신과 승려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때에도 東北亞의 制海權을 쥔 안전한 신라 배를 탔다.
 
  王小甫씨는 『唐과 신라의 관계는 東아시아 전략의 균형을 이루어 국제정치가 거의 200년간 평화국면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 200년간은 아시아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전성기였다. 이 전성기의 번영이 羅唐연합에 의하여 유지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분단의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도처에 진출하여 민족사 제2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원동력도 韓美 혈맹 관계이다. 6·25 전쟁과 베트남戰에서 두 나라 군대가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싸우면서 함께 피를 흘렸다는 이 기억이 지금까지도 韓美 우호관계의 기초인 것이다. 
  
  
  金春秋와 李承晩
 
  미국과 唐은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을 뿐 아니라 너그러운 나라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나라는 젊은이의 피로써 신라와 한국을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거대한 시장을 한국인들에게 개방해 주었다. 신라와 대한민국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동맹국을 잘 고른 것이다.
 
  羅唐연합을 성취시킨 金春秋와 韓美동맹을 이룩한 李承晩은 민족사의 2대 황금기를 연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관이다. 羅唐연합에 의하여 신라는 唐과 신라를 합친 것만큼 강해졌고, 대한민국은 한국과 미국을 합친 것만큼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민족사의 두 차례 황금기를 만든 羅唐연합과 韓美동맹. 그런데 韓美동맹은 지금 金正日과 그에 굴종하고 추종하려는 세력의 선동에 의하여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동맹의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좌파적 對北정책을 추진하여 韓美동맹에 금이 가게 만든 金大中·盧武鉉 대통령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세력은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와는 원수가 되겠다고 하고,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집단과는 친구가 되겠다는 이들이다. 金·盧 두 사람은 이들의 세력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잘 교화해야 할 민족사적 책무가 있다.●
월간조선 200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