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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300년 대운하의 꿈 」 이룰까

이강기 2015. 10. 9. 15:15

[확대경] 태국 「300년 대운하의 꿈 」 이룰까

말레이반도 관통 추진…총공사비 137억달러에

세계 건설업계 군침

300여년의 꿈은 현실로 이뤄질 것인가. 총공사비 137억달러에 공사기간만 20년. 파나마와 수에즈운하에 버금가는 태국의 크라 운하(Kra Canal) 건설계획에 세계 건설업계의 관심이 총집중되고 있다.

▲ 300여년의 오랜 대운하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태국은 파나마 운하에 버금가는 대운하 건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안다만 인근 태국 연안 모습.
말레이 반도를 두 동강 낼 크라 운하가 건설되면 기존 말라카 해협을 거쳐야 했던 선박들이 바로 남지나해로 빠질 수 있어 운송기간과 경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싱가포르항의 선박 지체가 심화되고 말라카 해협에 해적들까지 출몰해 크라 운하의 경제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태국측은 이미 타당성 조사를 마친 상태이다.

태국 남부 미얀마 쪽의 안다만과 반도 건너편 태국만을 잇는 크라 운하는 「싸이암 운하」 또는 「태국 운하」라고 불리기도 한다. 당초 안다만의 내륙 소도시 크라부리와 태국만쪽의 춤폰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운하 건설의 첫 계획이었다.

현재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 길목은 말라카 해협이다. 양 대륙의 상품 교역은 물론, 중동 산유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원유의 해상루트가 이곳이다. 이런 말라카 해협이 병목상태로 몸살을 앓으면서 크라 운하는 엄청난 경제성으로 인해 외국에서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 건설업계도 검토 착수

 

크라 운하는 그동안 10여 곳을 대상지로 검토해왔다. 이 가운데 2A 루트, 즉 안다만의 라농시와 태국만의 랑수완시 구간이 직선거리 90㎞로 최단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45㎞의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하고 태국과 비우호적인 버마 국경에 인접해 있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5A 루트인 태국만 쪽 송크라시와 안다만 쪽의 사툰시를 잇는 구간은 102㎞. 거리가 다소 길어지지만 평지와 천연수로를 이용할 수 있으며 태국

영토내에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가장 유력시 되고 있다.

최근 태국 과학기술협력자원단 연구보고서는 크라 운하를 2차 왕복선으로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표했다. 현재 최대 25만∼30만t급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폭 430 깊이 26 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외국 컨설팅회사들은 조만간 50만t급 선박이 건조될 것에 대비, 운하 규모를 더욱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1882년 시도했던 크라 운하 개념도.
크라 운하 건설에는 특히 일본 건설업계가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크라 운하의 타당성 조사에 일본은 글로벌 인프라 기금(GIFㆍGlobal Infrastructure Fund) 400만달러를 투입하는 등 초기부터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건설업체들도 운하건설에 대비해 프로젝트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운하 건설에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운하 건설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높은데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태국 정부는 국토 분단에 따르는 태국 남부 회교분리주의자들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있다. 운하 건설로 자연환경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방콕포스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 500명 응답자의 75%가 크라 운하의 즉시 시공을 주장했고, 55%의 응답자가 외자 유치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였다. 국가 안보에 위협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응답자도 61%에 달했다.

태국 정부는 지난 300여년간 크라 운하 건설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건설경비와 기술 문제 등으로 장벽에 부딪치곤 했으며, 여기에는 국제사회의 압력도 작용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우방이었던 태국은 일본이 폐망한 후 1946년 1월 승전국인 영국과 「운하건설을 포기하고 건설시 영국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강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유엔도 태국 정부가 국제 안전보장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사실상 운하계획을 중단시켰다.

태국이 운하를 건설할 경우 가장 타격을 받게 될 싱가포르도 운하계획을 집요하게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말라카 해협의 길목을 차지하며 부를 축적한 싱가포르는 풍부한 자본력과 기술을 앞세워 이젠 태국의 운하 건설을 지원할 것이라고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싱가포르 입장에서는 말라카 해협을 지나는 선복량의 증가로 항구 적체가 심화 되고, 잦은 해난사고로 인한 해역오염이 심각하게 된 탓이다. 싱가포르의 하루 평균 선복량은 1983년 119척에서 1993년에는 274척으로 늘어났다. 1999년 잠정 통계에 의하면 선복량이 하루 450척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만명 영구 고용창출 가능

 

이같은 선박 증가로 싱가포르 항만 당국은 인도네시아 서부 수마트라섬을 우회하는 선박을 우선 입항시키는 특혜를 주고 있으나 1주일이나 더 걸리는 항해로 인해 별 효력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태국의 크라 운하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말라카 해협에 암초와 해초가 많아 해상사고가 잦고 해적 출범이 늘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크라 운하를 이용할 경우 말라카 해협을 지날 때보다 약 700해상 마일을 단축, 2∼3일간의 항해기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된다.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1항차당 9만7000∼19만달러, 대형 유조선은 10만∼30만달러의 경비절감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태국은 IMF 경제위기로 470만명까지 늘어난 실업자를 고용하고 운하 건설시 외자유치는 물론 100만명의 영구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크라 운하의 건설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1677년 아유타야 왕조부터 건설 계획

1677년 태국 아유타야 왕조의 나라이 왕은 태국만과 안다만, 크게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맞닿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프랑스에 특사를 보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6세가 지배하던 때였다. 당시 프랑스 기술진은 태국 남단 송클라시와 미얀마의 메구이 또는 타보이 지역을 연결하는 가장 경제적이란 결론을 내렸었다.

1793년 라마 1세는 태국 송클라와 말레이시아의 사이부리를 잇는 공사를 계획했다가 미얀마의 침공을 우려해 취소하기도 했다. 또 1858년에는 라마 4세가 영국인 기술자에게 라농과 춤폰을 잇는 계획을 맡겼으나 고산지대를 관통하는 어려움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운하계획은 1세기 후 지금의 라마왕조에도 계속 검토되다가 라마 5세에 의해 재개됐다. 1882년 수에즈운하를 개통시킨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를 통해 크라 운하 공사를 시도했으나 중단됐고(국립박물관 소장 단면도 참조), 1917년에는 라마 6세가 파나마 운하 개통에 자극받아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등 진전을 보았으나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무산되었다.

(방콕=안주현 통신원)


주간조선2000.03.09 /15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