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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北 출신 '학병 세대'가 대한민국의 知的 설계자였다

이강기 2017. 4. 5. 08:08

西北 출신 '학병 세대'가 대한민국의 知的 설계자였다

조선일보

입력 : 2017.04.05 03:03

[대전대 김건우 교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펴내]

장준하·김준엽·선우휘·김수환 등 '친일하지 않은 우익' 재발견
조국 근대화 밑그림 그리며 정치·언론·종교·교육 기초 놓아

대전대 국문과 김건우(49) 교수가 대한민국 우익의 뿌리를 찾는 지적 탐험을 책으로 펴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학병 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느티나무책방 刊)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키워드가 '친일(親日)하지 않은 우익'이라는 것. 일부 예외도 있지만, '학병 세대'와 '서북 지식인'을 시간적·공간적 축으로 한 '친일하지 않은 우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짜고 밑그림을 그렸다는 보고서다.

구체적으로는 누구일까. 김 교수는 학자·언론인 계열의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또 종교인 김수환 지학순, 문인 조지훈 김수영 등을 호명한다.

김 교수가 '학병 세대'를 주목한 이유가 있다. 친일에서 자유로운, 일제 말 조선 최고 인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학생들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던 학병제(반도인 학도 특별 지원병제) 공포는 1943년 10월. 만 20세 이상이 징병 조건이었기 때문에, 학병은 대략 1917~1923년생으로 본다. 1944년 당시 고등교육을 받는 조선인 학생이 약 7200명에 불과했으니, '학병'은 당대 최고 인재들이었던 셈이다.

또 한 축은 '서북 지식인'이었다. 분단과 함께 남으로 내려온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들의 의식 밑바닥에는 태생적으로 '반공'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 북한에서 기독교에 대한 공산주의의 탄압을 직접 겪으며 6·25 이전에 '전쟁'을 겪은 탓이다.

장준하(1918~1975)를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다 의문사한 민주 투사로 먼저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겠지만, 그는 원래 평북 의주 출신의 기독교도 반공 투사였다. '사상계'의 전신인 '사상(思想)'을 장준하와 함께 창간했던 같은 이북 출신 후배 서영훈(1923~2017) 전 적십자사 총재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민족청년단 시절, 장준하는 훈련생들의 논문 필적을 조사해 누구누구가 공산당 같다고 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과 극우익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부름받아 걸어온 길, 뜻을 따라 가야 할 길'·백산서당·2005)

'학병'과 '이북 출신'들을 함께 묶은 중심이 바로 월간 '사상계'였다. 마침 김 교수의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사상계'였다. 1953년 창간한 이 잡지는 단순히 지식인들의 잡지였을 뿐만 아니라, 1960년대 대한민국의 싱크탱크였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의 논문 '1960년대 지성계의 동향'등을 인용, 5·16 쿠데타 직후에는 박정희 의장 등 군정 세력이 '사상계'를 펴놓고 국정 자문 회의와 기획 회의에 필요한 위원들을 충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단순히 전문가 지식인에 그치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함께 그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상계'의 5대 편집 원칙은 '민족의 통일, 민주 사상,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 창조, 민족적 자존심'. 분단 극복과 식민 잔재 청산을 의미하는 '민족의 통일'과 '민족적 자존심'을 제외하면, 나머지 셋이 각각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조국 근대화를 추구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동시에 이들의 온정주의·지역주의도 비판하고 있다. '사상계'의 초대 주간 김성한을 비롯, 2대 안병욱, 3대 주간 김준엽, 4대 주간 양호민, 5대 주간 지명관 등 다섯 명이 모두 이북 출신이었고, 초대 김성한을 제외하면 모두 평안도 출신이었다는 것. 조선일보 선우휘 전 주필 역시 평북 정주 출신이었다.

"1965년 한·일 협정에 반대하다 '정치 교수'로 낙인찍혀 양호민이 서울대 교수직에서 해직되었을 때, '조선일보'에 데려오도록 애쓴 것도 선우휘였다. 또한 그는 민주화 운동 진영의 함석헌·지명관 등을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다. 일본 '세카이'에 글을 싣던 'TK생'을 중앙정보부가 추적할 때, 이를 따돌린 인물도 선우휘였다."(103쪽)

이 책은 '민주화'와 '산업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제기하고 있다. 지금 보면 마치 대립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이 인물들의 궤적을 좇다 보면 두 세력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라는 주장이다. 동시에 해방 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우익'이라는 개념을 독점하려 했던 친일 세력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우익 개념'을 독점하려 하면서 우익 민족주의의 폭을 너무 좁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학병 세대'는 정치 언론 교육 종교 학술 사상 등 각계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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