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취재]
DJ 제2건국운동 뭘 노리나
‘정권 친위대’ 가능성 있다
신동아 1998년 11월호)
◇건국 50년만에 국난에 빠진 나라의 틀을 다시 세우겠다는 제2건국운동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민간주도·정부지원」원칙은 벌써부터 「관주도」라는 반발에 부딪히고 있고 「정치적 이용」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들이 만만치 않다.
안기석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서리〉
화창한 가을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이른바 「총풍(銃風)」 사건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던 10월2일 오전 11시30분경. 서울시
세종로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입구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정부 각료, 시도 지사들, 대학총장 및 교육계, 재계 및 경제단체,
사회단체, 종교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안내원들의 안내를 받아 각자 명찰을 달고 줄줄이 소강당으로 들어갔다. 무슨 행사가 벌어지는 것일까.
소강당내 정면에는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창립총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단상에는 이념적 성향이나 활동 경력 면에서 한묶음으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 해직된 경험이 있는 재야 학자로, 경실련 등 시민운동단체의 대표로 활동한 적이 있는 서울대 명예교수 변형윤(邊衡尹)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건국위) 대표공동위원장, 강원룡(姜元龍) 크리스찬아카데미 이사장, 강영훈(姜英勳) 세종재단 이사장 등 고문들과 정원식(鄭元植) 대한적십자사총재, 강문규(姜汶奎) 새마을중앙협의회장, 김상하(金相廈)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서영훈(徐英勳)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대표, 양순직(楊淳稙) 자유총연맹총재 등 공동위원장들과 문화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이어령(李御寧) 상임위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단하에는 정부 각료로부터 학자 언론인 성직자 연예인 기업인 등 수백명의 추진위원들이 소강당을 가득 메웠다. 각자의 조직으로 돌아가면 대부분 단상에 앉아 있을 사람들이 마치 「대의원」처럼 박수를 치고 의사 진행에 따라 「예」 라고 합창을 했다. 사회는 행정자치부 인사국장이 맡고, 경과보고는 김정길(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이 했다. 일사천리로 창립총회가 끝난 뒤 건국위 고문인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가 세종문화회관 대연회실인 세종홀에서 베푼 오찬에도 총회 참석자 대부분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와 같은 행사는 앞으로 광역시와 도 등 광역자치단체와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에서 잇따라 열릴 전망이다. 건국위가 밝힌 일정에 의하면 행정자치부는 10월 중순 각 지자체에 제2건국추진위를 설치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며, 각 지자체는 10월말까지 조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후 추진위원 위촉이 끝나면 11월 초순에 지자체별로 창립대회를 마치고 11월 중순에는 대통령 주재하에 전국보고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 보고대회에는 지자체장 248명과 제2건국추진위 시도 및 시군구 위원장 248명이 참석한다. 그리고 내년 1월에는 건국위와는 별도의 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될 예정이다.
정부조직과 민간단체 주요인사들이 거의 전부 탑승한 「제2건국호」는 거대한 몸체를 이끌고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먼저 제2건국운동 제창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 1월5일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에서 열린 신년하례 겸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같이 발전시켜 제2건국을 반드시 이룩하겠다』고 언급했다.
선거를 통해 첫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통령이 정치철학의 핵심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제2건국이란 표현은 일종의 정치적 수사 정도로만 여겨졌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제2건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력했다.
이강래 청와대 정무수석 인터뷰 제2건국운동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산파역할을 했다면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양육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강래 정무수석을 지난 10월14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제2건국위는 기능상 정책기획수석실에서 맡아야 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전국조직을 꾸려야 되기 때문에 행정조직과 연결할 필요가 있는데, 이전 행정수석의 기능을 정무수석실에서 하고 있다. 그리고 민간단체 접촉을 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정무수석실 업무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정무수석실에서 한다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하지만 제2건국이 추진하는 정치개혁 중 하나가 지역정당을 전국정당으로 바꾸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제2건국 취지 자체가 나라 틀을 바로 세워보자는 것인데 이것을 하려면 제도개혁도 필요하고 국민의식개혁과 생활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이 제도개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니까 국민들의 행태변화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 때 세계화를 추진했지만 제도개혁만 하다가 보니까 구호로 그쳤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
―제2건국위나 국민운동본부가 선거 때가 되면 친여권 선거조직으로 활용되거나 친여권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는데….
『철저히 경계하고 그런 것을 배제할 것이다』
―이것을 막는 제도적 방법은 생각해봤는지….
『이 조직을 선거 때 이용하는 것을 철저히 막는 제도적 장치를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운영자체를 탈정치화할 것이다. 그래야 이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제2건국운동을 초당적으로 하겠다고 하는데 야당 정치인들의 참여는….
『여야 동수로 할 것이다』
―야당이 안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취지를 설명하면 들어올 것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비판만 하지말고 동참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래야 상호 견제할 수 있고 제2건국위가 친여단체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김대통령은 연초부터 제2건국이란 표현을 썼는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혹시 민주화투쟁 때의 재야국민운동체 경험을 살리려는 것은 아닌지.
『그때와는 시대적으로 다르다. 70년대부터 경제가 양적으로 압축 성장을 하면서 의식변화나 가치체계 확립, 생활규범 정립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이것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제2건국운동 체계를 보면 추진위는 자문기구로서 개혁 방향과 의제를 설정하고 개혁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국민운동본부를 통해 캠페인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단체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서 이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들은 정부가 자신들과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도했다고 불만인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다른 민간 단체들은 각 분야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는?
『당시 시대상황에 맞는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잘 살아보자는 운동으로 하면 된다는 정신을 심어줬다는 의미에서 70년대에는 맞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대로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상황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 하여튼 새마을운동은 큰 성공을 거뒀다. 물론 관이 주도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주도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람직한 것은 하향식과 상향식이 접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노력을 다해서 민간운동단체의 동참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21세기를 맞는 시점에서 제2건국운동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든 단체를 다 넣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프로젝트나 이슈별로 민간단체들과 결합하면 되는 것 아닌지….
『민간단체들과 프로젝트별로 연결할 것이다. 제2건국추진위는 의식개혁 생활개혁을 총괄하는 기구 역할을 할 것이다』
―실천 조직은 국민운동본부인 셈인데 여기에 민간단체들이 들어오는지….
『그렇다. 그러나 들어온다는 표현을 쓰면 민간단체에서 반발할 것이다. 서로 연결한다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직장단위도 운동본부에 포함시킬 것인가.
『그것은 전개과정을 지켜봐서 좀더 검토를 해봐야 될 것 같다. 원칙적으로는 모든 민간단체를 포괄해야 하지만…』
―제2건국운동과 관련된 좋은 모델이 있는지.
『독일에 시민정치교육센터라는 기구가 있는데 아직 검토해보지 않았다. 하여튼 우리 사회가 너무 분열돼 있으니까 사회통합을 이루자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것이 특징인데 하나의 의견으로 통합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사회통합(integraty)이란 컨센서스를 일치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분절화되어 있고 개체화되어 있지 않은가. 제2건국운동을 통해 이런 것을 극복해나갈 것이다』
―문제는 상당수 민간단체들이 과거의 관변단체들이어서 새로운 국민운동을 하려고 해도 옛날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그래서 첫 캠페인의 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제2건국에 상응하는 테마를 줘야 한다. 기획단이 이런 역할을 할 것이다』
―제2건국운동이 지방에서는 「완장」을 찬 채 권력 행세를 할 수 있는데….
『걱정을 하고 있다. 지자체가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엠블렘이나 깃발은 준비돼 있나.
『공모할 예정이다』
―관청에 그 깃발을 올릴 생각인가.
『앞으로 논의해봐야 한다』
―이 운동이 앞으로 정권 차원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려면 출범 후에는 대통령이 손을 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 단계가 올 것이다』
―가령 국민운동본부에서 부패 추방운동을 벌인다고 할 때 이미 하고 있는 단체들과 중복되거나 충돌되는 등 역작용은 없을까.
『그동안 실행한 운동들이 잘되고 있다면 구태여 국민운동본부가 나설 필요가 없다. 제2건국운동과 일치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면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왕에 시민사회단체가 하고 있는 일을 국민운동본부가 뺏겠다는 것은 아니다』 |
1월20일경
김대통령은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의 승리는 한국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제2의 건국이다.
제1의 건국은 48년이고 50년만에 제2의 건국인 셈이다. 제1의 건국 때 국시는 민주주의였지만 실제는 안보가 목적이었다. 결과는
경제파탄이었다. 이제부터는 경제와 민주주의, 안보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정권교체 의미를 IMF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국난에 빠진 상황에 국민들이 다시 나라를 세우라는 지상명령을 내린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출범시 제2건국이란 선명한 표현을 쓰지 않고 왜 「국민의 정부」라는 다소 밋밋한 호칭을 사용했던 것일까.
『대통령 취임사 때 제2건국이란 표현을 쓰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쓰지 못했죠. 너무 강한 표현이라는 거지요. 이 표현은 이전 정권에 대한 부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취임 때부터 이런 말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고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표현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장집(崔章集) 고려대교수의 말이다.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한나라당이 김종필 총리 인준 문제로 정부의 발목을 잡는 등 복잡한 정치적 사정 때문에 제2건국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 앉는 듯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강래씨가 청와대 정무수석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6·4 지방선거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연이은 8박9일간의 미국 방문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한 김대통령은 또다시 「제2건국」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김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6월14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우리 4500만 국민이 제2의 건국을 이룩하는 정신으로 일어서야 한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21세기를 지향하는 총체적인 국정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6월26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청년학생들을 대상으로 행한 특강에서도 이런 발언을 했다.
이 무렵 김대통령은 최장집 정책기획위원장과 이강래 정무수석에게 제2건국의 비전과 전략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다음은 정책기획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이강래 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 대통령은 외환위기라는 발등의 불을 일단 껐으니만큼 개혁을 마냥 늦출 수 없지 않으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정부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개혁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생각하고, 그 작업을 정무수석실과 정책기획위원회에 맡긴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을 맡은 정책기획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자문기구로 중장기 정책을 마련하는 곳. △정치 행정 외교 △경제 △사회 노동 문화 △국토 환경 과학 등 4개 분과에 학계와 언론계 및 연구원 인사 등 4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8명을 뽑아 「제2건국의 비전과 전략」을 작성하는 팀을 만들었다. 임혁백(고려대 정외과), 송하중(경희대 행정학), 성경륭(인천대 사회학과), 김유배(성균관대 경제학과), 유재일(대전대 정외과), 황태연(동국대 정외과), 한상진(서울대 사회학과), 백경남(동국대 정외과) 교수 등이 실무작업을 하고, 최종 감수는 최장집 위원장이 했다.
정책기획위원회 내 특별팀이 제2건국 이론화 작업을 하는 동안 김대통령은 7월20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인터뷰에서 제2건국의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정부수립 50주년이 되는 8·15 광복절에 제2의 건국을 위한 국정기본방향을 구체화해서 선언 형태로 발표할 것임을 시사한 것.
김대통령은 이처럼 외국언론에 애드벌룬을 띄워놓고 국내 여론 형성 작업에 직접 나섰다. 출발은 7월31일 가진 전직 대통령들과의 청와대만찬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그동안 가다듬은 「8·15 구상」을 전직대통령들에게 설명했다.
한편 정책기획위원회 특별팀에서는 8월 초 「제2건국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문건을 완성하고 곧이어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기초했다.
김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제2의 건국 선언문」 그 자체였다. 「국민의 정부」가 제2의 건국을 통해 추구할 철학과 원리, 그리고 총체적 개혁의 미래상을 국민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저는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민의 저력을 다시 모아 「제2의 건국」을 시작하라는 국민 여러분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제2의 건국은 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입니다. 또한 제2의 건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저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완성하기 위한 국정의 총체적 개혁이자 국민적 운동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국민의 에너지를 총결집해 총체적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기본 철학으로 삼아 자유 정의 효율의 3대 원리 아래 참여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완성, 세계주의와 지식기반 국가의 실현, 신노사문화의 창조와 남북간의 교류협력 촉진 등을 6대 국정과제로 실천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김대통령은 이 경축사에서 98년 전면적인 개혁, 99년말까지 IMF관리체제 종결, 2000년부터 세계 일류국가의 대열 참여라는 일정도 제시했다.
그러나 야심만만한 김대통령의 「제2건국」도 IMF사태에 지친 국민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좋은 말씀이지만 추상적이고 너무 장밋빛이다』라는 것. 제2건국을 위한 국민운동에 국민들이 참여해주기를 요구했지만 6대 국정과제들은 정부나 개혁기구들이 해야 할 일처럼 비쳤다.
김대통령의 제2건국 선언이 있은 다음날 제2건국 국민운동을 주도할 기구의 성격과 관련,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하는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뒤 『새마을운동 조직 등 각종 시민단체와 직능단체 등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참여하는 네트워크 형태가 바람직하며, 21세기의 주역인 젊은 세대가 개혁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기구 형태와 주체를 설정했다.
박대변인은 특히 관변단체와 시민운동단체의 네트워크 참여 문제에 대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에 선임된 강문규회장 같은 분이 가교 역할에 가장 적합한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지원 대변인의 발언은 너무 앞서나가버렸다. 청와대는 정책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책기획 정무 공보수석실로 지원단을 구성, 8월 말까지 여론조사, 세미나,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운동 방향과 기구 구성 방법 등에 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는데 박대변인이 이런 단계를 거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결론」을 말해버린 셈이었다.
시민운동단체들의 반발이 격렬했을 것은 불문가지. 시민운동 출신의 한 정부측 인사도 『그렇게 큰일을 하면서 사전에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시민운동단체의 생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시민운동단체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네트워크 구상을 먼저 발표해버렀으니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시민운동단체들의 자존심을 상하기에 충분했다』고 비판했다.
박대변인이 강문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을 가교역으로 말한 것도 사전 협의된 사항은 아니었다. 강회장은 『박대변인은 좋은 의도로 이야기했겠지만 사전에 협의된 사항은 아니었다. 마치 새마을운동이 제2건국운동 전위대 역할을 하라는 것처럼 비쳐져 유감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환경연합운동 등 시민운동단체 60여개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8월21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2건국운동 어떻게 되어야 하나」를 주제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인 한상진(韓相震) 서울대 교수는 「국민운동 네트워크 구상」과 관련, 『현재의 시민단체는 두뇌부가 건실한 대신, 과제와 목표를 추진해나가는 실행부가 미흡하다』며 『제2건국을 위한 국민운동은 두뇌와 조직이 다같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구상이 시민운동의 자율성과 순수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크다며 일제히 반대의견을 냈다.
토론에 나선 최열(催冽)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시민운동은 내용이 중요하지 정부 주도로 추진되면 과거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 직속 개혁추진기구를 구성해 다양한 인사들을 참여시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국민적 동참을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시민운동단체의 반발이 제2건국운동 기구 추진 방향에 영향을 준 것인지 8월24일 취임 6개월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가진 김대중대통령은 제2건국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묻는 질문에 『어떤 조직에 의해 어떻게 체계적으로 해나갈지 각계 의견을 수렴중이다. 며칠 시간여유를 달라』며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애당초 구상은 건국위는 수십명으로 구성된 자문기구 역할만 하고 관변단체,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직능단체, 여성 및 청소년 단체 등을 총망라한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킬 계획이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관심도 국민운동본부 출범에 쏠려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운동단체들의 반발로 궤도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2건국의 방향과 의제를 설정할 대통령 자문기구인 건국위를 먼저 출범시키고 국민운동본부출범은 향후 검토하자는 것이었다. 추진위원 인선은 청와대 각 수석실의 추천을 받아 정무수석실에서 최종정리를 했다.
건국위 대표공동위원장에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내정됐고, 공동위원장에는 변교수 외에 정원식 대한 적십자사 총재 등 각계대표 16명이 내정됐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은 9월20일 명단을 발표하면서 『각계를 대표하는 도덕성 전문성 개혁성을 갖춘 인사들로 공동위원장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공동위원장은 강문규 새마을중앙협의회장, 김민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김상하 대한상공회의소회장, 김용운 한국수학문화연구소장,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공동대표, 양순직 한국자유총연맹총재, 이경숙 숙명여대총장, 이문영 경기대석좌교수, 이수성 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 이우정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수석대표, 정광모 소비자연맹회장, 정명훈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정원식 대한적십자사 총재, 정의숙 이화학당이사장, 조완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한석룡 전강원지사 등이었다.
이 기구가 총체적 개혁방향을 정하고 의제를 설정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 개혁성이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할 텐데 개혁적인 인사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원래 박권상(朴權相) KBS사장, 김중배(金重培)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이 공동위원장직 제의를 받았지만, 박 사장은 고사 끝에 다른 언론사 사장들과 함께 추진위원에 위촉됐고 김대표는 고사했다. 다음은 공동위원장 중 한 인사의 말.
『진보적인 인사와 보수적인 인사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 점은 이해가 되지만 주요 인선을 볼 때 과연 개혁자문기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공동위원장 중 가장 의외의 인물은 한석룡 전강원지사. 현직 시도지사들이 전부 추진위원급인데 한석룡 전강원지사가 공동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은 『지난 대선 때 김대중후보팀에 들어온 것에 대한 배려』라는 것. 이후 장태완(張泰玩) 재향군인회장이 공동위원장에 추가됐다.
고문은 애당초 강영훈 세종재단 이사장, 강원룡 크리스찬아카데미이사장,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조계종총무원장, 조영식 세계평화위의장 등이 내정됐는데 그후 김종필 국무총리, 조세형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 박태준 자민련총재, 정진석 카톨릭대주교 등이 추가로 고문에 위촉됐다.
10월2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신문지상에 발표된 추진위원은 약 400명. 공동위원장단을 합하면 422명의 매머드 자문기구다. 다음은 정책기획위원회 관계자의 말.
『건국위는 슈퍼급 대통령 자문기구입니다. 모든 자문기구 위에 있는 총괄기구인 셈이죠. 애당초 정책기획위원회에서 구상한 것은 수십명의 건국위입니다. 소규모 건국위와 함께 대규모 국민운동본부가 함께 출범할 줄 알았는데 대규모의 건국위만 먼저 출범한 것은 사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묘하게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가 정부종합청사 옆 한국생산성본부 건물 3층에 있는데 한 층 위인 4층에 건국위가 들어왔다. 그야말로 「옥상옥」인 셈이다.
추진위원이 매머드 사단이 된 것에 대해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는 『각 분야의 인사들을 총망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으나, 주변에서는 국민운동본부가 같이 출범하지 못하는 바람에 추진위만이라도 방대하게 꾸린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추진위원의 구성을 보면 이념적 성향으로는 강만길 고려대 교수, 고은 시인 등 진보적 인사에서부터 안응모 재향경우회장, 엄삼탁 생활체육회장 등 보수적 인사까지 「무지개 구성」이다.
정부 각료와 각종 위원회 위원장 33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임명돼 마치 행정부가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인상을 줬다.
최근 국악인으로 각광받는 김준호, 만화가 박광수,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여성 골퍼 박세리, 영화인 김지미, 탤런트 백일섭, 일본 프로야구 선수 선동렬, 연극인 손숙, 가수 양희은, 씨름선수출신 교수 이만기, 바둑기사 이창호, 등산가 허영호, 마라토너 황영조 등 각 분야 유명인들을 포함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여의도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와 아들인 조희준 국민일보 사장은 부자가 함께 추진위원으로 위촉됐다.
노동계에서는 박인상(朴仁相) 노총위원장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한국노총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민주노총에서는 추진위원으로 위촉된 인사가 없었다. 창립총회 당일 행사장 입구에서 만난 박인상 위원장은 한국노총이 조직적으로 제2건국운동에 참여할 것인지 묻자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으나 박위원장은 최근에 상임위원으로 위촉됐다. 지난 대선에서 박인상 위원장은 김대중후보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시민운동단체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참여연대, 여성단체연합 등의 인사들은 전무한 실정. 경실련 중앙위의장을 맡고 있는 김성남(金聖男) 변호사가 개인자격으로 상임위원에 위촉됐다. 환경운동연합과 참여연대, 그리고 여성단체연합은 지난 9월 중순 숭실대 사회봉사관에서 제2건국운동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이렇게 큰 규모로는 대통령 자문기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시민운동단체의 한 대표는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그런 대규모 조직을 만드는 것은 결국 줄세우기밖에 되지 않는다』 고 지적했다.
최근 건국위는 상임위원 48명을 위촉했다. 상임위원장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 상임위원장은 박학다식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개혁적인 조직 운동 경험이 전무한 이어령씨를 상임위원장에 위촉한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다.
상임위원 48명의 구성을 보면 정부인사 14명, 민간단체인사 15명, 학계 7명, 경제계 3명, 언론계 및 문화예술계 각 2명, 체육 및 법조계 1명이다. 구성비율로만 봐도 정부와 민간단체 합동 기구임을 알 수 있다. 민간단체는 국민운동, 시민단체, 종교단체, 직능단체, 여성단체, 청소년단체, 사회단체 등 7개 부류로 나누었다. 예전 같으면 관변단체로 분류되는 「국민운동」 쪽 상임위원은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사무총장과 조해녕 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 인사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새마을운동 조직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은 현재 공석이다. 강문규씨가 회장이 된 후 국민회의 사무부총장 조재환(趙在煥)씨가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사무총장으로 내정됐으나 강회장은 자신과 전혀 상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비록 이 조직이 성역은 아니지만 회장과 상의없이 정부나 여당에서 인사에 개입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조해녕(曺海寧)씨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내무부장관을 지냈는데 줄곧 내무부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새마을운동 조직과 관련이 깊은 인물.
시민단체 쪽 상임위원은 이창복 전국연합의장. 전국연합은 진보적 재야단체이긴 하지만 하부조직은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단체 쪽 상임위원은 김상근목사와 지선스님으로 기독교와 불교계에서 오래전부터 DJ를 지지해온 대표적인 인물.
직능단체 쪽 상임위원은 박용암 교총사무총장과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이어서 여러 직능단체 중 교육계와 노동계를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여성계 상임위원은 최영희 여성단체협의회장과 송보경 소비자 시민의 모임 대표. 여성단체협의회는 제2건국운동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여성단체연합보다 보수적인 편이다. 청년단체 쪽 상임위원은 김진우 JC회장, 김영삼 4H연합회장, 황창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 등이다. 사회단체쪽 상임위원은 박종윤 로타리클럽회장, 이경재 라이온스회장, 김범일 가나안농군학교장 등이다.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쪽의 상임위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보수적이거나 친여 성향이 강했던 조직들이다. 이 단체들은 조직 규모도 크고 동원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역대 정부가 선호했던 집단들이다. 다음은 청와대 한 고위 인사의 말이다.
『활동이 적극적인 시민단체들이 제2건국운동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그렇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목소리는 높지만 조직면에서는 취약합니다. 조직이나 실행력 면에서 보면 주목할 만한 민간단체들은 모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실무자 중에는 여전히 진보적인 시민운동단체들에 미련을 가진 이가 있다. 『제2건국운동이 사회적 통합을 이뤄내야 하는데 이들 단체들이 밖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면 모양이 좋지 않다』는 것.
건국위를 끌고 가는 실무적인 두 집단은 상임위원단과 기획단이다. 기획단장은 행정자치부 장관이 겸직하게 돼 있어 김정길 행자부장관이 맡고 있다. 부단장에는 정해주(鄭海舟) 국무조정실장과 이강래 정무수석. 기획단은 정부 쪽에서 꾸려가겠다는 의지가 명백하다. 다음은 이강래 수석의 말.
『일을 추진하려면 민간에만 맡겨놓을 수 없습니다. 논의도 길어지고 집행력도 떨어집니다. 전국적인 행정지원과 자금지원을 고려하면 정부에서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야지요』
항공모함처럼 규모가 큰 국민운동 기구를 제대로 운항하기 위해서는 기획단이 도선(導船)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기획위원은 19명. 김상종 서울대 교수, 김성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김재옥 소비자문제 연구 시민모임 사무총장, 김태동 정책기획수석, 김한길 국민회의 국회의원, 김한종 연세대교수, 박종화 기독교장로회 총무, 성경륭 한림대교수, 신현웅 문화관광부 차관, 여운연 소비자연맹 사무총장, 윤홍렬 서울신문 전무, 이경자 방송개발원장, 이달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이선 산업연구원장, 조선제 교육부 차관, 정우택 자민련 국회의원, 최선정 보건복지부 차관, 한상진 서울대 교수, 황태연 동국대 교수 등이다.
이중 10명이 정부 관료나 여당 인사 및 정부쪽 기구 인사들이다. 교수 4명은 모두 정책기획위원회 기획위원을 겸하고 있다. 기획단 업무는 기획운영실에서 보조하는데 이만의(李萬儀) 행자부 인사국장이 1급으로 승진돼 기획운영실장으로 발령이 났다.
향후 출범하게 될 국민운동본부는 어떤 기구일까. 정부는 10월15일 『특별법 제정을 통해 운동본부를 대한적십자와 같은 특수법인으로 발족시켜 정부예산을 직접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운동본부는 중앙에 500명, 시도지역본부에 각 100명, 시군구지부에 50명씩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정부는 이미 제2건국 국민운동 선도를 위한 행정서비스 요원으로 전국적으로 1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이미 밝혔고 내년 예산에 600억원을 계상해놓았다.
이에 대해 시민운동 단체들은 「관주도 시민운동」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홍위병」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럼 국민운동본부와 건국위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건국위가 개혁의 방향과 의제를 설정하면 국민운동본부는 이를 실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건국위와 국민운동본부가 앞으로 추진할 제2건국운동 내용은 제도개혁, 의식개혁과 생활개혁이다. 정책기획위원회가 건국위 출범과 함께 내놓은 「제2의 건국, 대전환과 개혁의 방향」 문건에 설계도가 나와 있다.
제도개혁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정치분야. 현재 고착돼 있는 지역주의 정당구도를 해소하고 전국적 정책정당의 등장을 촉진하며 다양한 국민의 정치적 이해가 의석에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한다는 것. 이와 관련, 김대통령은 정당명부제 도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통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정당명부제는 독일식과 일본식이 있는데 독일식은 군소 정당도 의석을 차지하기 쉬운 반면 일본식은 다수당이 안정된 의석을 얻는데 유리하다. 따라서 여권에서는 일본식을 선호한다는 분석이 많다.
의식개혁과 생활개혁은 의식과 삶의 양식을 변화시켜 더불어 사는 국민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주민자치 교육자치 등 참여의식의 고취, 부정과 부패 및 비리 추방, 환경친화적인 생활개혁 등을 제시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의식 및 생활 개혁은 어떤 것일까. 김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업무를 시작한 10월12일 제2건국 관련 종합보고 자리에서 『의식·생활개혁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하위직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운동 등을 예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창해서 정부와 민간단체가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2건국운동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비판은 이 운동이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역대 권위주의적인 정권들이 정권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운동이라는 명분으로 관변단체들을 동원하고 선거에 이용했기 때문.
비판론자들은, 김대중 정부가 군사정권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호남과 충청의 지역연합 정권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할 전국적인 조직 기반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동안 DJ식 정치의 행보를 살펴보면 재야에 있을 때나 제도 야당에 들어와서도 지지기반이 협소할 때는 항상 기존판을 흔들 수 있는 명분을 찾아 새로운 지지기반을 확보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 사정을 통한 인적 청산과 야당의원 빼내기 등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한 뒤 정당명부제를 실시해 전국정당이 출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제2건국운동을 통해 길러진 새로운 인재들을 충당한다는 것. 그리고 선거시에는 친여 선거조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건국위 내부에서도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다. 변형윤 건국위 대표공동위원장은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 『최고 권력자는 항상 그런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전제한 뒤 『만약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당장 대표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건국위 공동위원장인 강문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도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김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9월26일 오전 김대통령은 변형윤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공동위원장단 및 고문단과 조찬 모임을 가졌는데, 강문규 회장은 『국민회의 총재로서 정치통합을 하려는 것인지, 국가행정수반으로서 사회통합을 하려는 것인지 분명히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
이때 김대통령은 『제2건국운동은 정치와 관계 없다. 이 운동을 정치에 이용할 경우 실패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결코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또한 『과거 정부처럼 시민 민간단체를 관변단체로 취급하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이 굳은 의지를 밝혔지만 제2건국운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는 과연 없는 것일까. 그 가능성은 제2건국운동이 추진하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지역정당을 전국정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정당이 당내 민주화가 되지 않은 채 「보스」에 의해 운영되는 전근대적인 정당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고, 이를 이념과 정책을 가진 전국정당으로 만드는 것은 제2건국의 정치적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전국정당을 채워줄 새로운 인재를 찾는 과정에 제2건국운동 조직이 인재 풀(pool)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시에는 친여 성향의 선거운동조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특히 초당과 초정파를 표방하지만 현재의 제2건국운동 조직에는 야당정치인과 비판적인 시민단체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청와대와 정책기획위원회 주요인사들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지만 대응하는 입장은 두 가지다.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나 황태연 교수는 『전국정당을 만드는 것은 주요한 정치개혁이며 정당명부제는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이강래 정무수석과 사회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제2건국의 핵심은 나라틀을 바로 세우기 위해 삶의 행태를 변화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과 생활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문제를 건드리다 보면 그 조직이 정치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치개혁은 제2건국의 기치를 내걸지 않고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도 지자체의 경우 지자체장들이 자신들의 선거운동에 제2건국운동 조직을 이용할 수 있음과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21세기의 새로운 1000년을 앞둔 시점에 제2건국운동의 모델은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 구한말의 애국계몽운동, 개발독재시대 조국근대화를 이룩한 새마을운동, 김영삼 문민정부 때의 세계화추진 등의 예가 있지만 적절한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운동이나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았던 개발독재시대의 관주도형 국민운동이나 국민들의 개혁 열기가 뒷받침되지 않았던 위로부터의 개혁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마땅한 모델이 없다고 시인한 뒤 『대량생산체제인 포디즘에 맞는 것이 새마을운동이었다면, 제2건국운동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 맞는 운동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모델을 찾지 못할 경우 제2건국운동도 구성원들의 경험이나 권력의 관성에 의해 옛 모델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총체적인 개혁을 해서 21세기를 대비한 나라의 근본틀을 세우기는커녕 지원해야 할 정부조직이 주체가 되고 민간단체들이 객체가 돼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국위 추진위원인 황병덕 민족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제2건국운동의 모델로 독일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은 나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국민재교육차원에서 내무부 산하에 연방정치교육본부를 뒀는데 통일 후에는 동독 시민들의 통일교육기관으로도 활용한다는 것.
『이 교육기관은 내무부 산하에 있지만 극좌와 극우를 배제한 모든 정치 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감독관을 연방의회나 지방의회 의석 비율에 따라 선출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 독점할 수 없다. 노조나 시민사회단체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강좌를 마련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독일이 선진국 중에서 투표율이 높은 것은 이 기관의 역할 때문이라고 본다. 제2건국운동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주정치교육본부를 만들어 국민재교육 운동으로 승화시켰으면 한다』(신동아 199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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