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 敎育

國語교과서가 名文을 죽인다

이강기 2015. 10. 13. 22:32
國語교과서가 名文을 죽인다
(월간조선 2000년 4월)
 
●교과서에서 名文의 시대는 1970년대로 끝났다. 이리하여 「國語」의 황량한 풍경은 개막됐다. 이제 국어 교과서의 文章들은 아무런 감동도, 감명도, 감흥도 주지 않는다. 혈색마저 잃은 貧血의 凡文만이 행세하고 있다. 名文을 읽지 못하는데 名文이 나올 리가 없다
金聖佑 前 한국일보 논설고문
文章興國
 대한민국 국민의 문장은 대한민국의 국정 국어교과서가 파괴하고 있다.
 
  나는 이 엄숙한 선언을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에 플래카드로 내걸고 싶다. 국어는 국민과 함께 국가의 구성요소다. 지금 이 땅에 국어는 있되 國文(국문)이 없다. 국문이 없기야 할까마는 국어 문장이 없다. 국어문장이 없기야 할까마는 국어의 名문장이 없다. 名문장이 없는 것은 국어의 격조와 품위가 없는 것이다. 국가의 威儀(위의)와 自尊(자존)이 없는 것이다.
 
  文章興國(문장흥국)이란 말이 있다. 명문은 나라를 일으킨다. 明(명)나라가 南京(남경)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했을 때 宋濂(송렴)이 쓴 왕의 詔書(조서)가 하도 名文이어서 북방의 사대부들이 명조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宋濂은 명대 최고의 시인으로 개국 초 왕의 모든 制誥(제고)의 글을 명문으로 도맡아 씀으로써 國基(국기)를 세웠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찍이 名文은 있었다.
 
  조선조 전기의 문신인 沈義(심의)의 大觀齋夢遊錄(대관재몽유록)에서는 가상 文士(문사)의 나라 정부를 組閣(조각)한다. 왕에는 단연 崔致遠(최치원). 신라 말기의 학자이던 그는 唐(당)나라에 가서 黃巢(황소)를 토벌하는 격문을 써서 文名(문명)을 떨쳤다. 領相(영상)은 乙支文德(을지문덕). 隋(수)나라 군사에게 五言詩(오언시)를 써보내 희롱한 고구려 장군이다. 左相(좌상)은 「白雲小說」(백운소설)을 쓴 고려조의 李奎報(이규보), 右相(우상)은 「木樂翁稗說」(역옹패설)을 쓴 고려 말의 李齊賢(이제현).
 
  조선조 초 徐居正(서거정)은 우리나라 詩文(시문)의 精華(정화)를 추려 「東文選」(동문선)을 찬하면서 그 서문에서 『우리나라의 글은 삼국시대에 시작하여 고려에서 성하였고 조선에 와서 극치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천지기운의 성쇠에 관련된다는 것을 이로써 가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지금 「東文選」 후예들이 名文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천지기운의 쇠함 때문인가.
 
  빼앗겼던 나라말과 나라글을 되찾은 광복 후 한참때까지만 해도 名文의 전통은 불씨처럼 살아 있었다. 당시 특히 명문장가로 聲名(성명)을 날리던 사람이 작가이던 尙虛(상허) 李泰俊(이태준)이었다. 1946년에 나온 「상허문학독본」의 발문에서 李源朝(이원조)는 상허를 가리켜 『글에는 化(화)한 사람』이라고 국궁했다. 오죽하였으면 시인 鄭芝溶(정지용)이 상허를 본떠, 「지용문학독본」을 쓰면서 서문에서 『나도 산문을 쓰면 쓴다―태준만치 쓰면 쓴다는 변명으로 산문쓰기 연습으로 시험한 것이 책으로 한 권은 된다』고 시심했을까.
 
 
  李泰俊의 「문장강화」
 
 
  李泰俊이 1948년에 펴낸 增訂版(증정판) 「文章講話(문장강화)」는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만큼 문장에 대한 국민적 열의가 대단했다. 이 속에 인용된 여러 필자들의 文範(문범)은 광복을 전후한 우리 글 名文들의 집대성이기도 했다. 이런 명문장들의 시범 속에서 우리의 국민문장은 砥礪(지려)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통이 지금 어디로 갔는가.
 
  실로 名文이란 낱말은 이제 古語(고어)처럼 되어 간다. 우리나라에 명문장의 씨가 마르기야 했을까마는 귀먹은 듯 그 명성이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 현대문학에 명작이야 많지마는 문학적 명작이 반드시 名文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명문장은 문학인만의 전유물일 수도 없다.
 
  名文의 시대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면 그 까닭은 어디 있는가. 나는 분연히 우리나라의 국어교과서를 지목한다. 온 국민의 문장력을 원초적으로 훈련하는 것은 학교에서의 「국어」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특히 중·고등학교의, 「국어」다. 그 국어 교과목의 실상은 어떤가.
 
  1947년에 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광복 후 처음 제정한 교과과정으로 「국어」를 배운 우리 국어교육의 제1세대다. 우리 국민의 국어교육은 나의 국어교육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의 국어 교육사는 우리 국어교육사의 제1장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중등국어교본의 제1과는 趙東卓(조동탁)의 「무궁화」였다. 내가 이 맨 첫과를 부질없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국어와의 첫 대면이 그만큼 감격적이었다는 말이다. 이 중학국어의 제1과는 내게 萬學(만학)의 제일보였고, 萬文(만문)의 第一門(제일문)이었다.
 
  「우리는 이 강산을 빛낼 이 나라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내일이면 이 누리에 피어날 무궁화 꽃봉오리입니다」라는 이 글의 맨 끝 귀절은 무궁화 꽃봉오리에 맺힌 새벽이슬처럼 상긋했다. 그런 청초한 신선미로 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趙東卓이 시인 趙芝薰(조지훈)의 본명이라는 것을 그 훨씬 뒤에 알아낸 것도 내내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국어 과정에서 특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徐廷柱(서정주)의 「귀촉도」, 柳致環(유치환)의 「울릉도」, 金珖燮(김광섭)의 「비 갠 여름아침」 같은 詩들 외에 方定煥(방정환)의 「어린이 예찬」, 閔泰瑗(민태원)의 「청춘예찬」, 羅稻香(나도향)의 「그믐달」, 李箱(이상)의 「권태」 같은 산문들이다. 이 문장들은 모두 지금도 名文을 들먹일 때마다 반드시 낀다. 그 명문성이 아니었더라면 내게 지금까지 생각날 까닭도 없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고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라고 「청춘예찬」이 낭낭히 낭독될 때 아직 어린 내 청춘은 얼마나 지레 설던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국어 교과서에서 吳相淳(오상순)의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가 그 비탄조로 가슴을 울먹이게 하고, 李孝石(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가 그 서정미로 애잔한 심사를 돋우고, 李敭河(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이 영국 산문 중 가장 독창적이라는 문장의 진미를 맛보였지만, 무엇보다도 감명을 준 것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나뿐일 것인가. 어느 연대까지 고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이 글을 배운 사람들은 대부분 그 내용은 잊었을망정 적어도 제목은 잊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안톤 슈낙은 세계문학상의 어느 大家보다 유명한 이름이다. 그만큼 온 학생들의 심서를 뭉클하게 했던 名文이었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이 문장은 독문학자이면서 수필가이던 聽川(청천) 金晋燮(김진섭)의 번역이 名譯(명역)이어서 그의 수필집인 「생활인의 철학」 맨 첫 머리에 실리기까지 한 글이다. 이 세상의 슬픈 것이란 슬픈 것은 모조리 끌어모은 상상력의 발상과 연상도 기발하지만 그 詩情(시정) 있는 독특한 문체는 언어의 미감을 돋우었다. 그 섬세한 감성과 탐미의식은 감수성이 강한 청소년기의 정감을 긁었다. 광복 후 교육을 받는 한동안까지의 세대는 이 글의 정취에 취해 문장에 대한 구미를 기르고 있었다.
 
 
  안톤 슈낙의 고향을 찾다
 
 
  나는 한국일보 파리특파원으로 있을 때 옛 국어교과서에 실린 글 한 편의 매력에 유혹되어 안톤 슈낙의 고향을 찾아갔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칼이란 조그만 마을에서 살다간 안톤 슈낙은 가서 보니 독일에서도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지방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이 異國(이국)의 무명작가가 우리 국민의 문장교육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全文을 외우고 있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글의 정조와 음조를 내 작문의 키노트(keynote)로 삼고 싶은 과욕에서였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그 名文의 명성에 힘입어 그 뒤에도 줄곧 교과서에 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이 글을 만난 지 꼭 30년 뒤인 1981년 제4차 교과서 개편 때부터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분하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교과서에서 추방당한 것은 그야말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느 시인은 『이 글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요즘의 학생들은 불행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서 名文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일 것이다. 우리를 즐겁게 하던 문장들은 퇴장하고 있었다. 교과서에서의 名文의 시대는 1970년대로 끝났다. 국어 교과서의 개편 방침이 「舊교과서는 정도가 높은 명문·명작을 실어 문학적 정독주의를 요구하는 동시에 고전·고문의 양이 많았으나 新교과서는 현대문·실용문·생활문이 중심이 되어 다독주의로 음성언어의 훈련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이리하여 「국어」의 황량한 풍경은 개막되었다. 생활문·실용문만이 점령군처럼 진주했다. 이제 국어 교과서의 문장들은 아무 감동도 감명도 감흥도 주지 않는다. 평평범범하고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물기도 기름기도 없이 까칠까칠하고 바삭바삭하다. 맛도 멋도 없이, 향기도 광채도 없이, 才氣(재기)도 情念(정념)도 없이, 혈색마저 잃은 貧血(빈혈)의 行文(행문)들. 찬란하고 탄력 있는 문체는 모두 남의 나라의 국어인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문체는 이민족처럼 추방해 버리고 표준문장이란 이름으로 凡文(범문)만이 행세하고 있다.
 
  월간문예지 「문학사상」이 1991년 2월호에서 「고등학교 새 교과서 문학교육에 문제는 없는가」라는 특집을 꾸몄을 때 한 일선 교사는 기고문을 통해 국어 교육이 지나치게 사회적·실용적 내용을 강조한 나머지 교과서에 名文이 사라진 것을 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어 교육의 중요한 몫인 인간교육, 즉 문장에 향기를 느끼고 정서를 기르며 꿈을 불사르는 非가시적 요소를 제거시켜 그 결과 가뜩이나 삭막한 이 세계를 더욱 삭막하게 하고 국어 시간에나 바랐던 꿈 기르기가 이젠 찾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 몹시 염려된다』
 
  名文은 학생들에게 꿈의 香囊(향낭)이다.
 
  우리 집에 올해 2학년에 진학한 중학생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1학년 때 국어 교과서 재미있었니?』
 
  우리 집 중학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글을 꼽아 보라니까 겨우 「폴란드 소녀의 울음」을 하나 들었다. 읽어보니 퀴리부인傳의 일절로 번역문이다. 그나마 재미가 있었다면 문체 때문이라기보다는 내용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그라마티스무스 환자?
 
 
  우리 「국어」가 재미없다. 정떨어지는 「국어」는 全국민의 語文(어문) 교육에 치명적이다. 두고두고 읽고 싶고 외우고 싶은 美文이나 名文 한 편 없는 국어 교과서에 全국민의 문장 교육을 맡겨 놓을 수 없다. 온 국민을 아그라마티스무스(agrammatismus·작문 불능증) 환자로 만들겠다는 음모가 아니라면 어떻게 국정 교과서의 이름으로 名文의 대학살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인가.
 
  국어 교과서에 문학 작품이 들어 있지 않느냐고 강변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비중이 너무 작기도 하거니와 다시 말하지만 문학 작품이라 하여 문장 자체로는 다 名文인 것은 아니다. 또 名文이라 해서 다 문학인 것도 아니다.
 
  『국어 교육을 아무리 오래 받고 이해력 판단력 비판력이 잘 길러지고 말을 잘 한다 하더라도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로 쓸 줄 모르면 국어 교육을 잘 받은 보람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 습득은 국어 교육의 출발점이요 작문은 그 종착점인 것이다』(이응백, 국어교육사연구)
 
  名文 없이 名文 없다. 名文의 교본은 名文이다. 학교에서 名文을 배우지 않고 자란 국민의 문장에서 名文이 나올 리 없다. 평준화 시대라 하여 문장마저 평준화되었다. 딱딱한 세상이라 하여 문장마저 딱딱해져 간다. 이런 硬變症(경변증)의 문장으로 국민의 의기를 고취시킬 수 없고 국민의 精氣(정기)를 고양할 수 없고 국민의 정서를 심화시킬 수 없다.
 
  학교에서의 작문 교육의 부진은 1960년대 이후의 4지선다형 객관식 고사 방법이 큰 이유라고도 한다. 4지선다형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압살하여 작문력을 황폐화 시켰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객관식 위주의 사고 방식은 그 작문 교육의 바탕이 되는 국어 교과서 자체마저 객관적인 문장 일색으로 바꿔버리는 악폐를 낳았다. 主情的(주정적)인 문장들 대신 無情(무정)한 설명문들이 차지했다.
 
  이 객관식의 폐해를 극복하자는 것이 대학입시의 논술고사다. 그러나 이 논술고사 또한 작문의 편향을 조장하고 있다. 이성적인 문장만 강요하지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문장이 낄 틈이 없다. 논리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直觀(직관)도 아름답다. 문장 작성 자체는 감각이지 이론이 아니다. 논술고사만으로는 문장 감각을 기르지 못한다. 그리고 논술고사는 全국민의 문장을 규격화할 우려가 있다. 名文은 個性(개성)이다. 규격 속에 名文은 없다.
 
  교과서로 치면 신문 또한 온 국민의 문장 교본이다. 이 신문에서도 名文들이 사라져 간다. 왕년에는 명문장의 명기자들이 있었다. 張志淵(장지연)의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이나 薛義植(설의식)의 「헐려 짓는 광화문」 같은 명논설이 아니더라도, 내가 신문사에 입사하던 시절만 해도 名文 기자는 요즘의 TV연기자 못지않은 스타였다. 오늘날 교과서가 망가뜨려 놓은 문장을 그 교과서로 자란 신문 기자가 복원시킬 재간이 없다.
 
  옛 교과서에 실렸던 名文들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古文(고문)들이라고 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의 현대문에는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아서 名文이 없는 것인가. 나더러 추천하라면 가령 金起林(김기림)의 「길」을 들겠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수필집 「바다와 육체」에 나오는 이 글은 60여년 전인 1936년에 쓰여진 것이지만 어찌 현대문보다 덜 현대적이라 할 것인가.
 
 
  외국어 예찬론의 문제
 
 
  학교 교육이 국어를 파멸시키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있다. 니체는 자신이 片言隻字(편언척자)도 소홀히 하지 않는 愛語家(애어가)였고 스스로 『나의 문장은 물을 타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압축되고 정련된 글을 쓴 명문장가였다. 소크라테스 이래의 논증적 이성을 해체하고 유연한 사고의 독자적인 표현 방식을 썼다. 그가 천거한 散文(산문)의 세계적 大家는 독일의 괴테 외에 이탈리아의 시인 레오파르디, 영국의 비평가 랜더, 프랑스의 작가 메리메,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 등이다.
 
  이 니체는 독일의 김나지움(중·고교)이 독일어 교육을 경시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모국어 교육이 김나지움 교육의 第一義(제일의)라는 것이다. 왜 모국어가 소중하냐. 얼민한 사고, 올바른 판단, 조리 있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모국어의 학습이다. 그래서 그는 외국어의 학습에 비판적이었다. 외국어는 모국어의 섬세한 언어 감각을 마비시킨다. 가장 위대한 문장의 스타일리스트인 두 민족, 즉 그리스인과 프랑스인은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니체는 말한다.
 
  세계화의 시대라 하여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등 득세하는 외국어 예찬론에 우리 모국어의 문장은 춥다. 가뜩이나 국어 교육 부실의 시대에 외국어까지 국민의 문장 감각을 둔화시킨다면 名文은 자랄 국토가 없다.
 
 
  詩를 읽어야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문체를 찬양했다. 플라톤의 문장은 성분이 知(지)와 情(정)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가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 문장의 증상은 주로 情의 결핍증이다. 古來(고래)로 「문장은 정에서 나오고 정은 문장에서 나온다」(文生於情 情生於文)고 했다.
 
  문장의 정은 詩가 원자재다. 『산문의 대가들은 항상 詩人들이었다』고 니체는 말한다. 니체의 문장을 기른 것은 호라티우스의 詩歌(시가)들이었다. 시인 보들레르도 「악의 꽃」에서 『항상 시인이 되라, 산문에 있어서까지도』라고 충고한다.
 
  우리의 국어 교과서에도 물론 詩는 있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을 것인가. 그러나 학교에서는 詩를 情的(정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과학적으로 가르친다. 詩를 정감으로 체득케 하여 詩感을 體感化(체감화) 시키려 하지 않고 분석한답시고 논리의 칼을 들이대 해부를 한다. 詩는 갈래갈래 해체되고 詩情(시정)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詩의 殺害(살해)다. 학생들은 시체가 된 詩에 흥미를 잃는다. 문장을 감화시킬 詩정신이 우리 국어 교육에 없다. 여기서 우리의 산문은 또 한번 절망한다.
 
  우리의 국어교육에서 또 문제가 되는 것은 漢字 교육의 부재다.
 
  문장의 단위는 단어다. 문장은 어휘의 정연한 도열이다. 어휘의 역량이 문장의 역량이요, 어휘의 質이 문장의 質이다. 漢字의 규제로 우리 말이 한자어의 그 수많은 어휘들과 造語力(조어력)을 상실함으로써 문장은 퇴화하고 名文은 퇴장한다.
 
  문장력은 또 표현력 이전에 사고력이다. 사람은 말로 생각한다. 어휘가 표현의 형식뿐 아니라 사고의 양식을 지배한다. 사고의 질량은 곧 어휘의 질량이다. 잃어버린 漢字語만큼 사고력도 잃었다. 이런 사고의 빈곤 속에 名文이 풍요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 문학상은 많기도 하건만 문장상은 하나도 없다. 명문장상이라도 제정하여 名文을 골라낸다면 국어 교과서가 마지못해 실어줄 것인가, 그래서 名文의 전통을 이어갈 것인가, 우리 산문의 美學(미학)은 적막하다.●
 

(월간조선 200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