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抗議 갓지 안흔 抗議者에게 - 月灘

이강기 2015. 10. 1. 13:30
잡지명 개벽 제35호
호수 제35호
발행년월일 1923-05-01
기사제목 抗議 갓지 안흔 抗議者에게
필자 朴月灘
기사형태 문예평론

돌을 들어 수면을 티니 풍덩하는 소리가 나는 찰나에 漣波는 흔늘니고 泡鳴은 용소슴친다. 휘도라 오는 가을 바람이 나무가지에 부듸치니 우수수 떠러지는 입새는 따우에 가득하다. 외인편 손을 들어 오른편 掌心을 따리니 아무러한 소리 업든 두 손 새이에는 딱 하는 울님이 일어나며 잠잠하든 공기를 한 번 흔들어 놋는다. 여긔에 사람이 사는 멋이 잇는 것이다. 이 곳에 사람은 울고 웃으며 이 곳에 사람은 싸호고 성낸다. 만일 사람 사는 세상에 이 멋이 업섯드라면 퍽도 蕭條하고 퍽도 적막하고 퍽도 무미하얏슬 것이다. 薄學淺識이 감히 評筆을 달닌지 1月有半 져윽이 그 駁論 업슴에 無聊햇더니 다행히 金億氏의 항의제출을 개벽 2월호에 읽게 되엿다. 恭受拜讀 2,3회에 이르럿다. 마듸 마듸 服膺하야 올소이다 올소이다 꾸지람은 지당하시외다를 정성껏 염불하다 십히 올니고 십헛지만은 읽으면 읽을사록 그러치 아는데 엇지하랴. 金億氏 자신의 말슴과 가티 「서푼자리」도 못 되는 항의서 됨을 엇지하랴. 『항의에 대한 노력의 보수』로 『항의자 자신의 오류의 비극을 公衆에게 보이는 희극을 연출』할 뿐이다. 이 글을 答 金億 항의서라 할까 항의를 퇴각하는 글이라 할까 엇덧튼 잠도 잘 틈 업는 내 주제에 『무책임』하지 아는 책임관념이 강한 나는 머리를 극죽어리고 이 글을 쓴다.
첫재에 소위 항의서라는 글제를 본 즉 무책임한 비평이라 하얏다. 『무책임』! 『무책임』? 암만 생각하야 보아도 내가 무책임한 일은 업섯다. 비평을 할 때에 내가 무책임하게 비평을 한 일이 업섯고 비평을 한 뒤에 내가 무책임하게 한 일이 업섯다. 엇지하야 내가 무책임하랴. 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야 평할 때에 金億氏의 말슴과 가티 객관적〈72〉 태도를 취하지 안코 주관적 태도를 취하얏다. 다시 말하면 곳 全自我로써 비평한 것이엿다. 객관적 구애와 형식을 떠나 나의 주관으로써 그 작품을 맛보아 그 결점과 美點을 비판한 것이다. 내 눈으로써 그 작품을 읽고 내 관념으로써 그 작품을 평하얏다. 엇지 무책임하랴. 말동말동한 정신으로 작품을 비평하고 피가 펄펄 뛰는 내 손으로 그 글을 썻나니 엇지 내가 무책임하랴. 언제까지든지 나는 책임을 갓는다. 내 육신이 장래 10년후에 염라대국으로 갈지라도 내 혼은 길이 길이 金億氏의 작품을 평한 책임을 억만년이 되여도 지고 잇슬 터이다. 엇지 내가 무책임하랴.
그 다음 소위 항의서 본문에 들어가 『評文이 비평되기에는 너무도 내용이 가난하고 다만 한 감상밧게 지내지 아니한 까닭입니다』 하얏다. 金億氏여 나는 신경이 극히 重濁하야 감수성이 예민치 못한 까닭인지 이와 가튼 말슴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업다. 엇지하야 내용이 가난하며 다만 한 감상 밧게 지나지 안습니까. 당신의 말슴하신 대로 객관적으로 비평을 하지 안코 주관적으로 비평을 하얏다 하야 하신 말슴인가요? 그야말로 무책임한 金億氏, 남의 評文의 내용이 가난하다고 대담히 말할 때 엇지해서 그러타 하는 말을 똑똑이 해주어야 올치 안습닛가?
또 그는 『評者는 비평의 대상으로는 주관적 자기는 업시하고 객관적 자기를 내여 노치 아니 하야서는 아니 됩니다』 하얏다.
金億氏, 당신은 비평이란 의의를 알고 말슴하신 것입닛가 모르고 공연히 함부루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신 말슴입닛가. 대개 비평에는 다섯 가지가 잇다. 첫재로 擬古的 비평 둘재로 科學的 批評 셋재로 印象批評이 잇고 그 다음에 鑑賞批評과 說理批評이 잇다.
소위 擬古批評은 金億氏의 주장하시는 바와 가티 『대상의 작품을 평할 때에 주관적 자기는 업시하고 객관의 자기를 내여 놋는다』는 것이다. 멀둥멀둥하게 제 정신 잇는 놈이 자아의 주관은 내버리고 비평의 표준을 객관에 구하야 엇더한 전형 그 알에에서 비판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장 쉬운 예를 들면 英國 문학자 아뒤손이 밀톤의 『失樂園』을 비평할 때에 아리스토틀의 미학에 금한 일이라 하야 『사실이 불행하게 맞추어젓다』는 것을 결점이라 한 것이다. 그 다음 科學的 批評은 의고적 객관을 떠나 어대까지〈73〉 자기의 생각을 주로 하고 시대 인종 주위를 통하야 작품을 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 印象批評은 비평가의 생각한 바에 절대한 機威를 두어 아무런 데에 가림 업시 극히 자유분방한 태도로 작품을 논평하는 것이며 鑑賞批評은 일절의 객관 비평에서 떠나서 작품 그것을 주관으로 감상하야 그 美點을 찻고 그 결점을 찻는 것이오. 說理批評은 작품의 조코 나진 것을 설명하는 것이니 곳 鑑賞과 說理의 두 비평은 아울너 가장 진보된 근대적 비평이다. 나의 評者로의 취한 바 태도는 鑑賞 批評과 說理 批評에 의한 것이다. 시로써 울리는 金億氏가 엇지 비평의 의의를 모르실 것이랴. 마는 그래도 객관적 비평을 요구하고 십거든 주관적 비평이 밧기 실커든 지금 이 세상에서 시를 쓸 것이 안이라 17세기나 19세기 중엽으로 돌아가 작품을 내노코 객관적 비평을 바들 것이다.
또 다음에 氏는 『서푼자리도 못 되는 讀者的 偶感』 운운하얏다. 金億氏 당신은 얼마나 만흔 만푼짜리의 작자인지 모르거니와 처음 거젹자리에 떠러졋슬 때 앙앙 우는 밝안 피떵이 쩍에도 만푼짜리나 천푼짜리의 작자이엿든가요. 서푼자리 독자가 열푼 백푼 천풀짜리의 작자가 될 수 잇는 것이 아닐는지요. 그러면 金億氏는 왜 서푼짜리 독자들이 움죽어리는 이 세상에서 公衆이 보는 잡지에다 작품을 발표하셋습닛가. 서푼짜리 독자들이 보고 횡설수설하게 왜 작품을 공개하시엿든가요. 맛당히 남 보지 안는 깁흔 방에서 홀로 읊고 홀로 감격할 것이 아니오니까?
金億氏 공연히 남의 비평을 평이 아니라 偶感이니 비도의적이니 사적 편견이니 하고 떠들기 전에 먼져 그 비평을 자세히 보고 소위 항의를 제출할 것이외다. 우에도 말한 바와 가티 내가 『문단의 1연을 추억하야』란 평론을 쓸 때에 評者로의 가진 바 태도는 鑑賞批評과 說理批評이라는 입장에서 쓴 것이다. 당신의 『大同江』이라는 詩評을 쓸 때에 서정의 노래이엿스나 사람으로 하야금 앗질한 法悅 속에 취케 할만한 무드가 업스며 또한 그의 질게 하는 벼르렌의 마음 썩는 오뇌의 심뽈도 업다. 예의 그 『여라』 『서라』 『러라』가 공연히 독자를 고롭게 할 뿐이다』라 하얏다. 먼져 당신의 『大同江』이라는 시를 맛보아 감상하고 나종에 說理로 비평한 것이다. 金億氏는 여긔에 대하야 『무드는 詩想과 리듬의〈74〉합일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詩想과 리듬에 대하야 아모러한 말이 업시 무드만을 말한 것 밧게 더 의미할 것이 업지 안습니까』 질문하얏다. 金億氏, 당신의 말슴과 가티 무드는 詩想과 리듬이란 두 가지의 합일로 생기는 것이외다. 이러함으로써 무드가 업다 하면 곳 詩想이 업스며 리듬이 업다는 말이외다. 詩想이 업고 리듬이 업다는 말을 통괄적으로 무드가 업다 말한 것이 무엇이 틀림 잇는 말이오니까.
또 氏는 『그의 질겨하는 배르렌의 마음 썩는 오뇌의 심뽈도 업다』한 말을 알 수가 업스니 설명해달라 하얏다. 만일 그러케도 모르신다 하면 맛당히 정성껏 다시 설명하랴 한다. 이 말은 金億氏의 작품에서 나타난 그 경향을 내 주관으로 감상한 뒤에 『大同江』이라는 작품에 다시 비교하야 이 작품에는 그러한 마음 썩는 강한 오뇌의 Symbol이 『업다』 판단한 것이다.
또 氏는 『예의 그』란 소리가 편견적 조소의 뜻이 아니냐? 하얏다. 나는 이 말을 대답하기 젼에 먼져 氏에게 향하야 당신이 『어라』 『서라』 『러라』를 만이 썻느냐 안 썻느냐 뭇고 십다. 만일 당신이 이런 소리를 쓰지 아니 하얏다 하면 모르거니와 만이 썻다 하면 또 그 흔이 쓰는 예의 그 『이라』 어라』 『러라』가 공연히 독자를 고롭게 한다는 말이 무엇이 편견적 조소냐 말이다.
그 다음 氏가 순주관적 감정의 偶感이라 말한 『귀여운 작품』 『맘에 드는 시』 『粗作이라 함을 면치 못할 것』 『감사를 올릴 만한 작품』은 다 내 주관으로 감상하야 說理로 비평한 것이다. 또 다시 말을 되풀이 합니다마는 金億氏, 이뒤로는 자세히 남의 글을 보신 뒤에 항의를 제출하심이 조치 아늘는지요.
또 金億氏는 몃 해 젼인가 『薔薇村』이라는 시 잡지에 내가 쓴 평에 『서라』 『러라』에 대하야 그러지 안타는 변명을 하얏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불복이다. 참고키 위하야 그 『薔薇村』 2호에 언친 金億氏에 대한 내 평을 왼기여 본다. 또한 同君의 시에는 『어라』 『러라』 『서라』를 넘우 남용하기 때문에 돌이어 시의 리듬을 해롭게 할 뿐 안이라 말의 모순을 내인다. 예를 들면 『落葉』 4절 안에 『지금은 가을 흐터지는 때러라』 지금은 가을 흐터지는 하면 이는 現時 방금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미테 『때러라』 하는 과거를 부치면 이것은 과거도 아니고 現時도 아닌 것이 되여 버린다』 하얏다. 金億氏 다시 한번 참고해 보시옵소셔.〈75〉 여긔에 결단코 말의 모순이 잇는가 업는가를?
그 다음에 氏는 『대개 그의 시는 전체를 통하야 앨써 넘우 기교를 취하랴는데 큰 흠점이 잇다』는 말과 『詩想 그것보다도 말 맨들기에 고심초사한다는』 나의 평에 대하야 『사상의 표현과 기교에 대하야 말하지 안을 수 업다』 라는 제의 아레에 사상을 표현함에는 기교 그것에 의하지 안흐면 그 사상을 표현할 수 업다. 기교가 잇슨 연후에 비로소 사상을 표현식힐 수 잇다. 만일 기교가 업스면 사상 그것은 표현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썻다. 金億氏 물론 사상을 표현시키는데는 기교 그겆이 필요합니다. 사상 그만큼한 기교가 잇서야 되는 것이외다. 그러나 불행히 당신의 『가을』이라는 시에는 아무러한 사상도 아무러한 강한 울림도 업시 다만 쓸대업시 공교로웁게 억지로 아름다웁게 맨들냐는 속힘 업는 껍덕이 기교 뿐이 잇섯슬 따름이란 말이외다. 사상이라는 것은 조금도 드러내 노을 힘이 업는 微하고 약한 기교를 가졋단 말슴이외다. 다시 말하면 강한 뜨거운 사상을 표현시키는 力의 기교를 갓지 못하고 말 맨들기에 고심초사하는 언어 또는 문자의 空殼的 과중 형용뿐만을 가졋단 말슴이외다. 가령 그 작품을 생명잇는 사람에게 비교하면 엇더한 강한 사상의 把持者로 그것을 貫徹케 하는 力의 발휘자가 아니라, 아무러한 각오와 침통한 사상이 업시 다만 팔랑 팔랑하는 表的 才氣만 가진 사람과 彷佛하다는 말이외다. 이만하면 사상 표현과 기교에 대한 당신의 오해를 대답한 것이 됨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 마듸 할 것은 金億氏가 내게 보내는 소위 항의서 속에 『人間』 『洞窟』이 日本語인데 배외열이 만흔 우리 詩壇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朝鮮語로 쓰랴는 어리석은 짓을 하니 그러케 할테면 웨 日本語로 작품을 표현시키지 안코 日本語的 朝鮮語로 작품을 표현함니까 라는 당치도 아는 탈선적 언어를 發하얏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가 대답할 책임이 업는 것이다. 웨 그러냐 하면 『문단의 1연을 추억하야』란 내 비평에 대하야 불만하다고 항의를 제출한 金億氏가 얼토당토 안는 이 愚痴의 소리를 웨 내게 향하야 보낸 항의서 속에 썻느냐 말이다. 그러하나 이왕 쓰는 길에 (나에게 보내는 항의 속에 씨워 잇스닛가) 그것은 그러치 안습니다. 잘못 아시고 하신 말슴이외다 하고 말하랴 한다.
金億氏 당신께서는 『인간』과 『동굴』이라는 말을〈76〉 日本사람이 창작한 日本語로 아시엿습닛가? 기왕 그러케 아신 것을 엇지 하겟습닛가 마는 이 『인간』이란 말은 朝鮮사람으로서 기윽字도 모르는 樵竪牧童이라도 입으로 부를 줄 압니다. 무엇인고 하니 『人間七十古來稀』란 소리외다. 이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퍽 만켓지마는 朝鮮 속담으로 흔이 하는 말을 또 하나 예를 들겟습니다. 朝鮮 여자들이 성주니 터주니 불사니 하는 귀신에게 기도할 때에 『그져 어리석은 인간이라 아지 못하고 그리 햇스니 죄를 사하야 주시옵소셔 하고 정성껏 비는 소리가 잇습니다. 金億氏, 이것이 日本語일까요? 또 『동굴』이라는 말은 茶山
丁若鏞先生 (正祖때 사람)의 著 雅言覺非를 보면 알 것이외다. 잠간 인용하면 『洞者空也洞穴者空穴也』라 하얏습니다. 또 光文會編 『新字典』에 『穴』字를 차져 보면 『窟也』라고 씨엇습니다. 金億氏, 이 『동굴』이란 말이 日本 사람이 창작한 日本語입닛가? 설되게 아는 것은 아조 모르는 것만 갓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공교로웁게 생각하신 말슴과 근사하게 『아는 체한 노력의 보수로』 『아는 체 하는 자신의 오류의 비극을 公衆에게 보이는 희극을 연출』할 뿐이외다. 이로써 金億氏에게 보내는 答 항의서를 끗 막슴니다.〈77〉
〈7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