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한일관계의 미래와 정치지도자들의 역할

이강기 2015. 10. 4. 06:41

[일반논문] 한일관계의 미래와 정치지도자들의 역할


[김호섭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시대정신, 2013년 가을호

Ⅰ. 서론: 냉전 종결 이후의 한일관계

 

21세기 한일관계는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반목과 대립으로 악화될 것인가? 냉전종결 이후 한일관계는 우호관계가 증대되는 가운데 반목과 갈등이 예외적으로 발생하는가, 아니면 반목과 갈등발생이 일상화되었고 화해와 신뢰가 예외적으로 발생되는 관계인가? 2013년4월과 7월에 아베(安倍)내각의 다수 각료가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한 행위는 한일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반영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이며 앞으로도 반복해서 발생하여 한‧일 우호관계에 장애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냉전종결 이후의 한일관계는 더욱 밀접해졌으며 일본 정치가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예외적인 정치현상인가? 역사인식 차이에서 오는 한국과 일본의 대립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악화되어 한국과 일본은 화해할 수 없는 것인가? 한일관계의 미래는 대립할 것으로 정해졌으며 양국의 정치지도자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가? 아니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우호적이지만 정치지도자들이 우호관계 형성을 방해하고 있는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한국의 민족주의적 경향과 일본사회의 보수화 및 우익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등을 한일관계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양국 간에 대립과 반목이 확대될 것으로 본다. 부정론자들은 한일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하는데 가장 지장을 초래하는 현안은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로서, 일본의 군국주의 역사에 관한 해석 차이에서 기인하는 한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혐한(嫌韓) 현상이 전반적으로 한일관계의 우호적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면 물적 및 인적 교류도 감소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한일관계의 현실을 보면 냉전종결 이후 양국 간에 꾸준히 무역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문제나 아베노믹스에 의한 엔화 약세현상 등에 의해서 단기적으로 부침은 있으나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과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또한, 1998년 이후 한국의 일본 문화 개방에 의해서 문화적 교류가 한‧일 간에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일본 사회 내에서 한류의 영향력은 문화개방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한일관계에서 대립이 확대할 것으로 보는 비관적 견해는 양국 간 실질적으로 증가하는 인적, 물적 및 문화적 교류 확대를 설명하기 어렵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으며, 자유민주적 가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공유하며 양국 간 체제격차가 줄었다는 사실 등이 우호적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밑바탕이라고 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한일관계가 단기적으로는 악화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예를 들어 앞으로 50년 내지 100년 후의 한일관계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체제가 수렴하여(converge) 반목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는 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대일 외교전 선포나, 고이즈미(小泉)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후 한일관계의 악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천황 사과 요구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없다. 또한 2013년 2월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보다 중국에 먼저 국빈 방문하여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한‧일 정상회담은 취임 후 반년이 지난 2013년 8월 현재 일정조차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없다. 즉, 한국과 일본 간에 체제가 수렴되고 인식이 공유되는 과정 중에 정치지도자들이 상대국가의 역사관이나 정치제도를 경시하는 언행들을 감행하여 한일관계가 결과적으로 악화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전망한 주요 견해를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정리하고, 21세기의 한일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Ⅱ. 한일관계를 전망하는 낙관적 견해

 

1. 유사동맹(Quasi-Alliance)론

 

냉전시기 한일관계를 유사동맹(quasi-alliance) 관계라고 규정한 빅터 차(Victor Cha)는 냉전종결 이후 한일관계는 대립적이지 않고 협력하는 관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Cha는 한‧일 양국이 맺고 있는 강대국과의 관계 즉, 미국과의 관계 및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한일관계는 협력적으로 될 것으로 본다. Cha는 한일관계를 두 개의 차원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미국을 포함해서 한‧미‧일 관계로 구성되는 차원이며, 다른 하나는 한‧일 양국만으로 구성되는 관계의 차원이다.

한‧미‧일 차원에서는 냉전종결 이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개입을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며, 동북아시아에서 안전보장상의 위협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군사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한‧일 간에는 냉전시기 미국을 중심으로 안보 면에서 협력관계를 강화했으며, 이러한 한‧일간 안보협력의 메커니즘은 냉전종결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즉, 냉전종결 이후에도 한‧일 양국은 북한 및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공통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서 적어도 노무현 정권 이전까지는 한‧일간 협력은 문제가 없었으며, 방위협력은 실질적으로 증가됐다고 지적한다.

Cha는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통일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통일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증진하고 일본은 한‧중‧일 3국 관계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전망을 비판하고, 통일한국이 되면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고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국가는 중국으로부터 안전보장상의 위협을 느끼게 되며 통일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 통일한국이 되면 한‧중‧일 삼각관계에서 한국과 중국이 협조해서 일본을 고립시키기 보다는, 한국과 일본이 협조해서 중국과 세력균형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한다. 통일한국이 일본과 협력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로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쌓아온 한‧일 우호관계가 양국 국익에 상호 긍정적이었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또한 냉전시기 쌓아온 한‧미‧일 관계가 한‧일 양국 국익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경험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이 일본과 대립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일 양국만으로 이루어지는 차원에 있어서는 양국이 역사문제로 인해서 발생한 반목을 극복하고 우호적 관계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로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 특히 한국이 민주화에 있어서 큰 진전을 이룩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국가 간의 관계는 대립보다는 평화적이라는 ‘민주적 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에서 보듯이 자유민주주의적 문화와 가치 및 정치제도를 공유한다는 것이 양국관계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민주주의적 제도가 정착하고 타협에 의해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더라고 결국에는 협력관계가 강화될 것이라고 본다.

Cha는 한‧일간 공식적 채널이 증대된 점을 양국 우호관계 발전의 제도적 기반으로 본다. 즉, 권위주의 시기 비공식 채널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 간에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상호작용의 형태로 변화됐기 때문에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 신중한 심의와 논의를 통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기회가 매우 증대했다는 것이다. 또한 체제상의 친근감이 증대되어 문화, 교육, 스포츠 교류가 활성화되고 환경문제, 재해구조, 민간의 원자력분야에서도 협력관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봤다. 이러한 다층적 채널은 양국관계의 제도적 기반이 돼서, 역사문제나 무역문제를 둘러싼 돌발적 대립이 발생해도 채널은 계속 가동되어 한일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Cha는 제도적 요인에 더해서, 민주적인 규범과 인식의 공유라는 점을 지적하며 장래의 한일관계를 낙관적으로 본다. 특히 한국의 민주적 ‘견고화’와 경제발전에 의해서 일본인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으며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는 활기차고, 강력하고, 자신에 찬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장래의 한국지도자는 20세기 전반부에 있었던 식민지 시대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앞 세대가 가졌던 역사적, 감정적 부담을 가지지 않을 것이며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통한 대화를 할 것으로 전망한다.

 

2. 체제수렴(System Convergence)론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는 한일관계의 미래가 우호적일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 이유로는 한국과 일본 간에 ‘체제공유(體制共有)’가 이뤄졌으며 이것이 한‧일간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냉전시기의 한일관계는 ‘체제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협력관계를 만들어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냉전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일본의 민주주의 체제에 비해서 한국은 군사적 권위주의 체제였으며, 경제적으로 한‧일 양국은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본규모와 기술수준의 격차가 존재했으며, 안보협력의 측면에서 한‧일 양국은 미국과 동맹국이었으나 양국 간의 안보협력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체제 간 격차가 한‧일 협력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적 변수라고 지적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이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함에 따라 한‧일 양국에 존재했던 ‘체제격차’가 해소되고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체제를 공유하며 안보분야에서도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체제공유’ 현상은 양국 간 사회적, 문화적 교류를 긍정적으로 확대 재생산시키며 가치관과 국가목표의 접근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즉, 양국 국민은 첨단 산업기술을 보유한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서 높은 문화수준과 풍부한 인권감각을 자랑하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국제국가를 이상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코노기에 의하면 ‘체제공유’가 ‘의식공유’를 낳아서, 일본인이 한국문화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메이지유신 이래 처음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과 일본이 체제에서 공유하는 측면이 많아지는 것이 우호적 관계 형성의 구조적 기반이 될 것이라는 견해에 필자는 기본적으로 찬성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체제를 비교하면서 냉전시기를 ‘체제격차’로 인해 양국 협조가 어려웠던 시기라고 하고, 냉전종결 이후를 ‘체제공유’를 통해 양국 협조가 이뤄지는 시기라고 보는 오코노기의 견해는 냉전시기에도 한‧일간 정치적 협력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유사동맹론의 설명과 충돌한다. 실제로 냉전시기 ‘체제격차’에 의해서 양국 간 협력이 성립되기 어려웠다는 오코노기 주장은 한일관계의 현실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냉전시기 한‧일간에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격차가 있었지만 경제협력의 측면에서는 대단히 활발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었고, 그러한 협력관계는 한‧일 양국 경제가 상호 이익이 되었으며 어느 일방에게만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일본 군국주의에 관한 역사인식에 있어서도 냉전시기 한국이 일본에 비해서 국력이 현저하게 열세였지만 양국 간에 역사문제로 인해서 언제나 대립상태가 지속됐던 것은 아니며, 일본 정치가들이 항상 역사문제에 있어서 한국민의 감정을 해치는 언행을 일삼았던 것도 아니다. 또한 냉전종결 이후가 냉전시기에 비해서 한‧일간 역사문제가 외교적 현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체제수렴론은 잘 설명할 수 없다.

 

Ⅲ. 한일관계 미래에 관한 비관적 견해

 

한일관계의 미래는 대립적인 관계가 될 것으로 보는 비관적 견해가 있다. 즉, 한일관계에서 과거사에 관한 대립은 빈도와 심도의 양 측면에서 냉전체제가 종결된 이후 더욱 격화되었는데 세계정세의 구조변화에 의해서 양국 관계가 이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관적 견해에 의하면 양국관계를 이완시키는 요소는 국제적 요인과 양국 간 요인으로 구분된다. 국제적 요인으로 냉전구조 붕괴를 지적한다. 즉, 냉전시기 한‧일 간을 결속시켰던 구조적 요소는 미국의 공산권 봉쇄전략이었으며 한국과 일본은 자유주의 진영에 속한 국가로서 반공이라는 큰 명분 아래에서 역사청산 문제와 관련한 갈등을 억제했다. 냉전종결 이후 잠복되었던 양국의 민족주의적 갈등은 반공이라는 공통이익이 사라졌기 때문에 표면으로 분출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부상이 한‧일간 우호 심화에 방해 요인으로 지적된다. 90년대 이래 중국 국력이 급부상한 결과 경제적 상호의존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 중국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으며,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저하됐다. 또한 국제정치적으로도 김정일 사망 후 2012년 김정은 체제가 발족한 이후 북한이 촉발한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장기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한국 국익에 매우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이에 비해 안보적 측면에서 한국 국익에 일본이 미치는 영향력은 저하되었다. 즉, 중국의 역할증대로 인해 동북아 지역에서의 한일관계가 지니는 중요성은 한중관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하됐다고 본다. 한국 국익을 중심으로 보면 중국의 중요성이 일본을 능가하고 있으며 일본에 대한 배려가 약화되었다. 중국의 부상 이전에도 일본과 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갈등이 존재했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저하하면서 역사인식 문제를 제기하는데 부담이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한일관계를 이완시키는 양국 간 요인으로 정치인 및 경제인의 인적 채널 및 네트워크에 있어서 발생한 세대교체가 지적된다. 냉전시기 비공식적 인맥은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 식민지 교육을 받았던 한국 정치가 및 기업가들은 일본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서 친밀감과 유대감이 강했으며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서 민감한 정치현안이나 갈등사안을 외교적 쟁점이 되기 이전에 막후에서 조정, 타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가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으며 한‧일 정치인 간의 교류나 접촉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갈등 발생 시 문제해결 능력은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양국 간 현안은 외교 관료의 손에 의해서 다루어져서 갈등을 완화시켜 줄 정치적 메커니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점이 갈등이 발생하면 수습되지 못하고 확대되는 구조적 요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 성숙과 한‧일 간에 국력이 보다 수평적이 된 점이 한‧일 대립이 확대되는 요인이 되었다. 이 견해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이 한‧일간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고 주장하는 체제수렴론과는 배치된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함에 따라 한국 국민들은 대미 외교와 대일 외교에서 자주적인 외교를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권위주의적인 정권은 대일관계 악화가 초래할 악영향을 우려하여 과거사에 관해서 문제제기를 억제하거나 문제를 조기에 수습하고자 노력했으나, 민주화 이후 한국 정부는 국민들의 대일 여론을 대일외교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대일 강경외교를 추진하게 되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한국에서 민주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대일여론은 한국 대일외교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일관계를 이완시키는 일본 국내요인으로는 90년대 이후 보수화 경향이 강화되는 일본국내 정치상황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2012년 12월 집권한 아베(安倍) 정권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옹호하는 등 군국주의를 긍정하는 역사관을 공공연하게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에 대해서 한국은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며 외무장관의 일본 방문을 취소했다. 일본 국내정치에서 평화헌법 개정론, 자위대의 해외파병, 히노마루(일장기)・기미가요(일본국가)의 법제화가 실현됐으며 수상 및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 등에 의해서 2000년대 이후 일본 정치가들이 표명하는 역사인식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퇴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역사관이 공개적으로 표명되면 될수록 한‧일 우호관계 형성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전후세대 일본 정치가들은 과거 식민통치와 침략의 역사에 대한 속죄 의식을 갖지 않아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관해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 농후하며, 전후세대 일본인의 역사인식 및 태도가 한‧일 과거사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는 양국 간 역사인식 차이가 한‧일간 대립을 발생시키는 현안이라고 지적하고, 냉전종결 이후 한‧일 양국을 둘러싼 구조적 변화와 국내 정치상의 변화에 의해서 일본은 역사인식을 경시하며 한국은 역사인식 문제를 더 자주 제기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구조적 변수의 변화 및 국내정치 변화, 즉 민주화가 필연적으로 한일관계의 악화를 가져오는 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정치 지도자에 의해서 정권성격이나 외교목표가 달라지면 한국의 경우 민주화가 진전되더라도 과거사 인식에 의해서 발생하는 한‧일간 대립은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다. 한국이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한‧일간 과거사 대립이 심화된다는 주장은 민주화 정권이 포퓰리즘적 입장에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정권의 성격에 따라서, 즉 정치지도자의 성향에 의해서 다른 정책의 선택이 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과거사 마찰이 나타나더라도 한국 정치지도자들은 대일외교 목표,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한국에 대한 외교 목표를 우호관계의 증진으로 수립한다면 얼마든지 과거사 마찰을 외교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인식이 외교현안으로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책무는 일본의 보수 정치가들이 주로 져야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일본 정치가들은 외교보다 국내정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부상이 한일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논점은 중일관계와 미중관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미‧중관계가 대립적인가 협력적인가 따라서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중국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한국으로는 중대한 외교방침의 기본 방향전환에 관련된 주장으로서, 일본보다 중국을 중시하는 내용으로 외교정책 변화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한국 국익의 중장기 및 단기적 영향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제력이나 국제정치적 영향력이 증대됐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외교정책 방침이 일본보다 중국을 위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결론은 미‧중관계가 협력적이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아직 그런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 글 앞부분에서 소개한 유사동맹론에서는 중국이 부상하더라도 한국이 일본과 협력할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으며, 그 근거로 국교정상화 이후 쌓았던 한‧일간의 신뢰관계, 자유진영에 속하면서 한국이 경제발전에 성공했다는 실적 및 민주체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환경 등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 국력이 증대됐다고 하더라도 한국과 민주체제를 공유하지 않고,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측면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며, 특히 통일한국이 중국과 국경을 마주할 경우 중국과 관계가 우호적으로 지속될 지는 예측할 수 없다.

한‧일 양국을 둘러싼 구조적 질적 변화에 의해서 발생하는 한일관계의 성격 변화는 한‧일 양국의 정치가들이 정치 혹은 외교로 극복할 수 있는 변화인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한‧일 양국의 체제공유 혹은 자유민주적 가치의 공유 등을 지적하여 우호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지적하지만, 그것은 한일관계가 우호발전할 수 있는 필요조건일 뿐이며 충분조건까지 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정치지도자들이 한일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냉전구조의 붕괴 및 중국의 부상, 한‧일 양국 내 정치상황의 변화 등에 의해서 한일관계가 보다 대립적으로 전개될 것이라 보는 견해도 한일관계의 악화에 관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된다. 즉, 한일관계를 대립적이 만들 수 있는 구조적 요인 속에서도 한‧일 정치지도자들은 양국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도록, 혹은 대립의 중심주제인 과거사에 관한 역사인식 차이를 외교분쟁으로까지 확대시키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Ⅳ. 정치지도자들의 역할

 

한일관계의 미래를 우호적으로 전망하는 견해뿐만 아니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견해도 양국을 둘러싼 구조적인 변수 및 양국 국내체제의 변화를 중요시하며, 양국 정치를 실제로 주도하는 정치리더십의 역할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한일관계의 내용을 규정하는 변수를 구조적인 변수와 정치지도자 변수로 나눈다면, 구조적인 변수로는 한국과 일본이 자유주의 진영 국가라는 것, 안보적으로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는 협력관계라는 것, 민주주의 체제를 공유한다는 것 등이다. 정치지도자 변수로는 실제로 정치현상을 주도하는 행위자(actor 혹은 agent)인 정치 리더십의 성향을 들 수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한일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적 정치상황 및 국내체제의 변화 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치가들에 의해서 한일관계가 대립적으로 전환되기도 하며, 그 반대로 구조적 요인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정치 리더십의 행위에 의해서 한일관계가 우호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나 국내체제의 변화 등은 장기적으로 진행되지만, 정치가들에 의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단기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정치 리더십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합리적인 국익 평가를 거쳐서 외교 정책은 구조적 변수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일관계 있어서는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국익 최대화’라는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정치 리더십의 독특한 성향이 한일관계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아래에서는 정치 리더십의 역할을 중심으로 중요한 한일관계의 전개를 설명하고자 한다.

 

1.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수상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한‧일 간에는 매우 우호적 관계가 형성됐다. 동북아 정세의 구조적 측면은 냉전종결이라는 환경이었다. 1998년 10월 김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여 오부치(小淵)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및 그 ‘행동계획’을 발표해서 양국이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서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고 천명했다. 김 대통령은 한국에서 민주주의 확립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일본의 오부치 총리는 당시로서는 비교적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보수 정치가였지만 한일관계는 매우 우호적이 되었다. 이러한 우호적 관계는 정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만들어 낸 것이지 국제정치 상황 변화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의해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하였다. 김 대통령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선린과 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하였다. 한일관계의 최대 현안인 식민지 과거와 역사문제에 관해서 정상들이 서명한 외교문서에 일본 총리가 표명한 사죄와 반성이 기록된 것은 한‧일 외교관계의 중요한 진전이었다. 군국주의 역사에 대한 사과를 토대로 한‧일 최고정치 지도자들이 합의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한‧일 교류는 경제 및 문화, 인적 교류의 측면에서 확대 진전되었다. 한‧일 정치지도자 간에 성립된 우호적인 관계를 배경으로 1999년 일본의 언론기관이 시행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좋아졌으며,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의 숫자도 거의 매년 10퍼센트 이상씩 증가하였다. 1999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의 수는 약 218만 명으로 일본의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일본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가 되었다.

 

2.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

 

고이즈미(小泉) 수상이 취임한 2001년 4월 이래 한일관계는 경색되었다. 한일관계가 경색된 직접적 계기는 일본의 우익단체가 작성하여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문부성이 2001년 4월 검정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 후 고이즈미 내각이 역사인식에 관해서 보수 노선을 표방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 경색관계를 지속시킨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한‧일 우호관계의 기초는 과거 식민지지배가 잘못된 역사였다는 일본의 인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일본의 군국주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발언과 행동을 일본의 최고 지도자가 하면 한‧일 우호관계의 기초가 무너지는 예를 고이즈미 정권에서 볼 수 있었다.

고이즈미 정권에 대해서 일본 국민들이 내리는 평가는 긍정적이다. 수상퇴임을 앞둔 2006년 9월 초 마이니치(每日)신문사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일본 국민은 64퍼센트에 이른다. 취임 직후부터 퇴임까지 국민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지속적으로 받았던 보수 정치가 고이즈미 수상이 만약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일간 우호관계는 훨씬 더 진전됐을 것이다.

한국의 노무현대통령은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와 기타 역사문제, 독도문제를 이유로 2005년 이래 2008년 2월 임기 만료까지 일본을 방문하는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2003년 취임한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정권은 고이즈미 수상과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이유로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않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인 수상이 군국주의의 찬미 시설인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찬미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신하여 국립추모시설의 건설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고이즈미 수상은 국립 추모시설의 타당성 조사에 관한 예산 책정을 연속으로 거부하였다. 이러한 과거사 문제를 한‧일간의 외교분쟁으로 확대한 것은 신사참배를 반복한 고이즈미 수상의 독특한 개인적 성향이라고 봐야 한다.

 

3. 아베(安倍晋三) 수상의 1기(2006. 9-2007. 8) 및 2기 (2012. 12~) 정권

 

아베 수상은 군국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우익 역사관을 공공연히 표명하는 정치가이다. 아베내각의 고위 정치가 다수는 2013년 4월과 7월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 참배했다. 아베 수상 자신은 종군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발언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비공식 발언을 했다. 즉, “종군위안부 동원에 있어서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고 하여 일본이 과거 자행한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세계 여론과는 상반된 역사인식을 표명한 바 있다. 여기서 ‘협의의 강제성’이란 일본 관헌이 집에 있는 여성을 강제로 체포하여 종군위안부로 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베수상이 자의적으로 광의 혹은 협의의 강제성으로 구분하여 강제동원을 부인한 발언은 우익의 역사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이 역사인식은 강제성을 인정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과 상이하다. 즉, 92년7월 일본 정부는 정부보유문서 조사결과 위안소의 설치, 운영 등에 있어서 당시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발표하였다. 이를 근거로 하여 93년 고노(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은 정부명의의 공식 담화를 통해서 일본 정부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공식 담화를 일본 우익들은 강제성이 없었다고 강변한다.

아베정권이 역사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우호적으로 전환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예정되었던 외무장관 회의를 취소했다. 박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 후 첫 해외방문으로 미국을 5월에, 중국을 6월에 방문했다. 한국의 신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 전에 중국을 국빈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한국에 있어서 중국의 중요성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고양된 것이 주요 배경이지만,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문제가 외교현안이 된 것이 일본 방문이나 정상회담이 아직 실현되지 않는 이유이다.

 

Ⅴ. 결론

 

냉전 종결 이후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전망하는 견해든,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견해든 구조적인 변수를 중요시한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냉전종결 이후 세계 시스템 및 양국관계의 구조적 변수에서 발생한 변화가 양국관계를 이완시키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일관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한‧일의 강대국과의 관계 및 양국 간에 발생한 체제수렴이라는 구조적인 현상을 중요시한다. 체제가 수렴되어 국내외 정세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창출하고 이러한 체제 및 인식 공유가 한‧일 양국의 미래를 우호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두 견해가 한일관계의 전개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정치리더십의 역할은 과거사 현안을 양국의 외교분쟁 현안으로 만드는데 단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정치리더십이 합리적이라면 한‧일 양국을 둘러싼 구조적 변수의 변화를 국가이익에 맞게 반영하는 정치적 행동을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리더십이 언제나 합리적이지는 않으며 특히 한‧일 정치지도자들은 역사문제에 관해서는 국익에 분명하게 마이너스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수상이 한국과 중국 정부의 공식적 항의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靖國)신사를 5년 임기 중에 지속적으로 참배한 경우나, 아베(安倍晋三)수상이 종군위안부의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발언을 반복적으로 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의 독특한 성향일 것이다. 김대중 정권과 오부치 수상이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 서명한 것도 정치지도자들의 성향이었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초기 2년간 일본에 대해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강조하다가, 임기 3년째부터 대일 강경외교로 전환한 것은 정치리더십의 독특한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서 2009년 4월 우익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를 외교쟁점화 하지 않고 무난하게 넘어간 것은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리더십의 성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한 독도방문과 천황에 대한 사죄요구 발언은 단기적으로 정치지도자의 개인성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정치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군국주의 과거사에 관련하여 매우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역사인식을 일본의 최고지도자가 지속적으로 표명한다면 한‧일간 미래지향적 관계 형성은 정말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일본 최고지도자나 정부가 군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거나 그렇게 해석되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하는 것을 한국 정부와 국민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점은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는 성격의 변수가 아니다.

더욱이 한일관계의 구조적 변화 가운데 하나인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폭과 내용이 풍부해졌음을 고려해야 한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확대는 상호이해를 넓히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상호 싫어하는 감정도 순식간에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다. 2005년 3월 이래 한국 국내에서 격렬하게 표현된 반일데모는 일본 매스컴에 거의 동 시간으로 상세히 보도되었다. 2013년 증가하는 일본의 혐한 데모도 실시간 한국에 알려지고 있다. 전자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양국 국민감정이 악순환적이 아니라 선순환적으로 확대재생산 되도록 양국 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외교목표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일 외교목표가 한‧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과거사 현안이 외교쟁점이 되지 않도록 양국이 관리해야 한다. 일본의 대한 외교목표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일본 정치가들은 역사문제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한국의 대일 외교목표가 과거사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외교목표는 쉽게 달성되기 어렵다. 과거역사에 관하여 한‧일 양국 국민 간에 정서가 비대칭적이며, 과거사 현안은 일본 국내정치 현안이기 때문에 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한일관계의 과거를 보면 과거사 현안이 한‧일간에 있어서 언제나 뜨거운 외교쟁점으로 지속됐던 것은 아니며, 과거사 현안과 독도 현안이 한‧일 양국 외교관계 전체를 항상 지배했던 것도 아니다. 양국 정치지도자들이 과거사 문제가 양국 간 외교분쟁의 도화선이 되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하여 관리하면 한‧일 우호관계는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