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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다시보기?

이강기 2015. 10. 28. 10:33

[특집]김우중 다시보기?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뉴스메이커 605호

(2004년 12월에 퍼 온 기사임)

 

 

"김우중 회장의 성공신화를 보고 대우그룹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동경했습니다. 그분처럼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그분의 상황을 보면 허망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김우중이즘'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대우가 잘못한 부분은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마녀사냥식의 매도는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다시 평가해야 합니다. 저는 김 회장이 돌아온다면 그를 마중나갈 것입니다. 대우맨들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 속으로 김 회장을 지원할 겁니다."



 몇해 전까지 대우그룹 계열사에 근무했던 한 대기업 부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그의 이어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김우중 회장에 대한 연민과 추억이 가득했다. 대우종합기계-대우인터내셔널-대우건설-대우자판 등 지난날 대우그룹의 계열사들이 속속 정상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거의 '쓰레기' 같은 기업으로 치부됐던 것과 비교해 너무나 다른 양상이다. 과연 부실기업이었는지 의문이 갈 정도다. 덩달아 정-재-학계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사면'과 재평가설이 솔솔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대우맨'들만의 생각은 아닌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DJ 정부의 '김우중 죽이기'는 잘못됐으니 재평가를 하고, 그에 따른 사면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민 일각에서는 불황이 심해질수록 '세계 경영'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김 전 회장에게 향수를 느끼며 재등장을 바라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김우중이즘'은 틀리지 않았다? 대우그룹 계열사가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채권단의 빚 탕감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대우그룹 해체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김우중식 경영모델(김우중이즘)'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동기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김 전 회장이 대우자동차에서 추진했던 전략은 하이 리스크가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결과가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대우차가 동구에 진출하면서 GM에 대항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다 보니 투자를 많이 했고, 당장 수익이 나지 않다보니 자금난을 겪다가 곤경에 빠져들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물론 리스크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김 전 회장을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우의 한 전직 임원은 "수년 전에 김 전 회장이 신경을 썼던 인도-브라질-러시아 등 브릭스(BRICs)와 동유럽이 현재 크게 성장하고 있다"면서 "김 전회장의 선견지명과 탁월한 경영능력은 반드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IMF 외환위기 직후 정부의 기업구조조정 정책이 지나치게 '부채비율 감축'이란 잣대에만 매달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획일화된 기업구조조정이 '한국형 성장 엔진'의 목을 조였다는 것이다. 또다른 대우의 전직 임원은 "투자도 부채로 간주하며 획일적인 부채비율 잣대에 따라 기업을 쳐냈던 구조조정이 과연 정당했는지 묻고 싶다"며 억울한 감정을 내비쳤다. 재평가가 이뤄진다면 결론이 달라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깔고 있는 언급이다. 그는 "대우왕국의 재건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면서 "그룹해체 과정이 정당했는지 재조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김 전회장에게는 방만한 차입경영과 과다한 부채라는 그늘이 있었지만 세계 곳곳에 글로벌망을 구축하고, 브랜드 파워를 키운 공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만 바라봤다는 얘기다.



김우중을 사면하라! 김 전 회장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김 전 회장의 귀국-사면론이 정계와 학계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 ㄱ교수와 외국어대 ㅅ교수 등 김 전 회장과 친분이 있던 대학교수들은 최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귀국론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계동 의원(한나라당)은 지난 10월 2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경제인들을 대승적 차원에서 사면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재계에서도 귀국-사면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중견기업의 ㅇ상무는 "한국경제의 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잘해보려고 한 것이니만큼 사법처리는 피해야 할 것"이라며 "국가 경제의 중추였던 분인데 원로로 대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우라는 글로벌 기업을 이끈 점을 감안해 정치적 사면이 있어야 하며, 자유로운 몸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회장 시절 41조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금융기관에서 부당한 대출을 받은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다. 김 전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 산둥(山東)성 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검찰 수사를 피해 유럽 등지를 떠돌며 생활하고 있다. 5년 이상 해외에서 머물고 있는 셈이다. 김 전 회장은 해외생활 중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여러 차례 고생했으며 장 협착증 수술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부인 정희자씨와 함께 독일에 머물고 있다. 김 회장은 내심 귀국을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 귀국은 요원 사면은 제쳐놓고 김 전 회장의 귀국도 아직은 난망한 상태다. 대우의 한 전직 임원은 "5년 전 대우 해체를 주도했던 이헌재 경제부총리(당시 금감위원장), 강봉균 의원(한나라당-당시 재경부 장관) 등이 현직에 있는 한 귀국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김 전 회장의 거취를 두고 청와대와 정부의 여론을 탐색했으나 이 부총리 등이 부정적 의견을 전달하면서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대우그룹 해체가 정당했다는 일반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은 "(김 전 회장의 귀국-사면설에 대해) 전혀 들은 바 없다"면서 "관련부처(검찰)에서 처리할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를 복권시키기 위해 김 전회장의 모교인 연세대 출신 가운데 김우식 비서실장(전 연세대 총장)과 이광재 의원(연세대 법학과 졸업) 등 참여정부의 핵심인사들이 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설사 정치적 사면이 이뤄지더라도 채권단 손해배상 소송 등 실정법이 있어 귀국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전 회장 귀국설이 나돌자 대검 중수부에서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와 수사관들을 불러모으려 했다는 소문도 있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김 전회장은 입국과 동시에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방향전환이 없는 한 김 전 회장의 귀국과 사면은 요원한 상황이다.






김우중-이헌재 '악연'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대우그룹에 근무한 적이 있다. 불혹(40세) 전후인 1982년부터 1985년 사이다. 첫 직함은 (주)대우 상무. 1979년 율산사태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재무부를 그만둔 이 부총리는 미국 보스턴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후 평소 그를 총애하던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의 추천으로 경기고 선배인 김우중 전 회장을 만난 것이다.



 당시 국내 그룹들은 앞다퉈 반도체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 부총리는 1984년 대우반도체 대표이사 전무로서 이 신규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그를 상당히 아꼈다는 소문이다. 옛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시절 '차관급 과장'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기획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신규 사업인 반도체 사업을 그에게 맡겨 진두지휘하게 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없었다. 대우가 끝내 반도체 진출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결과다.



대우가 반도체 사업을 접자, 1985년 이 부총리는 대우와 결별하고 한국신용평가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 과정에 이 부총리가 김 전 회장에게 섭섭함을 느꼈다는 얘기가 항간에 돌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이 계속 그를 필요로 했다면 당시 이헌재 전무가 자리를 옮기는 것을 극구 만류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헌재 부총리가 김 전 회장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가 1997년 금감위원장으로 복귀하면서. 김 전 회장은 당시 전경련 부회장이었으며 대우가 해체되던 1999년에는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이 부총리는 물론 원칙에 따라 대우그룹을 해체했다. 하지만 처리방식에 이견을 갖고 있던 김 전 회장은 이 부총리에게 상당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는 [신화는 만들 수 있어도 역사는 바꿀 수 없다]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 정부의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백 전 이사는 김 전 회장의 핵심측근이자 대변인이기에 김 전 회장의 의중이 이 책에 크게 반영됐을 것은 불문가지. 1985년에는 이 부총리가 김 전 회장에게, 1999년에는 김 전 회장이 이 부총리에게 각각 섭섭함을 갖게 된 셈이다. 결국 두 사람은 좋은 인연으로 시작했지만 악연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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