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 敎育

조선 궁궐과 중국, 일본 궁궐의 비교

이강기 2015. 10. 13. 22:01

 

인정전, “원형보존 잘 된 신식형 건축”
전문가 조사: 한국의 최고의 궁궐건축
2006년 11월 07일 교수신문 이은혜 기자 womanpeace@hanmail.net

 

□ 창덕궁 인정전, 국보 225호, 태종 5년(1405) 창건, 순조 4년(1804) 재건립.

한국의 궁궐건축 가운데 전문가들은 경복궁의 근정전과 경회루가 최고의 미학적 성취를 거둔 작품으로 꼽았으며, 뒤이어 창덕궁의 인정전을 으뜸으로 추천했다. “경복궁과는 달리 건물배치가 자유롭다”, “원형이 잘 보존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평가다.


인정전은 왕이 외국사신을 접견하고 신하들로부터 조하를 받는 등 공식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먼저 외부를 보면,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밖으로 뻗친 부재 끝이 날카롭게 표현돼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지붕 꼭대기엔 오얏꽃무늬로 장식했는데, 이는 한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던 무늬다. 건물 좌우에는 행각이 있고, 마당엔 신하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있다.


내부를 보면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인 御間에만 네쪽 문을 달고 나머지 칸에는 높게 머름 들이고 창을 달아 여닫게 했다. 내부 천장 가운데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봉황 두 마리를 채색해 넣었다. 뒷면의 높은 기둥 사이에 임금이 앉는 의자가 마련돼 있고 그 뒤에는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전내에 여러 의장기구가 설치됐더라면 어좌의 장중함이 돋보였을 텐데, 현재는 신식 전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단청은 모로단청(평방, 창방, 도리, 대들보의 머리초만 그리고 중간에는 긋기만 해 가칠한 상태로 두는 것) 계열로 무늬나 색조가 차분하다. 실내에 전등을 달고 휘장을 친 개화의 물결은 머름대 위에 꽃살무늬, 창 안쪽에 유리창 다는 것을 도입케 했다. 왕의 법전에 유리창을 시설한 첫 예다. 중앙에 어좌로 오르는 층계가 있고, 좌우 난간에 法樹를 장식했는데 조각의 형상은 蚩尤 장수의 모습으로 선명히 남아 있다.


인정전은 1405년(태종 5) 창덕궁 창건때 지어진 건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광해군 즉위년인 1608년 복구됐고, 1803년(순조 3) 화재로 다시 소실됐다가 이듬해 중건돼 현재에 이른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中, 크고 웅대함 … 日, 엄숙하고 端雅
中·日 궁궐건축과의 비교
2006년 11월 08일 교수신문 이강근 editor@kyosu.net
태화전 지붕

태화전은 중국 명청대 황성인 자금성의 정전이다. 자금성은 明 永樂 5년(1407)부터 15년 사이에 건립됐는데, 배치와 제도는 기본적으로 남경 궁성을 본떴으나 규모는 더 크다.


淸은 기본적으로 명의 궁전을 물려받아 사용했는데 대부분의 건물을 재건 또는 개조하거나 이름을 바꾸었지만 전체 배치는 바뀐 것이 거의 없다.


전체를 하나의 중심축으로 꿰뚫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여 엄격하고 규칙적인 성격을 갖게 한 것이 배치의 특징이다. 궁성의 중심축은 북경성의 중심축과 겹쳐지므로 궁전의 위치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궁성의 규모는 남북 960m, 동서 760m로 면적이 72만㎡이다. 자금성내의 궁전 건축군은 두 블록으로 나뉘며 앞쪽을 외조, 뒤쪽을 내정이라 한다.


외조는 수미단형식의 아름다운 기단(높이 8.13m) 위에 세워진 3채의 커다란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태화전은 궁전 전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외관이 웅대한 건축이며 정면 63.9m, 측면 31.7m, 높이 26.92m이다. 황제 즉위나 경축일 식전(원단, 동지, 황제 탄생일, 대장의 출정 등), 조서 반포와 같은 중대한 의식은 모두 여기서 행해졌다.


태화전 뒤의 중화전은 황제가 식전을 행하기 전에 사용하는 준비실이며, 그 뒤의 보화전은 주연을 베풀거나 황제가 친히 행하는 朝考의 시험장이다. 태화전 전면의 폭넓은 중정(면적 3.6 헥타아르, 36만 ㎡)을 둘러싸고 앞쪽에 태화문, 동서 양쪽에 단층집, 누각 등이 태화전과 대비되어 호응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내정에도 황제 거처인 건청궁, 황후 거처인 곤녕궁, 두 건물 사이의 교태전 등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紫宸殿

일본의 궁궐건축으로는 御所의 紫宸殿을 꼽을 수 있다. 御所의 정전으로 천황의 즉위식, 태자 책봉의례 등 가장 중요한 의식을 집행하던 건물이다.


남쪽 마당에 면하여 남향으로 세워진 팔작지붕의 高床式 일본풍 殿造 건물로 평면은 33×23m 크기이다. 규모는 크지만 華美한 장식이 없는 간소한 건물로 회랑과 더불어 엄숙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조는 중앙 몸채 동서남북에 퇴칸을 덧붙인 형태이며 정면에 18단의 계단을 뒀다.


내부는 마루를 깐 폭넓은 공간이다. 중앙에 놓인 천황 자리인 高御座와 그 동쪽의 황후 자리인 御帳台는 모두 높이 약 5m, 평면 8각형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장막을 두르고, 내부에는 의자가 놓여 있다. 그 뒤 안쪽은 ‘賢聖障子’로 불리며 헤이안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題인 중국 고대 현인 32인의 초상화가 묘사돼 있다. 천황의 즉위식은 헤이안시대 초기에는 태극전에서 거행되었으나 1137년에 소실된 이후 태극전이 재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오랜 동안 태정관에서 행해지다가 1522년부터 현 京都 御所의 전신인 土御門東洞院 內裏의 자신전에서 거행됐다. 현존 건물은 1855년에 새롭게 재건된 것이다.


자신전 좌우의 翼廊, 동, 남, 서 3면의 행랑이 연결되어 독립된 마당을 형성하였는데, 마당에는 잘게 부순 돌을 깔았다. 남행랑에 정문인 承明門(3칸×1칸), 동행랑에 日華門(1칸), 서행랑에 月華門(1칸)을 설치하였다. 자신전 배후 서쪽에는 동향한 팔작지붕, 寢殿造 형식의 淸凉殿이 있는데 본래 천황의 거처이자 집무소였으나, 천황의 거처가 常御殿으로 바뀐 뒤부터 의식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이강근

 

 

中, 인위적이고 다소 폐쇄적…日, 깔끔하고 경쾌함

中·日 누각과의 비교
2006년 11월 07일 교수신문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ditor@kyosu.net
□ 烟雨樓, 강희42년(1703) 창건, 건륭 55년(1790) 완공.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용 행궁인 승덕 피서산장 안에는 물가에 위치한 ‘연우루’가 있는데 중국의 대표적인 누각건물이라 할 수 있다. 강희42년(1703)에 시작해 건륭 55년(1790)에 완공된 행궁은 5백64만평에 달하며 이 안은 궁전, 호수, 평원, 화산으로 이뤄져 있는데, 누각 건물은 호수 위로 돌출되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연우루는 인공대지를 조성한 위에 세워졌고 돌난간을 두른 점이 경회루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근처에는 석가산이 조경요소로 구성되어 인위적인 경관을 구사하는 중국풍의 수법이 보여 자연주의적 조경수법을 사용하는 경회루와 대비된다.


건물은 2층으로 상·하층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4면에 회랑을 두르고 있다. 하층을 돌기둥으로 구성한 경회루와 달리 여기서는 하층도 건물로 활용하고 있는 점에 차이가 있다.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서의 ‘개방성’이란 측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경회루가 4방을 완전히 개방한 평면이라면 연우루는 창호 등으로 마감한 내부의 벽체를 회랑이라는 매개공간을 통해 자연과 통하도록 한 점에서 개방성이 감소된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의 누각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2층에는 풍혈과 간략한 난간을 설치했으나 경회루에 비해서는 간략하다. 지붕은 용마루가 없는 소위 무량각 방식을 채택하여 독특한 외관을 보여준다. 지붕은 팔작이나 경회루에 비해 측면지붕이 매우 적어 화려한 감이 훨씬 덜하다.


일본 계리궁은 智仁親王이 1620년부터 5년간에 걸쳐 건립한 별장으로 교토시 계천가에 위치해 있다. 연못가에는 古書院, 中書院, 新御殿 등이 연결돼 있다. 이 건물들은 경회루, 인위루와는 달리 단층의 주택건물로 두 건물과 성격상 다소 차이가 있으나 경관이 좋은 곳에 위치한 점, 물과 건물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 桂離宮, 지인친왕 대(1620) 창건, 1625년 완공.


계리궁의 건물들은 연못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인공의 대지를 구성했다. 적극적으로 물가에 다가선 경회루, 연우루와는 입지면에서 차이가 있다. 건물은 굵은 직경의 부재들을 활용해 축조한 경회루나 연우루와 달리 직경이 매우 작은 부재를 사용하여 깔끔하게 축조한 전형적인 일본풍 건축미학을 보여 준다. 지붕도 기와와 같은 질박한 재료가 아닌 茅葺을 이용하여 경쾌한 모습이다.


건물 바닥은 마루높이가 바닥에서 부터 2미터 정도 올라와 있고 벽체는 흰색의 종이로 마감돼 정원의 넓은 잔디의 초록색과 대조되어 아름답다. 창문을 열면 연못이 잘 보이도록 조망을 고려했다. 내부 바닥은 일본 전통의 다다미를 깔았으며 수묵화 등으로 실내를 정교하게 장식했다. 건물과 건물은 좁은 복도를 통해 연결되는 일본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여러 가지 특이한 형태의 디딤돌을 놓아 아름답게 꾸몄다. 연못 주변에는 다실과 정교한 형태의 다리를 놓아 독특한 경관을 구성했다. 이러한 요소들도 서원조 건물과 같이 지극히 절제된 모습의 깔끔한 디자인 요소로 통합되어 전체적으로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잘 어우러진 외관을 연출하고 있다 / 김봉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