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석의
편지]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께
- 작가·칼럼니스트
지지난해, 당신이 주일본 미국 대사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오랜만에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보스턴이나 워싱턴이나 뉴욕은 서울에서 너무나 먼 곳이지만, 도쿄는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던 당신이 지척으로 이사왔다는 것이 조금 신기합니다.
이 편지를 쓰기 전 당신의 트위터에 들어가봤습니다. 아키히토 천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나는 사진부터 며칠 전 트윗까지를 훑어봤습니다. 일본어와 영어를 동시에 쓰는 계정인 것이 좀 별나 보였습니다. 당신은 더러 일본어로만 트윗을 올리기도 했더군요.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당신의 그런 트윗들을 읽을 수 없었지만, 일본에 대한 당신의 애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여성의 달에 올린 피겨 스타 아사다 마오의 사진 위에 당신이 ‘a true champion’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나는 당연히 ‘the truest champion’인 내 동포 김연아씨를 떠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한국인으로서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미국 외교정책의 입안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한국과 일본, 미국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이 편지의 수신인으로 당신을 불러낸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도쿄에 주재하고 있는 사람인 만큼, 이 편지의 수신자가 될 만도 합니다. 게다가 당신의 트위터에서 나는 미국 리버럴 지식인의 실루엣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인종적 소수파와의 연대, 페미니즘, 평화 지향 같은 것 말입니다. 주일본 미국 대사 캐럴라인 케네디는 리버럴 작가이자 법률가 캐럴라인 케네디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비슷한 이념을 나누고 있는 비슷한 연배 한국인의 투정을 당신이 받아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트위터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당신의 남편과 아이들과 친구들의 사진을 봤을 때, 그리고 당신의 설명에 힘입어 그들이 죄다 모범적 가족이자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당신이 문득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칸센 열차에서 아베 총리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당신을 봤을 때, 여성인권 신장에 자기가 이바지했다고 자랑하는 아베 총리에게 당신이 감사를 표했을 때,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울가망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5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해방 70주년이었지요. 70년 전 한국인들에게 그 해방을 가져다준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었습니다. 그보다 40년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는 것을 통해, 한반도를 보호령으로 삼겠다는 일본의 의지를 용인한 것이 미국이었듯 말입니다. 패전 70주년 하루 전날인 지난 14일 아베 총리가 발표한 담화를 당신도 들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백악관의 발표대로 당신도 그 담화를 환영하며 일본이 모든 국가의 모델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나는 아베 담화를 미사여구로 치장된 책임회피이자 책임 떠넘기기로 이해했습니다. 일견 아베 총리는 미국과 주변 국가 시민들에게 사과를 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과에는 아무런 구체성이 없었습니다. 일본의 우익인사들이 부정하고 있는 난징 대학살이나, 주로 한국인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이 두 사건은 나치독일의 제노사이드나 생체실험과 나란합니다)이 거기서는 은유적으로도 거론되지 않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의 상처이자 근대 여성사의 깊은 상처인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에 대해서 아베 총리는 “전장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상당한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다”고 우아하게 넘어갔습니다. 반면에 그 담화는 자화자찬과 피해자 시늉으로 범벅돼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러일전쟁이 식민지 지배 아래서 고통받는 많은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다”고 으스댔습니다. 그 러일전쟁을 빌미로 일본이 미국과 공모해 한국의 외교주권을 빼앗고 식민지 지배를 시작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베 총리는 또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도쿄 공습, 오키나와 지상전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음을 강조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가리킨 그 희생자들이 미군 병사들이나 한국인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일본인의 8할이 넘는다며, 이들에게는 사과 의무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요컨대 전후에 태어난 자기도 사과할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언제 제대로 된 사과(예컨대 독일 수준의 사과)를 했는지 나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1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악착같이 참배해온 이들이 일본 정치인들입니다.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는 아베 총리는 소위 해석개헌과 그에 따른 군사 관련 법률들의 개악을 통해 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들고 있는 그 총리이기도 합니다. 성노예의 존재를 인정한 1993년의 고노 담화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명시한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는 아베 총리에게 잘못된 선례이거나 편리한 알리바이일 뿐입니다. 종전 70주년은 아베 총리가 그토록 유감스러워하는 히로시마 70주년이기도 합니다. 히로시마 70주년을 맞아 국제 언론은 떠들썩했습니다. 여느 8월에 견줘서도 도드라지게 일본에 대한 동정론이 물결쳤습니다. 신문을 보니, 당신도 8월6일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열린 위령식에 참석했더군요. 혹시 당신은 히로시마의 리틀보이와 나가사키의 팻맨, 이 두 원자폭탄의 희생자 열 사람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많게는 두 사람 가까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지요?
원자폭탄 투하는 정녕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차례의 원폭 공격이 일본 국가를 전범국가에서 희생자로 만들고 있는 상황까지 흔쾌히 받아들여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포함한 서방 지식인들은 히로시마라는 말에서 죄의식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죄의식은 인류에 대한 죄의식도 아니고 희생자들 전체에 대한 죄의식도 아니고, 묘하게도 오로지 일본인들에 대한 죄의식인 듯합니다.
올해도, 히로시마 50주년이었던 1995년 8월처럼, 국제 언론은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선생을 평화의 사도로 소환했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과는 무관하게, 오에 선생은 훌륭한 작가이고 견결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본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히로시마를 얘기할 때 오에 선생의 마음에 전범국가 일본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에 선생의 <히로시마 노트>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요? 그 책에는 저자가 <히로시마의 증언>이라는 책에서 읽었다는 한국인 피폭자 두 사람 얘기가 나오긴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위대한 작가가 한국인들이야말로 무고한 원폭 희생자라는 점을 어슴푸레라도 느꼈는지 모르겠고, 원폭 투하가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응징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히로시마 노트>는 자기연민의 전시장입니다. 1963년 여름, 히로시마를 처음 찾은 오에 선생은 원폭병원 앞에서 승려들이 벌이는 ‘아우슈비츠-히로시마 평화행진’이라는 것을 목격하고는 거기 깊이 공감합니다. 히로시마를 아우슈비츠에 병렬시키는 역사의식이란, 그리고 거기에 공감하는 작가의식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미국 처지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더 중요한 우방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압니다. 그러나 일본이 재무장하는 데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독려하는 미국 정부의 행태는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주일본 미국 대사인 당신에게 한국에 대한 고려를 요청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외교관 캐럴라인 케네디가 아니라 지식인 캐럴라인 케네디에게라면 그런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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