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念.思想.思潮

한국의 보수를 반성한다(2004년 3월의 기사)

이강기 2015. 10. 28. 09:12

한국의 보수를 반성한다(1)

<1>50대의 목소리-거듭 나야 할 이 땅의 보수

2004-03-31 17:55:59

◇ 이영조 경희대교수 ⓒ 데일리안

바로 얼마 전 일이다. 국책연구소의 원장까지 지낸 어느 연세 지긋한 어느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가면 사회주의 정권이 2-30년 가는 것 아닐까? 다 정리해서 이민을 가던지 해야겠다.”

나는 이렇게 응답했다. “그렇게 개인적인 해결책만 찾으시다 보면 우려하시는 일이 정말 벌어집니다. 걱정이 되시면 그런 일을 막아줄 정당이나 단체에 후원금도 내시고 자원봉사도 하십시요.”

이 분 말고도 여러 다른 분들과 나눈 비슷한 대화야말로 한국의 보수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지금 이 땅에는 보수적 정서를 안으로 품고 있는 개인은 많지만 이것을 밖으로 공언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이 땅에는 한 마디로 조직된 보수가 없다. 좌파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다.

이념과 프로그램 없었던 보수

여기에는 몇 가지 역사적 이유가 있다. 첫째, 그 동안 우익은 반공, 멸공, 승공 하는 식으로 소극적으로만 규정되었을 뿐 적극적으로 정의된 적이 없다. 오로지 구체적 대상을 준거로 해서만 존재했을 뿐 나름의 이념과 프로그램을 앞세워 스스로를 규정하고 대중에게 다가간 적이 없다.

둘째, 반공정권이 민간 보수의 역할까지도 선제한 것도 보수의 정체성 약화에 기여했다. 반공정권 하에서 체제 수호는 국민이 아니라 국가, 특히 공안기관이 해 주는 것이었다. 민간의 보수는 나설 자리도 유인도 없었다. 그 결과 이념이나 조직 면에서 이 땅의 보수는 자생력을 잃게 되었다.

국가를 장악한 정권이 보수 이념을 해석하고 수호하는 역할을 독점한 것은 이 땅의 보수에게는 축복이자 저주였다. 특히 권위주의정권이 체제 수호가 아니라 정권 수호를 위해 반공의 외연을 확대한 것은 문제였다. 진짜 좌익이 아닌 사람조차 좌익으로 몰리는 일이 거듭되면서 좌익의 외연은 그 만큼 확대되었다.

진짜 좌익과 독재정권 반대자들이 함께 좌익으로 치부되면서 이념적 구분의 선명성이 그 만큼 줄어들었다. 이 틈새를 이용해 명백한 좌익조차도 양심인사, 민주인사로 자처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보수는 독재정권과 동일시되었다. 반드시 보수 이념과 관계없는 특질들조차도 보수적인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독재정권이 재산권의 존중과 같은 보수의 핵심적 가치를 수호한 것도 사실이지만, 보수의 본질과 관계없는 지탄받아 마땅한 정권 차원의 조치나 행위조차 보수의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정권이 뒤집어쓸 오명을 보수도 함께 뒤집어쓰게 되었고 보수라는 말에는 나쁜 의미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 좌익에 넘어가

권위주의 정권에 기생하여 사적인 이득을 꾀한 부도덕한 보수만이 아니라 건전한 보수까지도 권위주의 정권과 동일시되는 바람에,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은 좌익에게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상징하던 것과 반대되는 모든 좋은 가치를 좌익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지식인 사회에서도 목소리를 높인 것은 좌익이었고 보수 지식인들은 벽장 속으로 숨어들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운동이 거의 전적으로 좌익의 주도하에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386세대로 일컬어지는 이때의 학생운동가들이 이제는 사회의 곳곳에 진출해 있다. 특히 이들은 여론에 영향을 주는 문화선전기관의 일선업무나 중간관리직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정황에 비추어 오늘날 이 땅에서 담론대결의 헤게모니를 좌익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개혁과 진보 그리고 민주가 좌익의 전유물이 아니고 수구와 독재가 보수의 본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좌익=개혁=진보=민주, 우익=보수=수구=독재라는 등식화된 사고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 동안 이 땅의 보수는 정권에 기대어 너무나 편하게 살아왔다. 정권에 기생한,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이비 보수도 많았다. 반공정권에 기댄 이 땅의 보수는 으레 국민 대다수가 보수이거니 간주하고 가드를 완전히 내렸다. 그 결과 이념의 차이는 지역과 같은 부차적인 균열 아래 매몰되었다. 이념이 어떻게 되었던 같은 지역 사람이니까 후원하고 지지하고 연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민간중심의 보수 조직화 노력 필요

이 땅의 보수는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으레 국민 대부분이 보수이려니 안이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보수 세력끼리 연대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무수한 개인들을 조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좌익이 반공정권 하에서 생존과 세력 확대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청년학생층을 파고들 때도 수수방관했다.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기 위한 이론적인 무장도 게을리 했다. 오늘날 보수가 겪는 위기는 자업자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땅의 보수는 이제 과거의 안일했던 삶과 태도, 현실인식과 행동을 치열하게 반성할 때다. 더 이상 이민 가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묻는 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외부의 세력에 기대지 않고 자체의 역량을 길러야 한다. 특히 민간 중심의 조직화 노력이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롭게 태어나는 보수 운동은 참신한 인사들이 맡아야 할 것이다. 거듭나는 보수의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한편 보수가 결코 반동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서는 개혁의지가 뚜렷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이영조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학교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데일리안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이영조 기획위원/경희대 교수]

 

한국의 보수를 반성한다(2)

<2>40대의 목소리-촛불의 시대,촛불의 폭력

2004-03-31 17:57:51

◇ 조희문 교수 ⓒ 데일리안

"차안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잠시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온갖 고생을 하다가 이제야 새 인생을 살아보고자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버스에 불쑥 올라탄 험상궂은 남자가 볼펜이나 양말, 장갑 따위를 손에 들고는 하나씩 사주면 고맙겠다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차안의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물건을 돌리며 앞에 서서 눈꼬리를 가늘게 올린다. 그럴 때마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당혹스럽고 황당하기가 이를 데 없어 안절부절 못한다.

파는 물건들이 요긴하게 필요한 경우라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조악한 것들이어서 내키지 않는데다 값도 몇 배 비싸게 부른다. 제값에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판다는 분위기는 애당초에 없다. 제대로 한 번 살아보겠다는데 그것도 도와주지 못하겠느냐는 듯한 태도다. 말로는 동정을 바라면서 행동은 공갈이고 협박이다.

동정심은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차 바닥에 내팽개쳐 진 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곤욕을 치르는 신세가 된다. 자비를 바라는 행동이 폭력으로 바뀌는 경우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는 촛불이 여러 번 등장했다. 미군의 장갑차 사고로 숨진 여중생 추모 집회 때에 촛불이 등장하더니 대통령 탄핵반대 시위 때도 모인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 ‘바람 앞의 촛불’이란 말도 있지만 촛불의 이미지는 여리고 부드럽다.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작은 이미지는 종종 희생과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세상의 폭력과 불합리를 벗어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누구를 증오하거나 폭력으로 위협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촛불은 어떤 도구보다도 강렬한 목소리를 낸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을 때 밝히는 촛불은 모두가 희망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으며 초파일이나 크리스마스에 드는 촛불 또한 온 세상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소망하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흥분된 마음도 촛불 앞에서는 차분해지고, 핏발 선 눈길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촛불의 힘이다.

군중을 흥분시키고 공격의 도구가 되어버린 촛불

그러나 촛불을 든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분노와 적개심에 찬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작은 촛불은 군중을 흥분시키는 횃불이 되고, 그 무리에 섞이지 않는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지난 얼마 동안의 기간에 보았던 촛불은 공동의 목표와 평화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촛불을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들을 더욱 갈라 놓았고 생각과 행동이 다르면 ‘우리’ 가 아닌 ‘너’나 ‘그들’로 나누어 버리는 아이콘이 되었다.

우리 사회를 가르는 표식들은 촛불만이 아니다. 공중파를 비롯한 텔레비전 방송, 인터넷, 신문 등의 언론 매체, 저마다의 이념적 방향과 색깔을 내세우며 특정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단체들까지 더하면서 우리 사회는 갈등과 대립으로 끓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리를 지어 아무 일에나 탈법과 불법이 개혁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법은 내가 필요할 때 지키는 것이며 방해가 된다면 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우기는 일도 흔한 세상이 되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나’와 ‘우리 편’만의 목소리가 더 커야 한다고 고집하며 다른 사람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타도의 대상으로 몰아버린다. 지켜야 할 것과 바뀌어야 할 것에 대한 구별은 갈수록 혼미하고 선동의 목소리는 점점 더해간다.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는 목소리를 독점하거나 무리를 지어 우격다짐을 하는 집단에게 능욕당하며 그 앞에서 법은 너무도 허망하게 희롱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가라는 위기감은 갈수록 더하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해야

그러나 모든 일의 절반은 나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면 그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자문해봐야 한다. 말해야 할 때 할말을 하고, 행동해야 할 때 실행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 무심하거나 주저하며 누군가 나를 대신해 줄 것이라고 밀어버린 것은 아닌지,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며 순환을 거부한 것은 아닌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지역주의를 비난하며 끼리끼리 모여 패거리를 만들고, 체온이 담긴 포용을 잃어버림으로써 계층을 만들고 계급을 만드는데 방조한 것은 아닌지, 누군가를 향해 하소연하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도 짚어볼 부분이다.

촛불을 들지 않은 나는 오늘의 우리 사회가 엉터리 물건을 승객들에게 떠맡기며 값을 치르라고 우기는 건달의 협박에 전전긍긍하는 승객들이 타고 있는 버스 같다는 생각을 한다. 버스 안이 무참하게 소란스러워 지거나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억지로 떠안고는 값을 치르는 일을 하지 않으려면 분명하고 당당하게 맞서서 거절해야 한다.

양(量)이 품질과 방향까지도 좌우하는 시대에서 우리 사회의 중심과 안정을 찾는 일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하려는 실천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의와 공감을 얻는 것은 그 일의 첫걸음이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필자소개>
조희문 자문위원은 한양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경인일보 기자를 거쳐 상명대 예술대학 학장으로 재직중이다. 그는 영화평론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희문 자문위원/상명대 예술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