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한국인 주류는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안”
유전자로 밝혀보는 한민족의 뿌리
● 70~80%가 북방계, 20~30%는 남방계, 그리고 일부 유럽인 그룹으로 구성된 한국인 유전자 풀
● 북부아시아인의 유전자 풀 원천은 마지막 빙하기 시기의 바이칼 호수
● 인류의 아프리카 원조설과 네안데르탈인의 돌연변이론
● 아메리카 인디언은 한국인과 한핏줄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은 우선 당뇨병을 치료하는 내과의사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 민족의 뿌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당뇨병 연구를 하다가 우리 민족의 뿌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1980년대에 ‘1형 당뇨병’과 조직적합성 유전자(Histo-compatibility antigen, HLA)와의 관련성을 한창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보기 드문 1형 당뇨병에 잘 걸린다는 것을 알고 그 상관 관계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다.
이 때문에 1986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국제회의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의학자들의 발표 자료를 보니 지역별로 유전자들의 빈도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중국 북부지역 사람들과 남부지역 사람들의 차이가 뚜렷이 나타났다. 또 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들은 아주 비슷하며, 중국 북부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학적으로 여러가지 병을 앓는 사람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대조군이라고 부름)과도 같이 비교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유전자가 병을 일으키는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국제회의에서도 건강인들의 자료를 따로 모아서 지역별로 그 분포를 분석하는 논문, 즉 인류학 연구 부분의 보고가 특별히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니 당시 필자 같은 인류학의 문외한도 “아! 유전적으로 보면 한국인·일본인·중국 북부인은 비슷하고, 중국 남부인과 기타 남방 지역의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하는 점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이 대회를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질병과 유전자 간 관계를 좀더 깊이 연구하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 배경(뿌리)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환으로 여러 학자들을 만나 주변 정보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단국대에서 고대사를 연구하는 윤내현 교수를 만나 필자의 의도를 설명하고 배움을 청하는데, 오히려 윤교수는 무슨 내용인지 (한민족)학회에 한번 발표를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붙인 셈이었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성신여대 박경숙 교수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써서 한민족학회지에 발표하는 ‘외도’를 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결국 당뇨병의사로서 한민족의 뿌리를 밝히는 일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아무튼 필자는 당시 한민족학회지에 발표한 글을 기초로 하고 최근의 연구 성과를 덧붙여 한민족의 유전적 뿌리를 좀더 세밀하게 찾아보고자 한다.
모든 동물들 중에서 원숭이와 인간이 가장 비슷하다는 것은 동물원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중 어느 것이 인간과 가장 가까울까. 지금 우리는 분자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인간은 침팬지와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후 지금은 멸종된 많은 중간 단계의 유인원들과도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리키 등의 연구로 알게 되었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다윈과 헉슬리는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와 고릴라 등이 아프리카에 가장 흔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고고 인류학적 연구 결과 인류의 기원은 약 600만년 전 침팬지의 조상과 분리된 후, 오스트랄로피테신을 거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출현한 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나와 지금으로부터 3만년 전까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살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학자들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바원인, 북경원인, 아슐리안토기를 만든 프랑스원인 등 호모 에렉투스가 세계 각 지역에서 살았으며, 이른바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을 거쳐 현대 인류가 각 지역에서 진화하였을 것이라는 ‘샹델리아 모델’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령 우리 한반도의 선조는 수십만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았고, 유럽에 살던 사람들과는 조상이 아주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국의 고인류학자 크리스토퍼 스트링거와 미국의 앨런 윌슨은 각각 두개골 화석을 비교하는 방법과 분자유전학적 방법(분자시계)으로 현대 인류가 약 15만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한 후 이 후손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모든 인류의 부모가 되었다는 ‘노아의 방주 모델(또는 Out of Africa theory)’을 주장하였다. 지금은 수많은 자료가 이 이론과 합치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은 현 인류(크로마뇽인)에 의하여 ‘대체’되어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윌슨이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얻은 결과와 부합된다.
여기서 유전자 분석법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995년 독일의 느봔테 파아보가 1856년부터 보존되어 있던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뼈를 조금 떼내 유전자를 분석해본 이후 여러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연구를 한 바 있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들 사이에는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네안데르탈인과 현 인류와는 그 차이가 상당히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전되는 생물체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DNA 염기서열에 의하여 결정된다. 생명체의 종(種)이 다르면 당연히 이 염기서열도 달라진다. 염기서열에 어떤 생명체의 청사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요즈음 막 끝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사람의 모든 염기서열을 밝혀낸 기념비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평균 1300염기서열에 하나의 비율로 차이가 난다. 생명체 사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염기서열의 차이도 크다. 즉 ‘염기서열이 다른 정도’가 크면 클수록 생물간의 차이도 커진다는 것이다. 생명체들이 원시적인 것에서 점차 진화해왔기 때문인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화하려면 유전자들의 복잡성도 커져야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세포내 물질인 미토콘드리아DNA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인류 사이에는 단지 8개의 염기서열 차이를 보이는 반면 네안데르탈인과는 무려 27개의 차이가 나타나고, 또 유인원과는 55개의 차이가 나타난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과 인류 사이에는 염기서열에서 차이가 크므로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미토콘드리아와 분자시계
이러한 차이점들을 근거로 결론지어 말하면 인류는 어떤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약 60만년 전에 나뉘었다고 계산되고, 아프리카에 있던 네안데르탈인의 일부가 유럽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멸종되었고,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네안데르탈인에서 현 인류의 부모가 나타난 것으로 본다.
최근 들어서는 분자시계 개념과 DNA 돌연변이론으로 인류의 기원을 풀어보려는 연구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1963년 주커칸들과 폴링에 의해 처음 제시된 분자시계 개념은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진화에는 시간이 걸리고 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은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나, 환경의 변화가 크면 그 지역에 살던 생물의 수는 줄어들고 새로운 형질을 가진 생물의 수가 증가할 기회가 부여된다. 이러한 현상을 뒤집어보면 새로운 형질을 가진 생물체가 많을수록, 즉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그러한 진화가 진행된 시간이 길고 아마도 환경의 변화도 컸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크면 클수록 진화가 일어난 시간이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돌연변이에 의하여 나타나는 단백질의 변이(나아가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령하는 DNA의 변이)를 조사하여 진화가 일어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분자시계’의 개념은 이후 직접 DNA 분석자료와 지질학적으로 얻어진 자료들을 대비함으로써 확립되었다. 이러한 분자생물학적 방법들은 지금은 모든 생물학 연구의 핵심 기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자시계 개념은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 같은 것으로, 우리가 먹은 당분이나 지방질들을 태워서화학에너지인 ATP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는 수억년 전에 외부에 존재하던 어떤 미생물이 세포 안으로 들어와 공생을 하게 되면서 생긴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그럴싸한 이유는 미토콘드리아에는 자체적으로 유전정보를 가진 DNA가 있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 DNA(mtDNA)는 세포질에만 있어서, 세포의 핵 DNA와 달리 어머니의 난자를 통해서만 유전된다(정자에 있는 mt DNA는 수정될 때 들어가지 않는다).
미토콘드리아는 극히 정교한 전자전달장치를 가동하여 에너지를 생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리(遊離) 전자가 나오고, 이것은 소위 (산화)스트레스로 작용하여 mtDNA에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더구나 mtDNA는 잘 보호되고 있지 않아서 나이가 들면서 돌연변이가 축적되고, 결국 이것이 산소호흡을 하는 생명체가 노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운동, 특히 유산소 운동을 하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활발해져 산화 스트레스를 같이 막아줄 경우 장수하는 것이다.
아무튼 1만6500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mtDNA는 그 돌연변이가 핵 DNA에 비하여 훨씬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그 변이를 조사하면 정밀한 분자시계를 찾아낼 수 있다.
윌슨이 세계 각처 사람들의 mtDNA를 분석한 분자시계 이론에 의하면 피그미족을 포함한 모든 인류는 아주 적은 변이만을 나타냈다. 이 결과는 약 20만년 전 인류는 한 어머니에서 모두 갈라져 나온 것으로 해석될 밖에 없어서, 모든 인류는 한 어머니를 가졌다(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설명이 뒤따랐던 것이다.
바이칼 호수는 원래 저지대
즉 <그림 1>에 나타난 이동은 1만5000년 전에 빙하가 녹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나는 바이칼호수의 물이 대부분 이때 쏟아져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바이칼호를 지금 흘러들어가고 있는 물로 가득 채우려면 약 400년이 걸린다니까 말이다.
바이칼호수는 길이가 636km, 최대 너비 79km, 면적 3만1500㎢로 유럽의 중소국가 벨기에의 크기와 같다. 그 둘레는 2200km이며, 최대심도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호수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곳이 마지막 빙하기에는 어떠했을지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필자는 바이칼호수가 마지막 빙하기에는 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이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과 물고기들이 풍부해 고대인들이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도 바이칼호에서만 사는 동물의 종이 무려 1200종이나 되는데, 이들은 세계 어느 지역의 생물과도 다르고 유전적으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생물은 바이칼호에서 진화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2001년 11월 MBC 방송국에서 방영한 ‘시베리아, 시베리아’를 보면 소련 이르쿠츠크대의 올가 이바노브나 박사와 캐나다의 안제이 베베르 박사 등 발굴팀에 의해 바이칼호 주변의 고고학적 발굴이 5차에 걸쳐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업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이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그런 복잡한 문화가 발달했는지는 수수께끼이며, 그 문화는 세계 어느 곳의 문화와도 다르다는 말도 하고 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격리된 지역에서 장기간 살면서 진화해야만 그 지역에 적응된 형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하여 적응된 것으로 해석되는데, 낮은 코, 두꺼운 눈꺼풀, 가는 실눈 등이 그렇다.
필자는 북부 아시아인의 조상이 간빙기에 이곳으로 이동했다가 오래 머물면서 추위에 이기는 특성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지막 빙하기에 시베리아의 다른 지역이 모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는데 반해 이 부근에서는 북방 아시아인의 유전자 풀이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또 이곳만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랴트인들과 에스키모를 유럽인과 대비하면 서로 비슷함과 차이점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차이가 5만∼7만년 전 사이에 생긴 것이다.
‘신동아’ 2001년 11월호에 실린 동국대 윤명철 교수의 바이칼호 기행문을 보면 바이칼호의 미즈반도에는 불한바위라는 곳에, 무당들이 제사를 지내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물이 바로 아래에서 찰랑거리는 벼랑의 중간쯤에 굴이 있다. 샤먼스카쉐바라는 이 동굴은 폭이 2m가 조금 넘고, 높이가 2.5m로 불규칙한 형태의 입구와 내부를 가진 동굴이다. 흡사 고분 속 같은 내부에는 평평한 터가 없고 안쪽으로도 무너져 내린 흔적이 역력하다. 무너지기 전에는 양쪽으로 뚫려 있어서 한쪽의 좁은 구멍으로 햇빛이 비쳐들게 돼 있었다.”
즉 이 동굴은 인위적인 구조물이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90년 6월 미·소(러시아) 합동조사단은 초음파를 이용해 바이칼호를 광범위하게 탐사한 바 있는데, 그 결과는 꽤 흥미롭다. 가령 호저(湖底) 420m의 깊이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했는데, 과거 이 부근이 마른땅이었다면 사람들이 극히 선호하는 지역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이곳의 저지대가 물에 잠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현상은 세계 곳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대홍수 이야기와 연결할 수 있다. 현재 이러한 가설 아래 흑해에서는 미국과 불가리아의 합동 탐사팀이 흥미로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타이태닉 잔해를 찾아낸 미국인 탐험가 로버트 발라드의 지휘 아래 활동하고 있는 이 팀은 대홍수 이전에 이 지역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보다 앞선 문명이 존재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빙하기 말에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바닷물이 넘치기 시작해 지중해의 엄청난 물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흘러들었고, 이로 인해 원래 담수호였던 흑해와 주변의 문명들이 바다가 된 흑해 속에 잠겼다는 것이다(2001년 9월8일자 소피아발 AP통신).
필자는 그 비슷한 불행이 바이칼호에도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고대 신화를 보면 뽕밭(상전)이 바다(벽해)가 되었다든가, 하늘까지 차오르는 홍수 때문에 사람들이 다 죽고 오누이 사이인 복희와 여와만 살아남아 중국인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오고 있다.
인류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대홍수 이야기는 이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는 북부아시아인의 선조들이 거대한 홍수를 만나 바이칼호를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빙하가 녹으면서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남쪽으로 생기는 새로운 통로들을 발견하고 먼저 이동했을 가능성도 크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하나의 민족 아니다
결국 유전적으로 보아 우리 민족의 뿌리는 크게 두 갈래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중 70∼80%는 북방계이고 20∼30%는 남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타 일부 유럽인과 다른 그룹이 섞여 있다. 필자는 이러한 유전자 구도가 구한말 이제마 선생이 주창한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의 유전적 근거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다음은 결론적으로 단국대의 김욱 교수가 Y염색체 및 mtDNA 변이분석을 통해 동아시아인의 집단형성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동아시아인 집단형성에 관한 과거 인류의 집단팽창 과정과 이동경로, 그리고 그 시기 등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에 관한 연구는 많은 인류진화학자들에게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인류유전학자들이 지지하는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갈라져나온 인류가 중동을 경유해 인도 또는 동남아시아에 정착한 경우와,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경유한 집단이 동남아시아 또는 한반도·일본에 정착했을 경우 두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어느 곳에 먼저 정착했는지는 현재까지 분명치 않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대의 리 교수 등은 Y염색체 DNA 분석을 통해 약 6만년 전에 동남아시아에 먼저 정착한 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무렵 동북아시아 및 시베리아로 이주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 쿤밍(昆明)대의 야오 교수 또한 mtDNA 분석에서 이와 비슷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애리조나대의 해머 교수 등은 동아시아인의 집단형성은 더 복잡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는 Y염색체 DNA 분석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유전자 풀이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집단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며, 일부의 경우 최근의 집단 팽창을 통해 중국 남부 또는 동남아시아의 유전자 풀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기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김욱 교수팀)가 동남북 아시아인 집단을 대상으로 Y염색체 DNA 및 mtDNA 변이분석을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집단의 유전자 풀은 동북아시아인 집단의 유전자 풀이 대부분이나, 이와 함께 중국 남부 및 동남아시아인 집단의 유전자 풀이 상당량(약 30%) 혼합된 결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집단은 동아시아인 집단 가운데서도 중국인집단과 가장 가까운 유전적 변이를 지니고 있으며, 일본인 집단은 한국인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 집단은 적어도 두 가지 경로 이상의 다양한 민족집단이 혼합과정을 겪으면서 형성되었으며, 유전적으로 하나의 민족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초기 한반도에 정착한 민족은 물론 최근의 민족집단이 이동한 경로 및 그 시기를 밝히는 것은 향후의 과제며, 한반도에 가장 먼저 정착한 민족과 이후의 민족이동 및 집단형성 등에 관해서도 좀더 자세한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세계인들의 경쟁
필자는 더 자세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유전자 풀 분석이 진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 에모리대의 월레스는 2002년 중반 정밀한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즉 우리의 유전적 뿌리를 미국 학자들이 밝히는 단계에 있는 것이다.
또 이웃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일본인의 기원을 찾는 연구를 위해 해마다 10억원의 정부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NHK방송은 현재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르포를 시리즈로 방영, 일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외국에서 이러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필자는 한국인의 유전자 풀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유전자 풀을 비교 연구하는 우리의 ‘이브(EVE) 계획’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일을 우리 손이 아닌 남의 손에 맡겨둔다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우리 자신의 정체를 파악해내는 작업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이다.
필자는 이브 계획이 단순히 한국인의 염기서열 분석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진화과정에서 겪었던 과거를 감안하고 지금의 체질을 함께 조사하는 대형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한민족의 진화(Evolution)와 역학(Epidemiology)을 함께 조사하려는 이브계획(국립보건원 주관)의 기본 시각이다.
유명한 진화론자인 도브잔스키는 “당뇨병과 같은 흔한 유전적인 질환의 이해는 인류의 진화(과정과 적응한 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올바르게 접근할 수 없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중시하는 뜻도 있다.
새천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이칼호를 찾고 있다. 필자와 몇몇 사람들은 2002년 7월 바이칼호변의 도시 이르쿠츠크의 아카뎀고로도크 과학도시에서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 조그마한 학술모임을 계획하고 있다. 이 모임이 발전하여 제대로 된 해저고고학적 탐사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며, 한국인의 유전적 뿌리를 찾는 일에 여러분들의 지원을 부탁드린다(이 글을 위한 자료 수집과 내용에 도움을 주신 성신여대 박경숙 교수, 단국대 김욱 교수, 서울대 최몽룡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끝)
이홍규·서울대 의대 교수·내과
발행일: 2002 년 01 월 01 일 (통권 508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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