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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실 민주주의란 간단하다. 민 - 民 :
'민'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서 사용이 불편하니 이하에서는 인민이라고 하겠음 - 이 주인이 되도록 하자는 사상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사회란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사상의 한 조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근현대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맑스레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각종 사회주의 이념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민주주의 사상이 없다.
근대 사회
초기에는 자유와 평등과 같은 근본 지향과 정부 형태 등 기본적인 외형은 있었지만 민주주의의 중요한 많은 내용들이 심화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내용들이 구체화되면서 이는 맑스레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혹은 기타 사회주의 운동이 초기에 내걸었던 구체적 요구들, 예를 들어 무산자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부여,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 노동3권의 보장, 8시간 노동제의 실현, 최저임금제 실현, 교육과 보건의 사회적 보장,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고용에 대한 사회적 보호, 산업재해의 철저한 예방교육과 산업재해 피해자의 사회적 보호, 고아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등이 대부분의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국가들의 보편적인 정책으로 되고 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이미 이러한 것들이 상당 수준으로
실현되었고 나머지 나라들도 대부분 이러한 지향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이는 심지어 사회주의와는 가장 먼 거리에 있다고 느껴지는 미국에서도 상당
정도 실현될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다. '회교 근본주의' 등 특이한 이념을 재기하는 나라들도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 이념의 보편성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이념은 그 근본적 이념에서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닐 뿐 아니라 그 구체적 실현양태에서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까지 보편적인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주려는 정책도 전세계 사회주의 성향의 집권당 - 중국공산당, 베트남공산당, 영국노동당, 독일사회민주당 등 - 의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당들은 사회주의 성향의 집권당들이 소속된 모든 국가 인구의 95% 이상을 포괄하고 있다.
이 민주주의는
근현대 인류사회발전의 핵심사상이 되었으며 현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중심사상이다.
2. 인류역사발전 5단계설의 모순점
인류역사발전 5단계설은 극히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현상을 지나치게 보편화시킨 것이다. 노예제사회는 지중해 연안에 있던 고대
국가들의 특유한 사회제도이고 봉건제사회는 중세유럽의 특유한 사회제도이며 자본주의사회는 근대 유럽의 특유한 사회제도이다. 중동 이외의 아시아,
서구인 침략 이전의 남북아메리카, 북부 이외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러한 사회제도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 자본제사회 등은 모두 일반적인 사회발전단계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인류역사발전 5단계설은 단지 유럽사회발전을 기준으로 '과도한
일반화'를 시도하다 생긴 오류일 뿐이다.
예를 들어 고대 동아시아사회만 놓고 보아도 노예제사회나 봉건제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였다. 굳이 유럽과 억지로 끼워 맞춘다고 한다면 근세 절대왕정 시대의 유럽사회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는 글자 그대로 억지일 뿐
그와도 역시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임은 마찬가지이다. 맑스도 이를 깨닫고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구별하였다. 이를 별도로
구별한 것까지는 좋은데 유럽에만 있었던 사회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회이며 아시아에만 있었던 사회는 특수한 사회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치인가?
아시아가 인구가 더 적은 것도 아니고 땅이 더 좁은 것도 아니고 단지 근대 사회발전이 좀 늦었을 뿐인데.... 근대 사회발전이 좀 늦고 빠르고가
노예제사회나 봉건제사회 등의 일반화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역사자료의 대부분이 유럽이나 지중해 연안지역의 자료였던
맑스는 제쳐두더라도 세계 모든 지역의 엄청난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20세기의 많은 이론가들이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계급 미분화로 노예제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맑스의 이론을 따랐거나, 고려시대까지를
노예제사회로 보고 조선시대부터를 봉건제사회로 봤다가, 다시 고려시대부터를 봉건제사회라고 했다가, 또다시 통일신라시대부터를 봉건제사회라고 했다가,
3∼4세기경부터 봉건제사회라고 했다가, 다시 1세기부터 봉건제사회라고 했다가, 지금은 이것이 기원전으로 넘어가는 희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맑스의 역사발전단계론은 유럽 이외의 지역에 적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대나 중세의 동아시아 사회제도가 지중해 연안지역의
고대 노예제나 유럽지역의 중세 봉건제보다 낙후한 사회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첫째, 맑스가 말하는 '계급 미분화'가 낙후의
징표이고 계급의 뚜렷한 분화가 발전의 징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계급사관에 기초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며 다른 근거는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계급사관을 반대하지만 설사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본다고 하더라도 노예제사회가
동아시아의 고대 사회제도보다 더 발전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결국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하지 않고 가혹하게
부려먹는 노예제사회가 저급한 사회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하자는 것인데 노예가 적거나 거의 없는 사회를 노예제사회보다 더 저급한
사회로 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맑스는 생산력을 중시했으며 낮은 단계의 사회제도에서는 낮은 생산력 밖에 나올 수 없다고 했는데
동아시아사회의 생산력이 15세기경까지는 줄곧 유럽보다 앞섰으며 생산품이 달라 생산력을 비교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유럽보다 생산력이 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사회제도가 노예제사회나 봉건제사회보다 후진적인 사회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셋째, 문화적인 측면은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이어서 함부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어쨌든 수많은 유럽의 학자들도 동아시아 사회의 문화가
중세유럽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너무 일찍 높은 수준의 문화를 구현하고 거기에 심취하여 오랜 기간동안 정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의학을 예로 들어보면 동양의학의 경우 몇 천년 전의 처방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현대의학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의학이 발전되어 있었고
서양의학에서는 고대나 중세에는 이렇다할만한 의학이 없었다. 넷째, 고대나 중세의 동아시아 사회제도는 정치적으로도 관료조직이 발전되어 있었고
관료등용제도도 더 선진적이었고 중앙집권제가 일찍부터 발전하는 등 유럽의 봉건제보다 더 발전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고대 사회제도가 유럽의 고대 노예제사회나 중세 봉건제사회보다 저급한 사회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동아시아의 사회제도가
노예제 등보다 모순이 격화될 가능성이 적어 오랫동안 정체했다는 주장은 동서의 많은 학자들이 수긍하는 주장으로 일리가 있다. 이는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 등 각각 표현방식은 달라도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우리 나라 등이 오랫동안 정체한 다음 노예제나
봉건제를 거치지 않고 서구의 충격을 받아 바로 자본주의적 변화를 시작했다는 것을 본다면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은 그 보편성과 필연성이 거의
없는 학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살펴보자. 자본주의는 역사의 필연인가? 그런데 이것은 그것을 입증하거나
부정하는 증명이나 어느 것이든 할 방법이 없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가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며 독자적으로 그렇게 발전한 곳은 서구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영향이 없었을 경우 독자적으로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많은 학자들이 중국, 한국, 일본의 중세경제를 분석하면서
자본주의의 맹아라고 이런저런 예들을 들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비약들일 뿐이다. 고대 로마를 분석할 때 금융업이 발전했다고 해서 이를 자본주의의
맹아라고 보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장 혹은 시장경제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자본주의라고 볼 수는 없다. 초보적인 원시공동체사회를 제외하고
시장은 인류역사와 줄곧 같이 해왔다. 비교적 발전된 원시공동체사회를 분석해보면 거의 대부분 시장을 갖고 있었으며 상당히 발전된 시장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장경제적 요소가 있었다고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서구의 영향이 없었더라도 자본주의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증명한 적이 없다.
3. 현대 서구사회는 자본주의사회인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말은 맑스 이전에도 있었지만 현대에 사용하고 있는 이 말들의 개념들은 모두 맑스가 정식화 해놓은 것들이다. 어떤 계층에
있는 사람이든 어떤 사상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든 대부분 맑스가 규정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맑스가 규정한 자본주의란 개념을 기준으로
할 때 19세기의 영국, 프랑스도 자본주의이고 현재의 영국, 프랑스도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맑스는 자본이 존재하는 사회를
자본주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가가, 자본의 운동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사회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를 자본주의사회라고 했다.
19세기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과연 이랬는가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지만 그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현재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어떤 사람은 무상의무교육, 의료보장제도, 최저임금제, 주 35시간노동제, 실업자보호제도, 고용보호제도 등이 모두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자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자본주의가 더 교묘한 형태로 발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사회발전의 모든 내용이 다만
자본의 논리일 뿐이고 인민은 자신의 지향이나 요구는 없이 자본의 논리만 따라 다니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버린다. 선거권이나 투표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결사나 정치활동의 자유가 없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거의 혹은 아예 반영하지
못하고, 오직 자본의 요구에 따라다니기만 한다면 이런 인민에게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그러면 평소에 인민이 자주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인가?
맑스가 규정한 개념,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을 놓고 보았을 때 현대 서구사회는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다. 현대
서구사회는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인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민주주의사회'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인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꼭 올바른 방향으로만 간다는 것은 아니다. 인민의 다수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정책이 잘못되었던 경우는 워낙
많아서 일일이 예를 들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리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경우도 많았다. 80년대의 프랑스에서 주요 기업을 국유화한 것도 미테랑의
사회당과 그 정책을 지지한 과반수 인민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80년대 후반에 국유화한 기업을 다시 민영화한 것도 중도우파 정당들과 그
정책을 지지한 과반수 인민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인민이 주인인 사회'라는 뜻을 지닌 '민주주의사회'는 좀 더 거칠게
말하면 '인민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사회'이다.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인민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사회제도이다.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사회제도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현재까지 인류가 경험해본 사회제도 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사회제도이다.
현대의 서구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으로 보든 명백한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사회'는 아니며 '민주주의사회'라는 것이다. 19세기의 영국이나 프랑스는
민주주의사회의 범위를 넓게 잡느냐 아니면 좁게 잡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사회의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고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저소득층 인민들이 무권리와 심한 불평등과 비참한 생활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이런 사회를 어떻게 민주주의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관점에
서서 본다면 민주주의사회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 이념이 확고해졌고 빠른 속도로 인민의 권리와 영향력이
확대되어가고 있었다는 점을 주로 고려한다면 민주주의사회라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그 시기는 과도기였고 그 과도기를 '자본주의사회'라는 하나의
단계를 두어 설명하든 아니면 민주주의사회에 포함시켜 설명하는 그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본주의사회'라는
단계를 두어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도기를 그렇게 설명한 것일 뿐이며 인류역사발전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발전단계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4. 부르주아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
민주주의란 말 자체가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제도 혹은, 그렇게 되도록 하려는 사회이념이라는 뜻인데 그 앞에 굳이 인민이라는 말을 붙여서 중복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르주아민주주의 등과 구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부르주아민주주의란 말 그 자체가 정확한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어쨌든 맑스가 살았던
시대에 맑스가 이런 용어를 써가며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에서는 힘센 놈이 최고이고 투표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에서는 표를 가진 놈이 최고이다. 그런데 맑스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영국조차도 무산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무산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투표권이 있어야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
만약 영국에서 무산자에게 계속해서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노동당정부 같은 것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고 심지어 노동당의 의회진출 조차 극히
힘들었을 것이며 현재의 사회보장제도 중 상당수가 아예 생겨나지 조차 않았을 것이다. 맑스 시대의 영국민주주의는 '무산자가 배제된 민주주의' 임이
명확하다. 그런 측면에서 맑스가 부르주아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공감한다.
그러나 부르주아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모르지만 맑스처럼 민주주의의 한 종류인 것처럼 사용되는 것은 반대한다. 맑스는 모든 인민이
권리를 갖는 민주주의란 환상에 불과하고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계급이 권리를 갖는 민주주의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귀족민주주의, 부르주아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가 가장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이며, 따라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구 소련·동유럽사회에서 반프롤레타리아적인 사상을 방지하고 척결한다고 하여 실제로 대다수 인민 - 그
중에 압도적인 다수가 소위 프롤레타리아일 것이다 - 이 감시와 인권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만을 따로 떼어서 감시와 인권탄압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유산자였던 사람이 자유선거권을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유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자유선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도 과거의 유산자였던 사람뿐만
아니라 과거에 무산자였던 사람도 역시 박탈당했다. 왜냐하면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은 과거에 유산자였던 사람이나 무산자였던 사람이나 그 어느
쪽에서나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유산자였던 사람의 권리만 제한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만 권리를
준다는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란 실제로 존재할 수 없으며 또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와 동의어인 프롤레타리아독재도 역시 실현
불가능하다.
결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일 뿐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도 부르주아민주주의도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
5. 구 소련·동유럽사회는 민주주의사회인가
구 소련·동유럽사회는 인민의 정치적 권리가 폭넓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시 말해 진정한 민주주의사회가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19세기 서구사회와 비슷하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소유제에 있어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바로 이 소유제의 차이를 놓고 서구사회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보는 관점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자.
공산주의의 본질적 특징은 소유제가 폐지되는 무소유제이고 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징은 국유제이고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은 사유제라고
정통 맑스주의에서는 주장한다. 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징이 국유제라고 하는데 국유제라는 것은 생산수단이 국가소유라는 것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국가권력이 군주에 집중되어 있을 때는 그 국유재산은 군주의 이해와 요구에 맞게 사용되는 것이며 국가권력이 관료집단 등 특정
사회집단에 의해 장악되어 있을 때는 그 사회집단의 이해와 요구에 맞게 사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초·중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생산수단인 토지는 국유제를 기본으로 했는데 이 국유재산은 국가권력을 장악한 군주나 특정 파벌 혹은 관료 혹은 양반 등의 이해와 요구에 맞게
사용되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나라에서는 엄청난 국유재산이 있으나 이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왕족의 이해와 요구에 맞게 사용되고 있다.
더군다나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사회라고 하는데 국유제 그 자체는 공산주의 지향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초기에 국유제를 일반원칙으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공산주의 지향성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국유제사회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공산주의 지향성이 없을 때는 그 사회는 그 어떠한 공산주의 지향성도 없다. 공산주의 지향성이 전혀 없는 세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국유제사회 보다는 오히려 사유제를 주로 채택하고 있지만 공산주의적 성향이 비교적 강한 정치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들이 훨씬 공산주의적 지향성이
강하다.
이처럼 국유제냐 사유제냐 하는 것은 사회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19세기
서구사회가 민주주의사회로 가는 과도기였다고 한다면 구 소련·동유럽사회도 역시 이러한 과도기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규명해보자.
동구권 국가들은 예외 없이 봉건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하였다. 이것만을 중시한다면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 사회로서 동구사회주의체제 - 이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회주의로 이해해도 된다 - 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역사적으로 그러한
나라들이 민주주의의사회로 가는 과정에 그러한 사회체제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구사회주의체제를 일반적인 과도기로 설정하는 것을
반대한다. 동구사회주의체제가 인류역사에서 나타날 가능성은 사실 높지 않았다고 본다. 동구사회주의체제는 천재적 이론가이자 천재적 선전가였던 맑스나
천재적인 정치가인 레닌, 천재적 군사전술가 모택동, 천재적 현실주의 전략가 스탈린 등과 같은 탁월한 천재들에 의해 겨우 가능했던 매우 특이한
체제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소련의 볼셰비키정부가 탄생할 가능성은 1%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그 작은 가능성을
현실로 실현시킨 레닌 등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를 역사적 필연으로 보는 견해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말이기도 하다.
필자는 역사적 필연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않지만 설사 역사적 필연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동유럽식 사회주의는
여기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실현시킨 인류의 창조성도 놀라운 것이지만
동유럽식 사회주의가 소위 '역사의 순리'라는 것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치러야 했던 대가도 역시 컸다. 그리고 역사의 순리에
벗어난 사회를 운영하려다보니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 전근대적인 인권탄압, 사회주의적 기업구조, 공산주의 지향적인 분배구조 - 그렇다고 공산주의적
분배구조라고 볼 수는 없다 - 등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많은 사회를 초기에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사회가 지속되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역사를 겪은 나라들이 아프리카를 제외하더라도
30개국이 넘지만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역사라고 하여 일반적인 과정의 하나로 보기는 어려움이 많다. 동유럽식 사회주의체제는 분명히 미완의
민주주의체제이지만 이 '미완'은 일반적인 '미완'과는 다르다. 민주주의는 미완이긴 하지만 이 민주주의보다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문제에 더 깊은
관심과 정열을 쏟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미완의 민주주의사회', '과도기 민주주의사회' 라고 해서는 대단히 허전한 느낌이 있다.
물론 단순히 사회제도만 떼어놓고 이야기한다면 '인민의 정치적 권리가 결여된 과도적 민주의사회' 라는 측면이 결정적이고 다른 모든
측면은 부차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동유럽식 사회주의체제를 볼 때 사회제도를 중심에 놓고 바라보는 것이 옳은 관점일까? 필자는 오히려 그러한
사회들을 사회제도보다는 운동이나 실험으로서의 지위를 중심에 놓고 바라보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바라볼 때 이 시기의
중국이 제도적으로 어떠했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운동 - 끔찍한 운동이기는 하지만 - 으로서 모든 것을 다 설명하듯이 동유럽식 사회주의체제의 전
기간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운동이나 실험으로서 바라보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그 자체가 '초급민주주의제도'를 구성한다기보다는 초기 민주주의에
있었던 운동기간으로서 특수하게 처리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 규모가 너무나 크고 그 기간이 너무 길어 운동으로만 처리하는데
멈칫거려서는 안 된다. 그 운동적인 성격, 특히 공산주의적인 성격만 제외하면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특별한 것이 없다. 관료제도나 기업구조가 당시의
서방나라들과 질적인 차이가 없고 인권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정치적 권리가 많이 제약받았다는 점에서는 저급한 혹은 초급단계의 민주주의사회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냥 초급민주주의사회라고 말하고 끝내버리기 힘든 이유는 그러한 제도들보다는 공산주의적 운동에 오히려 더 무게가
두어진 사회였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적 이념으로 광범한 사람들을 조직한 거대한 공산당, 각종 형태의 사상학습, 각종 정치집회, *** 따라
배우기운동 등의 각종 공산주의적 도덕교양 등과 같은 것이 중심이 되어 있었던 사회였다. 협동농장만 하더라도 사회주의적이라기보다는 공산주의적인
것인데 이를 제도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운동이나 실험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협동농장이라는
공산주의적 제도를 수립하고 운영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협동농장이라는 공산주의적 실험을 해왔다'라든가 '협동농장이라는 공산주의적 운동을
전개해왔다'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본질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민주주의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사회에서 협동농장과 같은 공산주의적 제도는
실험이나 운동이외에 어떤 의의가 있겠는가?
19세기의 서구사회를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사회에 포함시킨다고 한다면 역시 구
소련·동유럽사회도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사회에 포함시켜야 한다. '인민이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고, 그러면서도 인민의 실질적인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 19세기의 서구사회와 구 소련·동유럽사회는 비슷하다. 근세사회에서
20세기말의 현재까지의 역사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라고 본다면 19세기 서구사회와 구 소련·동유럽사회는 '저발전단계의 민주주의사회' 혹은
'초급민주주의사회'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말아버리면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구 소련·동유럽사회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들은 공산주의자들의 강력한 지도에 의해 낡은 사회제도를 매우 빠른 시간 내에 붕괴시켰지만 민주주의의 발전은 공산주의운동에 의해
공산당에 의해 일관되게 굴절되어 왔다. 이 사회의 더욱 가슴아픈 비극성은 민주주의발전의 굴절을 가져온 이러한 사회의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자, 다시 말해 '인민이 진정한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에 가장 철저했던 사람들이라는데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비극성은 19세기와 20세기 전체 공산주의운동의 비극성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홍위병에게 탄압 받아 죽거나 다치거나 고문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이라기보다는 바로 그 홍위병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그 홍위병들은 인민을 위한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참가했으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인민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근현대 세계역사 전체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로 본다면 구 소련·동유럽사회의 역사는 급진적 공산주의
운동 - 혹은 급진적 민주주의 운동 - 에 의해 민주주의의 발전이 굴절되어 온 역사이며 이의 실패는 인류역사가 생긴 이래 인류에게 가장 큰
패배의식을 안겨주었으며 그 후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 공동체적인 가치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짐으로써 그 손실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컸다.
6. 남한은 어떤 사회이고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남한은 민주주의사회이다.
그것도 19세기의 서구사회처럼 초보적 단계의 민주주의사회가 아니라 상당히 발전된 민주주의사회이다. 현재의 서구사회와 비교하더라도 약간 뒤떨어진
정도이지 그 차이가 크지 않다.
6, 70년대의 남한사회는 넓은 의미에서 민주주의사회이고 초보적 단계의 민주주의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남한사회를 19세기 후반의 영국 등과 비교해본다면 형식적인 법제도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월등히 앞서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앞서있는
부분도 많이 있고 뒤쳐지는 부분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보통선거, 평등선거의 측면에서는 월등히 앞서 있지만 선거의 자유로운 분위기의 측면에선
뒤쳐지며, 사회보장의 측면에서는 앞서 있지만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발전이나 언론자유 등에서는 뒤쳐진다. 결국 그 우열을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당시 민주주의 발전수준으로만 놓고 본다면 19세기 후반의 영국 등의 나라와 비슷한 급에 놓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우리 나라를 '자본주의사회'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한다. 이 당시의 우리 나라는 '자본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던 시대'가 아니라 '정권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던 시대'였다. 우리 나라 역사와 서구의 역사는 아주 크게 다르다.
민주주의가 실현된 내용은 비슷하지만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걸어온 역사가 완전히 다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서구역사 발전과정에서
특수하게 나타난 현상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자생적으로 성장한 자본이 정권의 형성이나 정부의 정책에, 심지어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민주화의 역사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의 역사'를 중심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초를 이루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전반적 사회발전을 강력히 추진하고 그에 상응하는 점진적 민주화를 추구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의 전략이 관철되어온 역사'인지 동시대인인 우리는 지나치게 모호해서 감히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이런 역사적인 문제는 역시 시간이
많이 흘러야 좀 더 또렷하게 보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의 감각으로 간단한 말만 덧붙이면 이 양쪽 중 그 어느 쪽도 배척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양쪽 중 어느 쪽이 중심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런 문제야말로 정말 시간이 흘러야 하는 문제지만 이왕
이야기를 꺼낸 김에 간단한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이 역시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전략이 관철되어온 역사'쪽이 좀더 역사적 진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더 확정적인 결론은 50년 혹은 100년 후의 역사학자들에게로 미루기로 하자.
그러면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북한은 초기에 전근대적 잔재들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제거해나갔고 민주주의건설에, 다시 말해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건설'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남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들이 잘 조직화되어 있었다. 남한은 이에 비해 '반공'을 국시로 내건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공산당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어 원한을 갖고 있거나 피해를 입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만 적극적이었고 민주주의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소극적이었다. 북한은 그 뿐 아니라 인민의 평균적인 문화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지식인들의 적극성도 높았다. 모든 조건이 민주주의건설에
유리했고 실제로 북한 건국 초기의 인민의 국정 참여 적극성, 정치적인 관심도, 인민과 정부와의 긴밀한 연계성 등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 중 최고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에 힘입어 북한은 초기에 20여 년간 고속 경제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북한 인민의 국정에 대한 영향력은 세계 최하위 권이고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아무런 정치적 권리도 없으며
인권은 비참한 상태에 빠져있다. 4∼50년 전보다 훨씬 못한 상태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조시대나 일제시대와 비교해도 인권상태가 더
낫다고 하기 힘들다. 이조시대나 일제시대에 인민이 정부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북한에서도 인민이 정부구성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언론자유는 이조시대나 일제시대보다도 더 없으며 감시는 더 심하다. 일제시대에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었으나 이렇게
떼거지로 굶어죽는 것은 전례가 없었으며 김정일과 그 가족의 호화사치생활은 이조시대의 그 어느 왕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불평등이 극단을
치닫고 있다. '인민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이념을 강력하게 내걸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서 더더욱 비극적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이조사회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전근대사회로 봐야 하는가? 그렇게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북한
사회의 본질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북한사회는 구 소련·동유럽사회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다만 그러한 모순이 조금 더 극단화되어
있을 뿐이다.
북한은 전근대사회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사회라고 봐야 하며 민주주의가 초급발전단계에서 공산주의운동에 의해
굴절되고 이것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개인 독재와 결합되어 굴절이 더욱 극심해진 상태, 다시 말해 민주주의 초급발전단계에서의 특수상태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필자 주) 위에서 구 소련·동유럽사회, 동유럽식 사회주의 등으로 표현한 것에는 중국, 베트남, 쿠바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서 지나치게 말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를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음.
* 김영환(시대정신 편집위원)
* 이 글은 시대정신 [1999 01-02월호] 제2호에 수록되었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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