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主기도문
정중헌· 논설위원 jhchung@chosun.com
조서일보
입력 : 2004.12.07 17:58 33' / 수정 : 2004.12.07 19:01 03'
1521년 마틴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신들린 듯이 작업에 몰두해 11일 만에 신약성서를 번역했다. 루터는 궁중이나 성(城) 안에서 쓰는 언어가 아니라 백성들의 일반어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의 번역은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미적(美的)이나 표현력에서 현대 독일어에 다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미권 개신교에서는 1611년 출판된 킹 제임스 버전(KJV) 성경이 자리를 잡았다. 번역의 정확성과 어휘의 문학적 가치가 높아 영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KJV는 사라졌던 많은 어휘들을 부활시켜 영어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1978년에 펴낸 뉴인터내셔널 버전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1977년 신·구교가 성서를 공동번역해 고어풍의 어휘와 서양식 표현법을 쉬운 우리말로 바꿨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가톨릭과 기독교가 각각 다른 번역본을 사용해왔다. 조선 후기 중국을 통해 전래된 천주교 기도문은 어려운 한자어가 많고 경어체였다. 한국 가톨릭은 1996년 그동안 써오던 미사통상문을 대폭 개정하면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도 현대어법에 맞게 손질했다. 이때 ‘천주’를 ‘하느님’으로, ‘성신’을 ‘성령’으로 바꿨다. 가톨릭은 97년 ‘우리’를 ‘저희’로 바꾼 ‘주님의 기도’를 현재 쓰고 있다.
▶개신교도 대한제국 시절의 문체가 살아있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100여년 만에 현대어로 바꿀 계획이다. 시안을 보면 ‘임(臨)하옵시고’ ‘죄를 사(赦)하여’ 등의 고어투 존칭어법을 ‘하시고’ ‘용서하여’ 등의 요즘 말로 바꾸었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고백자 ‘나’를 주어로 삼은 게 특징이다.
▶주기도문은 예수가 기도의 모범으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준 내용이다. 마태복음서를 기초로 한 주기도문은 일곱가지 간절한 기원을 담고 있다. 앞 부분에 하느님에 대한 세개의 간구(懇求)가 담겼고, 이어 일용할 양식주시고 죄를 용서해 달라는 등 ‘우리(저희)’에 대해 네가지 하느님의 처사를 구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기독교의 현대화 토착화라는 면에서는 바람직하나 기성세대에게는 왠지 어색해 보인다. 새 기도문은 ‘현대문어체의 정중한 표현’을 기준삼았다고 하나 바꾼 문장도 요즘 말로 보기에는 묵은 감이 없지 않다. 그만큼 우리말이 오염돼 버렸고 상스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어법도 어휘도 많이 바뀌었으니 기도문도 바뀌어야 겠지만 우리의 소중한 옛것 하나를 또 잃는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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