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의 수난과 비운
- 기자
- 정진우 기자
국정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일탈일까, 정권 교체 후 치러지는 ‘정치 보복’일까.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과 비운
퇴임 후 검찰 수사 대상 전락
시해, 탄핵, 가족들 구속 겪어
‘적폐청산’ 수사로 수난사 계속
이명박·박근혜 모두 피의자로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험난한 역경을 거쳐 당선됐지만 그 끝에는 항상 수난과 치욕이 찾아왔다. 재임 중 비리에 연루되며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가 하면, 퇴임 후 대통령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척들까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경우도 있다. 당장 17·18대 대통령을 지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만 해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거나, 범죄 혐의 피의자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MB 향해 포위망 좁히는 검찰 수사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각종 범죄 혐의를 받으며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은 ▲군 사이버령부의 댓글공작 ▲다스 실소유주 의혹 ▲차명재산을 통한 횡령·탈세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삼성의 다스 변호사 비용 대납 의혹 등을 수사하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높여가는 중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가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를 상납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적시했다. 검찰이 지난 5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재판에 넘기며 작성한 공소장에는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이 모두 13번이나 등장한다. 국정원에서 특활비 4억원을 상납받은 사건과 관련 이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국고손실 혐의의 핵심 피의자라는 의미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가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를 상납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적시했다. 검찰이 지난 5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재판에 넘기며 작성한 공소장에는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이 모두 13번이나 등장한다. 국정원에서 특활비 4억원을 상납받은 사건과 관련 이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국고손실 혐의의 핵심 피의자라는 의미다.
평창 올림픽 이후 소환조사 이뤄질 듯
특히 이 전 대통령이 수수한 국정원 특활비 규모는 향후 검찰 수사를 통해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받은 10만달러(약 1억원)와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수수한 5000만원, 박재완 전 정무수석과 장다사로 전 정무비서관이 국정원에서 수억원의 특활비 역시 ‘최종 윗선’이 이 전 대통령이라는 정황 증거와 진술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진모 전 비서관이 수수한 5000만원은 민간인 불법 사찰 폭로를 막기 위한 입막음용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검찰은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일단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오는 25일)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전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 개회식과 폐막식에 귀빈으로 정식 초청된 만큼 올림픽 기간 중 소환 조사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난다는 판단에서다.
첫 '탄핵 대통령' 기록된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으로 지난해 3월 탄핵됐다. 취임 당시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부녀가 모두 대통령에 취임한 ‘부녀 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웠지만,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는 인정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겁박 때문에 (뇌물공여가) 발생했다”고 봤다. 법조계 안팎에선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향후 박 전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는 인정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겁박 때문에 (뇌물공여가) 발생했다”고 봤다. 법조계 안팎에선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향후 박 전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이 전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국정농단의 주범은 헌법상 부여받은 권리를 외면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타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은 자들의 죄로 봐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 경영진을 겁박하고 최순실씨의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추구를 한 점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요구형 뇌물’로 판단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사기업인 삼성을 압박하고 뇌물을 요구했다는 의미다. 박 전 대통령의 죄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판부는 "형사법 체계에서 부패 책임은 공여자보다 수수자인 공무원에게 무겁게 적용된다"며 "특히 이번 사건과 같이 요구형 뇌물 사건의 경우 권력을 배경으로 한 강요가 동반되면 공무원에 대한 처벌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요구형 뇌물’로 판단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사기업인 삼성을 압박하고 뇌물을 요구했다는 의미다. 박 전 대통령의 죄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판부는 "형사법 체계에서 부패 책임은 공여자보다 수수자인 공무원에게 무겁게 적용된다"며 "특히 이번 사건과 같이 요구형 뇌물 사건의 경우 권력을 배경으로 한 강요가 동반되면 공무원에 대한 처벌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개혁과 높은 도덕성을 표방하며 취임했지만 퇴임 후 검찰 수사로 수난을 겪었다. 노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2008년 11월 국세청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탈세 혐의로 고발하며 수면 위에 올랐다. 검찰은 2008년 12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원을 빌려준 내용이 담겨 있는 차용증을 확보하며 수사를 본격 확대했다.
이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을 거쳐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검찰청에 소환해 조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수십만 달러를 추가로 수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을 거쳐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검찰청에 소환해 조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수십만 달러를 추가로 수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퇴임 대통령의 수난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남았다.
쿠데타·사살·사형선고까지…'수난의 역사'로 남은 역대 대통령들
이전 대통령들 역시 치욕스런 모습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장기 독재 집권을 하다 4·19 혁명으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18년간 장기집권했지만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됐다. 경제개발과 독재·인권탄압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수난을 겪어야 했다. 육사 시절부터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12.12 군부 쿠데타', 1980년 5월 `5.18 광주민주항쟁 무력진압' 등 총칼을 앞세워 차례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하지만 후임인 김영삼 정권 시절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18년간 장기집권했지만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됐다. 경제개발과 독재·인권탄압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수난을 겪어야 했다. 육사 시절부터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12.12 군부 쿠데타', 1980년 5월 `5.18 광주민주항쟁 무력진압' 등 총칼을 앞세워 차례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하지만 후임인 김영삼 정권 시절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군사정권 이후 민주화 시대를 연 ‘양김(兩金)’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자신의 아들이 구속되는 불운을 겪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아버지 재임 중인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데 이어 퇴임 후인 2004년엔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차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임기 말 차남인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기업체에서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두 아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