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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전 지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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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전은 중국 명청대 황성인 자금성의 정전이다. 자금성은 明 永樂
5년(1407)부터 15년 사이에 건립됐는데, 배치와 제도는 기본적으로 남경 궁성을 본떴으나 규모는 더 크다.
淸은 기본적으로 명의 궁전을 물려받아 사용했는데 대부분의 건물을
재건 또는 개조하거나 이름을 바꾸었지만 전체 배치는 바뀐 것이 거의 없다.
전체를 하나의 중심축으로 꿰뚫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여 엄격하고
규칙적인 성격을 갖게 한 것이 배치의 특징이다. 궁성의 중심축은 북경성의 중심축과 겹쳐지므로 궁전의 위치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궁성의 규모는
남북 960m, 동서 760m로 면적이 72만㎡이다. 자금성내의 궁전 건축군은 두 블록으로 나뉘며 앞쪽을 외조, 뒤쪽을 내정이라 한다.
외조는 수미단형식의 아름다운 기단(높이 8.13m) 위에 세워진
3채의 커다란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태화전은 궁전 전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외관이 웅대한 건축이며 정면 63.9m, 측면
31.7m, 높이 26.92m이다. 황제 즉위나 경축일 식전(원단, 동지, 황제 탄생일, 대장의 출정 등), 조서 반포와 같은 중대한 의식은
모두 여기서 행해졌다.
태화전 뒤의 중화전은 황제가 식전을 행하기 전에 사용하는
준비실이며, 그 뒤의 보화전은 주연을 베풀거나 황제가 친히 행하는 朝考의 시험장이다. 태화전 전면의 폭넓은 중정(면적 3.6 헥타아르, 36만
㎡)을 둘러싸고 앞쪽에 태화문, 동서 양쪽에 단층집, 누각 등이 태화전과 대비되어 호응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내정에도 황제 거처인 건청궁,
황후 거처인 곤녕궁, 두 건물 사이의 교태전 등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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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宸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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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궁궐건축으로는 御所의 紫宸殿을 꼽을 수 있다. 御所의 정전으로 천황의 즉위식, 태자 책봉의례 등 가장 중요한 의식을
집행하던 건물이다.
남쪽 마당에 면하여 남향으로 세워진 팔작지붕의 高床式 일본풍 殿造
건물로 평면은 33×23m 크기이다. 규모는 크지만 華美한 장식이 없는 간소한 건물로 회랑과 더불어 엄숙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조는
중앙 몸채 동서남북에 퇴칸을 덧붙인 형태이며 정면에 18단의 계단을 뒀다.
내부는 마루를 깐 폭넓은 공간이다. 중앙에 놓인 천황 자리인
高御座와 그 동쪽의 황후 자리인 御帳台는 모두 높이 약 5m, 평면 8각형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장막을 두르고, 내부에는 의자가 놓여 있다.
그 뒤 안쪽은 ‘賢聖障子’로 불리며 헤이안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題인 중국 고대 현인 32인의 초상화가 묘사돼 있다. 천황의 즉위식은 헤이안시대
초기에는 태극전에서 거행되었으나 1137년에 소실된 이후 태극전이 재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오랜 동안 태정관에서 행해지다가 1522년부터
현 京都 御所의 전신인 土御門東洞院 內裏의 자신전에서 거행됐다. 현존 건물은 1855년에 새롭게 재건된 것이다.
자신전 좌우의 翼廊, 동, 남, 서 3면의 행랑이 연결되어 독립된 마당을 형성하였는데, 마당에는 잘게 부순 돌을 깔았다.
남행랑에 정문인 承明門(3칸×1칸), 동행랑에 日華門(1칸), 서행랑에 月華門(1칸)을 설치하였다. 자신전 배후 서쪽에는 동향한 팔작지붕,
寢殿造 형식의 淸凉殿이 있는데 본래 천황의 거처이자 집무소였으나, 천황의 거처가 常御殿으로 바뀐 뒤부터 의식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이강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