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개벽 제49호 | |||
호수 | 제49호 | |||
발행년월일 | 1924-07-01 | |||
기사제목 | 옵바의 秘密片紙, 懸賞入選文藝 소설 3등 | |||
필자 | 李箕永 | |||
기사형태 | 소설 | |||
기사형태 소설
一
날마다 학교에서 일즉일즉 도라오던 마리아가 오날은 해가 점으도록 오지 안는다. 집안 식구덜은 처음에는, 제각기 입속으로 의심하며 궁금증을 내다가, 밤이 점점 드러가니, 모다 은근히 걱정스러운 생각이 나서 무슨 일이나 잇지 안은가 하고,
『웬일일가? 웨 안 온다늬?』
하며 서로 모르는 일을 서로 뭇고 잇다.
시계가 여덜 시를 땅땅 치고 조곰 잇다가 홀연 신발소리가 자박자박 난다. 문을 탁 열고 보니 밤은 캄캄한데. 기다리던 마리아가 마루에 책보를 노코, 구두끈을 푸노라고 업드려 잇다.
모친은 기다리던이만치 반가웟스나, 애타던이만치 또한 승이 나서, 마리아가 채, 방에 드러스기도 전에 책망이 나온다.
『웬일이냐 오날은? 계집애가 웨 캄캄한데 다니늬?』
『저- 선생님이 한문을 워 오라고 하섯는데, 영순이가 제 집으로 가치 가서 읽자고 하기에- 기애는 나보다 한문을 잘 알고 해서- 따라 갓더니, 어느듯 해가 젓는데, 영순이 어머니랑, 작구 저녁 먹고 가라고 또 붓드러서 고만 느...』〈137〉
하고 마리아는 모친의 눈치를 보아가며 정신차려 변명을 한다. 그러나 공연히 울렁울렁하는 가슴은 말끗을 마초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한문은 옵바한테 뭇지는 못하늬. 옵바가 잇는데...웨 저무두룩 남의 집으로 까질느늬. 계집애가』
『옵바가 무얼 잘 가라처 주남! 두 번만 거푸 무러도, 발서 볼멘소리로 핀잔만 하며, 이 바보야! 그걸 몰나! 하고 작구 욕만 하는걸』
마리아는 반 어리광에 심술을 좀 석근 듯한 태도로, 모친의 말이 답답하다는 드시 말댓구를 하엿다.
이 말이 떠러지기 전에, 건넌방에서 안방으로 드러오는, 마루를 콩콩 구르는 신발소리가 나더니,
『무엇이 엇자고 엇재? 내가 은제 안 가라처 주던』
하고 옵바가 툭 튀여 드러오며, 독기눈을 해 가지고 주먹을 쥐고 대든다.
『누가 안 가라처 준다남! 잘 안 가라처 준댓지』
『은제 잘 안 가라처 주듸? 그것이 그 에이 주먹맛을 보고 십허서...』
『그럼 잘 가라처 주엇남!』
『그래도... 한문을 엇잿다구? 한문이 무슨 한문! 누구를 소기러드늬?』
『소기긴 무엇을 소긴대! 옵바두 참. 낼, 옥순이한테 무러보!』
하고 마리아는 긔막힌 우슴을 픽 우스며, 똑바로 뜬 눈이 외로 도라간다.
『그럼, 계집애가, 웨 밤중에 다니늬?』
『옵바는 나보다 더 밤중에도 단이지 안엇남!』
하고 마리아는 폭 찌르고 십흔 생각이 불 일듯 하엿스나,
『아! 무엇이 엇재. 이 계집애야!』
하며 후려칠가, 옵바의 주먹을 무서워 나오는 말을 꿀꺽 참엇다.
마리아는 옵바와 여러 번 싸우고, 싸울 때마다, 옵바는 리론(理論)으로 당치 못할 때는 반드시〈138〉
『계집애 년이 무슨 잔말이냐!』
하고 주먹을 휘둘럿다. 그러며 자긔는 계집애가 무슨 죄인은 안인 줄 알엇지마는, 그래도, 계집애면 엇더냐고 끗까지 항거할 용긔는 업섯다. 발서 그 소리가 나오면, 엇전지 긔가 꿀리어 상당히 할 말도 뭇하고 그대로 눌려고 마럿다.
하긴, 그는 옵바은 아니엿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도 걸핏하면,
『이년, 계집애 년이...』
하고 눈을 흘겻고, 이웃사람의 입에도, 이, 겻집애라는 말이 끈칠 때가 업섯다.
『계집애 년이 울기는 웨 우늬? 계집애 년이 까질느기도 한다! 계집애 년이 맛난 음식은 퍽 발키네!』
하는 소리는, 제집 식구거나 남의 집 식구거나, 소녀와 처녀에게, 그덜의 가장 만히 쓰는 일상용어(日常用語)이엿다.
옵바 다니는 학교는 거저 학교라 하고, 우리 학교는 반드시 녀학교라 한다. 그 언제던가. 영어를 배우는 시간에 남 선생님이 빙글빙글 우스면서 말하기를. 사람은 남자가 대표를 스지마는, 즘생은 암컷이 대표를 슨다고- 그래, 사람의 대표는 『맨」으로 하고, 소의 대표는 『카-우』로 하지, 결코 『우-멘』이나 『악쓰』라지는 안는다- 하엿다.
그 때 자긔는 얼골이 붉혀지며 (다른 아해덜도) 일종, 모욕을 당하는 듯 하야, 새삼스러히 산애로 태여나지 못한 것을 몰내 안타까워하엿섯다.
옵바는 학교에 갓다와서 뻔둥뻔둥 노는 데도 가만 내버려두고는, 자긔는 조석으로 부억 서거지 식히고, 동생 보라고, 빨내 식히고, 알들이 부려먹으면서, 무엇을 좀, 잘못할나 치면 어머니는 곳,
『계집애가 데퉁맛기두 하다! 계집애가 칠질찬키두 하다!』
하고 눈이 빠지도록 나무름를 한다. 그러나 옵바는 여간해 나무라지도 안치마는, 한대야,
『산애가 엇더타...』
고는 아니하엿다. 나무름를 들어도 거저 먹엇스면 오히려 괜치안켓다. 자긔는 그, 계집애라는 소리를 누구네한테〈139〉 듯는 『요보』와 가티 듯기 슬혓다.
한번은 하두 골이 나기에
『어머니는 계집애 안인감!』
하엿더니, 어머니는 어처구니가 업던지, 쓰듸 쓴 선우슴을 우스며
『어미 대접 잘 한다. 그러기에 나는 너만 나에, 그러케 내닷지는 안엇단다』
하고 또 『계집애가 그래서는 못 쓴다』하엿다.
『딸자식은 쓸 데 업서. 싀집가면 고만인걸!』
『그레요. 싀집 보내기 전에 실컷 부려나 먹지요! 호호』
하는 어머니와 이웃사람의 이야기를 드를 때는 계집애의 천덕구럭이가 된 까닭은 그러쿠나! 하엿고, 구약성경을 펴들고, 창세긔를 보다가, 이화가 마귀의 꾀임을 바더, 선악과를 따먹엇다는 구절을 읽고는, 또 그래 그런가? 하엿다. 그래 한번은 내뚝에서 배암을 맛낫는데 불현듯 그 생각이 나서
『요놈의 마귀! 마귀』
하고 징그립게서리 서리하고 누은 것을 돌맹이로 때려 죽엿다. 몸서리가 나지마는 이를 악물고 때려 죽엿다.
그래도 옵바가 새 옷을 입을 때는, 나도 달라고, 옵바가 새 신을 신을 때는 나도 사달라고 조르다가 그 소리를 듯구듯구 하엿다. 옵바는 무엇이던지 자긔보다 더 가지랴는 욕심구러기인 줄 알고, 어머니는 그런 줄을 알면서, 늘 옵바의 편을 드는 줄까지도 자긔는 모르지 안엇지마는 그래도 긔어코 옵바의 불공평을 타내고서 그 소리를 듯고야 말엇고, 그러면 분하엿지마는, 그래도 그래야 속이 시연할 듯 하엿다.
집안에서 자긔를 그중 사랑하기는 아버지엿다. 아버지는 좀처럼 꾸지럼을 안치마는 그 때도, 할 때에는 역시
『계집애가 그래서는 못 쓴다』
하엿다.
옵바는 아버지만 업스면 제 맘대로 횡행하엿다. 아버지가 혹시 옵바를 꾸짓다가도 어머니가 만류하면 그만 두엇다.〈140〉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듯는 것 갓하엿다. 그래서 그런지 옵바는 점점 긔승스러워 갓다. 그럴사록 옵바의 팔자가 부러웟고 그만콤 또한 옵바가 얄미웟다.
그런데 옵바는 무엇을 자긔보고 소긴다고 한다. 그러나 오날 저녁에 내가 소긴 것이 무엇인가? 길에 나스면 별별 일이 다 만타고- 더욱 서울이란 데는 부랑자가 만흔 까닭에 밤에 다니기는 위태하다- 어머니는 늘 말슴하지마는 뎐등이 낫가티 밝고 거리거리에 파출소가 잇는데 무슨 걱정일가? 그 속에 잇는 순사들은 먹고 할일이 업서서 염증이 날만치 한가한 거름으로 문압헤서 서성거린다. 비록 자긔가 녀자일망정 그런 일을 방비할만한 수단과 능력이 잇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긔를 못 미더하고 옵바는 자긔를 엄중히 단속하랴 함을 보면 다만 그런 불의의 일을 두려워함만이 아니라 자긔네에게도 무슨 못 미더운 무엇이 잇는 듯 하다.
그러타! 그러치 안으면 옵바는 웨, 밤중까지 쏘다니다 와도 아모 말이 업고, 자긔는 못처럼 한번 늣게 와도 야단일가? 그는 엇던 산애에게 꾀임을 바들가 보아서 그러는 것일가? 그러나 산애와 노는 게 웨 낫불가? 싀집가서 산애와 가티 살면서 산애를 호랑이보다 무서워함은 우수운 일도 다 만타. 드르니까 어머니와 아버지도 당초는 모르던 남남끼리 그러케 됏다는데... 하고 마리아는 속으로 픽 우섯다.
二
그 이튼날 마리아는 영순이를 만나서.
『나는 어제 아주 천덕구럭이가 되엿다』
하고 옵바와 어머니에게 걱정 듯던 이야기를 하엿다. 영순이는 눈을 둥그러니 뜨고 잠간 놀내는 체하다가 다시 얼골빗을 제대로 고치며
『무얼 우리 집에 갓섯다고 하지! 하긴 우리 어머니도 내가 늣게 도라오면 그런단다』
하고는 방끗 웃는다.
『그러지 안어도 너더러 무러보라고까지 하엿단다. 그래도 옵바는 나보고 작구 무엇을 소긴다구 그런단다』〈141〉
하는 마리아는 옵바가 지금 엽헤나 잇는 드시 눈을 할기죽 흘기며 얄미운 듯한 표정을 보엿다.
『호호호. 소기긴 무엇을 소겨. 아마 네 속을 모르닛가 그러는 게지. 그래도 너는 옵바가 잇스닛가 조켓더라』
『조키는 무에 조흐냐. 아주 심술장인데. 호호호』
『나는, 늬 옵바는 사람 조아보이더라. 산애답게. 호...』
『그럼 산애가 산애갓지 안쿠. 긔애는 별소리를 다 하네. 그러면 너두 옵바라고 해라!』
하고 마리아는 깔깔 우섯다. 영순이는 귀밋을 살작 붉히며
『억지루 옵바라면 되늬?』
하고 웃는데, 하얀 이가 보기 조케 반짝한다.
『호...의남매하지! -참, 옵바가 너보고 무러볼넌지도 모르니, 그러거던 바를대로 잘 대답해다고. 어적게 늬집에서 느젓다구! 응!』
『무얼, 나는 모른다고 할걸!』
하고 영순이는 방글방글 우스며 머리를 쌀쌀 내두른다.
『이애 그러면 나는 죽는다. 여보 영순씨! 제발 살려 줍시사!』
마리아는 절하는 신융을 하며 개개 비러 올린다. 영순이는 그게 자미잇는 드시 갈사록 새침하여지며 거절하는 모양을 보이다가, 야중에는 『그래라』하고 승낙하엿다. 마리아는 이제는 살엇다는 드시 깁붐에 넘치는 표정으로 영순의 손목을 쥐고 흔들면서 이런 말을 무럿다.
『늬 아버지한테서 요새도 편지 왓늬?』
『요새는 편지도 안 온단다』
『거긔서 늬 아버지는 첩 으더서 술장사한다지. 호호호』
『그러탄다. 아주 반햇단다』
『늬 어머니가 성내지 안턴?』〈142〉
『성은 웨...내가 아늬!』
하고 영순이는 픽 웃는다.
『무얼 몰나. 밤낫, 늬 자근어머니를 초들지. 해해해』
『초들면 무엇하늬?』
『그럼 안해. 나 가트면 쪼처가서 한바탕 야단을 치겟다!』
『누구한테?』
『둘한테다-』
별안간 영순이는 손벽을 치며 깔깔 웃더니
『너는 그럼 싀집갈랴는 게로구나!』
하며 조롱한다. 마리아는 얼골이 빨개지며
『그럼 너는 싀집 안 갈얀?』
하고 무색한 드시 달려드러 영순이를 꾀집엇다.
『아야! 아이고 압파! 나는 안 갈얀다』
『왜, 늬 어머니가티 될가봐? 호호호!』
『...산애 맘은 밋지 못한단다.』
『그래도 모도 싀집만 가더라. 아마 혼자는 다 못사는 게야?』
『설마!』
『저- 녀 선생님을 못 보늬...』
『이애 그런 소리는 왜 하니?』
하고 영순이는 붓그러운 드시, 누가 듯지나 안나 하고 사방을 둘러본다. 마리아의 가슴은 이상히 뛰여 까닭모르는 호긔심이, 작구 그런 말을 하고 십헛다. 한 살 더 먹은 영순이는 그런 말에 무슨 의미가 드럿는지, 얼골을 은근히 붉히며〈143〉 변으로 이상한 표정을 가진다. 아마 지애는 산애 속을 나보다 더 잘 아나보다 하고 마리아는 은근히 영순이를 부러워하엿다. 영순이는
너도 차차 OO의 싹이 트는 게로구나...』
하고 마리아의 속을 드려다 보는 드시 오장이 간질간질하엿다.
三
요새는 엇재 옵바의 눈치가 다른 것 갓다. 옵바 뿐 아니라 영순이 눈치도 다르다. 옵바는 그전에는 혹 늣게 도라와도 그 시간은 대중이 업섯다. 엇던 때는 밤중에 엇던 때는 초저녁에. 그리고 흔이는 엇던 동무의 집에서 저녁을 으더먹고 왓다 하엿다.
그런데, 요새는 그러케 늣게 다니는 일은 업스나 꼭꼭 해질물께 도라오는 게 이상하다.
영순이도 그전에는 각금 저의 집으로 놀러 가자고 끌러던니, 요새는 똑 따고 저 혼자만 단인다. 그러나 『네가 요새는 새 동무를 사괴인 게로구나』하고 슬그머니 노여운 생각이 나서 그런 까닭을 무러보지도 안엇다. (영순이는 문안에 살기 땜문에 자긔가 늘 영순의 집에 가 놀엇지, 영순이는 자긔 집에 놀러오지는 안엇다)
그러나 옵바와 영순이를 한태 부처 가지고 무슨 의심은 하지 안엇다. 둘의 눈치가 별안간 이상해젓다고, 따로따로 생각하다가 어느 날 저녁 잠들기 전에 언듯 『그러치나 안은가?』하는 의심이 번개불 치덧 마리아의 생각에 떠올넛다. 그래 어서 알고 십허서 조급증이 낫다.
그 잇흔날 마리아는 아츰 먹기가 무섭게 서들고 일즉 학교에 가서 영순의 눈치를 슬슬 보다가 하학 후 동정을 삷히여 살작 미행(尾行)을 부첫다.
그래도 영순이가 제 집으로 갈 줄 알엇더니, 그러치 안코 저의 집을 끼고 도러 뒤산 모통이 솔밧 속으로 드러간다. 그 속에는 자긔도 그전에 한번 동무덜과 가본 일이 잇는데 그 산마루이로 족음 올나가면 옷독한 봉오리가 잇고 사태난 흰돌 사이에는 다박솔이 다북다북 나 잇다. 사방에서 올나오게 된 곳임으로 한눈만 팔지 안으면 어듸서던지 올나오는 자를〈144〉 망볼 수도 잇고 다러나던지 숨던지 그런 비밀한 모됨하기는 다시 업슬만한 곳이엿다.
마리아는 이런 디형을 잘 아는 까닭으로 옵바의 학교에서 이리로 바로 오자면 어듸로 올 것까지 짐작하고, 저편으로 방향을 밧구어서 살금살금 그 봉오리로 올나갓다. 그러나 무슨 죄를 짓는 것 가티 가슴이 울렁울렁하야, 들키지나 안을가? 옵바가 아니면 엇지하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나서, 거름을 내걸리지 안케 한다.
『도로 갈가? 엇절가?』
하고 몃 번을 망살거리다가 여긔까지 와서 도로 가기도 무엇하다고 마음을 돌려먹고 그대로 올나갓다. 얼추 올라와서 감안이 숨을 죽이고 드르닛가 발서 잿갈잿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마리아의 호긔심은 새 용긔를 내게 하엿다.
솔포기 뒤에다, 은신을 하고 살그만이 일어서며 갸오시 넘겨다보니, 바로 그, 흰돌 위다. 옵바와 영순이는 저편으로 고개를 두고 나라니 안저서, 무슨 이악이를 자미잇게 하고 잇다. 자긔네의 비밀을 누가 알까봐 겁이 나는 듯이 둘이서, 번갈너가며 사방을 휘 둘러본다. 영순의 얼골은 빨가케 단풍가티 물드럿는데 두 눈에는 우슴을 갓득 실엇다.
옵바의 가라안지 못한 태도로 싱긋싱긋하는 표정은 무슨 불안을 늣기는 듯한 우슴이엿다.
마리아는 억개가 읏슥하엿다. 그리고 우수워 죽겟다. 그러나 무슨 이악이를 하나 드러보랴고 나오는 우슴을 두 손으로 트러막고 가만이 귀를 기우렷다.
영순이는 옵바의 등에다 손을 언지면서
『나는 당신이 보고 십허서 엇저녁에 꿈을 엇더케 꾸엇는지 몰나요! 호호...』
하고 우스닛가,
『나는 오날 도화를 그리는데 작구 영순씨 화상이 그려저요!』
하고 옵바도 하하 웃는다.
『가짓말!』
『아니요. 참졍말 참졍말이얘요?』
『저 봐! 롱담하듯. 당신은 참으로 나를 사랑해요? 녜?』〈145〉
『나는 사랑보다 큰 것을 하지요!』
『사랑보다 큰 게 무엇이오?』
『글세 무얼가요. 당신보다 더 사랑한다는 의미로...』
『정녕?』
『정녕!』
맹꽁이 울덧 그들의 밧고채기하는 소리가 마리아는 우수웟다. 자긔도
『정녕!』
하고 툭 튀여나서 한바탕 웃고 십헛다. 집에서 걸핏하면 자긔보고
『이 계집애야! 저게 사람인가 무엇인가?』
하고 욕하던 옵바가 영순이한테는 저러케 소인을 개올리고 안달을 하는 꼴이 가관이다. 영순이가 무엇을 가젓기에 저러나...하다가 마리아는 잠간 수태(羞態)를 먹음엇다. ...
『옵바! 나보고 계집애라고 그러더니, 이게 웬일이요? 영순이는 계집애 아니여요?』
하고 옵바를 실컷 떠들어 주고 십흐니만콤,
『이애 영순아! 너는 싀집 안 간다더니 이게 무슨 짓이냐?』
하고 영순이도 톡톡이 무안을 주고 십헛다.
자긔는 옵바한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드럿는데 영순이와는 언제 그러케 친해젓나? 하는 생각이 나자
『이애 영순아! 웨 우리 옵바를 네가 빼서가랴고 하니?』
하고 쪼처가서 영순이를 떠박질르고 십흔 시긔도 나고
『옵바는 영순이를 사랑하노라고 나를 그러케 박대하엿구먼!』
하고 옵바도 주장질을 하고 십헛다.
그러나 옵바는 자긔를 영순이가티 사랑하지 못할 무엇이 잇는 줄을 알엇다. 그 언제인가! 영순이가 옵바보고〈146〉 사람 조타고 부러워하기에
『그럼 너도 옵바라고 해라!』
하엿더니 영순이는 빙끗 우스며
『억지로 옵바라면 되니?』
하던가. 그와 가티 자긔도 억지로 옵바의 사랑을 바드랴면 될 수 잇다? 하엿다.
이런 생각이 마리아의 심중에 떠오르자 별안간 실심해지며 무엇을 일허버린 것가티 서운해진다. 앗가까지 오르던 호긔심도 스스로 풀리며 전신에 맥이 하나도 업다. 마리아는 실음업시 발길을 돌니며
『남들의 자미잇게 노는 것을 훼방놀 까닭이 업다』
고 하엿스나 그보다 큰 원인은 흥미가 떠러저서 그러케 할 욕긔가 업서젓다 할 것이다.
『나는 누구...』
하는 생각이 마리아의 가슴에 잠기자 저의 거름은 안 걸리고, 고개는 점점 숙어젓다. 봄 해는 어느듯 서천에 기웟는데 이 집 저 집에는 살구꼿이 만발하엿다. 뒤산 솔밧 속에서는 벅국새 우는 소리가 처량히 들닌다.
四
그 후 한달만이던가. 마리아의 아버지는 여러 날 출입을 하고 업는 까닭에 사랑방은 옵바가 통으로 차지하게 되엿다. 어느 날, 식전부터 빨내를 서들던 날이다. 옵바는 아즉 일어나지도 안엇는데 어머니가 옵바의 새 옷을 다려주며 옵바 갓다주고 헌 옷을 드려오라 하엿다. 빨내삼는 데 가티 삼는다고 함이엿다. 마리아는 옷을 바더 가지고 사랑에 나가보니 옵바는 정신 모르고 그저 잔다. 코를 꼭 쥐여서 잠을 깨우랴다가 또 식전 욕이나 실컷 어더먹을가 무서워서 새 옷은 머리맛헤 놋코 방 한가온대 아무러케나 버서 논 옷을 주섬주섬 개키는 판이다. 조끼 세간을 새 조끼 주머니에 옴기랴고 모다 끄내노코 보니 별 것이 다 드럿다. 지갑, 도장, 인단갑, 만년필, 수첩, 편지 등 물이 우그르한데 『초코레-트』라는 양과자도 드럿다.〈147〉
『이건 영순이 줄라구 산 게로구나!』
하고 마리아는 빙긋 우스며
『나는 눈깔사탕 하나도 안 사다주더니...』
하며 자는 옵바를 보고 눈을 흘기엿다.
다른 세간은 다 집어느코 편지를 가조런이하야 집어느랴 하는 판인데, 웬 족음만한 하얀 양봉투가, 그 속에 끼여잇는 모사리가 내보인다. 이게 뭔가? 하고 쏙 뽀바보니 거긔에는 석죽화 한 가지가 곱게 그려잇고, 그 속에는 무엇이 드러잇다. 거죽에는 아모 것도 안 썻스나 그 속에 든 것은 영낙업는 편지 갓다. 마리아는 호긔심이 나서 그 속을 보고 십헛다. 살작 도라안저서, 연해 옵바를 도라보며 속 조희를 빼 보앗다. 그래도 들킬가 겁이 나서 대강만 보앗는데 양지에다 펜으로 참깨가티 주어박어서 세세성문한 만지장서이다. 그는 대개 이러한 사연이다.
허두에다 바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해노코는 「만일 당신의 품에 안기면 나는 얼마나 행복일가요! 그는 동서고금의 사전(辭典)을 뒤저 봐도 말로는 형용할 수 업겟지요」하는 허풍을 치고서
『텬사가티 아름다운 당신이여! 나는 당신이 보고 십허요. 당신을 보지 못하면 나는 이 세상에 살 수 업서요. 당신은 나의 생명의 신(生命의 神)이여요! 당신은 나를 죽이던지, 살리던지 나의 생명은 오즉 당신에게 맷기나이다. 한강철교에서 떠러지릿까? 청량리 송림에다 목을 매릿가? 아니지요! 당신가티 사랑이 만흐신 이는 결코 그러실 리가 업겟지요! 당신은 청춘이외다. 청춘은 청춘끼리 사랑할 수 잇지 안어요! 당신은 무엇이 그리운 것이 업나잇가! 나는 울어요! 당신을 보고 십허서- 당신은 나의 눈물을 씻겨 주시럄닛가? 안 주시럄닛가? 꼿은 우서요. 달은 밝어요! 새는 노래하구요! 바람은 서늘하지요! 그러나 날 가고 달 가고 봄 가고 사람은 늙어요! 청춘은 늙어요! 오! 나의 사랑하는 당신이여! 당신은 엇지하시럄닛가?...』하는 울고 웃고 하소연하고 설은 사정한 달콤한 염서(艶書)이엿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끗헤다 쓴 『나의 사랑하는 옥진(玉珍)씨의-』라 한 편지 바더볼 임자의 일홈을 보고, 마리아는 소소라처 놀내지 아니치 못하엿다.〈148〉
그는 옥진이란 아해는 마리아와 한 학교에 다니는 까닭이다. 자긔보다 한 년급 압선 얼골 곱상스럽고 새침한 아해엿다.
마리아는 편지를 얼는 집어느코 젼대로 해서 새 조끼에 너은 후에 헌 옷을 가지고 안으로 드러왓다. 아츰을 가티 먹을 때 옵바의 얼골이 다시 처다보인다. 옵바는 자긔의 비밀을 알 자가 업스리라고 확신하는 듯이 평시와 다름업시 밥을 먹고 안젓다.
마리아는 옵바의 모순이 우수웟다. 허위가 얄미웟다. 례배당에서는 가장 정성스러운 듯이 긔도를 올닌다. 그는 뭇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또는 죄를 짓지 말게 해달라고, 죄를 짓거던 회개하게 해달라고, 간절이 비는 말이엿다. 그런데 영순이를 그러케하고 옥진에게 그런 편지를 쓰는 것은 죄가 되지 안는지? 회개할 생각은 꿈에도 안는 모양이다.
자긔를 계집애라고 구박하는 것은-어머니도 그런 긔도를 올리고 리웃 신자들도 그런 긔도를 올리고서 저의 집에서는 각각 그러닛가- 특별히 옵바만 말할 것은 아니라 하더래도 그 언제 청년회에서 토론을 할 때이다. 토론문제가 남녀동등이 가할가? 부할가? 한느 문제일 때, 옵바는 가편에서 열변을 토하엿다. 그 때 자긔도 손바닥이 깨여지라고 박수를 하다가, 문득 옵바의 행동과 말이 남극과 북극가티 상반됨이 생각나서
『저런 말이 어듸서 나오나! 뻔뻔두 하다』
하고 흉보앗섯다. 그래도 또 이런 일이 잇슬 줄은 몰랏다. 영순이를 영원히 사랑한다 하고 불과 한 달에 또 이런 편지를 옥진이에게 쓰고 자긔보고 소긴다더니 도리여 이러케 소기는 일이 잇슬 줄은.
마리아는 영순이의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남자의 맘은 밋지 못한다』고 하던 말이. 영순이는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하고 옵바에게 속던 것이 어리석지마는 또한 불상하다 하엿다.
옵바가 영순이를 엇더케 친햇나 하엿더니 인제 보닛가 그런 편지로 하엿구나! 옥진이도 미구에 그 편지에 떠러지고 그 후에는 또 세 번재 그런 편지를 쓰리라 하엿다.
옵바는 밤에 늣도록 불을 켜고 책상 압헤 안젓기에 그래도 공부는 한다 하엿더니 이제 생각해보니 그런 편지〈149〉 공부를 한 것이로다. 그러나 옵바는 글을 잘 쓴다는 이보다 얼골이 잘 생겻다. 영순이가 반한 것도 아마 옵바의 풍채에 떠러진 모양이다.
「인물 잘난 우리 옵바는 색마(色魔)요.
청보에 개똥 싼 것은 우리 옵바요.
동무님네! 미남자에게 속지 마시요!」하고 마리아는 신문에 광고라도 내고 십헛다.
五
그후 마리아는 또 옥진이를 정탐하엿다. 흐르는 세월은 어느듯 사월도 다 가는 마주막 날이다. 마리아는 그전에 영순이를 따러서던 솜씨로 옥진의 뒤를 밟엇다. 아니나 다를까! 옥진이는 그 솔밧 속으로 사러저 드러갓다. 마리아는 또, 호긔심이 나서 그때와 가티 산말낭이로 올라가 보앗다. 옵바는 발서 와서 기다린 지 오랜 모양. 옥진이는 쌔근쌔근 올라가더니 한다름에 뛰어와서 옵바를 껴안는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만나서 하듯이 『키쓰』를 한다. 그러케 새침하던 옥진이가 옵바 압헤서 가진 아양을 부리는 꼴을 볼 때에 저런 표정이 어듸서 나오나? 하고 우숩다느니보다 놀낼만한 일이다.
『저것 봐! 저 고개짓하고 눈우슴을 살살 치며...』
하고 마리아는 은근히 놀내엿다. 옵바는 옥진이의 손을 잡고 그전에 영순이와 안젓던-틀님업는 그들이다-그 돌에 가 나란히 안는다. 옥진이는 제비가티 지저귀고 옵바는 콩새가티 안저서 지금 한참 대화를 하는 판이다. 그런데 놀내지 마라! 저쪽에서 웬 얼골이 솔포기 넘어로 넘겨다 보는데 그는 틀님업는 영순이엿다. 영순의 얼골빗은 이상히 변하고 사지가 벌렁벌렁 떨니는 솔가지가 바르르 떨린다. 마리아의 가슴은 자릿자릿하엿다.
별안간 영순이는 날새게 뛰여와서 옵바의 무릅 압헤 폭 곡그러지며〈150〉
『으! 흐흐흙!』
하며 늣기여 우는 바람에 옵바는
『어!』
하고 펄적 뛰여 궁둥방아를 찟는데. 옥진이는
『얏!』
하고 두 손으로 얼골을 가리우고 폭 업드러진다.
『당신은 나를 영원히 사랑한댓지요! 으! 으!』
이는 영순이의 울음석긴 말이요.
『아! 이게 웬...』.
하는 것은 옥진이의 긔막히는 말이엿다. 그런데 옵바는 울어야 조흘넌지? 우서야 조흘넌지 모르겟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아모 말이 업시 안젓다.
『나는 그런 줄은 몰랏서...아! 이를 엇지하나! 흙! 흙!』
『나도 이런 줄은 몰랏서! 아이! 아이!』
하고 한참 우는 판에 별안간,
『나도 몰랏소! 옵바 이게 웬일이오!』
소리를 치고 마리아는 툭 튀여나서며 깔깔 우섯다. 옵바는 엇더케 놀낫던지 껑청 뛰여 일어서며
『머!』
하고 마주 소리를 지르고는 멀-거니 처다보다가 넘우 념체가 업던지, 제 풀에 허허! 하고 커다케 웃엇다.
『아!』
『앗!』
영순이와 옥진의 억개는 일시에 들석하며 얼골을 가리운 채로 싹 도라안는다. 그들은 엇질 줄을 모르고 울랴야〈151〉 울 수도 업다는 듯이 죽은 듯이 괴괴하다.
『나는 옵바의 비밀을 다 알어요!』
『무엇?』
옥진이와 영순의 고개는 점점 숙어진다.
『이 애들 왜 우니? 우리, 옵바를 해나자!』
하는 마리아의 말이 떠러지자마자 그밋 솔밧 속에서 산양군의 총소리인지 또 총소리가 『탕!』하고 난다. 옵바는 고만 후다닥하더니 거름쓀? 날 살려라 하고 저리로 살살 기어 도망을 하는데 영순이와 옥진이는 고개를 못들던 그 수치가 어듸로 다 가버리고 황황히 닐어나서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에그머니나! 이를 엇지해!』
『아이그! 아이! 아이!』
하고 이리로 다러난다. 마리아도 그 통에 그들과 가티 다러나는데 겁나는 중에도 우수워서 킬! 킬! 웃느라고 거름을 거를 수 업섯다.
『아이고! 아이고!』
하며 압헤서 영순이와 욱진이는 업더지며 잡버지는데 옵바는 저-긔서 노루가티 겅정겅정 뛰여 나려간다.
그후 마리아는 거리에서 오고가는 팔을 시치며 지나가는 얼골 잘난 남학생을 보고,
『저이도 우리 옵바 가튼 미남자로구나! 저의 호주머니 속에는 옵바의 비밀편지 가튼 그런 편지가 몃 장식 드러잇누!』
하고 두 번식 쳐다보앗다.
어느 날 저녁에 마리아는 빙글빙글 우스며 옵바를 처다보고,
『옵바! 사랑보다 큰 것은 안방이지요!』
하닛가 옵바는,
『머-』
하고 픽 웃더니 눈을 끔적끔적하고 밧그로 나간다. 어머니는 웬 곡절을 모르고 물구럼이 처다보며
『그게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냐』
하고 따러 웃는다. (끗) 1924. 3. 31.〈152〉
〈13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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