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6.30 03:02
제주의 예멘 난민들 지금은…
예멘 청년 이잘딘(26)은 출항을 앞두고 조기잡이 그물을 꿰고 있었다. 지난 26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의 한 부둣가.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사람이라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물을 손질하며 땀범벅이 된 얼굴로 가끔 파도를 바라봤다. 젊은 남성을 징집해가는 반군(反軍)을 피해 탈출했다는 그는 예멘에서 약학도였다고 했다.
"지난 5월에 들어왔어요. 기도할 시간도 없이 낯선 생활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학업을 마치고 싶어요."
이잘딘은 올 들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국적 난민 신청자 549명(6월 20일 기준) 중 한 명이다. 2015년 시작된 내전(內戰)을 피해 모국을 떠난 예멘인은 말레이시아~제주 직항 노선이 취항하자 이곳으로 건너왔다. 제주도는 2002년부터 무사증(무비자) 제도가 도입돼 외국인이 비자 없이도 30일간 머물 수 있고, 난민 신청을 하면 체류에 문제가 없다. 무사증 제도는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법무부는 지난 1일부터 예멘을 비자 면제 제외 국가에 포함해 추가적인 난민 유입을 막은 상황이다.
"지난 5월에 들어왔어요. 기도할 시간도 없이 낯선 생활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학업을 마치고 싶어요."
이잘딘은 올 들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국적 난민 신청자 549명(6월 20일 기준) 중 한 명이다. 2015년 시작된 내전(內戰)을 피해 모국을 떠난 예멘인은 말레이시아~제주 직항 노선이 취항하자 이곳으로 건너왔다. 제주도는 2002년부터 무사증(무비자) 제도가 도입돼 외국인이 비자 없이도 30일간 머물 수 있고, 난민 신청을 하면 체류에 문제가 없다. 무사증 제도는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법무부는 지난 1일부터 예멘을 비자 면제 제외 국가에 포함해 추가적인 난민 유입을 막은 상황이다.
번역기 돌려 구직, 3D 업종 취업
제주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은 시아파 후티 반군 세력의 강제징집을 피해 떠난 젊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고등교육을 받고 대도시에 살며 2·3차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다.
이날 오전 제주시 삼도동의 한 호텔. 이곳에 묵는 난민 가브르(28)는 최신형 삼성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모바일 엔지니어였다는 그는 이력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묻자 주섬주섬 학부 성적표를 꺼냈다. 2010년 사나(예멘의 수도)의 한 국립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졸업 성적은 상위 18%였다. 숙소에서 인연을 맺은 한국인들과 번역투의 한국어로 서툴게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법무부는 최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취업 설명회를 열었다. 3D업종이자 이주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어업·양식업·요식업에 주로 취업했다. 업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가브르는 "구직 중이라는 문자를 돌리고 있지만 답이 없다"며 초조해했다.
운 좋게 일자리를 잡은 예멘인들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들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만난 알하다드(22)와 알모하야(23)는 한 양식장에 취업해 닷새째 일하고 있었다. 업주 오지현씨는 "돼지고기를 못 먹는 걸 빼면 나머지는 문제없이 잘 적응하는 편"이라고 했다.
무사증 제도 손질, 다시 도마에
무사증 제도는 이번 난민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8년 2만3354명이던 제주도 무사증 입국자 수는 2017년엔 35만7588명으로 가파르게 늘어 왔다. 도내 외국인 범죄도 증가세다. 2011년 121명이었던 외국인 범죄자 수는 2017년 644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2016년 무사증 제도로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이 '식당 주인 폭행 사건' '성당 신자 피살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제주도청은 지난 21일에야 뒤늦게 '예멘 난민 TF팀'을 꾸렸다. 전담 부서가 없는 상태에서 자치행정과·관광정책과 등 유관 부서원들을 차출해 구성한 TF라 이번 사태만을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무사증으로 입국한 예멘 난민에 대해 지난 5월 18일 자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해 도내 취업을 허가해주었다. 한림수협 소속 어선 선주들은 "예멘인들에게 선원 숙소를 제공하고 아프면 병원까지 데려간다"며 "숙박비나 병원비를 보상해준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했다. 예멘인 20~30명이 묵고 있는 제주시내 한 호텔 대표 김우준(53)씨는 "법무부 측이 '이곳을 수용시설처럼 임대해 써도 되느냐'고 물으며 숙박비 할인·외상 등 난민들의 편의를 봐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인도주의를 표방하면서 부담은 업주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제주시 탑동에 사는 김모(37)씨는 "영국에서도 중동 난민의 내국인 강간·살인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일곱 살 딸에게 예멘 난민이 많이 모이는 삼도1동 인근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난민 관련 범죄 사건은 아직 없다. 하지만 도민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무슨 소용이냐"며 경계를 풀지 못한다. 제주에는 체류 자격을 잃고도 출국하지 않은 불법 체류자가 1만1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론은 난민 수용에 부정적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 25일부터 난민 심사를 시작했다. 하루에 두 명씩 진행 중이고, 아랍어 통역 인력을 보완한다 해도 하루 네 명 이상 심사는 불가능하다. 예멘 난민 500여 명을 모두 심사하려면 1년은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에 온 예멘 난민 문제를 국가적 차원의 현안으로 다뤄달라고 대통령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민 신청이 접수되면 심사가 진행되는 6개월~1년 동안 체류 자격이 주어진다. 심사 결과는 세 가지다. 난민법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되거나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되거나 외국인으로 남거나. 일단 난민 신청만 하면 이의 신청, 행정심판 등을 통해 최대 3~5년까지 체류할 수 있는 난민법 때문에 한국이 난민 브로커의 표적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적십자사 제주도지사 박시영 구호복지팀장은 "난민 신청 시 인정 비율은 3~4%"라며 "올해 들어온 예멘인들이 이보다 관대한 비율로 난민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여론은 부정적이다. 여론조사기관 리 얼미터의 지난 20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난민 수용 반대(49.1%)가 찬성한다는 응답(39.0%)보다 우세했다. 청년 실업에 시달리는 20대에서 유독 반대 비율이 높았다. 28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난민 관련 청원들도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난민의 제주 무사증 입국을 금지하자는 청원은 28일 현재 지지자가 50만명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