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載瑞의 문학비평
장춘식(中國 北京
거주 조선족 문학비평가)
1. 머리말
최재서(崔載瑞, 1908-1964)1)는 김기림(金起林), 이양하(李敭河) 등과 더불어 30년대 한국 문단에 主知主義의 기치를 세운 비평가이다. 20년대 후반 한국 문단을 휩쓸던 카프 중심의 프로문학이 저조기에 들어서면서 부진했던 문단 상황에서 이러한 새로운 문학적 주장과 방법론은 의심할 바 없이 긍정적인 의의를 띤 것이었다. 따라서 4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가지 친일문학활동을 하는 등 문제점2)들이 적잖이 부각됨에도 불구하고 30년대 그의 문학이론 연구와 실제 비평활동이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함은 부인할 수가 없다.
본고에서는 최재서의 비평활동을 초, 중, 말기로 나누어 그 전개양상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본 론
1) 初期: 주지주의문학론
강단비평가로 문단에 데뷔한 최재서의 첫 논문은 영문학자답게 「未熟한 文學」(「新興」 5號 1931.7)이라는 영문학 논문이다. 그러나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現代主知主義의 文學理論 建設」(「조선일보」, 1934.7.6-12) 및 「批評과 科學」(「조선일보」, 1934.8.31-9.7) 등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두 편 모두 주지주의 문학이론을 소개한 글인데, 전자에서는 우선 흄의 “不連續的 實在觀”을 소개하면서 휴머니즘의 반대편에 선 신고전주의를 제시했고, 다음 엘리어트의 「傳統과 個人的 才能」을 들어 歷史意識을 해설한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H. 리이드의 「精神分析과 批評」 및 I.A.리챠즈의 「詩와 科學」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이러한 소개 평문은 문단을 주재하던 프로문학이 퇴조한 당시 상황에서는 내용 자체의 새로움도 중요하지만 난해한 이론을 설득력 있는 문장력으로 명료하게 설명했다는 데도 큰 의미를 지닌다. 그는 이러한 비평적 태도를 “作家와 讀者의 仲介人” 노릇3)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강단비평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었다고 보여진다.
2) 中期: 지성론, 모랄론
최재서는 “하여튼 文學傳統ㅡ즉 客觀的 規準에 의하야 개개의 作品을 통제하고 판단하려는 이 主知的 企圖는 外部的 權威를 극력 배척하고 오로지 「內部의 음성」에만 복종하려는 浪漫派로부터 당연히 공격을 받을 것이다.”4)라고 하여 주지주의를 작품에 대한 객관적 기준에 의한 통제 및 평가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가 비평에서 知性의 개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겨진다.
최재서는 「풍자문학론」(「조선일보」, 1935.7)과 「현대비평에 있어 개성의 문제」(「영문학연구」, 1936.4)를 통해 지성이 자신이 상정한 비평체계 속에서 기본적인 토대임을 밝히고 있다. 우선 「풍자문학론」에서 풍자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인생에서의 “실망을 해부하여 그 허무를 폭로하고 아울러 그 무가치를 냉소할” 지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비평의 개성의 문제」에서는 개성에 대해 리드의 정의를 빌어 설명하면서 “개성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데 필요한 판단작용”은 내재적인 것이며 “감각과 기억의 자유로운 배치에 전후 통일성과 윤곽을 주는 것은 지성”이라고 밝히고 있다.5) 즉 최재서는 풍자와 개성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것이 지성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최재서가 본격적으로 지성에 관한 논의를 펼친 것은 「현대적 지성에 관하여」(「조선일보」, 1937.5.15-25)와 「지성옹호」(「조선일보」, 1937.8.23-27)에서이다. 나중에는 그것이 확대되어 「문학․작가․지성」(「동아일보」, 1938.8.20-23) 등에서는 지성 개념이 최재서 자신의 미학적인 범주에 속하는 개념인 모랄 개념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렇다면 최재서가 말하는 ‘지성’이란 어떤 내포적 의미를 가지는가?
최재서는 “藝術에 있어서의 知性이란 藝術家가 자기 내부에 價値意識을 가지고 그 價値感을 실현하기 위하여 외부의 素材ㅡ즉 言語와 이메지를 한 의도 밑에 조직하고 통제하는 데서 표시”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오늘날의 知性은 知力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態度의 문제”라고 했다. 즉 “鄭芝溶氏가 그 詩에서 좀 더 現代意識을 가지고 李泰俊氏가 그 小說에 있어서 좀 더 現代的인 問題를 취급”해야 知性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6)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知的 努力의 문제, 즉 “서구적 의미에 있어서의 敎養”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최재서는 내재적 가치판단으로서의 지성이 교양론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내재적 판단 능력을 의미하는 지성 개념을 비평가나 작가의 교양 수준에서 풀어 나가게 되면, 최재서 비평 체계에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는 희미해지게 된다. 이런 문제에 도달한 최재서는 ‘판단 능력’이라는 의미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사회와 현실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모랄’이라는 개념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최재서의 모랄 추구는 그가 비평의 임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최재서는 비평의 궁극적인 기능 즉 임무를 변별 기능에 의한 가치 판단이라고 정리한다. 그가 추구하려 하는 비평이란 문학 작품을 내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유기적인 전체로 파악해 내는 두 가지 작업 즉 분석과 가치 평가를 동시에 해낼 수 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지성인데, 이처럼 비평가의 태도를 지성 개념으로 정립하려 했던 최재서는 ‘지성’이라는 비평 태도가 궁극적으로 문학의 기틀을 세우려고 하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한계점을 주는가를 인식하게 된다. 그는 “批評에 있어서 知性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心理的 事實의 認知이고 폭로인데 그 効果는 씨니시즘과 諷刺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7)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이고, 객관적이며 대상과 일정하게 유지되는 거리로서의 태도라는 지성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모랄 개념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실의 세기와 지식인」(「조선일보」, 1938.7.2)에서 제시한 모랄의 개념은 명확한 정의가 없다. 다만 모랄이 문학 창작과 비평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의 실재성을 보다 잘 보여주기 위한,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모랄을 추구하면서도 모랄에 구체적인 정의를 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모랄이 현실 속에서 실천적인 의미로 자리잡지 못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아있다는 것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기준’은 현실의 실재성과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문학과 모랄」(「개조」, 1936.3)에서 최재서는 스펜더의 주장을 들어 모더니즘을 용납할 여지를 짚어내고 모랄이 이데올로기가 이니라는 스펜더의 입장을 수용한다. 또한 현대 혼란을 그대로 표현한 점에서 실재성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모랄에 대하여 단 하나의 해석밖엔 허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는 藝術을 파괴한다. 作家는 그것 때문에 자기의 판단을 정지하고 어떤 정치적 학설로써 그 자신의 判斷體系를 대용시키기 때문이다.”8)라는 주장은 ‘보편적인 가치’ 추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편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반면 아무것도 포괄할 수 없는 개념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과 모랄의 문제」(「개조」, 1938.8)에 오면 최재서는 비평에 있어서의 모랄은 “價値意識을 합리화시킨 價値體系”이기에 “批評的 모랄에 관한 일체의 논의는 批評의 基準을 어디에 구하는가 하는 점”에 귀착된다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활의 목적과 行動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써 된 것이 아니라면 모랄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모랄의 실질인 바 價値는 외부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현하는 能因者는 個性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9)라는 기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재서에게 있어서 모랄은 결국 비평가 자신의 실천 문제와 연결되지 못하며, 일반적인 의미의 ‘도덕적 주제’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에 머무르고 만다. 「현대소설연구-토마스만, 붓덴부로-크일가」(「인문평론」, 1940.2)에서도 그가 지적하고 있는 모랄은 정의나 선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윤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최재서는 모랄을 구현해 줄 매개를 찾게 되며, 자신의 관심을 소설에로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 비평에서 최재서는 리얼리즘의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당시 문제시되던 창작방법의 개념과는 달리 문학에서 “개인이나 사회의 실재성을 취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 의미에서의 리얼리티로 본 셈이다.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천변풍경’과 ‘날개’에 관하여」(「조선일보」, 1936.10.31-11.7)에서 최재서는 “觀察의 態度 및 描寫의 手法에 있어서 두 作品은 공통되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 공통점이 바로 “될 수 있는 대로 主觀을 떠나서 대상을 보려고” 한데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천변풍경」은 리얼리즘을 확대하였고, 「날개」는 리얼리즘을 심화시켰다고 했는데, 특히 이상의 「날개」에 역점을 두어 이상이 현대에 있어 분열된 개성의 파편을 질서 있게 포착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실상 최재서가 두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소설가의 눈으로 표현되는 작가의 서술 태도인 셈이다. 그런데 “여하튼 讀者가 이곳 저곳으로 끌려 다닌 뒤에 그 의식 속에 남겨지는 바 통일감”이 부족된다고 하여 「천변풍경」의 한계를 지적하고 「날개」는 “作品에 모랄이 없다”고 하여 작품의 특성과 한계를 지적하는 관점이 각각 다르다. 형식 분석은 작가의 태도라는 틀로, 그리고 내용 분석은 모랄이라는 틀로 분리되어 있다.
모랄론의 또 다른 변형으로서 최재서는 창작에서의 모랄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추상적인 이론에만 머물면서 막연한 비평 체계로만 주장된 모랄을 창작의 문제에까지 확대하려 한 시도로 보여지는데, 이는 현실에 접근해 보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최재서는 「중편소설에 대하여」(「조선일보」, 1937.1.29-2.3)에서 소설의 양식론을 펴다가 「시와 도덕과 생활」(「조선일보」, 1937.9.15-19), 「현대 세계문학의 동향」(「조선일보」, 1938.4.12-24) 등에서는 비행동적 지성에서 행동적 모랄로의 변모를 지적하고 있으며, 심리주의 문학은 이제 몰락에 이르렀으므로 힘의 문학이 요청된다고 하였다. 그 힘의 문학으로 그는 서사문학, 그 중에서도 보고소설과 연대기 소설을 꼽고 있다. 그리고 「현대소설과 주제」(「문장」, 1939.7)에서는 작품에 있어 주제를 “한 作品에 이야기의 줄거리를 주고 觀察의 초점을 주고 등등 뿐만 아니라 실로 작가로 하여금 創作을 지속시키고 作家的 存在를 가능케 하는 根本的 원리”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최재서가 말하는 주제는 자신의 형식적 관심과 내용의 측면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최재서의 용어로는 모랄을 의미하는 개념이 된다. 그렇기에 비평가는 작품의 전체를 주제를 통해 조망해 볼 수 있으며 주제에 따라 비판이 가능하게도 된다.
그런데 이기영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 최재서는 “主題의 貧困은 우선 素材의 變化性이 없는 것으로써 나타나 있다. ……둘째로 主題의 貧困은 作品에 事件이 空疎한 것으로서 標徵되어 있다.”10)고 하여 주제의 빈곤은 소재의 불변성과 작품 속의 사건 공소로 압축된다. 이것은 주제의 빈곤 문제가 소재에 변화를 주고 작품 속의 사건이 다양하게 전개된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최재서는 작품에 있어 주제의 문제를 소재의 문제와 작품의 형식의 문제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최재서가 소설론에서 주로 치중하고 있는 점은 인물의 성격에 관한 논의이다. 그는 「조선문학의 성격 5ㅡ빌헬름 마이스텔적 성격에의 탐구」(「동아일보」, 1938.6.7)에서 성격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모랄이 “그 모랄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지적통제의 결과로 고정된 개성이 성격이라” 하여 모랄과 지성 그리고 개성, 성격의 문제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모랄이라는 도덕적 의욕, 통일 원리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지성이라는 지적인 통제 원리로 통제한 결과, 개별적 개성이 고정된 것이 성격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이 「성격에의 의욕ㅡ현대작가의 집념」(「인문평론」, 창간호, 1939.10)에서는 개별적인 개성을 하나의 통일된 원리로 묶어낸 개념이 곧 성격이 된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려는 것은 性格을 창조하는 힘은 社會的 集團生活에 있다는 것, 그리고 人間이 人間된 소이 즉 완전한 性格이란 자기 자신을 ‘초극하고 창조하고 발명하고 이해하는’ 人間이라는 두 가지 점이다. 여기서 性格의 內面性과 外面性, 그리고 性格構成에 있어서의 社會의 교섭이라는 문제가 일어난다.”11) 이것이 최재서가 성격에 대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될 것이다.
3) 末期: 論理의 抛棄와 信念의 獲得
조선문학의 전반적인 국책협력 혹은 친일화는 新體制論에서 이론적으로 전개되는데 그 주도적 논문들은 「人文評論」誌에 게재되고 있다. 이는 이 잡지의 편집인 최재서의 점진적 변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轉形期의 文化理論」(「인문평론」, 1941.2)과 「文學精神의 轉換」(「인문평론」, 1941.3)을 통해 이때껏 기대왔던 자신의 비평관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1940년을 넘어서면서 철학적 비평가들의 문화론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던 것이다. “歐米流의 生活을 至極히 表面的으로 模倣하는 것으로 文化生活을 自處하였다.”12)고 고백하고 있듯이 그는 그가 영향 받아 온 구미 문학이 “至極히 表面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받아들인 것이 바로 국책문학 혹은 국민문학이었다.
국민문학은 대체로 신체제에 합일되는 문학론인 바, (1) 市民的 감정을 초극하여 국민적 감정을 대표하여 반영하는 문학일 것. (2) 국민 전체가 그 신분, 계급의 제한 없이 독자가 되는 문학일 것. (3) 민족적 의식을 자각한, 국민 전부에 새로운 「昭和」의 이상과 도덕을 부여할 수 있는 志士的 사명의식을 지닌 「臣民」의 문학일 것 등으로 종합할 수 있다.13) 따라서 이 국책문학에서 그가 비평정신의 상실을 이론적, 합리적으로, 內的 必然性에 의해 찾을 수 있었다면, 전면적으로 反民族的이라 할 수는 있어도, 비평가로서는 최소한 살아 있었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1934년을 전후로 하여 주지주의 문학론을 도입할 때도 이와 마찬가지 태도였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최재서는 국민문학은 일본 정신에 의해 통일된 동서 문화의 종합 위에 일본 국민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一人의 個人이 아니라 一人의 國民이라는 意識”에 의한 문학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이와 관련된 비평의 기준을 “硏究와 認識의 問題가 아니라, 態度와 信念의 問題”14)라 규정했다. 바로 이 태도와 신념이 식민지하의 한국인이 국책에 야합하는 유일한 지도 원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지도원리는 물론 그보다 앞서 이광수가 제시한 것이기도 하나 어찌되었든 「국민문학」지의 창간을 전후하여 1942년까지 평론계에 나타난, 이광수, 박영희, 정인섭, 최재서, 안함광, 김팔봉, 김오성, 유진오, 이효석, 김용제, 김종한 등 기성문인들의 논의는 바로 그 공분모를 이광수와 최재서의 “태도와 신념”이라는 명제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와 신념은 지성론을 한 몸으로 지탱하고 있던 그로서는 쉽게 합리화시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지성과 논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최재서가 추구했던 비평기준이 ‘보편적인 비평기준’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시켜 생각해볼 때, 그가 아직 지성론을 포기하기 전에 「인문평론」지를 통해 국책문학 혹은 국민문학의 논지를 편 평자들의 논문을 권두논문으로 발표하고 「인문평론」이 폐간된 후에는 「국민문학」을 창간하여 계속 국민문학의 논의를 편 것이 전혀 우연한 것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문학은 물론, 어떠한 문화 현상도 자기의 조국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이 절대 명제를 일단 보류한다면,”15) ‘보편적인 비평기준’은 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최재서의 비평가적 입장은 다분히 일본문학적인 것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3. 결 론
최재서는 1930년대 비평계에서 카프와 반카프라고 하는 상반된 경향을 무조건 배격하지 않으면서도 수용․극복하려 했고, 새로운 문학 전통을 수립하려 했으며, 비평 이론을 체계화 하면서도 실천 비평으로 완성시켜 보려 했던 비평가이다. 주지주의의 수용, 지성론, 풍자문학론, 모랄론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노력은 그의 문학 이론을 ‘보편적인 가치기준’의 추구 과정으로 귀결시킨다. 그가 주장하는 ‘보편적인 가치기준’이란 이름 없는 민중을 통해 면면히 내려오는 것이면서 동시에 당대적 의미에서 상반된 경향들을 중재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하고 보편 타당한 비평 방법을 의미한다. 결국 그가 찾아낸 ‘보편적인 가치기준’의 핵심은 모랄이었다. 그러나 이 모랄이라는 것도 명확한 정의가 없었고 그래서 그것은 추상적인 이론으로만 남을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어, 그 대안으로 실제 비평에서 구체적인 매개를 찾으려 했으나 그것마저도 이론과 실천이 괴리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최재서가 추구한 ‘보편적인 가치기준’에서의 ‘보편적인 것’의 의미는 어떤 부류의 전체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이 부류 속의 모든 개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보편적인 가치기준’은 개방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개방적이라는 것은 동시에 또 변용이 가능함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 비평에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방법론이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개방성은 민족의 보편적 가치마저 이탈한 가치기준을 만들어낼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최재서가 결국 국책문학 또는 국민문학이라는 친일문학론을 펴게 된 것도 이런 그의 문학이론의 개방성에서 단초가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때 다른 문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최재서의 친일문학활동이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임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최재서, 최재서평론집, 청운출판사, 1961
김윤식,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일지사, 1978
신동욱, 한국현대비평사, 시인사, 1988
최재서, 최재서평론집, ꡔ(원문)조선명작선집ꡕ, 대제각, 1988
김춘식, 최재서 비평연구, 동국대 석사논문, 1993
김학면, 최재서 실제비평연구, 홍익대 석사논문, 1995
소영현, 최재서 문학비평연구, 연세대 석사논문, 1996
주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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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崔載瑞는 1908년 黃海道 海州 출생으로 제2고보를 졸업하고 京城帝大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제3회로 졸업했다. 졸업논문은 “17世紀부터 18世紀까지의 英文學의 批評에 있어서의 想像說의 發見”으로 되어 있다. 그가 山本智道 교수의 후임으로, 동교 졸업생으로서는 최초로 講師에 발탁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이것이 하나의 사건이 된 듯하다(「朝鮮日報」 1933.4.30). 그는 “批評とモラルの問題”(「改造」 20권 8號)를 비롯, 日本英文學誌에 수다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상 金允植, ꡔ韓國近代文藝批評史硏究ꡕ, 一志社, 1978, p.238 각주13) 참조.
2) 金鍾國, ꡔ親日文學論ꡕ, 平和出版社, 1963, 「작가 및 작품론」 참조.
3) 최재서, 「文學發見時代」(「朝鮮日報」, 1934.11.21)
4) 최재서, ꡔ최재서평론집ꡕ, 靑雲出版社, 1961, 66면.
5) 최재서, ꡔ최재서평론집ꡕ, 靑雲出版社, 1961, 48면.
6) 최재서, ꡔ최재서평론집ꡕ, 靑雲出版社, 1961, 308면, 311면.
7) 최재서, ꡔ최재서평론집ꡕ, 靑雲出版社, 1961, 18면.
8) 최재서, ꡔ최재서평론집ꡕ, 靑雲出版社, 1961, 38면.
9) 최재서, ꡔ최재서평론집ꡕ, 靑雲出版社, 1961, 26면.
10) 최재서, 「현대소설과 주제」.
11) 최재서, ꡔ최재서평론집ꡕ, 靑雲出版社, 1961, 298면.
12) 최재서, 「轉形期의 文化理論」, (「인문평론」, 1941.2), 23면.
13) 韓植, 「國民文學의 問題」(「인문평론」, 1941.1).
14) 최재서, 「國民文學の要件」, (「국민문학」 창간호), 38면.
15) 김윤식, ꡔ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ꡕ, 일지사, 1978, 4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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