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15 03:07
평화협정만으론 전쟁 못 피해
北은 核 쥐고 南 겁박하는데 현실 무시한 평화 담론은 김정은 자비심에 기대는 것
核에는 核으로만 상대 가능… 우리도 核 가져야 진짜 평화
문재인 대통령이 사상 최초로 한반도 평화협정 추진을 선포했다. 7월 6일 '신(新)베를린 선언'에서다. 이는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의 '베를린 선언'을 발전시킨 것이지만 한국 대통령의 평화협정 제안은 초유의 일이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후폭풍에 묻혔지만 문 대통령이 운을 뗀 평화협정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북핵 위기가 협상 국면으로 바뀔 때 평화협정 논의가 국내외에서 만개(滿開)할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R Gates)의 제안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미국 역대 정부를 통틀어 최장수 안보 관련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인데, 북핵 위기를 풀려면 평화협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북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가로 북한 정권을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10~20기(基)의 북핵 보유를 허용하고 북의 미사일 능력을 단거리로 제한하는 조건의 평화협정 체결이 게이츠의 해법이다.
게이츠의 제안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임기 안에 미·북 협상이 본격화할 조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북한 핵 능력 확대가 주요 배경이다. 북한 ICBM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갖게 될 시점이야말로 북핵 위기의 임계점이기 때문이다. 대응 행동을 강요받게 된 미국 입장에서는 전쟁이라는 선택지를 빼면 평화협정만 남는다. 핵 능력 완성 후 미국과 담판 짓겠다는 북한과 접점이 가능해 보인다. 중국이 제시한 쌍중단(북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 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병행)의 동력도 커졌다.
평화협정은 조만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의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평화협정으로 한반도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는 허구적 신화다.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한 정전 체제가 한반도의 '사실적·법적 평화'를 70년 가까이 가능케 했다는 현실을 무시한 어떤 평화 담론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대체하려는 성급한 이상주의적 열망이 또 다른 전쟁의 초대장이 될 수 있다는 끔찍한 역설을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세상은 '평화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평화를 더 사랑해서' 생긴 '정의로운 전쟁'이 부른 참극으로 넘쳐난다.
2000년 6월 15일 DJ의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발언이 상징적이다. 첫 남북 정상회담 직후 감격에 찬 귀국 일성(一聲)이었다. 과연 DJ는 한반도 평화를 이룬 공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탔다. 하지만 '북한은 핵을 가질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DJ의 공언은 허공에 흩어진 지 오래다. 햇볕정책은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없애지 못했고 보수 정부의 압박도 평화를 증진시키지 못했다. 남북 관계 3대 문건인 남북 기본합의서(1991년), 6·15 공동선언(2000년), 10·4 공동성명(2007년)은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협정의 주요 내용을 이미 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군축과 불가침, 상호 비방과 적대 행위 금지, 상호 교류와 공존공영 등이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문서일지언정 실천되지 않으면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평화협정의 앞길엔 난제가 쌓여 있다. 한국이 종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므로 평화협정 당사자도 아니라는 북한 주장이 첫 걸림돌이다. 평화 개념에 대한 해석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도 장애물이다. 북한 입장에서 평화협정은 곧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를 뜻한다. 그런 주장을 한국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북한 비핵화야말로 최대 난제겠지만 게이츠의 제안에서 보듯 종국적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과 체제 보장의 교환으로 낙착될 가능성이 크다. 핵·미사일을 손에 쥔 김정은의 상시적 겁박(劫迫) 아래 호구로 전락한 대한민국이 전전긍긍하게 될 구도다.
불가침조약이 호전적 군사 강국의 침략을 막은 경우는 전무하다. 평화협정만으로 전쟁을 피한 사례도 찾아볼 수 없다. 강력한 군 사력이 있어야 평화가 확보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핵에는 오직 핵으로만 상대할 수 있다는 게 현대 군사학의 상식인 터에 핵을 가진 김정은의 자비심에 기댄 평화는 가짜 평화다. 한반도 비핵화에 기초한 평화가 최선이지만 북한의 핵무장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출구는 단 하나뿐이다. 이제 진정한 한반도 평화 체제는 남북의 동시 핵무장 위에서만 가능해졌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R Gates)의 제안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미국 역대 정부를 통틀어 최장수 안보 관련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인데, 북핵 위기를 풀려면 평화협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북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가로 북한 정권을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10~20기(基)의 북핵 보유를 허용하고 북의 미사일 능력을 단거리로 제한하는 조건의 평화협정 체결이 게이츠의 해법이다.
게이츠의 제안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임기 안에 미·북 협상이 본격화할 조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북한 핵 능력 확대가 주요 배경이다. 북한 ICBM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갖게 될 시점이야말로 북핵 위기의 임계점이기 때문이다. 대응 행동을 강요받게 된 미국 입장에서는 전쟁이라는 선택지를 빼면 평화협정만 남는다. 핵 능력 완성 후 미국과 담판 짓겠다는 북한과 접점이 가능해 보인다. 중국이 제시한 쌍중단(북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 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병행)의 동력도 커졌다.
평화협정은 조만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의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평화협정으로 한반도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는 허구적 신화다.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한 정전 체제가 한반도의 '사실적·법적 평화'를 70년 가까이 가능케 했다는 현실을 무시한 어떤 평화 담론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대체하려는 성급한 이상주의적 열망이 또 다른 전쟁의 초대장이 될 수 있다는 끔찍한 역설을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세상은 '평화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평화를 더 사랑해서' 생긴 '정의로운 전쟁'이 부른 참극으로 넘쳐난다.
2000년 6월 15일 DJ의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발언이 상징적이다. 첫 남북 정상회담 직후 감격에 찬 귀국 일성(一聲)이었다. 과연 DJ는 한반도 평화를 이룬 공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탔다. 하지만 '북한은 핵을 가질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DJ의 공언은 허공에 흩어진 지 오래다. 햇볕정책은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없애지 못했고 보수 정부의 압박도 평화를 증진시키지 못했다. 남북 관계 3대 문건인 남북 기본합의서(1991년), 6·15 공동선언(2000년), 10·4 공동성명(2007년)은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협정의 주요 내용을 이미 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군축과 불가침, 상호 비방과 적대 행위 금지, 상호 교류와 공존공영 등이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문서일지언정 실천되지 않으면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평화협정의 앞길엔 난제가 쌓여 있다. 한국이 종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므로 평화협정 당사자도 아니라는 북한 주장이 첫 걸림돌이다. 평화 개념에 대한 해석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도 장애물이다. 북한 입장에서 평화협정은 곧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를 뜻한다. 그런 주장을 한국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북한 비핵화야말로 최대 난제겠지만 게이츠의 제안에서 보듯 종국적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과 체제 보장의 교환으로 낙착될 가능성이 크다. 핵·미사일을 손에 쥔 김정은의 상시적 겁박(劫迫) 아래 호구로 전락한 대한민국이 전전긍긍하게 될 구도다.
불가침조약이 호전적 군사 강국의 침략을 막은 경우는 전무하다. 평화협정만으로 전쟁을 피한 사례도 찾아볼 수 없다. 강력한 군 사력이 있어야 평화가 확보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핵에는 오직 핵으로만 상대할 수 있다는 게 현대 군사학의 상식인 터에 핵을 가진 김정은의 자비심에 기댄 평화는 가짜 평화다. 한반도 비핵화에 기초한 평화가 최선이지만 북한의 핵무장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출구는 단 하나뿐이다. 이제 진정한 한반도 평화 체제는 남북의 동시 핵무장 위에서만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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