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와 한국인의 민족주의
김경훈(출판 기획가)
시대정신 [1999 05-06월호] 제4호
한국 나치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벌어진 일들은 참으로 끔찍스럽다. 국제통화기금의 자금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한국은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중단)을 선언해야 할 처지에 몰렸을지도 모른다. 지원을 받기로 결정한 97년 12월 4일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불과 50억달러, 당시 한국은행의 외화필요량이 하루 10억달러 수준이니까, 5, 6일 후에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할 위기였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받는 일이 경제주권을 상실한다느니 하는 기사를 터뜨리고 있었다. 모라토리엄? 모든 대외거래가 불가능해져서 당장 에너지, 식량의 절대부족 사태가 예상되는 것, 만약 그런 상황이 되었다면 우리도 80년대 초의 저 아르헨티나의 시민처럼 가방 속에 지폐뭉치를 가득 들고 나가야 저녁 반찬 꺼리를 사올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될 듯 싶겠지만 모라토리엄은 그만큼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그 후 몇 달, 우리는 아이들 돌 반지까지 다 모아서 내주는 '금 모으기 운동'이란 걸 했다. 언론은 외국인이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은 긍정적인 의미로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집단주의적 성향에 경악하고 있었다. 이어 외국상품 불매와 국산품 애용운동까지 벌어지자 국내 지식인들마저 '애국심'이 지나치다는 경고를 할 정도가 되었다.
미국의 LA 타임즈지는 국산품 애용운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행태를 '경제적 민족주의'라고 정의했다. 학생들은 가방에 태극기를 매달고 다녔고, 외국 상품은 판매가 격감했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위협을 받거나 심지어 차를 훼손 당했고, 지하철을 탄 외국인들은 폭행 공포에 시달렸다. 급기야 일부 대학생들은 외제의류와 장신구, 수입서적을 불태웠다. 외국인들은 낯익은 역사의 유물, 바로 '나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달러를 아끼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이 정도의 사고 수준까지 내려가면 그 다음은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LA 타임즈, 한 다국적 기업 사장)
한국인은 정말 구제불능의 저능아인가?
한국은 외국인 혐오국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잠재되어 있는 한국인의 민족주의 수준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발표가 있다. 홍콩에 본부를 둔 정치경제위험자문사(PERC)가 각국의 귀화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민족주의 수준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오랫동안 아시아 최고의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왔다. 그대로 옮겨보자면 한국이 1위, 그 다음이 인도,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타이완, 일본,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순으로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다. 한국은 거의 외국인 혐오국에 가까우며 화교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보다 민족주의 성향은 한수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점차 진정되어 가는 99년 초의 발표에서 PERC는 한국이 여전히 민족주의 성향에서 아시아 최고지만 점차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인들이 경제위기의 회생 과정에서 외국인들과 외국자본의 역할을 점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매우 강력한 민족주의가 덜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삶의 수준이 향상될 경우 잠재되어 있는 민족주의 성향이 더욱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렇다면 경제발전이 한국인의 민족주의 완화의 치료제인가?
빈곤의 민족주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민족주의의 양상이 달라진 것은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태동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의 태동과 동시에 태어난 이데올로기다.
영국, 프랑스 등은 부르주아계급이 시민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까지 도달한 경우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를 시민계급의 민족주의와 효율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비교적 순탄한 발전단계를 밟게 된 데는 무엇보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화된 나라로서 부르주아 계급이 갖고 있던 경제적 역량이 바탕이 되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경제의 후진성 때문에 부르주아 계급이 봉건적 토지귀족들과 야합을 해야만 했다. 군사력을 갖고 있던 토지귀족 중심의 지배계급은 통일을 위해 동원된 민족주의 의식을 강제했다. 독일의 부르주아 계급은 지배계급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야합해야 했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내세울 수 없었고 민족주의만이 전래의 폐쇄적 공동체의식과 결합되어 반(半)봉건적 통치논리의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나치의 태반(胎盤)이었던 것이다.
강대국에 의해 강제로 자본주의화 과정을 겪은 나라들은 또 다른 민족주의를 키웠다. 지배민족, 혹은 그들에 기생하는 매판부르주아 계급에게 모든 부는 집중되었고, 민족간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지배 민족의 민족주의는 격렬한 저항의식으로 무장되었다. 동유럽의 여러 국가, 아시아의 식민국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늘날에는 어떤가?
한마디로 '번영의 통합'과 '빈곤의 분열'로 양극화되는 양상이다.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국가들은 배타적 민족 구분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유럽 통합은 대표적인 경우다. 반면에 빈곤에 신음하는 지역은 분열을 부추기는 민족주의가 생존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화 공세가 단단히 한 몫 한다.
세계화 공세의 주역인 미국에서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뉴욕 타임즈 99년 2월 21일자 보도를 보면 "민족분규의 원인은 민족주의보다는 오히려 국가와 민족의 벽을 허무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화의 물결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냉전기간 억제되었던 민족주의가 인터넷,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무역을 통해 세계를 보고 느끼면서 민족적 자각을 일깨우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이 무너진 이후의 지난 10여 년간 유엔의 회원국 수가 1백56국에서 1백 85개국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그 동안 냉전체제가 민족주의를 억누르는 방파제 역할을 했던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각 민족은 냉전 이후 국제화되는 환경에서 민족국가의 단위로 세계에 뛰어들어 독자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투자와 원조를 유치하는 것이 빈곤을 벗어나는 길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빈곤'이 배타적 민족주의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은 수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경제와 민족주의
그러면 빈곤의 경제가 민족주의의 내용과 질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가?
이 점에 있어서 나는 영국의 사회학자 스튜어트 홀이 주장한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의 관계 설정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경제결정론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이데올로기의 생애에 경제의 역할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빈곤의 민족이 빈곤의 시대에 배타적 민족주의이데올로기로 무장하는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적 토대는 상부구조, 혹은 이데올로기의 최초(최종이 아닌) 심급(審級)이다. 그것은 당대의 인간들이 사유 속에 사용할 범주들의 선택 범위를 제공한다. 어떤 특정한 때에 특정한 사회 계급이나 집단이 그들 나름의 사유를 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경제적 토대가 제공하며, 어떤 계급이 어떤 관념을 사용할 것인지를 보장해준다. 그 위에서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의 역사와 발전과정과 여타 다른 조건들과의 관계를 통해 변화해 가는 것이다.
경제적 위기의 심화는 근본적인 불안감에 더하여 '민족', 혹은 '민족주의'가 배타적일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실업과 외국인 노동자의 저임금 노동, 구조조정과 기업 인수자로서의 외국 자본, 도산 기업의 경쟁자로서의 외국기업, 경제위기를 가져온 자본 이탈의 주인공인 외국자본의 이기적 속성 등의 원료가 한국인의 사유범위 안으로 잠입한다. 그래서 이미 잠재되어 있는 민족주의 의식과 결합하여 분노를 분출시킬 '적'을 규정하고 배타성을 강화하며 감정적인 발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일련의 논리에 동의한다면 민족주의의 완화 역시 그 최초 심급(審級)은 경제적 여건의 회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의 상황을 보면 증권시장 호황을 떠받치고 있는 외국투자자들, 기업회생의 절대적 조건이 된 외자유치, 다국적 기업의 강화된 토착화 정책, 어떤 음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가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차관원조 등이 새롭게 사유의 내용에 포함되고 있다. PERC의 조사결과가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완화되고 있다고 나온 것은 이렇게 경제여건의 회복으로부터 생긴 새로운 사유 재료가 의식변화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마치 '나치' 같았다고 평가받은 비이성적인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단지 '원죄'로서만 거론할 일이 아닌 것이다.
민족주의를 부추겼던 사람들
나는 경제위기 직후의 민족주의 감정 폭발에 불순한(?) 세력이 끼여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민족을 들먹이는 세력이다(나는 이 글에서 언론과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으니까).
어디에서건 누가 주장하건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입각한 보호무역주의는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을 보호할 뿐이라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는 특정 산업에, 그리고 한시적으로 유효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자유무역론의 이론적 기초를 놓은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1772-1885)는 생전에 곡물법(저렴한 외국 곡물을 지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입 금지하던 영국의 보호무역법)의 폐지를 위해 싸웠다. 후대의 대부분의 경제학자를 설복시킨 그 논리로 싸웠다. 그는 대학 문턱에도 못 가봤지만 대학교수들과의 논쟁에선 늘 이겼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현실을 모르는 이론을 대할 때면 늘 '그런 건 바보 같은 대학교수들에게나 통할 얘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실질적인 이익에 목을 맨 현명한 지주들의 힘을 넘어설 수 없었고 곡물법은 그의 사후 20여 년이나 지나서 폐지되었다.
한국사에서는 박정희를 빼놓고 민족주의를 이야기 할 수가 없다. 국민을 동원하여 경제개발에 매진케 함으로써 정권의 불안한 정통성을 지키려고 했던 그는 동원이데올로기로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하면 된다'의 자기최면도 걸었다. 이순신 장군을 재탄생(?)시키고 전통문화를 재발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기업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보호하는 편안한 시장을 제공함으로써 재벌을 만들고, '신토불이'를 내세워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
나는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민족주의를 부추긴 세력으로 이들 기업을 지목한다.
정부가 세계화 공세에 밀려(혹은 개방 시기에 대한 정세적 판단의 미스로) 국내시장을 개방하자 보호막 아래서 안주해있던 국내 기업들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효율적인 기업시스템, 최신 고객 서비스, 높은 상품의 질과 디자인, 엄청난 자본력, 거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가진 외국 자본과의 정면대결은 너무나 뻔한 결과를 예상케 했던 것이다.
민족주의 의식에 기대어 시장을 지키려 했던 시도가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더욱 많아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름하여 '애국심 마케팅'이 유행했다.
롯데 칠성은 노골적이었다. '칠성 사이다'가 사이다 시장에서는 독점적 위치를 갖고 있지만 전체 시장의 크기로 보면 콜라(4,450억원)시장의 절반에 불과할 뿐이다(2,070억원). 코카콜라에서 내놓은 '킨 사이다'야 얼마든지 누를 수 있지만 음료시장에서 콜라와의 경쟁에서는 하프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구호가 '콜라를 마시면 외화가 유출된다'는 애국심 마케팅이었다. 외국 기업이 이익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토종 기업도 이익을 위해선 뭐든지 이용한다.
그들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실제 판매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도 80년대의 경제불황기에 국산품 애용운동을 벌였지만 일만 시민의 참여는 미미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코카콜라가 직영체제로 돌아서면서 위기에 직면한 범양이 '콜라독립 8.15'라는 상징적 이름을 들먹이며 애국심 마케팅에 나섰던 경우를 보자. '콜라독립 8.15'가 출시된 것은 98년 4월이었다. 이미 국내에는 2년 전에 '콤비콜라'라는 국산 브랜드가 있었다. 그런데 98년 9월 전문업체가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콤비콜라'의 시장점유율은 불과 2.7%에 불과했고 몇 달 되지도 않은 '콜라독립 8.15'는 7.4%의 시장을 차지했다. '콜라독립 8.15'가 맛에서 확실히 '콤비콜라'를 눌렀던가? 이건 말도 안 된다. 왜냐하면 '콜라독립 8.15'와 '콤비콜라'의 맛을 비교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코카콜라', 혹은 '펩시콜라'와 맛을 비교했을 뿐이다.
시장 장악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기업은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동기가 많다. 실제의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부실은행인 제일은행을 미국의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한다는 결정이 났을 때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은 '서울에서 실용주의의 승리'라는 표제어를 달아 기사를 썼다. 민족주의에 입각해 반대하는 세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표면적인 반대세력은 시민단체(참여연대는 '경제주권을 포기하는 정부'라고 비난했다)였지만 물밑에서 가장 바빴던 것은 재벌그룹들이었다. 왜? 그 동안 익숙해져 있던 금융관행이 완전히 무너져버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재벌들은 지불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없이도 담보 위주로 무한정의 대출을 할 수 있었다. 또 돈을 갚는데 있어서도 기한 연장 등의 조치를 약간의 정치적 작업만으로도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일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린 기업일수록 제일은행의 해외 매각은 심각한 일로서 새 주인이 언제 여신을 회수하려고 하는지가 대단한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이런 국내의 반대 움직임을 넘어서서 제일은행을 매각하였을 때 '실용주의의 승리'라는 표제기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들은 또 경영권을 보존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팔아먹었다.
부실경영으로 수익구조가 나빠지고 그에 따라 주가가 한없이 폭락한 기업들은 M&A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외국의 거대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껌 값'으로도 기업을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기업사냥이란 말을 쓰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외국의 거대자본이 침략군처럼 한국에 쳐들어와 우리의 좋은(그러나 부실한) 기업을 마구 사들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국민과 민족의 힘으로 이를 막아야 하지 않겠냐는 투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들 부실기업의 권력자들은 마치 결연한 의지로 한국을 지키려는 듯한 자세를 보였지만 실제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이었을 뿐이다.
실제는 어땠나? 아무리 껌 값이라도 함부로 투자하는 외국 자본은 없었다. 인수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기업만, 그것도 이리재고 저리 잰 다음에 인수하였다.
결국 아시아 최고 수준의 잠재적인 민족주의 성향이 경제적 여건의 악화라는 토대적 조건의 변화와 일부 부추김 세력(일부 지식인, 언론인 포함)의 이기주의적 전략에 의해 폭발한 것이 바로 외환위기 전후 몇 달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치 콜라 맛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다시 코카콜라로 돌아선 것처럼. 아니,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화와 외국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일보 전진하였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훨씬 '실용주의'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배타적 민족주의의 완화를 위해서
그러나 감정과잉의 여건만 주어지면 언제나 폭발력을 갖고 있는 민족주의 성향은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 속에 존재한다. 이를 적절히 제어하고 완화(분단의 현실이 여전한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성도 없고 실현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한다)시키는 것은 세계화의 시대에 빼도 박도 못하게 편입된 한국이 당면한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반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제압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가족주의, 지역주의와 같은 전통적 가치관의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을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한국인이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하는가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두부 모 베어 물듯이 민족주의만 뚝 베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민족주의를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지형에 새로운 개념과 사유의 재료를 제공할 경제적 여건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중지를 모아 토론하고 지표를 세워야 할 지점은 오히려 '일상의 경제적 행위와 의식'이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경제와 민족주의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개인의 경제행위가 변화하면 그 개인의, 나아가 전체의 의식에 새로운 사유의 재료와 신념체계의 지형이 제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것, 즉 새로울뿐더러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현명한 신념체계가 형성될 것인가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조혜정 교수는 '문화적 잠재력'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길러지고 나타나는 문화적 감식안과 향유능력의 수준을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그럴 때 문화적 잠재력은 그 나라 문화의 발전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이 용어의 경제 쪽 버전은 '경제적 잠재력'일 것이다. 경제적 잠재력이란 같은 자원으로 더 훌륭한 결과를, 혹은 같은 결과를 더 작은 재원으로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의 화학적 집합이 된다. 문화적 잠재력이 그러한 것처럼 경제적 잠재력은 그 나라 경제의 발전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지표이다. 경제적 잠재력을 키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적 성장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고,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변모시킬 힘을 얻는 것이다. 나는 '일상의 경제적 행위와 의식'을 변화시키는 핵심 키워드로 경제적 잠재력을 꼽고 싶다.
경제적 잠재력을 키우는 요소로 나는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째로 합리적 비판능력의 존재 여부다. 그것은 사회의 구성원 개인이 효율적으로 투자 재원(시간, 노력, 돈)을 배분하고 조직할 수 있는가, 그런 능력이 일상의 삶 속에서 길러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이것은 옳고 그름, 효율과 비효율을 선별해 낼 수 있는 비판정신을 통해서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서울 시내 곳곳을 파헤쳐 놓은 지하철 공사장을 지날 때마다 "도대체 이 공사는 언제 끝나는 거야" 라고 불평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주변 상가나 주민은 물론이고 행인들도 소음과 먼지뿐만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 공사 책임자는 왜 이걸 모르는 걸까? 그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든 공공도로에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면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예의도 갖출 생각을 못하고 있다. 더구나 시민들의 삐딱한 시선 속에서 일을 하니 업무 효율도 낮을 것이다. 공사기간을 표기한 팻말 하나만 세워 놓아도 엄청나게 달라질텐데.....
98년 12월 31일자 한겨레신문 기사다.
"겉으론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달라졌다.”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경영권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간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다. 지난해 3월 독일계 회사인 바스프로 넘어간 옛 대상 라이신 사업부문 직원들은 사무실이 바뀐 것을 제외하곤 똑같은 업무, 같은 거래선, 같은 월급까지, 예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그러나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예전과 비교하기 어렵다.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실력만 있으면 무한히 발전할 수 있고, 반대로 도태될 수도 있음을 절감한다. 결재라인 단순화 등 효율을 최우선시하는 색다른 기업문화에도 적응해가고 있다.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독일식이다. 능력 중심, 효율성 중심은 미국, 유럽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늘 책임지게 되고, 따라서 선택은 더욱 치밀한 준비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상을 보는 안목에서도 합리적 비판과정을 거치지 않은 어설픈 감정과잉은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 8시간 중 업무에 몰두하는 건 2시간쯤 될까?'라는 것이 한국 기업의 풍토 아니던가. 효율적으로, 그것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자원을 조직하고 능력을 발휘한다면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국가의 경제적 잠재력도 향상시킬 것이다. (참고로 98년 말 12월에 결산하는 외국계 상장사 34개의 당기 순이익 성장률은 23%였는데 국내기업은 -40%를 기록했다. 매출액 증가율은 국내기업이 더 높은데도 말이다.)
경제적 잠재력을 위해 필요한 두 번째 능력은 다원주의적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의 능력이다. 다원주의적 세계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이 능력은 필수적이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식의 배타적 관계를 청산하고 다원주의적 네트워크의 가치를 인정하여 개인 대 개인, 조직과 조직, 민족 대 민족, 국가와 국가간의 상호협력관계를 창의적 문제해결을 위해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가, 그것을 위해 그런 관계를 평소에 얼마나 훈련했는가도 관건일 것이다.
이것은 상호협력과 의사소통의 새로운 규범을 수용하고 더 나은 규범을 형성하는 가운데 가능할 것이다. '한국인은 제멋대로이다'라는 외국인의 인식은, 간혹 GE사의 잭 웰치 회장처럼 21세기를 이끌어 갈 한국인의 저돌성과 무모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형성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살아가야 할 세계화 시대의 '비도덕'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함을 보여준다. 규범없이 소통없고 소통없이 협력없다.
현지화, 지역화에 성공한 다국적 기업의 경우 이미 다원주의가 사시가 될 정도다. 이들 본사에서 주주총회나 지역대표들의 연례 전략회의와 같은 주요 회의가 열릴 때면 작은 인종 전시장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경제현실이다.
그런데 얼마전 한 국내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협동심-책임감 부족 한국 대졸인력 50점]
무슨 얘긴가 해서 들여다봤더니 헤드헌팅업체가 외국기업에 소개한 한국인력이 모두 퇴짜를 맞았다는 것이다.
"귀사에서 소개한 지원자들의 영어실력은 우수했습니다. 하지만 지원자 모두 문제해결 능력과 협동심이 부족해 저희 회사에서 일하기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외국회사의 인사담당자가 헤드헌팅 업체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이 헤드헌팅 업체는 영어실력이 우수한 명문대 졸업자 7명을 보냈는데 모두 기대이하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특히 경쟁식 교육풍토 때문에 '나만 옳다'의 아집이 강해 팀 기여도가 낮다는 지적이 내 눈에 띈다. 영어 공부하느라 협동심을 못 배운걸까?
나는 합리주의적 비판 능력과 다원주의적 네트워크를 통합 협력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 곧 민족주의의 배타적 요소를 상당히 완화시킬 재료를 만드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재료를 이용해서 한국인은 새로운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거시적으로 미국식이 옳으냐, 유럽식이 옳으냐, 혹은 제3의 길은 없느냐와 같은 논의가 만들어낼 결과물 이상의 현실적 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환경속에서 이미 많은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든 변화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어 그것이 개인적인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동기가 있다는 것은 사고의 변화를 현실적 힘으로 전화시킬 동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민족주의 성향의 완화는 민족 구성원 개인의 주체적 동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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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최대경제대국이 된다는 말도 있었는데.. (0) | 2015.10.23 |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가? - DJ 정부시절(2001)에 나온 한 지식인의 한탄 (0) | 2015.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