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 外交

정치의 문명적 갈등과 기원(1) - 총론

이강기 2015. 11. 1. 13:13

정치의 문명적 갈등과 起源


김기정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제정치international relations는 말 그대로 국가간 관계를 일컫는 용어다. 1648년 웨스트팔리아Westphalia조약 이후 근대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행위 주체는 국가nation-state였다. 따라서 국가의 이익 추구가 국가의 가장 근본적 행위동기가 되며, 그 중의 하나가 국가의 생존을 위한 힘의 획득이라고 간주해 왔다. 근대 국제체제에 있어 국가 외의 행위주체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단위였고, 그나마 국제기구 및 非정부행위자(NGOs) 등에 대한 관심도 최근의 일이다. 국가의 기능 약화와 이에 따른 근대국제체제의 거대한 변화를 탈근대 담론의 관점에서 감지하는 일도 극히 최근의 현상이다. 요컨대, 개체로서의 국가보다 포괄적이며 상위의 개념을 담고 있는 문명의 개념이 국제정치에 관련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적어도 용어사용의 언어적 배경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간 정치와 문명



그러나 문명은 근대 국제정치의 역사적 행로에 하나의 분명한 동력으로 작동해왔다. 국가라는 개별 행위자들을 하나의 유사집단으로 묶어내는 이념적 기제로서 기능을 가진 것이 문명론이었다. 국제정치의 현장에서 문명은 갈등과 반목, 대립과 지배의 생생한 흔적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 특히 19세기 서구의 제국주의 팽창이 비서구지역으로 확대되는 기간동안 문명론적 국제정치현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서구의 비서구에 대한 지배와 강압의 원천으로서 서구문명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곧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비서구지역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집단적 억압의 도구였고, 그 패거리 집단주의의 핵심에 서구문명론이 있었다. 제국주의와 문명론이 결합한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이념적 후원자로서 문명론은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의 교묘한 결탁에 근거하고 있었다. 사회진화론은 인간과 사회적 집단도 자연계의 개체와 마찬가지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 그리고 에고이즘을 기본원리로 하며,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집단만이 생존할 권리를 향유한다는 이론체계였다. 자본주의 교환망의 세계적 확대를 추동했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비서구지역으로 상품 교환의 연계고리와 시장으로서의 영토를 확대해 나갈 때 그 행위의 이념적 토대는 사회진화론이었다. 침탈은 진보된 문명이 야만의 문명에 대해 행하는 ??敎化교화의 행위??로 인식되었고, 군사력의 강화 및 그것을 통한 식민지의 획득은 곧 ??진보의 표상??이었다. 전쟁은 생존경쟁의 자연적 법칙으로 인정되었으며, 적자생존의 방편이었다.


19세기 국제관계에 작동한 서구 문명론은 사회진화론적 이론 위에 인종주의적 차별성이 덧씌워진 것이었다. 사회진화론은 그 이론적 논거상 사회 내부의 다양한 계층 및 집단간 우열과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내적 분열 가능성은 제국주의적 정책 수행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통합성을 沮害저해 할 수 있는 장애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사회진화론은 인종주의와 결합함으로써 인종이 생존경쟁의 기본 단위로 간주되는 이론체계를 구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정한 인종은 비록 그들이 작동하고 있는 국가는 다를지라도 하나의 단일체로서 발전과 진보를 주도해 나간다는 주장이었다. 서구의 백인종은 適者the fit로서 역사적 진보를 추진하는 담당자라는 의무감도 가지게 되었다.


그 의무감에 포함되는 것은 문명적으로 후진적인, 혹은 야만적인 인종, 문명적 진보의 非適者the unfit들을 지배함으로써 계도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이 시대 키플링Rudyard Kipling의 ??백인의 의무White Man??s Burden??라는 시에 명백하게 표현되는 사상은 바로 그러한 문명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백인의 의무를 받아들여라 / 평화를 위한 야만과의 전쟁을 / 기아의 입을 가득 채우고 / 병마가 사라지게 하라…?? 미국의 필리핀 점유와 원주민 토벌전쟁을 백인의 인종적 의무, 문명의 야만에 대한 의무라는 관점에서 외치고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을 세계강국의 위치로 올려놓았던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은 20세기가 영어사용권의 인종the English-speaking race이 지배하는 세기가 될 것으로 예견하였으며, 그 과정은 타인종에 대한 지배를 통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신념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 루스벨트나 키플링은 당시 엘리트들의 문명사관과 국제정치관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요컨대 사회진화론적 인종주의는 소수인종, 혹은 비서구지역의 인종과 국가에 대한 탄압과 억압을 합리화시키는 이론체계였다. 그것이 근대 서구문명의 본질이자 제국주의 정책의 관념적 토대였던 것이다.


사회진화론적 인종주의의 왜곡된 인식체계는 결국 20세기 살육의 현장에 드리워졌다. 히틀러의 사상은 그러한 서구 문명론의 피할 수 없는 결과였고, 자기파괴적 업보였다.??전쟁과 정복은 적자생존을 위한 사물의 자연적 질서??이며, ??세계역사의 주요한 사건들은 인종들의 자기보존을 위한 본능의 표현??이라는 그의 주장에 서구 문명론의 일각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은 타방과의 공존이나 공영보다는 지배와 파괴, 소수의 희생이라는 등식으로 이어졌다.


국제관계에 있어 문명론은 제국주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공존보다는 대립, 대등한 관계의 조화보다는 우열의 관계에 기반하고 있었다. 서구 문명의 타 문명권에 대한 지배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지배문명의 가치는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피지배 문명권의 정체성 추구는 선에 대한 폭력적 저항으로 매도되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서구문명의 이슬람문명에 대한 인식이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이슬람 문명권이 주목받은 것은 그것이 반서구문명의 상징이었고, 그 테제 실행을 위한 내적 결속의 표현 때문이었다. 후자의 경우, 석유수출기구OPEC의 출현과 막강한 국제정치적 영향력의 과시로 잘 드러났다. 이슬람 문명권의 블록형성에 대한 서구의 거부감은 중동지역에 있어 친이스라엘 성향의 서구의 외교정책과 맞물리면서 증폭되었다. 黃禍論황화론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서구의 동양문명에 대한 경계와 적개심의 표현이었다. 이념의 대립이 국제정치를 지배했던 냉전기가 끝나고 탈냉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면서 타 문명에 대한 서구의 두려움은 다시 학문적 담론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탈냉전기 문명론과 국제정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간 반세기에 걸친 이념 대결이 끝나감에 따라 미래상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추정되었다. 후쿠아먀Francis Fukuyama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와 더불어 역사가 마침내 진보의 과정을 종결했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념적 대립이 끝난 그 잔재 위에 새로운 형태의 대립과 충돌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 대표적 학자가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었고, 그의 이론적 논거의 중심에 문명론의 부활이 자리잡고 있었다.


1993년 《Foreign Affairs》지에 실린 헌팅턴의 논문, 〈문명의 충돌〉은 전세계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냉전적 대결구도가 종결된 세계에서, 그 이념적 대립을 대체할 새로운 대립구도는 문명들간의 대립에서 올 것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따라서 탈냉전 이후 ??문명의 충돌??이 세계 평화의 가장 위협적인 요소이며, 문명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제 질서의 창출만이 세계 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20세기 말은 헌팅턴의 문명충돌론과 관련된 논쟁으로 더욱 뜨거워졌다. 국제정치학계에서는 ??국제정치학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나가는 시대적 통찰??이라는 평가가 있었는가 하면, ??19세기 인종주의에 근거한 사회진화론의 재현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판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가 뒤를 이었다.


헌팅턴은 국제시스템에서 과거와는 달리 문명이 하나의 행위자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세계를 7개의 문명권으로 구분하였다. 즉 서구문명권, 유교(중국)문명권, 일본문명권, 이슬람문명권, 힌두(인도)문명권, 슬라브정교문명권, 남미 및 아프리카문명권이었다. 헌팅턴의 역사의식과 문명사관은 사회진화론적 명제를 재생하고 있다. 역사는 다양한 투쟁의 역사였고, 문명간 충돌은 그러한 투쟁의 역사에 존재해 온 하나의 형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의 역사란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공산주의, 파시즘, 자유 민주주의의 투쟁 등 서양 문명들 내부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과 함께, 갈등은 더 이상 서양내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전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서구가 서양문명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역사의 새로운 동력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탈냉전기에 접어들면서 갈등의 양상이 국가간 이데올로기, 경제적 요소에서 문화적 요소로 서서히 바꿔지고 있다는 것이 헌팅턴의 시대적 통찰이었다. 국가가 국제정치의 중심 행위자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점차 문명집단들간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정체성identity의 개념을 국제정치의 영역에 도입한 것이었다. 집단적 정체성은 각 국가가 속해있는 문화적 맥락에서 유래하며, 그 문화적 총체가 바로 문명을 구성한다는 논리였다. 문화적 正體性, 그리고 개별 국가의 문화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내는 문명적 정체성이 국제관계를 추동시키는 핵심요인이라는 것이 헌팅턴의 논지였다. 여기에 기존 국제정치이론의 주요 개념인 ??同盟동맹??을 결부시켜 문명권 내부의 정치적 동맹, 그리고 문명간 동맹으로 논지를 이끌어 나갔다.


중요한 점은 문명적 정체성의 확립은 곧 문명간 경쟁관계를 낳고, 그것은 갈등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헌팅턴은 제국주의 팽창기 및 식민지 지배기를 통해 보편성universality의 단계로 끌어올리려 했던 서구문명의 가치들(개인주의, 자유주의, 입헌주의, 인권, 법치주의,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등)이 타 문명권에서는 배타시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였다. 오히려 이러한 근대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비서구문명들은 집단적 결속의식을 강하게 갖기 시작했다는 점을 헌팅턴은 강조하고 있다. 이들 비서구문명권은 핵심국가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동맹관계가 강화되어 서구문명에 대한 도전채비를 갖추어가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탈냉전기의 세계가 결코 낙관적 장밋빛의 미래가 아니라, 또한 미국중심의 單極체제의 모형이 아니라 각 문명권의 핵심국가를 중심으로 한 다극체제적 형태로 그리고 경쟁과 긴장, 충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서구문명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도전세력으로 이슬람문명권과 중국문명권을 꼽았다. 문명간 세력전이와 쇠락하는 서구문명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탈냉전 이후 미국중심의 단극체제가 가져올지 모르는 서구사회의 무기력, 그리고 후쿠야마류의 역사인식이 조장할 수 있는 목적의식의 상실 등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그의 다원주의적 문명관은 서구문명의 독점적 위상에 대한 반성과 자기성찰이기도 하였다.


반헌팅턴 테제:문명의 공존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격렬한 비판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에 대한 비판적 논점 또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나타났다. 헌팅턴 문명사관의 한계와 논리적 추론에 대한 비판, 서구 우월주의에 대한 이성적 비판, 그리고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이 그것이다.


먼저, 그의 배타적 문명사관에 대한 知的 도전의 선두에 섰던 하랄트 뮐러Harald Mu?ler는 헌팅턴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헌팅턴이 설정한 인간집단의 구획과 경계설정, 그리고 그 구획들간의 갈등과 충돌이라는 가설은 잘못된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구획과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상호배타성이 인류의 미래에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뮐러는 헌팅턴이 조망하는 것처럼 문명간 충돌이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았다. 오히려 국제분쟁과 갈등 가능성은 인종적 요소 때문에 높아지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한다. 실제로 인종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그리고 인종갈등과 정치경제적 조작은 탈냉전기 국제관계의 현저한 특징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뮐러는 21세기 국제정치의 미래에 대해 단연 낙관적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문명간 협력의 推動力추동력을 강화하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 국가간 세계, 경제 세계, 그리고 사회 세계라는 세 영역에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간 세계에서는 군사적 영역을 포함하여 세계적 차원의 신뢰구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제기구의 기능 강화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러시아를 NATO에 통합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아프리카를 위한 경제지원의 필요성, 아시아 域內역내 협력 지원, 이슬람과의 화해 등을 강조한다. 경제세계 및 사회세계 영역에서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교류의 필요성과 그것을 위한 틀의 구축, NGO의 정치적 역할 증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세 영역에서의 노력을 통해 뮐러는 문명의 충돌이 아닌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뮐러의 반헌팅턴 테제는 이중적이다. 문명의 충돌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하여 전개하는 뮐러의 논지는 헌팅턴의 반대편에 서 있다. 그러나 뮐러 역시 헌팅턴과 마찬가지로 서구중심의 인식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뮐러는 서구문명이 정치사회 영역에서 연대감을 상실하고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문명이야말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문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개방과 협력의 질서창출에의 일차적인 책임이 서구 문명에 있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따라서 뮐러의 논지는 문명의 공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서구문명의 역사적 성과들을 지켜내는 작업이며, 서구문명이 가진 장점의 하나인 개방성과 대화의 확산이 바로 미래지향적 해법이라고 결론짓는다.


19세기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던 문명권에서는 헌팅턴의 문명사관이 19세기 인종주의적 사회진화론의 현대적 재판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가진다. 현대 국제정치의 현 좌표와 미래상을 서구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재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헌팅턴의 문명 충돌이라는 테제에 비판하는 학자들에 있어서도 헌팅턴과 마찬가지로 서구 중심주의의 관념을 감추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뮐러의 〈문명의 공존〉 역시 헌팅턴과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자유, 민주주의, 개인주의, 법 앞의 평등, 헌법주의 그리고 재산권의 보장 등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가 마치 서구 문명의 전유물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에서 인식적 한계가 생겨난다. 이러한 문명사관 앞에서 비서구 지역의 문화와 문명에 대한 이해는 당연히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서구가 중심이 되는 문명의 공존이란 서구문명에 의한 非서구문명의 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상호이해에 바탕한 공존이 아니라 대립을 전제로 한 갈등내재형 공존이다. 갈등이 효과적으로 제어되지 못할 때 문명의 충돌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 그 문제가 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의 또다른 표현이다.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갈등과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현실주의 전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만 그 갈등이 문화적 요인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현실주의cultural realism라고 부를 수 있다. 헌팅턴의 시각이 탈냉전 이후 공산권의 붕괴로 인한 양극적 갈등구조의 해체 속에서 새로운 갈등질서를 조성하기 위한, 그리고 새로운 적을 찾아내기 위한 음모론적 탐구라는 비판도 문명충돌론이 내포하고 있는 원색적 현실주의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다. 아울러 국제질서의 구성요소의 하나로 관념ideation을 들 수 있고, 관념이 행위와 구조를 선도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갈등조장의 현실주의적 색조의 강조가 과연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가의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더욱이 탈냉전 이후 현재에 이르는 국제질서의 양상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상호의존과 협력의 증대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자유주의의 만개, 윌슨주의의 부활 등으로 묘사되는 현시대는 현실주의의 퇴조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국제관계에서 상호의존성의 증대가 갈등과 충돌보다는 공존과 공영의 길임을 강조한다. 국제적 갈등은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관리하고 감소시켜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자유주의적 논조가 확대되고 있다. 인류 5500년 문명사에 있어 전쟁이 끝없이 계승되어 왔던 이유도 갈등과 충돌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믿는 관념과 인식의 무비판적 계승과 확대재생산 機制 때문이 아니었는지, 그것이 현실주의의 오류가 아니었는지 자유주의자들은 되묻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대화와 평화공존의 문명을 위하여



바야흐로 지구는 공동운명체가 되어 가고 있다. 세계화 또는 지구화 추세라는 현상이 이 같은 시대상을 상징한다. 지금 시점에서 강구해야 하는 것은 문명의 충돌이나 문명간 단순한 공존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편이다. 즉, ??문명의 조화??라든가 ??문명의 변증법적 통일??과 같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향의 모색이다. 그리고 그 통일의 방향은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새로운 문명이어야 한다. 지구상 존재하는 다양한 문명의 진정한 공존, 문명의 대화를 위해서는 세계 단일 공동체라는 인식 속에서 적극적인 조화나 협력을 모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미 환경을 비롯한 몇몇 이슈들은 지구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을 수 없는 중대성을 가지고 있다.


탈냉전기 문명의 충돌이라는 테제는 이제 문명의 공존과 대화라는 테제로 전환되어져야 한다. 탈냉전기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는 문명의 공존과 대화를 위한 해법강구와 그러한 노력을 통한 지구 문명의 진보일 것이다. 문명간 접촉이 일어나는 제1의 영역이 국제관계다. 그렇다면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이 시대가 주는 과제는 무엇인가?


관념, 행위, 제도의 세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첫째, 국제질서를 구성하는 관념적 요소는 국가의 행위와 제도창출을 선도한다. 관념이 행위와 질서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관념 자체가 갈등 중심적일 때, 국가이건 문명이건 간에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국제적 갈등을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간주하는 현실주의적 담론이 분쟁?충돌을 증폭시켜 왔다면 이제는 그 대안적 담론을 고려해 봄직하다. 관념적 영역에서 문명의 대화라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대시킬 수 있는 조건은 자유주의적 담론이 국제관계의 주류적 담론으로 등장할 때다. 특히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심화가 국가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을 증대시킨다는 인식이 지배적일 때 협력지향의 관념적 조건이 갖추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명충돌의 하위영역으로서 민족주의 문제도 건설적 해법이 필요하다. 민족주의가 상호 배타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 공동체 의식, 더 나아가 보편적 지구문제에 관한 의식을 공유하는 열린 민족주의의 성격을 가질 때 인종적 민족주의 분규가 종식되고, 그 바탕 위에서 문명간 대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열린 민족주의란 민족간의 정체성identity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현실주의적 관념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세계화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문명이 나름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적 토대가 확산될 때, 타문명에 대한 구원주의적 허상을 버릴 때 공존과 공영을 향한 문명간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자유주의적 담론의 시대적, 공간적 확보를 위해서는 교육적 장치와 노력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문화간 이해증대를 위한 교육, 그것을 통한 세계평화에 관한 논의가 대학 교육 현장에 착근되어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문명간 대화와 평화공존의 지구문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국제관계의 기본 단위는 여전히 개별 국가라는 점에서 국가들의 행위양태 역시 중요하다. 개별국가들의 행위기준이 되는 원칙과 그것에 기반한 행위패턴이 협상과 대화 지향적 특징을 보이느냐, 혹은 갈등과 대립 지향적 특성을 내포하느냐에 따라 국제질서의 양태가 달리 결정될 것이다. 갈등적 질서를 증폭시킬 수 있는 행위에는 타국에 대한 속임수cheating, 군비경쟁 등이 포함되며 군사적 수단을 병행하는 강압적 행위도 여기에 속한다. 갈등질서가 지난 수세기 근대화 과정을 주도했던 서구 문명의 폭력적 흔적이었다면 이제는 그 한계를 극복해야 할 때다.


국가간 커뮤니케이션과 외교적 교섭의 행위패턴을 중시하는 태도는 협력적 질서의 구축 가능성을 높인다. 중요한 것은 국가간 커뮤니케이션과 외교 교섭을 위한 협력적 채널이 지속적으로 확보되고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협력적 외교채널이란 폭력이 아닌 대화의 습관이 자리잡을 때에 가능해진다. 즉 국가간 행위에 있어서 갈등 지향적 폭력이 아닌 협력지향적 대화가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NGO 활동의 활성화는 탈냉전 이후 국가의 개념이 약해지고, 초국가성을 특징으로 하는 문제들이 증가함에 따라 일개 국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의 해결을 위해 중요하다. 국가차원을 초월한 NGO간의 협력은 문명충돌을 예방하고 공존의 협력방식을 강구하는 노력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영역에서 문명간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문명간 이해관계의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국제 기구 및 제반 제도적 장치를 논할 수 있다. 예컨대 대항적 군사동맹간의 대립관계는 갈등 질서의 표상이 될 수 있다. 물론 동맹들간 대립관계는 힘의 균형상태를 통해 지역적 안정성을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안정성 자체가 협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다자간 협의체를 비롯한 제도적 장치는 협력지향의 행위들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탈냉전기 국제정치에서 문명간 대화를 위한 국제레짐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국제기구는 문명간 대화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조율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어야 한다. 국제기구는 충돌과 갈등에 기초한 문명론이 아니라 조화와 공존의 문명론을 위해 필요한 장치다.


충돌하는 문명이 아니라 각 문명간에 공유되고 있는 가치, 제도, 그리고 관행을 서로 학습하고 그 영역을 넓혀갈 때, 보편적 문명의 지평이 열리면서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사실 이것은 헌팅턴 자신의 해법이기도 하다. 일부 비평가들에 의하면 이는 자유주의자들까지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헌팅턴의 의도라 비판하고 있지만,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시대적 문제제기로서의 중요성은 충분하다고 보인다. 문명간 보편성의 창출을 통한 대화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제관계에 있어 문명 자체가 갈등을 지향하는 하나의 행위단위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를 비롯한 국제적 단위를 협력으로 이끌 수 있는 보편적 지구문명의 모색과 창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세계화의 시대적 명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는 바로 타 문명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통한 공유된 가치의 창출이다.


새 천년과 21세기의 지적 성찰이 문명의 충돌, 공존, 대화와 관련된 담론으로 시작되는 것은 인류문명사의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미래로의 진보는 과거에 대한 성찰과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지난 문명의 역사가 폭력과 갈등의 傷痕상흔으로 얼룩진 것이었다면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어야 할 때임을 새로운 문명담론이 제기하고 있다. (에머지 2000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