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 敎育

<수필> 소월(素月)과 조선생(曺先生) - 백석

이강기 2015. 10. 2. 09:11

소월(素月)과 조선생(曺先生)

 

           -백석

 

나는 며칠 전 안서 선생님한테로 소월이 생전 손으로 놓지 않던 '노트' 한 권을 빌려 왔다.

 

장장이 소월의 시와 사람이 살고 있어서 나는 이 책을 뒤지면서 이상한 흥분을 금하지 못한다.

 

대부분이 미발표의 시요 가끔 그의 술회와 기원이 두세 줄씩 산문으로 적히우고 가다가는 생각이 막혔던지 낙서가 나오고 만화가 나오고 한다.

 

줄과 줄, 글자와 글자를 분간하기 어렵게 지우고 고치고 내어박고 달아붙이고 한 이 시들의 전부가 고향, 술, 채무, 인정 같은 것을 읊조린 것인데 그 가운데 이색으로 「제이 엠 에스」라는 시가 있다.

 

 

제이 엠 에스

 

평양서 나신 인격의 그 당신님 제이 엠 에스

덕 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재주 있는 나를 사랑하셨다.

오산 계시던 제이 엠 에스 사오 년 봄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근년처럼 꿈없이 자고 일어나며

얽은 얼굴에 자그만한 키와 여윈 몸맵씨는 달은 쇠 같은 타는 듯한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났었다.

(1행략)

소박한 풍채, 인자하신 옛날의 그 모양대로

그러나 아 술과 계집과 이욕에 헝클어진 15년에 허주한 나를 웬일로

그 당신님

맘속으로 찾으시노? 오늘아침

아름답다 큰 사랑은 죽는 법 없어 기억되어 항상 가슴속에 숨어 있어

미처 거친 내 양심을 잠재우리 내가 괴로운 이 세상 떠나는 때까지 ……

 

 

 

구심(舊心) 5. 26. 야서(夜書)라 하였는데 시방으로부터 6년 전이다.

 

오산학교를 나온 이들은 제이 엠 에스라는 이니셜로 된 이름이 조만식 선생님이신 것을 알 것이다.

 

불세출의 천재 소월은 오산학교에서 4년 동안 이 조 선생님의 훈도를 입었는데 이 시인은 그 높게 우러러 존경하던 조선생님께서 하루아침 고요히 그 마음속으로 찾아오신 때 황공하여 쪼그리고 앉아머리를 들지 못하고 호곡하였던 것이다.

 

소월은 이때 그 '정주곽산 배가고 차 가는 곳' 인 고향을 떠나 산을 구성 남시에서 돈을 모으려고 애를 쓰던때다.

 

소월이 술을 사랑하고 돈을 모으려고 했으나 별로 남의 입사내에 오르도록 계집을 가지고 굴은 일은 없다하되 그러되 이미 고요하고 맑아야 할 마음이 미처 거칠어진 탓에 그는 이 은사 앞에 엎드려 이렇게 호곡하는 것이다.

 

소월은 오산학교 때에 체조 한 과목을 내어놓고는 무엇에나 우등을 하였다. 조 선생님은 이렇게 재주 있는 소월을 그 인자하신 웃음을 띠고 머리를 쓰다듬어 사랑하신 모양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데 오산을 다녀 나온 자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이 천재시인도 그 마음이 흐리고 어두울 때 역시 그 얽으신 얼굴에 자그만한 키와 여윈 몸맵씨의 조만식 선생님을 찾아오시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1939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