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싶은 글

한나 이야기

이강기 2015. 10. 7. 11:27

[기자수첩한나 이야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0e41331.gif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1pixel, 세로 5pixel : 河周希 月刊朝鮮 기자    

   

월간조선 20149월호

 

  200010월 폴란드인 임산부가 한국의 병원을 찾았다.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인 선교사와 함께 온 그녀의 배에는 쌍둥이가 자라고 있었다. 한 아이는 죽고 다른 아이는 살아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이 아이가 한나. 미혼모였던 산모는 홀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4살 무렵, 한나는 양어머니를 만났다. 자식이 없는 양어머니는 한나를 글자 그대로 극진히사랑하며 키웠다. 기르기 수월한 아이는 아니었다. 각종 병치레에 심한 정서불안 증세까지, 의사는 아이가 태중에서 약물과 술에 자주 노출됐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양어머니 외에는 누구도 이 아이를 다룰 수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금발 머리와 파란 눈을 엄마처럼 검은색으로 바꿔 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이별. 양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암이었다.
 
  세상과 이어 주던 유일한 끈을 잃은 아이는 이집 저집을 떠돌았다. 그러다 세 번째 엄마를 만났다. 김계리씨다. 김씨는 여수의 한 병원에서 근무한다.
 
  한나와 김씨 사이에 전쟁이 시작됐다. 아무리 불러도 대꾸 안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서 있는 그대로 대소변을 봤다. 한나가 불행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던 세상에 어깃장을 놓는 그만의 방식이었을까. 심한 폭력성도 보였다.
 
  김씨는 나쁜엄마가 되기로 했다. 한나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호되게 꾸짖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아이를 안고 말했다. “나는 네가 시집갈 때까지 네 손을 잡고 안 놓을 거다, 엄마는 너를 절대 떠나지 않는다.”
 
  김씨는 세상 사람들도 봐주지 않았다. 보기 드문 백인 아이여서일까. 아이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뱉는 중년 남성이라도 마주치면 김씨는 망설이지 않고 서양식 욕을 날려 줬다.
 
  이제 14살이 된 한나는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또래에 비해 발달이 좀 늦긴 하지만 학교도 꼬박꼬박 다니고 있다. 지난날의 한나와는 많이 다른 아이가 됐다. 가끔 삶은 지나치게 모진 방식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려 한다. 한나를 생각하며 어쩌면 이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게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