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B 던컨 지음
김범 옮김, 너머북스
488쪽, 2만5000원
미국 UCLA 대학의 한국사 연구자 존 던컨(68) 교수의 노작(勞作)이다. 제목만을 놓고 볼 때 고려 후기 이후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조선왕조의 기원을 고려 건국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고 있다. 조선과 고려 사이의 오랜 지속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제목을 조선왕조의 ‘형성’이라고 하지 않고 역사연구자들이 가능한 쓰지 않으려는 ‘기원’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터다. 조선왕조의 건국을 왕조 교체가 아닌 신흥사대부의 등장 등 지배계층 교체로 해석해온 그간의 선행 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다.
이런 내용은 한국사의 상식적인 흐름과 큰 차이가 있다. 주요 시기마다 새로운 사회세력이 등장해 역사를 끌어가고, 또 그들이 지배세력으로 부상했다는 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한국사다. 예컨대 신라 말 진골에 대항했던 육두품 등 호족의 등장, 이어 문신귀족에 반기를 들었던 무인들의 진출, 지방 향리 출신 신흥 사대부의 출현과 조선의 건국, 나아가 조선 전기 훈구파에 맞선 중소 지주 출신 사림파의 등장과 사화, 경영형 부농의 출현과 농민 봉기 등이 그것이다. 주도 세력의 교체와 확장을 강조하는 논리는 현행 역사 교과서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신흥사대부의 등장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통설에 익숙한 독자에게 이런 주장은 충격적일 것 같다. 던컨 교수는 이런 점을 고려해 고려의 정치제도, 중앙 관료적 귀족의 흥기, 왕조교체기의 양반, 고려후기의 제도적 위기, 개혁과 왕조 교체, 개혁 이념 등을 집중 검토한다.
특히 고려 이후 조선 초기까지 중요 관직자들의 출신 가문과 등용 방식, 경력 등을 치밀하게 따진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 결과, 조선왕조의 건국 주체들이 고려의 지배 엘리트들 연장선상에 있었고, 또 이들의 기원이 고려 건국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조선의 건국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역사상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런 논의의 근간에는 귀족제와 관료제 사이의 긴장과 형평이라는 저자의 보다 큰 구도가 깔려 있다. 이는 한국학의 대부로 불렸던 제임스 팔레(1934~2006) 교수가 조선 왕조사회의 특성을 밝히려 도입한 가설인데, 던컨 교수는 이를 고려 왕조까지 확장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 사이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과 그 문제점을 거듭 비판한다. 내재적 발전론은 일반인도 꽤 친숙한 이야기일 듯하다. 일제는 한국 병합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의 정체성을 강조했고.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계는 이를 극복하는 데 주력해왔다. 내재적 발전론은 이 과정에서 형성됐다. 시기별 주요 변동을 역사의 역동성과 발전의 징후로 해석했다. 한국사 지배 세력의 변천에 대한 논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가설은 서구의 역사 발전을 보편적인 모델로 간주하는 한편 자민족 중심주의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 전부터 비판받아왔다. 이 책 역시 학계의 주류로 굳어진 내재적 발전론과 지적 긴장을 보여주고 있으나 향후 건설적인 논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시각차가 큰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특장을 놓쳐선 곤란하다. 전문 연구서로서의 공력이 있을 뿐 아니라 글이 유려해 일반 독자도 저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역사의 대중화라는 화두에도 중요 논점이나 내용은 여전히 전문가들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풍요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역사 서술을 만나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이훈상
그 동안 에드워드 와그너· 마르티나 도이힐러 등 서구의 한국사 연구자들은 도식적이거나 획일적인 역사 이해를 경계해왔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해·입장·해석의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주류 한국사 연구와는 다른 시각에서 쓰인 이들의 연구 성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던컨 교수의 논저도 추가할 수 있게 됐으니 고마운 일이다.
이훈상 동아대 교수·한국사
"최초의 서울, 이성계가 아니라 고려 숙종 작품"
허윤희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3.03.22 23:52
都城 원점
경복궁은 고려 행궁터 재활용… 서울 입지 다지는데 길잡이 역할 해
詩人 이상, 윤동주도 서촌의 역사 만들어
최종현·김창희 지음|동하|364쪽|2만원
"서울의 나이는 600년인가, 2000년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오래된 논쟁이다. ①'서울 600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시점이 기준. ②'서울 2000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백제 건국 시점인 기원전 18년을 서울의 시작으로 본다. 팽팽히 맞서는 양쪽 입장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은 "둘 다 틀렸다"고 말한다. "서울의 시공간적 원점은 900년 전인 서기 1104년 8월, 고려 숙종이 지금의 경복궁 서북쪽 한 귀퉁이를 지정, 남경(南京) 행궁(行宮)을 완공한 시점이다." 즉, 고려의 남경에서 서울이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서울의 나이는 900년"
왜 하필 고려 남경인가? 이들이 내미는 역사적·지리적 근거가 설득력 있다. 조선시대의 사대문 안에 해당하는 서울 도성 지역의 원점은 경복궁. 그런데 경복궁은 다름 아닌 고려 행궁 터를 재활용한 것이니 남경이 서울의 터를 잡는 길잡이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경복궁 안 남경 행궁 터에서 남쪽을 내려다본 전경 사진을 싣고 이렇게 상상한다. "고려 숙종은 이곳 연흥전에 앉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을 것이다. 그 시선이야말로 우리 서울 탐사의 출발점이다."
◇세종, 왕궁 아닌 서촌에서 태어나
이제 책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낸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잡은 '서촌'의 땅과 물길과 하늘길을 시작으로,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을 시간순으로 훑으며 역사를 길어올린다. 서촌은 초기에는 왕족들의 터전이었다가 중기부터는 사대부들의 주거지이자 서인(西人) 학문과 예술의 발상지였으며 후기에는 중인들의 문예운동이 꽃핀 곳이다.
- 겸재 정선이 만년에 그린‘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동하 제공
광해군(재위 1608~1623)은 인왕산 기슭의 면모를 완전히 바꿨다. 둘째 아들에 서자 출신이란 자격지심에 시달린 그는 인왕산 아래에 왕기(王氣)가 서려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자신의 궁궐을 지으라고 명한다. '광해군일기' 1617년 6월 기록을 보자. "한꺼번에 공사를 시작해 제조와 낭청이 수백 명이었으며 헐어버린 민가가 수천 채나 되었다." 왕위 계승의 정당화를 꿈꾸며 궁궐을 세 곳이나 지었지만, 인조반정으로 정작 광해군 자신은 하루도 들어가 살지 못했다.
◇발로 쓴 서촌의 역사
이후 경화사족(京華士族·한양에 거주하던 문사권력층)에서 중인, 모던보이를 거쳐 현대사의 격랑에 휘말린 사회주의자들까지 다양한 꿈의 주체들이 서촌을 거쳐갔다. 이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아픈 우리 역사의 축도다. 친일파 윤덕영의 옥인동 집이 1917년 1만6628평에 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양 아방궁'이라 불렸을 정도. 1927년에는 옥인동 전체 면적의 54%가 윤덕영 소유였다. 천재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웅, 민족시인 윤동주와 국문학자 정병욱 등 동행의 여정도 뒤쫓는다.
"서울 역사의 다양한 층위가 확인될수록 오늘 우리 삶의 다양성 역시 해명될 가능성이 커진다. '오래된 서울'은 과거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서울'이기도 하고 우리가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내일의 서울'이기도 하다."
저자들의 공력이 돋보인다. 서촌을 답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길잡이 답사책으로, 옛 그림에 흥미있는 이들에겐 미술사 책으로도 읽히겠다. 동대문과 광희문(남소문) 주변을 다룬 둘째 권, 정동과 남산자락, 종로·청계천 등을 다룬 셋째 권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