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韓.中關係

중국을 비판하면 서구 우월주의인가

이강기 2022. 11. 12. 13:17

중국을 비판하면 서구 우월주의인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조선일보 2022.11.12 09:00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55회>

 

 

<2021년 5월 10일 옌안의 동방홍 극장 앞에서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초상화를 판매하고 있는 상인. 사진/AFP Photo>

 

 

“중국 현대사를 구미 지식인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나?”

 

그동안 “슬픈 중국”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한국의 지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앞으로 중국에 갈 수 있냐?”였다. 중국이 자유와 인권을 제약하는 전체주의 국가임을 잘 알기에 글쓴이의 신변 안전을 우려해서 던지는 질문이다. 이와 달리 지금껏 “슬픈 중국” 시리즈가 “중국 현대사를 구미 지식인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리지는 않았나?” 항의하는 지식인도 이따금 있다.

 

10여 년 전 서울 소재의 한 대학에서 중국 개혁개방을 둘러싼 정치철학 논쟁에 관해서 논문을 발표할 때였다. 그 현장에 있던 중국 전문가 한 명이 “마오쩌둥이 없었으면 중국이 개혁개방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냐?”며 따졌다. 개혁개방의 초석을 마오쩌둥이 이미 놓았다는 주장인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한 발상이 역사의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1981년 6월 27일 “역사결의”에서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이 중국 현대사 최악의 동란이었으며 그 책임은 마오쩌둥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리차드 바움(Richard Baum) 같은 중국 정치학자가 지적하듯,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을 매장한(Burying Mao)” 후에야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었다.

<1992년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리처드 바움 교수의 저서 <<마오쩌둥 매장하기(Burying Mao)>>표지>>
 

자력갱생의 고립정책으로 서방 자본주의를 향해 쇄국의 빗장을 굳게 걸었던 마오쩌둥을 개혁개방의 선구라 주장했던 그 중국 전문가의 주장이 타당할 수 있는가? 마오쩌둥이 군사적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사회주의로 인민의 정신을 무장시켰기에 그의 사후 중국공산당이 강력한 대민지배력을 발휘해서 “중국 특색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발상일까?

 

마오쩌둥을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구미 학계의 중국 비판에 반감을 드러낸다. 그들은 묻는다. “구미 학자들의 중국 때리기(China-bashing) 밑바탕엔 뿌리 깊은 유럽중심주의와 서구우월주의가 깔려 있지는 않나?”

 

 

중국을 벗어나야 중국이 제대로 보인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소동파(蘇東坡, 1037-1101)의 시구를 생각한다.

“여산 진면목을 알지 못함은 不識廬山眞面目

단지 몸이 산속에 있는 까닭이라네 只緣身在此山中.”

            <청(淸, 1644-1912)나라 왕휘(王翚, 1632-1717) <<여산백운도(廬山白雲圖)>> 이미지/공공부분>
 

진정 여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평가하기 위해선 숭산(崇山), 태산(泰山), 화산(華山), 황산(黃山) 등 천하의 명산뿐만 아니라 산이 아닌 벌판, 사막, 호수, 바다까지 두루두루 섭렵(涉獵)해야 한다. 어디 산뿐이랴, 인간사(人間事) 모든 일이 그러하다. 젊음의 기쁨은 늙어서야 깨닫는다. 사랑의 의미는 실연(失戀) 후에 통감(痛感)한다. 돈을 벌고 난 후에야 가난에 진절머리치고, 속박당해 봐야 자유의 소중함을 안다. 운동선수가 경기의 흐름을 놓치면 엉뚱한 플레이를 하고, 정치인이 정세(政勢)를 오판하면 팽(烹)당하고 축출된다.

 

한 나라에 살아간다고 그 나라의 참모습을 절로 알 수는 없다. 일본 사람이 일본의 현실에 무지하고, 한국 사람이 한국의 진상에 눈을 감고, 미국 사람이 미국의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나라의 실상을 직시하려면 그 나라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중국처럼 반대 여론을 억압하고, 이의제기를 불허하고, 정부 비판을 처벌하는 일당독재 권위주의 국가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인식은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야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어떤 대상이든 그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선 수동적 체험자에 머물지 말고 섬세한 관찰자, 예리한 분석자, 냉철한 비판자가 되어야만 한다. 유럽의 격언처럼, 어리석은 자는 개인적 체험을 맹신하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본다.

 

오늘날 중국 밖 5천 만에 달하는 중국계 인구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중국을 벗어난 중국계 인사 중에는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며 시진핑 정권의 역행을 비판하는 일군의 지식집단이 맹활약하고 있다. 여산을 벗어나 여산의 진면목을 보게 되듯, 그들은 중국을 벗어나 세계를 보았기에 중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최근 과거 중국공산당의 근거지 옌안을 찾아가서 “옌안 정신”을 강조한 시진핑을 향해 중국 밖의 중국계 지식인들은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시진핑, 중앙정치국 상위 6인 데리고 혁명성지 옌안과 안양을 방문

 

제20차 당 대회를 마친 후 시진핑 총서기는 지난 10월 26일에서 28일까지 중앙정치국 상위 6인을 이끌고 중국공산당의 혁명 성지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와 문혁 시기 자력갱생의 신화가 서려 있는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시를 방문했다.

그는 옌안의 한 과수원에 가서는 사회주의 현대국가의 전면적 건설을 위해선 여전히 농촌의 책무가 중대하다고 강조했고, 중학교에선 학생들에게 ‘홍색 유전자’를 계승하라고 채근했다. 지난 10월 27일 옌안의 혁명 기념관에서 시진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옌안 지구에서 7년간 생활하면서 노동했다. 나의 부친 세대도 이곳에서 나왔다·······. 이번 중앙정치국 상위 동지들과 함께 왔는데, 새롭게 결성된 중앙 영도 집단이 옌안 시기 당이 세운 우량한 혁명 전통과 작풍을 계승·발양(發揚)하고, 옌안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함이다.”

< 2022년 10월 27일, 옌안혁명기념관을 찾은 시진핑 총서기와 중공중앙정치국 상위 6명. 사진/新华社记者 燕雁>
 

허난성 안양에서는 홍기거(紅旗渠) 운하 기념관을 찾아가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을 강조했다. 1969년 완성된 홍기거(紅旗渠)는 비탈을 끼고 절벽 사이 구멍으로 휘돌며 70.9km나 이어지는 산상(山上)의 대수로다. 1969년 향촌의 인민들이 불굴의 의지로 9년에 걸쳐서 완공했다. 이후 홍기거는 전국적으로 크게 홍보되면서 무산계급 혁명정신의 상징물이 되었다. 10월 28일, 시진핑은 허난성 안양의 홍기거를 시찰할 때 다음 발언을 했다.

 

“홍기거는 기념비다. 거기엔 린현(林縣)의 인민들이 숙명에 굴하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연과 투쟁했던 영웅적 기개가 적혀 있다. 홍기거 정신으로 인민을 교육하자! 특히 널리 많은 청소년을 가르치자. 사회주의는 견뎌내고 해내고 목숨을 걸고 바꾸는 것이다. 과거에만 그러하지 않고, 신시대도 역시 그러하다. 지난 세대가 목숨 걸고 일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선혈을 흘리고, 심지는 생명을 바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은 없다. 우리는 영원히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시진핑 총서기는 왜 20차 당 대회를 마치고 나흘 만에 정치국 상위 6명을 이끌고 옌안의 중국공산당 혁명 성지와 안양의 홍기거를 시찰했는가? 그가 직접 말하듯 “옌안 정신과 홍기거 정신은 절대로 마멸될 수 없는,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흔드는 중화민족의 역사적 기억”이기 때문일까? “젊은 세대가 고통을 삼키고 힘듦을 인내하는 자력갱생과 각고분투(刻苦奮鬪)의 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함일까?

                           2016년 시진핑 인격 숭배를 경계하는 영어권 언론들. 사진/인터넷 캡처>

 

재미 중국 지식인들의 시진핑 비판

 

RFA(Radio Free Asia)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영어 외 10개 아시아 언어로 중국, 북한,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아시아 공산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비영리 민간 방송국이다. 이 방송에선 최근 옌안 정신과 홍기거 정신을 선전하는 시진핑을 비판하는 중국 출신 비판 지식인들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후핑(胡平, 1947- )은 1980년 12월 베이징 대학 인민대표 선거에서 “표현의 자유”를 구호로 내걸고 당선됐던 인물이다. 후핑은 1980년대 후반 미국 유학을 떠나 현재 미국에 체류하면서 중국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이번에 그는 홍기거 정신을 외치는 시진핑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말했다.

 

“마오쩌둥은 인민을 향해 목숨을 걸고 힘겹게 일하며 우직하게 버티라고 요구했지만, 중국이 농업수리 정신을 발전시키려면 마오쩌둥 사상을 학습하는 대신 과학, 기술, 기계화 생산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시진핑이 홍기거를 중시하다니 참으로 황당무계할 뿐이다.”

 

대만에 체류하는 반중공 지식인 궁위젠(龔與劍)은 “마오쩌둥은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고, 사람과 투쟁하면, 그 기쁨이 무궁하다 했다”며 시진핑이 극빈의 상황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1960년대 인민의 고역을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신”을 강조하는 중국공산당의 기묘한 심리상태를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중공의 사전에는 ‘정신’이란 글자가 매우 많다. 지명을 딴 다칭(大慶)정신, 다자이(大寨)정신, 인명을 딴 뢰이펑(雷鋒, 1942-1962, 모범 군인) 정신, 자오위루(焦裕祿, 1922-1964, 모범 간부) 정신 등이 있다. 중공은 민중에게 학습하라, 정신을 배우라며 쉴 새 없이 다그친다. 꼭 중국 전체가 거대한 정신병원처럼 보인다.”

 

궁위젠은 1989년 후난(湖南)성 이양(益陽)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후 2년의 노동 개조형을 살았던 인물이다. 2012년 이래 대만으로 건너가서 중국공산당의 인권 탄압과 정치범죄를 비판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른바 “중국 이의자(異議者)”다.

    <현재 대만에서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고 있는 중국의 민주화 투사 궁위젠(龔與劍)의 모습. 사진/rfa.org>

 

지난 11월 4일 RFA에는 한 중국계 재미 역사학자가 출연해서 “옌안 정신”과 “홍기거 정신”을 외쳐대는 시진핑 총서기를 직설 화법으로 통렬하게 비판했다.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쑹융이(宋永毅, 1949- ) 교수다. 그는 30년 넘게 1950-70년대 중국공산당의 정치범죄와 인권유린의 실상을 고발해 온 저명한 역사·문헌학자이다.

 

“시진핑은 퇴행적으로 마오쩌둥 시대의 계획경제로 돌아가려 한다. [마오쩌둥의 방법대로] 공사합작 경영과 인민공사로 회귀하면, 경제발전은 빠르게 무너진다. 개혁개방 40년인데, 시진핑이 대규모의 퇴행을 거듭하면, 과학기술의 수준, 공업발전, 국민경제가 수년 내에 크게 벌어지고 만다.”

 

“시진핑이 칭송하는 옌안 정신이 과연 무엇인가? 옌안 정풍(整風)은 마오쩌둥이 당내에서 개인숭배를 절대화하고 권력을 독점하고 전횡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 시절 옌안에서 마오쩌둥은 대규모 숙청을 감행하고 청년 지식분자들을 세뇌했다. 시진핑이 옌안 정신을 외치는 진의는 무엇인가? 시진핑이 당내에서 숙청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시진핑은 역사관에서 완전히 마오쩌둥 시대의 역사를 그대로 복제하려 한다.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제하려 한다. 그 정신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2022년 11월 4일 RFA대담에서 시진핑 정권을 비판하는 쑹융이(宋永毅, 1949- ) 교수. “시진핑이 젊은이에게 고난을 곱씹으라 요구한다고? 비정상적인 ‘고난 숭배’다!” 사진/rfa.org 캡처
 

“마오쩌둥 시대 봉폐(封閉)되고 낙후된 경제 발전관이다. 홍기거는 대규모 정치 운동, 군중 운동이었으며, 낙후된 생산방식으로 건설되었다. 과학적 고려나 통일된 계획도 없었다. 관개한 토지의 면적도 본래 60만 무(畝)이었는데,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인근지역의 수자원을 침탈하는 근린궁핍화(以隣爲壑)정책이었다. 인근지역은 불만이 많았다. 마오쩌둥의 계획경제는 순식간에 후퇴하고 붕괴했다. 중국 재원(財源)은 순식간에 고갈되고 만다. 문혁 후 중국 경제는 세계 수준에 20, 30년 낙후되었다. 그 기간에 5천억 위안을 소모했다.”

 

“시진핑이 젊은이들에게 고통을 악물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비정상적인 고통 숭배다. 도덕의 제고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인성에 위반된다. 홍기거 건설할 때 사망자가 300명이 사상자가 3천 명이나 발생했다. 이는 칭송할 일이 아니다.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해서 인민 스스로 사서 고생하게 해선 안 된다.”

 

쑹융이 교수와 함께 대담한 반중공 정치평론가 장펑(江峰)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전 인민이 언제든 봉쇄되는 상황이 오면 시진핑은 필시 “우공이산”의 고사를 들먹일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진핑이 외치는 ‘우공이산’에서 우공은 단지 미련스럽게 충성스럽다는 것이며, 이는 시진핑이 요구하는 바다. 만일 고난의 시기가 다시 오면, 그는 산을 옮기는 현실적 실천이 아니라 우직하게 충성만 바치는 우공을 요구할 것이다.”

 

중국을 벗어나 중국의 진면목을 보고 중국의 실상을 고발하는 중국계 지식인들의 맹활약을 보면서 피부색, 국적, 종교, 젠더를 너머 인간의 정서적 보편성을 절감한다. 인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데, 거기에 무슨 “유럽중심주의”나 “서구우월주의”가 개입될 수 있나?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개발독재에는 증오심을 드러내면서 중국공산당은 감싸고 도는 사람들의 이중잣대야말로 자가당착이며, 시대착오적 사대주의가 아닐까. <계속>